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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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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70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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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DUMMY

원돈의 아버지 일구의 본래 고향은 이곳 태백이 아니었다. 본디 대대로 그의 집안은 전라도 나주 집안 출신이었다.


원돈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일구의 아버지는 새 세상을 여는 꿈에 부풀어 집을 뛰쳐나갔던 '동학도'였다.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자신의 핏줄과 만삭의 아내, 그리고 지독한 가난만 남겨둔 채 원돈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집을 나갔다. 하지만 그 후로 그는 두 번 다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제 3국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청일 양국의 대립을 중화시키려고 했지만, 청국은 결국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대항했다.


전라도에서는 이것에 분노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고자 정부군이 출동했다.


병조판서 민영준(閔泳駿)은 청군의 대표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군을 청했고, 위안스카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아산에 청군을 집결시켰다.


일본 역시 질세라 청군보다 많은 병력을 인천에 상륙시켰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6월 11일 동학군은 진주성(晋州城)에서 자진 해산했다.


동학에 뜻을 둔 모든 무리가 뿔뿔이 흩어진 후에도 그의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원돈의 할머니는 남편의 무사 귀환만을 기원하며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신(神)과 운명(運命)은 가혹했다.


하나뿐인 혈육인 자신의 어린 아들 일구를 데리고 고진 세상 먼지 속에 섞여 버텨오던 그의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지아비의 죄를 묻기 위해 찾아온 한 무리의 일본 군인들에 의해 몸이 더럽혀졌다.


그 후로 넉 달이 지나자 그녀의 배는 갑자기 불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오지 않는 젖을 물고, 낑낑대며 울어대던 일구의 어린 동생은 약 한 첩 써보지 못하고 이레 째 되는 날,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갔다.


일본인들의 몹쓸 짓으로 원치 않던 아이를 밴 후로, 마을 주민들은 원돈의 할머니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밭을 매고 돌아오던 그녀는 자신의 어린 아기가 시장 바닥에 죽은 채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난 후부터 정신을 놓고 목을 매달았다.


일생을 하나 뿐인 지아비를 기다린 여자. 일본인들에게 몸을 더렵혀진 채, 아들 하나 먹여 살리고자 혼신을 다하다 스스로 비참한 생을 마감한 어머니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 일구는 독립운동에 온몸을 내던졌다.


맵디 매운 삶 속에 홀로 내던진 채로, 어미의 싸늘한 시신을 염하며 일구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되씹어야만 했다.


어미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비를 원망하고, 아비를 세상 속으로 내몰아버린 나라를 원망하고, 기약 없는 당신의 지아비를 기다린 어미의 질긴 기다림을 원망하였다.


원돈은 그런 아버지 일구의 사연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 곳 태백 탄광마을로 흘러들어온 것도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고 했다.


본래 살던 고향인 전라도 나주라는 곳은 원돈에겐 먼 남의 나라이야기만 같게 느껴졌다.


원돈이 이런저런 자신의 아버지 일구의 슬픈 사연을 곱씹으며 속상해하고 있던 찰나 작은 헛기침 소리와 함께 쭈볏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계순의 모습이 보였다.


“계순아!”


반갑게 그녀를 향해 다가간 원돈이 계순의 손을 잡으려던 순간, 계순이 몸을 흠칫 놀라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얼핏 붙잡아 벌어진 그녀의 옷소매 사이로 얼기설기 얽힌 꽃팔찌가 보였다.


“왜.. 왜그래? 내가 뭐 잘못했누?”


당황한 원돈이 계순을 향해 말을 더듬으며 말하자 계순이 슬픈 눈동자를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왜 부른 거야? 나 가족들 저녁 준비하러 가야 해....”


조심스러운 계순의 말에 원돈은 서둘러 자신의 가슴 품에 숨겨놓았던 은반지를 꺼내 계순에게 건네려고 했다.


“계순아! 나와 혼인해 줄래?”


