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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9,319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8.29 09:46
조회
1,295
추천
11
글자
19쪽

132화.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부루 선인이 요수들을 향하여 두 손을 교차시키며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나는 얼음창 형태의 빙살기가 수없이 나타나더니, 주변의 요수들을 빛살처럼 덮친다.


당황한 요수(妖獸)들이 입에서 불을 토하며 빙살기를 녹이려고 하였으나, 다 녹이기도 전에 요수들의 몸을 직격(直擊)하며 깊이 틀어박혔다.


“캐앵! 캐개갱!”


“끄으악!”


비명을 지르며 일부는 즉사하고, 일부는 상처를 입어서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또 백호대 무사들이 우르르 들이닥쳐 목숨을 끊어 놓았다.


이렇게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자 금방 요수들의 숫자가 줄었다.


두목급 요수 중에 남아 있는 세 마리는, 가장 강하다고 생각되는 쥬맥을 포위하며 사생결단을 내려고 덤벼들었다.


먼저 한 놈이 높이 뛰면서 쥬맥을 향해 덮쳐드는데···, 그 자세가 이상했다.


공격이 아니라 네 발을 활짝 벌리고 가슴을 열어 놓은 채 덤비는 것! 쥬맥은 갑자기 간장이 서늘함을 느끼며 긴장했다.


‘아니, 공격을 하는데 가슴을 열어 놓는다? ······이거 혹시?’


순간적인 판단으로 전신에 호신강기를 강하게 두르고, 백호제마검으로는 검막(劍幕)을 치면서 전신을 방어했다.


그러자 바로 그 순간!


꽈아앙!!


요수의 몸에 균열이 일어나며 붉은 빛이 터져 나오더니, 마치 폭탄이 터지듯 몸이 산산조각 나며 폭발했다.


요천견이 자신의 육체에 깃든 모든 요기를 동원하여, 일시에 터트린 것이다. 이로써 동귀어진을 노린 요수의 피와 살과 뼈가 암기처럼 변하여, 마치 폭탄의 파편처럼 쥬맥을 향해 쇄도했다.


파바바바박! 파바박!


대부분이 검막에 막혀서 튕겨 나갔으나, 일부는 검막을 뚫고 들어와 호신강기에 부딪치며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폭발이 강했는지 몇 개의 뼈다귀 파편은, 호신강기를 반쯤 뚫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조금만 대응이 늦었어도 온몸이 요수의 파편으로 벌집이 되었을 상황!


동귀어진의 수법도 소용이 없으니 두 마리의 요수가 다시 한 번 재주를 넘었다. 그러자 붉은 빛이 온몸에 넘실거리는 커다란 불구렁이로 변했다.


큰 입을 쩍~ 벌리고 쥬맥을 한입에 집어삼킬 듯이 사납게 공격하는데······.


쥬맥이 일단은 천둔미리신공을 운기(運氣)하며, 천둔미리보를 밟아 거대한 두 불구렁이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바꾸어 가며, 장거리 공격에 강한 지강(指罡)을 연달아 쏘아 보냈다.


‘천둔미리탄지(天遁迷離彈指)!’


피비비비빗! 피비빗!


그러자 유성처럼 길게 꼬리를 끌면서 뇌전같이 내리꽂히는 지강! 그로 인하여 불구렁이의 몸뚱이에는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갱! 깨개갱!”


“캐애애애앵~~~”


요란한 요천견의 비명 소리와 함께 불구렁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온몸이 지강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두목급 요수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두목급이 모두 죽자, 이제 십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요수들이 사방으로 뛰쳐나가며 도주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두 점박이와 별이, 부루 선인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비참하게 참살을 당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쥬맥이 일행에게 인사를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 격전으로 백호대에서 무사 다섯이 또 부상을 당했으나, 사망자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공이 삼 갑자가 넘는 무사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최고수에 속하므로 종족의 귀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죽은 요천견의 가죽을 모두 벗긴 뒤 요정단을 제거하고 나니, 그 살들은 대부분 점박이와 별이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요수의 고기에는 요기가 배어 있어서, 영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무사들이 먹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잠시 쉬면서 운기조식과 비상식량으로 식사를 마친 다음, 쥬맥이 점박이와 별이를 불렀다.


