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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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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53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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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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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DUMMY

계순이 소우타가 불러낸 폐광산에 은장도를 지닌 채 들어갔을 때, 소우타는 그녀에게 90도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어눌한 한국말로 말했다.


“이거, 가져가 머거. 나 살려져서 곰마워.”


그는 계순과 비슷한 나이 또래였는데, 일본에서 막 한국으로 넘어와 아직은 한국말이 서툰 것 같았다.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그의 얼굴은 바알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내민 작은 헝겊 주머니에는 한 되쯤 보이는 흰쌀이 담겨있었다.


계순이 놀라 손을 벌벌 떨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계순의 두려움을 눈치챘는지 소우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차나! 머거도 돼!”


소우타가 너털웃음을 지어보이자 계순을 떨리는 손을 가져가 그가 건넨 헝겊주머니를 꽉 움켜쥐었다.


그 후로 소우타는 종종 계순을 폐광산으로 불러 과일을 주기도 했고, 또 어렵게 구한 것이라며 양초를 건네주기도 했다.


종종 일본에서 가져온 과자나 간식을 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우타는 계순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며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새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뀐 지 2년이 되었을 무렵, 그들은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옷을 추슬러 입으며, 계순에게 진한 입맞춤을 하던 소우타가 계순의 땀에 젖은 이마에 달라붙어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계순아... 우리 혼인할까?”


갑작스런 소우타의 말에 계순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두눈이 동그랗게 되고 말았다.


“그게... 무슨...”


“내가 알아보니까 일인(日人)과 조선인들 사이에 혼인이 가능하대. 우리... 혼인하자! 나랑 혼인해줘, 계순아!”


소우타의 말에 계순은 말없이 그의 품에 안겨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소슬한 밤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가득 차 떠있고 브이(V)자를 이룬 새떼는 어디론가 훠이훠이 날아가고 있었다.




***




만주에서 상해를 거쳐 경성으로 향하는 기차 안은 뿌연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몇몇은 기침을 쿨럭이며 신문을 보기도 했고, 또 몇몇은 담배를 피우며 한창 이야기꽃을 나누고 있었다.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기차 객실 바닥에 앉아 고단한지 정신없이 졸고 있는 조선인들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일본인들이 뒤섞여 기차 안은 정말 난리통과 다름 없었다.


그 와중에 단아한 검정치마에 흰색 저고리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멍한 표정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왼손에 낡디 낡은 명주 천쪼가리를 쥐고 있었는데 남자 옷을 찢은 것인지 아니면 붕대 조각인지 모를 것을 소중하다는 듯이 쥐고 있었다. 그것은 실가닥이 뜯어져 엉망이었고, 피인지 정체 모를 것으로 붉게 물들어 얼핏 보기에는 붉은 손수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계순이 일본인 감독관 세이지에게 겁탈을 당할 뻔한 봄날, 살인을 저질렀던 계순의 언니 '상순'이었다.


처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상순은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과 죽은 어머니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셨으리라 생각하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벌벌 떨며 몸서리를 쳤다.


별이 총총히 가득 차올라 상순에게 너는 죽을 죄(罪)를 지은 죄인이라며 속삭이는 듯했다.


아무리 자신의 여동생인 계순을 위해 저지른 살인이었지만 상순은 자신의 양손에 흥건히 묻어있던 일본인 감독관 세이지의 피 냄새와 그 끈적이던 감촉을 잊지 못했다.


상순이 동굴에서 세이지에게 발목을 붙잡혔을 때, 일본인 세이지는 자신의 품속에서 작은 단도(短刀)를 꺼내어 자신을 향해 휘둘렀다.


예리한 칼날을 반짝이던 작은 단도는 상순의 오른쪽 어깨에 깊숙이 박혀 시뻘건 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뜨끈한 무언가가 순간 자신의 어깨를 짓이기는 고통에 상순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고통에 몸부림칠 여유따윈 없었다. 상순은 서둘러 자신이 대충 던져놓은 돌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이 동굴 바닥에 내팽겨친 돌덩어리를 찾아 힘겹게 그것을 들어 올려 세이지의 얼굴을 무참히 내리찍었다.