원돈의 갑작스런 고백에 순간 계순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원돈을 쳐다보고 말했다.


“여기는.... 신성한 곳이니께... 솔직하게 말할게. 원돈아.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랑 혼인하고 싶어. 미안해...”


계순의 말은 살짝씩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심이었다.


원돈은 순간 놀라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은가락지를 흙바닥에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뭐라고? 다른 이가 있어? 누군데. 내가 아는 동네 사람이야? 그이가 누구야?”


그의 말에 계순은 더 세게 자신의 입술을 질겅이며 말을 아꼈다.


“말해 봐! 누구냐고! 마을 사람이야?! 누구야?”


원돈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며 격앙되어 있었다.


어릴 적 마을 소꿉친구이자 자신에게 있어 한없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계순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니, 그것도 계순이 마음에 품은 이라니 원돈은 화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그 남자를 찾아가 목을 분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우리 아부지한테는 말하지 마. 내가 말할게.... 일구 아저씨한테도 내가 말할게. 넌 그냥... 모른 척 해주라...”


살짝 울먹이던 계순은 서둘러 서낭당 나무에서 걸어 나와 마을로 향했다.


그런 계순의 뒷모습을 원돈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다가 어느새 흘러나오는 눈가의 눈물을 석탄에 더러워진 옷소매로 훔치며 계순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계순아! 나는 너 포기 못 해! 나는 너와 꼭 혼인할 거야!”


원돈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서낭당 나무 주변으로 흩어졌다.



***



한편 계순이 원돈의 고백을 거절하는 동안 소우타는 초조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우타는 자신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관부 연락선을 타고 무사히 경성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 거의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쿄에서 시모노세키(下關)행 열차를 타고 항구에 내려 관부 연락선을 타고 부산을 거쳐 경성까지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소우타의 아버지 아서 다키치(麻西太吉)는 아서 탄광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 일본의 정치 명문가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탄광 사업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정계(政界)에 나가 정치에도 욕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다키치는 소우타가 계순과 혼인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노발대발하며 당장 이곳으로 찾아온다고 역정을 냈다.


자신을 이곳 태백 탄광마을로 보낸 것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탄광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밑바닥부터 배우라는 의미였지, 조선인 여자에 홀려 혼인 따위를 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며 길길이 날뛰던 아버지였다.


- 아마... 계순이를 보자마자 죽이려 하실텐데. 어쩌지...


자신의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던 소우타는 초조한 마음에 계순을 데리고 이 마을에서 도망갈까를 생각했지만 애써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족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계순의 성격 상, 자신과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살자고 하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불같은 성정(性情)을 소우타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계순만큼은 지켜야했다.


소우타는 두렵고 초조한 마음에 손톱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그의 손톱을 질겅거리며 씹고 있었기다. 어느새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에 놀라 소우타는 멍하니 자신의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톱 틈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맺히더니 어느새 바닥으로 뚝뚝 한두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



경성 총독부에 들려 일본 고위관료를 만나 뇌물을 건네고 총독부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다키치는 신경질적으로 그의 외투를 벗어 옆에 있는 보좌관에게 집어던졌다.


- 이 망할 놈의 개자식을! 어휴! 소우타를 꼬득인 년을 죽여버려야 해! 어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속으로 그의 하나뿐인 외아들 소우타를 욕하고 있던 다키치는 거칠게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다키치가 탄 노선 기차에는 일본 고등계 형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들은 한국 유학생들을 엄중히 감시해 사소한 일로도 연행해가거나 반병신을 만드는 이들이었다.


일본말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형사들은 귀신같이 한국인들을 가려내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괴롭혔다.


다키치의 옆에는 ‘노득술’이라고 하는 한국인 경찰이 있었다.


그는 일본이름으로 개명까지 한 친일 경찰이었는데 ‘고문귀(鬼)’라는 별명으로 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고문귀 노득술은 독립 운동가를 고문하면서 즐거워하는 악마였다.