“점박아! 별이야! 우리는 축성지로 돌아갈 건데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돌아가 봐야 하지 않니?”


그러자 대번에 반박을 하고 나서는 점박이. 별이도 마찬가지다.


[싫다. 이 점박이는 함께 출정식을 했으니까 해산식도 하러 따라갈 거야.]


[나도 해산식을 하고 갈 거야. 이대로 그냥 가기는 정말 싫어!]


둘은 쥬맥과 헤어지기 싫어서 해산식(解散式)을 핑계 삼아, 잠시나마 친구 곁에 남아 있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쥬맥도 그냥 보내기는 섭섭한지라 단칼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나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 그럼 일단 나하고 함께 주거지로 돌아가자.”


“끼루우우우~”


“크허어어엉~”


둘은 얼마나 좋은지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옛날 우르대협곡에 살던 때처럼!



돌아오는 길은 매우 순탄했다. 이번 요천견의 탈출로 비상 동원된 본 주거지의 천령대는, 백호대에서 요수를 모두 소탕(掃蕩)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거지로 돌아갔다.


지금은 환시 축성지와 본 주거지 사이의 정보가, 사람이 직접 오가지 않아도 빠른 속도로 공유되고 있었다. 그것은 전에 반인족 첩자로부터 찾아낸 전서응이 스무 마리가 넘게 늘면서, 양쪽 연락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적에게서 배운 수단이지만,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이렇게 상대가 누구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부족한 것을 배우려는 자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몇 마리를 할당하여 양쪽 주거지를 오가면서 개인적인 서신도 나르게 했다. 그 바람에 요즘 때아닌 편지 쓰기 열풍이 불었다. 안부 편지나 연애 편지 등등.


주거지로 돌아온 쥬맥은 요수들의 가죽을 깨끗하게 무두질하여, 점박이와 별이만 빼고 함께 작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예쁜 털에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고 강한 털가죽은, 매우 커서 거실 바닥에 까는 양탄자로도 아주 일품이었다.


아무리 큰 거실도 대부분 한 장이면 충분할 정도의 크기였다. 요천견의 크기가 워낙 거대하기 때문이다.


참가자 한 사람당 열대여섯 장씩을 받으니, 요수를 잡느라고 고생한 것에 대한 나름의 보상(報償)이 되었다.


쥬맥은 그중에서 몇 장은 한울과 천사장, 대신녀, 비 대족장, 태을 선인까지 선물로 돌리고 처갓집과 수르네까지 보냈다. 당연히 모두 고맙다며 좋아했고 말이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이런 모습은 실속이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쥬맥의 큰 장점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음이라든가 신뢰라든가······.


그렇다고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하면 그건 바로 뇌물이 아니겠는가?


부루 선인은 쥬맥에게 술을 몇 번 잔뜩 얻어 마시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요수의 가죽도 한가득 실어 가면서, 선인들의 주거지에 깔아 주겠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자기를 꼭 불러 달라고 당부를 했고.


요정단은 매우 비싼 귀물이었으나 잘못하여 밖으로 빠져나가면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모두 태을 선인께 가져다주었다.


그러면서 환시 주변에 진법을 펼치는데 기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태을 선인은 그렇지 않아도 재료가 부족하여 고민이 많았는데, 한 번에 해결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걱정했던 마음이 풀렸는지 귀해서 자신도 먹지 않고 감춰 두었던 금령차를 꺼내어 손수 끓여 주면서 말이다.



요즘 이번의 요수 소탕 작전에 참가한 고수들은 부자라는 소리가 돌았다.


열댓 장씩 받은 가죽을 혼자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 돈을 받고 상점에 파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요수의 털가죽은 구하기도 어렵고 매우 질이 좋아서, 한 장에 금령 백 개를 호가했으니 말이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쥬맥은 종족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나선 무사들에게, 그 부산물(副産物)이 보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래야 또 다음에 일이 발생해도 발벗고 나설 것이 아니겠는가?


점박이와 별이는 해산식이라고 해 봐야 할 것도 없었지만, 차일피일 돌아가는 날을 뒤로 미루면서 쥬맥 옆에서 빈둥거리며 놀았다. 그러면서 해산식을 일정보다 좀더 늦추자고 계속 아양을 떨었으니······.


