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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련하 님의 서재입니다.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완결

설련하
그림/삽화
설련하
작품등록일 :
2021.06.28 08:42
최근연재일 :
2022.10.17 08:20
연재수 :
290 회
조회수 :
378,272
추천수 :
7,321
글자수 :
2,467,752

작성
21.08.24 10:18
조회
1,277
추천
11
글자
19쪽

127화. 우르강의 혈투(血鬪)

삶의 위대함 - 한울 쥬맥




DUMMY

들판을 성난 파도처럼 밀려가던 선두가 마침내 반인족 전사들과 거칠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바로 백병전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


선두의 고수들이 번개처럼 적진으로 뛰어들더니, 성난 늑대가 양떼를 도살하듯이 한 번에 서너 명씩을 쓰러뜨린다.


“이놈들!”


“죽어라!”


“으아아악!”


“커흑······.”


그렇게 성난 늑대처럼 적진으로 뛰어든 무사들이, 뒤따라 들어오는 조원들과 함께 점점 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소형 나선은하진(螺旋銀河陣)이나 오행천둔진(五行天遁陣), 또는 무량미리진(無量迷離陣)을 펼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천령대 오천이 몇 겹으로 둥글게 몰이를 하듯이 후위를 에워싸고 다가서자 그 위용이 자못 당당하였다. 마치 거대하고 튼튼한 성벽처럼 말이다.


“옆으로 돌아오는 놈들을 모두 척살하고 백호대를 지원하라!”


“와아아아아아~~”


비월타의 명령에 천령대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뛰어들었다.


반인족은 투석기로 돌을 날려서 공격해도 큰 효과가 없으니, 이번에는 불붙은 독단지를 투척(投擲)하려고 했다.


“독단지를 준비하라!”


“독단지를 올리고 불을 붙여라!”


뿌우우우~ 뿌우우우~


독과 기름을 섞은 독단지 수백 개에 불을 붙인 뒤 투석기 위에 올려놓는데, 이것이 날아가서 터지면 주변이 불바다가 되면서 사방에 독이 퍼질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긴 쥬맥이 홀로 독단지 투척을 저지하려고 나섰다.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르고 어풍비행으로 하늘 높이 치솟더니, 혼원은하무량신공을 운기하며 백호제마검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기가 검사로 이어서 검강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늘어나더니, 강기(罡氣)가 검 끝에 둥글게 뭉치면서 점점 커진다.


둥근 보름달처럼 큰 수박 서너 배 크기의 검환(劍丸)이 뭉치자, 바람처럼 투석기를 향하여 날려 보냈다.


그러자 이제 준비를 마치고 막 독단지를 투척하려는 투석기 부대에서, 커다란 굉음이 나면서 많은 독단지가 일시에 폭발했다.


꽈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르~~~


거대한 폭음이 천지를 흔들 듯이 울리고 사방으로 파편이 비산하면서, 한 번에 수백 기의 투석기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럼에도 남은 백여 기의 투석기에서 독단지가 불이 붙은 채 날아올랐다.


쒸잉~ 쉬쉬쉬쉭~


그러자 쥬맥이 백호제마검에 검강을 발현시켜서 백여 개로 나눈 검탄을 각 독단지로 번개처럼 날려 보냈다.


파바바바밧! 파바밧!


그러자 마치 유성우가 내린 것처럼 빛살같이 날아가는 검탄들!


쥬맥은 이미 경지가 화경의 절정에 이른지라 폭탄처럼 터져 나가는 검탄 하나하나를 모두 각기 제어하여, 허공을 날아가는 독단지들에 명중시켰다. 그러자,


꽈과과광!!


거센 폭음과 함께 백여 개의 독단지가 부서져서 불비가 되더니, 반인족의 머리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독과 불로 적을 공격하려고 하다가 역으로 아군을 공격하고 만 것이다!


“으아악! 살려 줘!”


반인족의 중앙이 독단지로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러자 사방으로 독무가 퍼져 나가고, 불에 데고 독에 중독된 반인족들이 수없이 비틀거리며 여기저기 쓰러진다. 뿌연 독무 속에서 벌어지는 그 처참함은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반인족의 털과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마치 오징어를 굽는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 안에 매캐한 독무까지 섞여서······.


