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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온실 공주님의, 북부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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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작은별
작품등록일 :
2024.01.16 10:26
최근연재일 :
2024.02.15 23: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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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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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수 :
126,555

작성
24.02.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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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뭐긴, 반격 시작이다

DUMMY

세상이 멈추었다.


잔잔히 내리는 눈 마저도 그 순간만큼은 멎은 것 같았다.


고요한 겨울의 한 가운데에 그와 나 둘만 존재했다. 


좋은 날 예쁜 곳에서 말하겠다며 아껴왔을 그의 진심은, 냉혹한 현실 아래서 산산조각났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얼굴로 시엘로가 붙잡았다.  


 “답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저를.. 그리 보시지 않는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모하는 이를 이리 보낼 수는 없습니다.”


바보.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지금이야.. 마음 편히 가지도 못하게.


다 놓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나약한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떠나고싶지 않다.

그와 함께하고싶다.


저 말을 조금 더 일찍 들었다면 뭐가 달랐을까?


아니. 아니다.

그래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것이다. 


애절한 회색 눈동자가 두고두고 눈에 밟힐 것 같아서, 나는 그를 등지고 돌아섰다.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냉정하게 말했다.

고백에 대한 답으로는, 다소 차가운 말을.   


 “연모라··· 그건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겁니다. 함께 상의해서 문제를 해결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찾아본다면 다른 방법은 있겠죠. 하지만 그 중 이게 가장 빠르고, 쉽고, 효율적이며, 피해도 적은 길입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공주님께서 가신다고 해도 저들이 약속을 지킬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치욕을 씻기 위해 이 곳까지 온 기사가, 만천하 앞에서 스스로 선언한 약속을 어길까요?” 


시엘로는 답하지 못했다. 

어린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그라면 더 잘 알고 있겠지. 


 “또한 나를 얻게 되면 피루아와 티타르 간의 혼인동맹은 체결됩니다. 그는 더이상 로레타를 공격할 명분이 없습니다. 물러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째서 항상 이렇게 자신의 안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움직이시는겁니까.”  


“왜냐구요? 내가 왕족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때문입니다. 나는 공주고, 그대들을 지킬 책임이 있으니까.”


 “공주님 제발.”


이 혹한의 땅에 살면서 수없는 상실을 겪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듯한사람.


나는 그를 위로하려 웃어보였다.


 “위정자는 자신의 백성을 그 무엇보다 최선으로 생각해야 해요. 자신의 안위보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가족보다도, 연인보다도 더 말입니다.”


그대의 아버지처럼.


마지막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충분히 전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한가지를 더 당부했다. 어렴풋한 추측일 뿐이라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손톱 밑의 가시처럼 줄곧 거슬리던 위화감. 


 “이케토스 공작은 내게 ‘대담하다’고 했어요. 기우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전력을 손바닥보듯 들여다보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늘 조심하시길.” 


마지막까지 로레타에 대한 염려를 늘어놓는 나를 보며 시엘로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분이셨죠. 좋습니다. 이런 말 만으로는 잡히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그의 눈은 침착하게 돌아있었다.


 “지금, 적진에 가서 이케토스 공작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제정신입니까?”


 “공주님을 보내는 것 보다야 이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절대적 우위를 점했다 여길테니 기습은 생각지도 못할테고, 사흘째 아무 전투도 없었으니 경계도 풀려 있겠군요.”


말도 안되는 계획을 정말 실행할것처럼 가늠하고 있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그러는 공주님은 얼마나 이성적이십니까.”


한치의 물러섬 없는 대치가 이어졌다. 


그때



 “큼큼,, 어··· 두분 방해하려는건 아닌데요.”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는 테레사였다.


 “두분 다 왜 이렇게 극단적이신겁니까? 어쩌다 보니 들었는데 거.. 참··· 두 분 다 똑같으십니다.”  


 “테레사? 여긴 어떻게..!”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공주님이 도망치시지 못하도록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공주님께서 하실 생각이야 뻔하잖아요.”


기가 막혔다.


 “이건 어떻습니까? 그냥 저희끼리 생각해본건데.. 두분의 생각보다야 현실성 있는 것 같아서요.”


시엘로와 나는 귀를 기울였다.




 “···위험해요.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시엘로의 무대포 작전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위험부담이 컸다.

이리스족 때와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함부로 도박을 걸기에는 걸린 것이 너무 많았다.


 “내놓으란다고 순순히 바칠 수는 없잖아요? 로레타의 이름값이 있는데. 것도 무려 공주님을.”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갈 필요 없잖아요. 내게는 그대들이 소중해요. 왜 이해해주지 못하는거죠?” 