그저 친구의 옆에만 있어도 좋은 모양이다. 진정한 친구는 그런 것이 아닐까? 곁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은.


요즘은 쥬온과 쥬미 등 쥬맥의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놀아 주거나, 함께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애들에게 놀이에서 지면 별이는 애들을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아오르고, 점박이는 거친 들판을 내달렸다.


그러니 애들은 신이 났고 다른 집 애들이 보면서 무척 부러워했다.


쥬맥도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제는 덩치가 너무 커져서 사람들과 지내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신수 주작과 백호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그냥 보내려고 하면 또 안 가고 우물쭈물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해산식을 먼저 하고, 휴가를 얻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좀 달래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자신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태을 선인께 사정을 얘기하고 내일 하루 휴가를 냈다.


“둘은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돌아가기 전에 더 놀기 위해서 자꾸 피하는 둘을 불러 살살 달랬다.


“점박이와 별이는 내일 나하고 전에 살던 대협곡에 가 보자. 거기서 둘은 이제 돌아가 봐야지. 주작과 백호 신수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둘 다 혼쭐이 날 것 아니냐? 그 전에 가야지.”


[에이~ 나는 가기 싫은데···, 알았어. 대신에 내일 갈 때는 쥬온과 쥬미도 함께 데리고 가자. 그러면 갈게. 그냥 내 등에 태우면 되잖아?]


[별이는 여자가 좋으니까 쥬미는 내가 태우고 날아갈 거야.]


그 소리를 들은 쥬온과 쥬미는 좋아서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다섯이 주거지를 떠나서 대협곡으로 출발하였다. 별이는 쥬미를 등에 태우고 날아오르고, 점박이는 쥬온을 태우고 번개처럼 질주했다. 그러자 둘은 좋아서 환호성을 내질렀고.


“끼악~ 너무 빨라!”


“와아~ 신난다!”


서로 먼저 가려고 경주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쥬맥이 어풍비행으로 날아올라 금방 뒤쫓아서 날아가니,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 시진 반을 빠르게 이동하자, 마침내 전에 살았던 대협곡에 이르렀다.


대협곡을 처음 보는 쥬온과 쥬미는 장대하고 신비한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빠가 어릴 때 여기서 혼자 살았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별이는 쥬미를 태우고 대협곡 상공을 낮게 날면서 전경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점박이는 쥬온을 태우고 대협곡을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그 모습을 보여 주니, 둘 다 좋아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우와~ 너무 멋있어!”


“우헤헤헤! 미칠 것 같애!”


그 짜릿한 긴장감과 통쾌한 기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둘은 비명처럼 환호성을 질러 댔다.


잠시 쉴 때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 노릇하게 구운 것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다섯이 대협곡 위의 절벽에 섰다.


모두 벅찬 가슴으로 말을 잃고 대협곡을 바라보는데, 쥬맥도 오늘은 감회가 남다르다. 자식들까지 데리고 어릴 적 고향 같은 곳에 서 있으려니······.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자연을 보면서 드는 생각 하나.


키가 칠 척밖에 안 되는 자신이 이렇게 장대한 대자연을 굽어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자신의 키가 커서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그 위치 때문이 아니겠는가? 바로 높은 곳!


결국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서 그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이 아닌가?


인생도 그와 다를 바가 없어서, 어느 위치에 오르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질 것이다.


대자연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갑자기 쥬맥의 가슴에서 천령수처럼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헤어짐은 언제나 서글픈 것!


쥬맥이 점박이와 별이를 바라보며 둘의 마음을 다독거렸다.


“아쉽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구나. 점박이와 별이는 앞으로도 열심히 수행을 해서 꼭 훌륭한 신수가 되어야 한다. 그 정도는 해야 이 쥬맥의 친구지. 안 그래?”


[알았다. 이 점박이 이제부터 열심히 할 거야. 우리 함께 오래오래 살자. 내가 완전한 신수가 되면 널 보러 자주 찾아와도 되는 거지?]


