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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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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92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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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DUMMY

천수도령이 서둘러 선아를 쫓아가자며 승주에게 눈짓했고, 승주는 대닶 없이 고개만 한 번 더 끄덕였다.


그렇게 천수도령과 승주는 수희를 향해 찜찜한 마음을 지닌 채, 등산로 입구 길을 따라 열심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오르고 있는 산은 서울 노원구에 자리잡은 ‘초안산’이었다.


처음 수희에게 푸른 돌을 건네받은 천수도령은 그것을 자신의 스승님인 일원선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푸른 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돌려보던 일월선녀 역시 그 돌의 정체를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스승님도 모르는 돌의 정체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정체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천수도령이 전전긍긍하던 순간 일월선녀가 푸른 돌을 신당 위에 책상에 올려놓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윽고 일월선녀는 자신이 알고 지내는 악사 한 명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래, 잘 지내시나?”


일월선녀가 전화를 건 상대는 동해안 별신굿의 악사(樂士) 중 한명이었다.


동해안 별신굿의 악사는 아무나 될 수 없었다.


다른 굿판의 무악(巫樂)과는 다르게 동해안 별신굿의 음악은 오롯이 타악기로만 반주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동해안 별신굿에 쓰이는 남성 악사들에 의한 타악 장단은 다른 굿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연주가 필요했다.


악사에게 있어 음악으로 용왕신을 달래고 어르며, 공손히 부탁하는 것은 굿판을 주도하는 무당과 다를 바 없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래서일까, 사해신(四海神) 중 하나인 일월선녀조차 지금 통화 중인 자신보다 한창 어린 오십대 중반의 악사에게만큼은 깍듯한 예의를 차렸다.


천수도령에게 무명도사의 본거지인 구미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자세히 듣고 난 일월선녀는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별신제 굿을 맡고 있는 악사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는 동해 뿐 만 아니라 서해와 남해에서도 별신굿을 도맡아 음악을 연주할만큼 악사들 사이에서 큰 위치에 있었기에 알고 지내는 무당들이 많아 돌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그래요? 그럼... 실록에서 그 돌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실존하는지는 모른다? 그래요, 세종실록? 몇 번째 권인지는 모르고? 그래요, 그래도 그게 어디야, 고마워요! 일단 실마리는 얻었네요. 고마워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일월선녀를 바라보던 천수도령은 이내 단서는 찾았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악사의 말에 따르면 뱀 귀신을 퇴치하고 얻은 그 돌은 ‘만인혈석’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




그렇게 천수도령은 조선왕조실록 속에 언급된 ‘만인혈석’이란 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종실록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대왕이 즉위한 1418년부터 1450년 그가 승하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으로 모두 163권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그 모든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를 손수 번역해 놓았고, 특정 단어나 구절 혹은 사건을 검색해 원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기에 천수도령은 다행히도 손쉽게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세종실록> 19권 1437년의 기록에 따르면 만인혈석이라는 돌에 대한 내용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조선의 변방을 떠돌던 도적 중 ‘거아첩합’ 이라는 인물을 압송하던 통사에게서 신기한 돌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그 도적의 아내에게 통사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받게 된다.


자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물이 있는데 그것을 병이 걸린 조카에게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으니, 기왕 수도에 가는 김에 그것을 다시 되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거아첩합의 아내는 그 물건이 매우 귀한 것이기에 꼭 돌려받아야한다며 그에게 간곡히 청하였기에 결국 통사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그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통사는 임금 세종에게 찾아가 그것에 대한 보고를 올린다.


붉은 빛이 감도는 작은 구슬 같은 돌은 ‘만인혈석’이라고 불리는데 그것을 갈아 물에 섞어 마시면 모든 병을 치료하는 신기한 돌이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종대왕 역시 중국의 사신에게서 우연히 듣게 된 돌과 이것이 같은 것임을 눈치 챘다.


북방 야인 지방에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뱀이 있었는데 만 명의 사람을 잡아먹는다 하여 그 뱀을 ‘만인사(萬人蛇)’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뱀을 잡아먹는 ‘관’이라고 부르는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만인사를 잡아먹고 둥지에 알을 낳으면서 돌도 하나 낳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만인혈석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세종대왕의 몸은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다. 1436년 말과 1437년 초 사이에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공식적으로 거론할 정도로 그의 몸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황희 정승이 이를 악물고 그것을 반대했지만, 참을 수 없는 갈증에도 하루에 수십 번씩 물을 마시는 당뇨증상과, 등 위에 찾아온 부종, 게다가 당뇨로 인해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당장 눈앞의 사람마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도 한글 창제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던 세종대왕은 만인혈석이라는 돌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치유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기록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북방으로 신하를 보내 만인혈석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하였지만 마땅한 정보를 구하기도, 또 만인혈석을 구해 멀어져가는 세종대왕의 눈을 치료했다는 내용 역시 실록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 아무 효과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혹시 아니면... 기록 자체를 숨기기 위해 언급하지 않은 걸까...?