 “이해를 못하시는건 공주님도 마찬가지잖아요. 공주님. 저희도 무작정 지켜지는건 싫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건 더 싫구요.” 


 “해준것도 없는 피루아에게.. 왜... 이렇게까지...” 


이 쑥스러움 많은 기사는 먼 산으로 시선을 돌리고 들릴 듯 말 듯 덧붙였다. 


그 말은 이미 확고했던 내 마음을 돌려놓았다. 


 “피루아는 싫지만, 공주님은 좋아해요.”  


.

.

.


이틑날 날이 밝았다. 

이케토스 진영의 막사에서 공작은 시간을 가늠했다. 


 “결국, 이렇게 되나보군.”


어쩌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과한 바람이었던가. 


에스트렐라 공주의 영민하게 빛나던 눈동자와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한 인사, 대담한 배팅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의 진가를 파악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새로운 안주인도 얻고 복수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계책이라 생각했는데 아쉽군.”


그는 입맛을 다셨다. 


 “원래의 계획대로 가는 수밖에.”  


 “전 군사를 대기시켜라. 오늘 안에 로레타를 돌려 받는다.”


이케토스 공작의 전 병력이 성문 앞에 집결했다. 

공작은 자신 있었다.

성문만 뚫는다면 승리는 티타르의 것이다.


마력폭탄을 사용해 성문을 뚫으려던 그 순간, 


 “공작님! 성 문이 열렸습니다!” 


 “오오!” 


과연 성문이 조금 열리고 붉은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 열댓명의 호위를 거느린 채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옷 색을 확인한 이케토스 공작은 흡족한 웃음을 띄었다. 

피루아 왕국의 흰 예복이 아니라 티타르 왕국의 붉은 예복이었다. 


제법 절차를 갖추어줄 마음이 들었다.  


 “군을 물려라! 예를 갖춰 내 신부를 맞을 것이다!” 


그는 군사를 물리고 말에서 내려 친히 자신의 신부를 기다렸다. 


붉은 혼례복에 겹겹이 감싸인 그녀는 멀리에서 보아도 기품이 넘쳤다. 붉은 가마 대신 붉은 천으로 장식한 말을 탔다. 땅에 끌릴 듯한 치렁치렁한 옷자락 사이로 붉은 신발이 살풋 보였다. 고귀한 여인임을 의미하는 붉은 너울을 쓰고, 금색 장신구로 한껏 치장한 신부를 맞을 생각에 공작은 하늘을 날아갈 듯 했다. 


에스트렐라 공주는 훌륭한 공작비가 될 것이다. 

비록 적국의 공주이긴 하나, 저렇게 어리고 어여쁘며 영특한 여인이니, 가까이에 두고 아껴 주어야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드높은 신분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게 없었다. 



마침내 그녀가 탄 말이 이케토스 공작의 앞에 멈추었다. 


 “잘 생각했습니다, 에스트렐라.”


그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조는, 지키시리라 믿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대를 아내로 맞고싶은 욕심에 무례를 범했습니다만, 그대가 이리 티타르의 풍습을 따라주니 나 또한 그대를 존중할겁니다. 예물과 예단은 식을 올린 후에 피루아 왕국에 보낼 겁니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으나 그대의 명예를 해할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법 격식을 갖추는 흉내라도 내주겠다는 뜻이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납치당하듯 갔던 비앙카 비의 경우를 생각하면 꽤나 선심을 쓴 것이었다. 


 “배려에 감사할 뿐입니다.” 


공작은 예법에 따라 직접 신부를 안아들었다. 겹겹이 껴입은 옷 때문인지 체구에비해 무거웠지만 공작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신부가 늙은이로 볼까 두려웠기때문이다. 

신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했는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당차던 며칠 전과는 달리 한없이 여려보였다. 


 공작은 품안의 어린 신부를 얼렀다.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생활은 아닐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다른 애인도 첩도 없고, 본부인에게 충실한 사람입니다. 아들놈도 분명 반겨줄겁니다. 나이도 비슷하니 친하게 지낸다면 좋겠군요.” 


.

.

.


공작의 품에 다소곳이 안긴 테레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들이 있어? 심지어 공주님이랑 또래야? 아주 단단히 돌았네.’ 


 “이케토스는 부유한 영지입니다. 피루아의 왕궁만큼이야 못하겠지만, 그대가 원하는거라면 무엇이든 사드리겠습니다. 약속하지요. 내 그대를 아껴드리겠습니다.”   


‘그럼 뭘 하냐. 니놈이 곧 관짝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아껴어? 이놈이 진짜. 아들보다 어린 여자를 뭘 아껴.’ 


하지만 겉으로는 가냘픈 에스트렐라의 흉내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

.