계속해서 ‘퍽퍽’ 소리가 나면서 세이지의 얼굴은 뭉개져 상순의 발목을 붙잡은 세이지의 손은 힘없이 바닥에 떨구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자신을 다독거리고 있던 것은 아버지 강식과 아버지가 동생처럼 아끼는 이웃집 일구 아저씨였다.


일구 아저씨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세이지의 시신을 깊은 동굴 안으로 끌고 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게 시신을 숨겼다.


“초계댁이 알려줘서 달려왔다. 다친 곳은 없느냐?”


아버지 강식의 말끝은 살짝씩 떨리고 있었다.


강식은 정신이 없어 부들거리는 상순의 얼굴을 잡고 그녀를 향해 다정히 말하고 있었다.


단 한번도 자신을 향해 다정하게 말해준 적 없는 아버지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근심어린 말투로 말해오자 상순은 이윽고 정신을 차린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엉엉'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아부지! 아부지! 제가 사람을... 흑... 사람을 죽였어요!”


상순의 말에 강식은 입술을 꽉 다문 채로, 굳은 눈동자로 상순을 바라보며 그녀의 두 눈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강식은 그런 상순의 양볼을 두 손으로 잡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잘 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이걸 가지고 너는 상해로 가야 한다.”


강식은 색이 누렇게 바랜 행까치에 꼭꼭 싼 쌈짓돈을 상순의 손에 쥐어주며 목이 메여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식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핏발이 한껏 서 있었다.


“저 개만도 못한 새끼는 내가 죽인 것이다! 꼴 뵈기 싫어서 내가 없앤 거다! 그러니 너는 상해로 가서 마음 편히 살아야한다! 그리고 상해 기차역으로 가거든 ‘박경돈’을 찾아라. 경돈이는 일구 아저씨 큰 아들이다. 너도 동네 오라비니까 잘 알고 있지?”


상순은 하염없이 흐르는 두 눈물 때문에 흐릿해 보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식은 어느새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일구를 쳐다보았다.


일본인 세이지의 시신을 처리했는지 양손이 피로 흥건한 일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상순을 향해 낮게 말했다.


“혹시 경돈이를 못 찼겠거든, 한국 동포들을 찾아가 ‘박찬익’ 선생님을 찾거라. 내 사촌 형님이시다! 널 도와주실 거야!”


아버지가 아끼는 옆집 일구 아저씨의 말에 상순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어 보이는 탓일까, 강식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흐린 눈동자를 한 상순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정신 차려! 그래야 너가 산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죽은 사람이다! 여기서 네가 죽었다고 할거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해로 가야한다. 이 아비가 누구를 찾으라고 했지?”


“박.... 박...경돈... 박찬...익....”


상순은 꺽꺽대며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로 힘겹게 두 이름을 읊었다.


강식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상순을 강하게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선 자신의 상의 옷자락을 힘주어 ‘부욱’ 찢어내고는 상순의 오른쪽 어깨를 있는 힘껏 꽉 동여매었다.


“으악!”


갑자기 찾아오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른 상순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식은 다시한번 힘을 주어 상처를 꽁꽁 동여매었다.


시간이 없다는 일구의 재촉에 강식은 일구에게 상순의 몸을 슬며시 밀었다.


그렇게 상순은 일구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산 샛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상순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강식은 그 자리에 서서 말없이 오랫동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순을 눈치 챈 것인지, 석탄 광산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탓에 우람한 덩치의 일구가 재빨리 상순을 업고 미친듯이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식은 마지막 딸의 모습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숨죽여 흐느꼈다.


광산 마을 주변은 일본인들이 들고 온 횃불로 밝아지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울어대던 밤새가 낮게 날았고, 초가집 처마 끝에 달린 달이 처량 맞게 떠올랐다.


그렇게 상순은 자신의 아버지와 이별했고, 강식 역시 자신의 큰 딸을 떠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



덜컹거리면서 순간 중심을 잃고 요란스런 마찰음을 내는 기차 소리에 상순은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자신의 아버지 강식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꽁꽁 묶어주었던 아버지의 옷자락을 소중히 품안에 넣었다.


그리고선 재빨리 조심스럽게 자신의 검은색 치맛단 안에 넣어둔 물건을 확인했다.