“그럼! 그때는 자주 와도 돼. 그러니까 그동안은 열심히 수행해라.”


[별이도 열심히 할게. 점박이 너 혼자만 쥬맥을 보러 오면 안 돼. 알았지? 우리는 항상 셋이 함께 만나야 해.]


말은 그렇게 씩씩하게 하면서도 큰 눈에는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크허어어어엉~”


“끼루우우우우~”


둘이 울면서 쥬맥을 끌어안는데···, 이제 덩치가 크니 그 안에 파묻혀서 쥬맥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작은 손으로 친구 둘을 토닥거리며 달래 주었다.


“우린 또 만날 거야.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러니 어서 가렴.”


[쥬온! 쥬미! 너희도 또 보자. 쥬맥 내 친구! 잘 지내라!]


[에이~ 별이는 가기 싫은데···, 우리들 나중에 꼭 다시 보는 거야. 알았지?]


망설이던 별이는 날아오르고 점박이는 큰 걸음으로 가면서, 쥬맥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덩치만 컸지 어린애 같은 둘이 떠났다.


쥬맥은 쥬온과 쥬미를 데리고 죽은 미루의 무덤을 찾았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아 주고, 심어 주었던 나무에 흙도 북돋워 주며 보살펴 주었다.


지난날이 꼭 어제만 같다.


큰 바위에 올라 오래전 일을 기억하며 눈물겹던 그때를 뒤돌아본 뒤, 자식 둘을 양쪽에 껴안고 어풍비행으로 다시 주거지를 향해서 날아올랐다.


“와아! 아빠가 더 빠르다!”


“우리 아빠가 최고!”


쥬온과 쥬미는 하루 종일 신이 났다.


오는 길에 천령수를 심은 곳에 들러서 안을 보여 주자, 둘은 처음 보는 거대한 나무에 놀랐다.


하늘로 아득하게 끝없이 치솟은 나무를 처음 봤으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오늘 하루를 겪으면서 마음속에 하나의 꿈을 심었다.


아빠처럼 훌륭한 무인이 되어서 온 세상 어디든지 새처럼 날아다니며, 대자연(大自然)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주거지에 다다르니 멀리 지평선엔 벌써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새들은 떼 지어 하늘을 날아간다.


서산마루에 걸려 가느다랗게 눈을 뜬 태양은, 마치 거인이 눈을 감듯이 서산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는데······.


그때 마침내 환시 축성지가 눈앞에 보이자, 셋은 주거지 근처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뿐히 날아내렸다.


쥬온과 쥬미는 오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마음속에 작은 꿈을 심은 채, 벅찬 가슴으로 엄마를 찾아서 달려간다.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쥬맥은 달려가는 둘의 모습을 뒤에서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모님께서도 내가 자랄 때 이런 기분으로 나를 바라보셨을까?’



주거지로 돌아온 쥬맥은 다음 날부터 밀린 업무를 얼른 해치우고, 또 성을 쌓는 일에 뛰어들었다.


거석들을 나르고 쌓는 일과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일 등등.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환시성을 쌓기 위한 기반 구축은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기본 토대를 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성을 완공한지 이 년 만에 일 장(3m) 높이의 외성 토대를 완성했다.


이제 거인족이 아니면 쉬 뛰어 넘을 수 없는 기본 방어막이 구축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내 생활이 훨씬 안정감(安定感)이 생기고 들짐승의 무리나 공룡, 파충류 등의 침입도 쉽게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인드리코룡도 이제 팔십여 마리로 늘어나고 다 큰 성체가 육십 마리를 넘어서자 성 쌓는 일도 가속도가 붙었다.


만약 인드리코룡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내성도 완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축성(築城)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누가 뭐래도 바로 이 인드리코룡이었다.



이제 백호대는 기본 축대가 완성된 성벽 위에서 주변을 경계(警戒)하게 되니 전보다 업무가 훨씬 편해졌다.


저쪽 본 주거지에서는 이제 이곳을 빨리 이주하고 싶은 선망(羨望)의 눈으로 바라본다. 먼저 이주하여 그동안 고생을 한 부족민들은 말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뿌듯하게 여기고 있었다.