황해도 관찰도 순검과 해주경무서 순검으로 경찰 인생을 시작하여 일본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독립단원들을 체포하는 큰 공을 세워 독립단원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敵)이자 원수로 통했다.


그는 다키치 옆에서 그를 지키며 이번 행사에서 어떻게든 그의 눈에 띄어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고 있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태백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상순 역시 함께 타고 있었다.


저 멀찍이서 여자들이 쓰는 챙 달린 자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상순은 무서운 눈으로 노득술과 다키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저 인간은 분명 아서 그룹의 다키치 일텐데! 다키치가 가는 곳이라면... 분명 우리 철암 마을이다!


상순은 자신의 복부에 복대를 차 숨겨놓은 폭탄 세 개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일구 아저씨의 부탁으로 폭탄을 챙겨 고향으로 향하고 있던 상순은 혹여나 자신의 정체가 탈로가 날까 다시 한 번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의자 속으로 몸을 숙였다.


그들이 탄 기차는 달리는 것 외에는 모든 일에 무심한 듯 무서운 기세로 태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



태백 철암마을 제일 외곽에 자리 잡은 갈색 목조 집은 얼핏 보기에도 고풍스러운 우아함이 가득 묻어나왔다.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는 나무 자재는 탄광 마을에 있을 법한 건축물이 아니었고, 2층으로 지어진 일본식 가옥은 일반적인 조선인들이 사는 한국식 집의 구조가 아니었다. 독특한 창살 무늬와 외벽의 구조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내부구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백에서 제일 좋다고 손꼽히는 그 집은 양쪽 방 사이에 있는 중복도를 중심으로 응접실과 방, 부엌을 연결하고 내부 계단을 통해 2층 방으로 이어지는 일본식 구조였다.


일본주거양식에 서양식 응접실과 한국식 온돌을 결합하여 지은 독특한 집이었다.


다양한 문화가 절충되는 근대기 건축 양식의 특징이었는데 붙박이장이라던가 장식을 위하여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인 벽감, 서까래 등에서 일본식 주택의 의장(擬裝)적 특성이 한껏 묻어나 있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둠이 짙게 내린 시간임에도 일본식 가옥 안 어디선가는 ‘퍽퍽’거리며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퍽퍽’거리며 무언가 둔탁한 것으로 맞는 듯한 소리는 2층에서 삼사십분 가량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1층 부엌과 응접실 주변을 초조한 듯이 서성이는 사람은 그 집에서 가정주부로 일하는 원돈의 어머니인 초계댁이었다.


초계댁은 일본식 앞치마를 한 채, 머리를 흰 천으로 묶어 정갈하게 입고 있었는데 무엇이 불안한지 연신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주변을 왔다갔다 서성이며 양손을 비비고 있었다.


- 아이고.. 저러다 애 잡겠구먼! 뭐가 그리 배알이 뒤틀려서 지 새끼를 잡아 죽인대!


작가의말

 이 작품에서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상호, 단체명 그 밖에 일체의 명칭이나 사건 혹은 에피소드, 그리고 대사들은 모두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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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챕터9-163.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2) 24.01.02 15 1 12쪽
162 챕터9-162. 화마 봉인- 기억의 편린 (1) 24.01.02 16 2 12쪽
161 챕터9-161.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2) 24.01.01 16 2 12쪽
160 챕터9-160. 화마 봉인- 탄광 속으로 (1) 24.01.01 19 2 11쪽
159 챕터9-159.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2) 23.12.31 17 2 11쪽
158 챕터9-158. 화마 봉인- 불막이제의 진실 (1) 23.12.31 16 2 12쪽
157 챕터9-157.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3) 23.12.30 17 2 12쪽
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0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7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8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7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6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5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4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5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4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8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19 1 11쪽
139 챕터8-139.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3) 23.12.21 17 1 11쪽
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6 1 11쪽
»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7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135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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