천수도령은 세종실록을 읽어 내려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점심을 먹으라며 천수도령의 방에 자신을 부르러 온 선아는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며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천수도령은 수희가 부탁했던 돌에 대한 정체가 만인혈석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간 조사했던 세종실록의 일을 간단히 말해주었다.


잠자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선아는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천수도령에게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사형! 뭘 그리 고민해요? 실록에 정보가 없으면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지!”


빙긋 웃으며 말하는 선아를 향해 천수도령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식으로 멀뚱멀뚱 쳐다보자 선아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꺄르르' 웃으며 천수도령의 어깨를 한번 쳤다.


“어머! 사형! 바보 같아! 귀신한테 가서 물어보면 되지!”


이제야 선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이 천수도령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선아야!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은 아무나 못 불러 내! 특히 왕같은 분들은 기운도 셀 뿐만 아니라 아무 무당들한테 강림하는 존재들이 아니야. 거의 신급에 가까우신 분들이라고! 어떻게 초혼해서 물어보냐? 못 해! 스승님이 하셔도 못 불러내! 감히 어디 왕을 불러낸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천수도령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선아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선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천수도령에게 대답했다.


“에구! 사형! 정신 차려요! 내가 아무리 애기무당이라지만, 그 정도도 모를까? 아니, 무당이라는 사람이 너무 틀에 박힌 거 아니에요? 임금님한테 직접 물어보지 못하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테 물어볼 생각을 왜 못 해? 조선시대 임금 모시던 사람들이 누구에요? 내시나 궁녀들일 거 아냐?”


선아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말하자, 천수도령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무언가 찌릿하고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분명 실록에 적히지 못한 이유가 따로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세종대왕의 바로 옆에서 그를 모시며 모든 것을 듣고, 보았던 존재들에게 만인혈석의 존재에 대해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이야! 너 천재 아니냐?”


“훗! 내가 좀 치죠?”


깔깔대고 웃어재끼는 선아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천수도령 역시 사람 좋게 껄껄대고 웃어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만인혈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내시들의 무덤이 자리 잡았다는 노원구 월계동의 초안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1호선 월계역에서 만난 이들은 초안산 초입에 만나 지금 해발 115미터 정도의 초안산에 오른 지 이십여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흔히 집앞에 있는 작은 동산처럼 보이는 얕은 산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서니 제법 우거진 수풀과 나무들이 보였고 여러 갈래의 길이 나눠져 있어 자칫 이끌리는대로 마음대로 걸었다가는 길을 헤매기 딱 좋은 모양이었다.


주변의 월계동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인지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종종 보였고, 낡긴 했지만 운동 기구들 역시 곳곳에 산재해있어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을 꽤 찾아볼 수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갈색 나뭇가지나 낙엽이 쌓여 향긋한 숲내음이 가득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앞서 걷던 선아가 걸음을 우뚝 멈추어서 뒤따라오고 있는 천수도령과 승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기! 저기! 찾은 거 같아요!”


가쁜 숨을 고르며 말하는 선아는 손가락을 곧게 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나무들 사이로 경사진 비탈면에 자리잡은 목이잘린 동자석과 문인석이 보였다.


“헐! 근데 사형! 이 돌 석상 왜 모가지 없어요? 그리고... 왜 이리 처량맞지? 누가 보면 버리고 간 줄?”


“그러게요. 단면이 매끄러운 걸 보면... 누가 자른 거 같기도 한데....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처량맞다는 선아의 말처럼 비석 하나는 쓰러져있었고, 조선시대 관복을 입은 듯한 문인석은 목 윗부분이 잘린 채 녹색 이끼를 잔뜩 머금은 채 쓸쓸히 서 있었다.


“방치된 거죠. 모두 다 잊혀진 채로...”


씁쓸한 목소리로 말하는 천수도령의 말에 한껏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선아가 말했다.


“에? 사형! 이거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요?”


선아의 질문에 천수도령이 말했다.


“선아야, 우리 지금 어떤 사람들 만나러 온거지?”


“사람은 아니지. 암튼... 내시나 궁녀들 보러 온 거 아니에요?”


천수도령이 ‘헛’ 하고 작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선아에게 말했다.


“생각을 해봐라. 궁녀나 내시들이나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죽어서 묻힌다 한들 누가 관리를 해주겠어? 지금은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리를 한다는 거 같긴 하다만.... 이렇게 방치된 채로 딱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


고개를 들어올려 바라본 초안산 중턱 수풀 너머로 이름모를 부서진 낡은 비석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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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챕터9-163.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2) 24.01.02 15 1 12쪽
162 챕터9-162.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1) 24.01.02 16 2 12쪽
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6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19 2 11쪽
159 챕터9-159.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2) 23.12.31 18 2 11쪽
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6 2 12쪽
157 챕터9-157.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3) 23.12.30 17 2 12쪽
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0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7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8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6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6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4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5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4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8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20 1 11쪽
139 챕터8-139.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3) 23.12.21 17 1 11쪽
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6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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