그러는 중에도 적아가 뒤섞이기 시작하니, 활이나 독 등 다른 공격은 양측 모두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마침내 전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백병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큰 문제를 해결한 쥬맥은 어풍비행으로 강을 향해서 날아올라 도강(渡江)하고 있는 적의 뗏목들을 공격했다.


물 위에 떠 있을 때가 움직임이 느리고 흩어져서 도망을 가기도 어려우니,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이다.


“적이다! 죽여라!”


처음에는 오직 한 명이 새처럼 날아들며 공격하자, 우습게 보고 뗏목에서 활을 쏘며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일 장이 넘는 검강으로 반인족 전사들을 사방으로 휩쓰니, 무기나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잘려 나갔다.


그러자 모두 기함을 하고 놀라서 피하려고 했다. 어떤 놈은 물로 뛰어들어서 자맥질을 하고, 어떤 놈은 뗏목 밑으로 숨고······.


그런다고 어디 피할 수 있겠는가?


검탄으로 수백 개의 뗏목을 파괴하니 서로 살겠다고 허우적대며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물 위에 뜬 반인족 전사들의 수가 일만을 넘어서고, 그중에 몇천 명은 벌써 물속에 가라앉거나 떠내려가고 있었다.


일부는 그래도 헤엄을 치며 되돌아가고 있으나, 헤엄을 치지 못하는 대다수는 허우적대면서 강물에 휩쓸려 하류로 떠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푸른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바다를 향해서 말이다.


그나마 그중에 운이 좋은 녀석들은 파손된 뗏목의 파편을 붙들고 구원의 동아줄인 양 매달려 있으니,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쥬맥은 일단 강물에 빠진 전사들은 공격하지 않았다. 비록 적이라고는 하나 당장 공격에 가담할 수 없는데 살인에 미친 살인귀처럼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를 수는 없음이니.


이미 유계 수행을 통하여 저항할 힘을 잃은 적을 죽이는 것은 살인과 똑같은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학살이 목적이 아니라 적을 돌려보내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백병전이 벌어지고 한 시진쯤 지났을 때 천인족의 무사들이 부상자와 전사자들을 챙겨서 서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전장에는 수많은 반인족 전사들의 시신이 즐비해서, 텡베 추장은 감히 추격(追擊)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뒤로 물러선 천인족 부대는 멀리 가지 않고 눈에 보이는 오백 장 거리에 진지를 구축(構築)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격돌로 반인족의 이만여 명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고, 부상자도 수천 명이나 되었다. 반면에 천인족의 백호대와 천령대는 전사자 이백여 명에 부상자가 오백여 명 정도.


반인족의 피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쥬맥과 비월타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삼백여 명의 경호대를 붙여서 본진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이제 전장에는 구천 명 정도만 남게 되었지만, 그만큼 고위 무사들만 남은 것이다. 저급 무사들일수록 항상 먼저 죽기 마련이니까.


“하! 어찌 이럴 수가?”


일단 남은 이만오천의 전사들을 데리고 멀리 천인족 무사들의 진지가 보이는 강둑 근처에 진을 친 텡베 추장.


생각할수록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적군에게 순식간에 이만에 가까운 병력을 잃고 말았다.


그것도 적이 죽자사자 덤벼서 싸움이 더 길어졌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으~ 그 녀석 말이 이것이었나?”


이제야 칭두 대장이 죽기 전에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으나, 이미 물 건너간 때늦은 후회다.


그래서 여러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휘하의 장수들을 불렀다.


“생각보다 적이 너무 막강하다.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겠는지 각자 의견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해 봐라”


그러자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타이룬 대장이 필두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우리가 불시에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는데, 내일부터는 전술적으로 대응하면 제대로 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적진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당장 오늘 밤에 야습을 하시지요.”


“우리보다 훨씬 날래고 강한데 야습이 큰 효과가 있을까?”


“대대적인 공격보다는 몇백 명만 보내서 독단지를 터뜨린 다음에 물러나던지, 주변에서 공격하는 시늉을 하여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 내일 전투에서 우리가 유리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모인 대장들 중에 한 사람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의견을 말했다.


“선발대로 왔던 전사들의 얘기를 들으니 선발대를 공격한 적은 숫자가 겨우 오십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숫자는 적으나 몸이 어찌나 빠르고 강한지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고 하고요.


오늘도 적은 일만여 명에 지나지 않은데 우리 전사들은 이만여 명이 죽거나 물에 떠내려갔고, 적은 겨우 수백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번 전투는 빨리 후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텡베 추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자존심과 명예욕 때문이다.