상순이 타고 있는 전차는 만주에서부터 상해를 거쳐 청량리까지 이어진 전차(電車)였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설치되었는데, 초창기에 만들어진 전차는 서대문에서 청량리까지만 이어진 것이었다. 그랬던 전차가 중국을 거쳐 청량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고종이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에 쉽게 가기 위한 조치였다.


지금 막 전차가 도착하고 있는 청량리는 원래 미나리가 가득한 밭이었다.


그런데 전차가 생기면서 한성(漢城)의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전차를 타기 위해 청량리를 찾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청량리는 급속도로 역(驛)으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나 1922년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경원선은 만주와 연해주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조선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외국인들까지 왕래를 하는 교통의 거점이 되었다.


도착을 알리는 요란스런 기차 호각소리를 들으며 상순은 모자를 깊게 푹 눌러쓴 채 조심스럽게 기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녀가 밖을 나와 주변을 조심스레 살펴보자 너른 흙밭에 덩그러니 놓인 청량리역이라고 써진 입간판이 보였다.


청량리역 바로 옆에는 거대한 규모의 청량리 시장이 들어섰는데, 전국 곳곳에서 물건을 구하러 기차와 버스를 타고 상인을 비롯한 구매자들이 청량리로 흘러 모이며 대규모 시장이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 계순이랑 경호 줄 선물이라도 사갈까.... 아니야.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물건이 우선이야! 전달부터 해야 해!


상순은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으며 재빨리 얼굴을 들고 주변에 다른 독립단원들을 쳐다보았다.


상순과 같은 목적을 가진 독립단원들 역시 일반인인 척 위장하고 열차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들은 서로만 알게끔 조심스럽게 눈빛 신호를 주고받은 뒤 재빨리 검은 가방을 챙겨 역에서 몸을 빠져나갔다.


상순의 치맛자락 안에 숨긴 작은 가방은 독립단원들이 필요로 하는 사제 폭탄이었다.


그것은 중국에서 여러 고위층에게 부탁해 힘겹게 모아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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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챕터9-156.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2) 23.12.30 20 2 11쪽
155 챕터9-155. 화마 봉인- 각시탈의 전설 (1) 23.12.29 17 2 11쪽
154 챕터9-154.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2) 23.12.29 18 2 11쪽
153 챕터9-153. 화마 봉인- 함평 천지시장 (1) 23.12.28 19 2 11쪽
152 챕터9-152. 화마 봉인- 양물단지 23.12.28 16 2 11쪽
151 챕터9-151.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2) 23.12.27 17 1 11쪽
150 챕터9-150. 화마 봉인- 초안산 내시들의 무덤 (1) 23.12.27 17 1 11쪽
149 챕터8-149(완). 전생- 이별의 기억 (4) 23.12.26 16 1 12쪽
148 챕터8-148. 전생- 이별의 기억 (3) 23.12.26 16 1 12쪽
147 챕터8-147. 전생- 이별의 기억 (2) 23.12.25 15 1 12쪽
146 챕터8-146. 전생- 이별의 기억 (1) 23.12.25 15 1 11쪽
145 챕터8-145. 전생- 거사의 기억 (3) 23.12.24 14 1 12쪽
144 챕터8-144. 전생- 거사의 기억 (2) 23.12.24 15 1 11쪽
143 챕터8-143. 전생- 거사의 기억 (1) 23.12.23 14 1 12쪽
142 챕터8-142. 전생- 유린의 기억 (3) 23.12.23 14 1 11쪽
141 챕터8-141. 전생- 유린의 기억 (2) 23.12.22 18 1 11쪽
140 챕터8-140. 전생- 유린의 기억 (1) 23.12.22 1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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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챕터8-138.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2) 23.12.21 16 1 11쪽
137 챕터8-137. 전생- 철암 마을의 기억 (1) 23.12.20 16 1 12쪽
136 챕터8-136. 전생- 만주의 기억 (2) 23.12.20 17 1 11쪽
» 챕터8-135. 전생- 만주의 기억 (1) 23.12.19 19 1 11쪽
134 챕터8-134. 전생- 전생의 기억 (3) 23.12.19 2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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