먼저 온 덕분에 위치와 풍경이 가장 좋은, 그리고 살기에 편한 곳을 마음대로 골라잡은 것이다.


세상에 무엇이든 자신의 노력과 대가 없이 거저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짜가 있다면 그것은 숨쉬는 공기와 따스한 햇살뿐이다!


* * * * *


한편, 여기는 반인족 영역.


아구산의 화산 폭발로 인한 휴유증이 가시고 파라염호 근처에서는 만월축제(滿月祝祭)가 한창 벌어지고 있다.


달빛이 반짝이는 너른 풀밭에는 여기저기에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시큼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여기저기서 춤추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성인 남녀들은 점점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짝짝이 끌어안고 눈으로 차마 보기 민망한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지는데······.


어떤 곳은 수십 명이 뒤엉켜 문란한 짓을 하고 있으나, 그것이 그들의 문화요 생활화된 반인족은 도리어 남녀 할 것 없이 그것을 즐기고 있었으니.


아직 결혼과 순결, 정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 반인족. 그들은 육체적 본능에 충실하여 자신들을 욕망의 수렁으로 내던지고 있는 것!


집단으로 흥분하여 광기에 휩싸이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낯뜨거운 소리들이 귀를 간지럽힌다.


그런데 이때 한곳에서는 놀라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외양이 완전히 천인족과 똑같은 반인족들 수십 명이 뒤엉켜 있는 것! 밝은 달빛 아래 수풀 속에서 반인족과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데, 말은 천인족의 말을 하고 있었다.


바로 씨도둑질을 해 온 산물들이다!


평소에 하는 말까지 천인족의 말을 쓰는 것은, 아마도 말하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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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화. 살모야차(殺母夜叉) 21.09.09 1,274 9 19쪽
142 142화. 대이주와 축제(祝祭) 21.09.08 1,270 10 19쪽
141 141화. 환시성의 완공(完工) 21.09.07 1,287 11 18쪽
140 140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1.09.06 1,264 11 17쪽
139 139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1.09.05 1,265 11 18쪽
138 138화. 추풍낙엽 같은 생명들 21.09.04 1,268 11 19쪽
137 137화.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는다 21.09.03 1,276 11 18쪽
136 136화. 요계왕과의 결투 21.09.02 1,294 11 19쪽
135 135화. 요계(妖界) 수행 21.09.01 1,289 11 18쪽
134 134화. 소원림의 복수전(復讐戰) 21.08.31 1,306 10 18쪽
133 133화. 새로운 한울 21.08.30 1,292 10 19쪽
» 132화.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 21.08.29 1,296 11 19쪽
131 131화. 인수(人獸) 합격(合擊) 21.08.28 1,295 11 18쪽
130 130화. 요수 소탕작전 21.08.27 1,293 11 18쪽
129 129화. 환시성 내성 완공 21.08.26 1,298 11 19쪽
128 128화. 적의 생명도 중시한다 21.08.25 1,277 10 17쪽
127 127화. 우르강의 혈투(血鬪) 21.08.24 1,281 11 19쪽
126 126화. 반인족의 침략(侵略) 21.08.23 1,280 12 18쪽
125 125화. 아구산의 화산 폭발 21.08.22 1,308 13 18쪽
124 124화. 새로운 물결 21.08.21 1,327 12 18쪽
123 123화. 지옥의 심판(審判) 21.08.20 1,298 12 18쪽
122 122화. 유계의 파천대(破天隊) 21.08.19 1,303 13 19쪽
121 121화. 유계(幽界) 수행 21.08.18 1,342 13 18쪽
120 120화. 비승야차(飛昇夜叉) 출생 21.08.17 1,304 15 18쪽
119 119화. 혼원은하무량신공 대성 21.08.16 1,310 15 18쪽
118 118화. 피바다 거원해(巨怨解) 21.08.15 1,313 13 19쪽
117 117화. 야차족과 거인족의 혈투 21.08.14 1,323 13 18쪽
116 116화. 반인족 첩자(諜者) 사건 21.08.13 1,295 14 19쪽
115 115화. 어수족의 시조신(始祖神) 21.08.12 1,307 13 18쪽
114 114화. 어수족과 천망의 싸움 21.08.11 1,324 1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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