테레사의 여장(?)


이 발상이 시작된건 이케토스 공작이 에스트렐라 공주를 아내로 맞겠다고 선언한 그 날이었다. 


 “저런 염치도 없는 놈은 내가 대신 가서 혼쭐을 내줘야하는데.” 


홧김에 뱉은 말이었지만, 생각할 수록 일리가 있었다. 

테레사는 자리를 고쳐앉았다. 


 “나 방금 뭐라그랬냐? 나 천잰가?” 


하지만 부하들의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했다. 


  “대장이? 공주님 대신? 진심이야?”


 “공주님보다야 대장이 튼튼하기는 할텐데··· 그걸 누가 속냐? 눈깔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아무도 안속을걸.” 


 “다 대장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백퍼 세 발자국도 가기 전에 들킨다. 선머슴같은 대장이랑, 세상 존귀하신 우리 공주님이랑. 성별 빼고 같은 점이 뭐가 있냐?” 


 “눈 찡그리고 봐봐. 대충 닮지 않았냐?” 


 “어 매우 닮았네.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라는 점이 매우 똑같아.” 


 “아 좀 진지하게 봐보라고.” 


그들은 마지못해 테레사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 외로 닮은점이 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비슷한 연령에, 비슷한 키, 작은 체격, 짧은 머리카락까지. 

테레사의 머리카락은 지푸라기색이었지만, 햇빛에 비치면 얼핏 금발이라고 쳐줄 법도 했다. 


 “아냐. 그래도 안돼. 공주님이랑 대장이랑은 앉아있는 자세부터가 달라. 공주님은 앉아만 계셔도 우아와 품위가 철철 넘쳐 흐르시는데. 너는? 뭐.. ”


얼굴은 베일로, 체격은 옷으로 가린다 쳐도 말투나 몸짓은 하루아침에 따라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긴.. 그렇지?”


그렇게 접은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에스트렐라와 시엘로의 미친 짓거리보다야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아보였고, 

그게 바로 테레사가 에스트렐라인 척 이 곳에 온 이유였다. 


테레사의 여장 계획은, 에스트렐라와 시엘로의 의견을 거치며 훨씬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 이케토스 공작이 길게 속아줄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어요. 그러니 잠깐이라도 시선을 끄는 걸 목표로 하세요.


‘제발 진지까지만 가라 제에에에바아아알..’ 


붉은 베일 속에서 테레사는 눈치채이지 못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신부 맞이에 정신이 팔린 이케토스 군은, 한 무리의 병사들이 비밀리에 성문 밖으로 향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됐다. 


- 막사 안에는 우리측 기사들이 들어갈 수 없어요. 홀로 수십을 상대해야하니 위험이 배로 높아집니다. 그러니, 가장 유리한 타이밍은 진지에 도착한 그 시점입니다. 아직 적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진지에 다다른 테레사는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뭐냐!” 


테레사는 거추장스럽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시원하게 벗어 던졌다. 새파란 하늘 위로 붉은 베일이 날아갔다.



 “뭐긴. 반격 시작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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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렇게 사랑스러우면 어떡하라고... 24.02.15 29 0 12쪽
23 당신과 같은 향이 나요 24.02.15 32 0 12쪽
22 어떻게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24.02.14 22 0 12쪽
21 다들 뒈지면 죽여버린다 24.02.14 48 0 10쪽
» 뭐긴, 반격 시작이다 24.02.13 59 0 12쪽
19 가지 마십시오. 제발 24.02.01 41 0 12쪽
18 항전한다 24.01.31 29 0 12쪽
17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24.01.30 99 0 12쪽
16 그렇게 웃으시니 꼭 별(estrella) 같아서 24.01.29 63 0 13쪽
15 내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24.01.29 52 0 13쪽
14 나를 좋아해요? 24.01.28 82 0 12쪽
13 들키기 전에 돌아오면 되지 24.01.27 27 0 11쪽
12 폭동 24.01.26 63 0 12쪽
11 형편없는 환자 무서운 의사 24.01.25 30 0 12쪽
10 협상을 시작하지 24.01.24 64 0 12쪽
9 하면,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세요 24.01.23 72 0 12쪽
8 어떻게든 살아만계십시오 24.01.22 58 0 13쪽
7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24.01.21 77 1 12쪽
6 가장 깊은 악몽 24.01.20 53 1 12쪽
5 늑대 일족의 습격 +1 24.01.19 72 3 12쪽
4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24.01.18 76 3 12쪽
3 한겨울에 찬물 목욕 24.01.17 90 3 11쪽
2 쥐고기를... 먹으라고...? 24.01.16 87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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