“이놈! 너는 자존심도 없느냐? 적에게 이렇게 대패하고, 축성하는 곳에는 공격도 한 번 못 해 보고 돌아가면 우리가 무사할 듯싶으냐?”


“저도 그것은 알지만 죄 없는 부하들만 죽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가 없으면 너는 후방이나 지켜라. 너 같은 것이 대장이라고 부하들을 이끌 수 있겠느냐? 당장 물러가거라.”


결국 옳은 말을 한 대장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반인족은 숙고를 거듭한 끝에 적을 이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오천의 병력을 몰래 뒤로 빼돌려서 천인족의 축성지를 치자는 결론을 내렸다.


천인족이 성을 비우고 이곳에 있는 틈에 그곳을 공격하여 쌓고 있는 성을 무너뜨리면, 이번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명분이 선다는 결론을 내린 것!


본대가 이곳에서 버티며 소규모로 접전을 하는 사이에 몰래 빠져나간 병력이 축성지를 공격하면 될 것이다.



밤 삼경 초(11시).


“소리 없이 조용히 움직여라!”


반인족 오천여 명이 은밀하게 천인족의 진지를 좌측으로 크게 돌아서 환시성 축성지를 향해 빠져나갔다.


그러나 주변에 배치한 천인족 고수들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어서 결국 발각이 되고 말았으니······.


반인족은 한 곳에 수십 명의 경계병을 배치하여 적이 공격 시 대응을 하도록 하는 반면에, 천인족은 드넓은 곳에 듬성듬성 고수들을 배치했다.


그들은 나무 위에서 쉬며 밝은 눈으로 동태를 살피기 때문에, 무림의 고수가 아니면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반인족이 빠져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인족에서 최고수(最高手)로 구성된 추격대 일백 명이 신속하게 그 뒤를 밟기 시작했다.


“빨리 쫓아라! 멀리 못 갔을 것이다.”


축성지를 습격하기 위해서 정신없이 달리던 반인족 전사들이 탁녹대평원의 남서쪽 초입(初入)에 이르렀다.


들풀이 키만큼 자란 들판이 누가 보기에도 몸을 숨기고 하룻밤을 야숙하기에는 최적지(最適地)로 보인다.


그러나 불을 피우면 연기나 불꽃 때문에 들키기 쉬우니 육포나 어포, 쪄서 말린 비상식량 등을 나누어 먹으며 편히 쉬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천인족 무사들의 눈은 일단 피했다고 생각하자 안심(安心)이 되면서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래도 대장을 맡은 친친두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경계병의 배치를 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방에 경계병을 촘촘히 배치하고 정찰조를 보내게. 내일도 은밀하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니까 모두 잠을 푹 자 두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대장님. 푹 쉬십시오.”


“경계를 철저히 서게 하고 절대로 불을 피우면 안 돼!”


“철저히 교육시키겠습니다.”


지시대로 사전에 경계병을 교육시키고 백여 명의 보초를 주변에 나누어 세운 뒤, 일대를 순찰하도록 정찰조도 내보냈다.


그제야 안심하고 모두 푹신하게 잠자리를 만들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초저녁에 달이 뜨지 않아서 사방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암흑처럼 캄캄한 어둠뿐이니.


그 어둠 속을 마치 손금을 보듯이 헤치며 은신술로 이동하는 일단의 무인들이 반인족 야숙지 근처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전음.


[모두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한식경 뒤 반인족이 막 잠들 무렵.


아무런 징조나 소리도 없이 천인족 추격대가 야숙지(野宿地)를 들이쳤다.


반인족은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허둥대는 데에 비해서, 천인족은 눈이 잘 보이는 듯 사방을 누비며 보이는 대로 반인족 전사들을 격살했다.


“적이다! 적이 습격했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모두 일어나라! 적을 막아라!”


“으아아아악~”


“크흐윽!”


하늘마저 구름에 가려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고함소리와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불을 피워라! 적이 보이지 않는다. 불을 피워!”


여기저기에서 불을 피워 올리니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데, 공격하는 적이 몇 명 되어 보이지 않자 대장 친친두가 명령을 내렸다.


“적은 많지 않다. 모두 모여서 진을 구축하라!”


“둥글게 원진을 쳐라!”


그러자 모두 불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원진을 구축했다.


“혼자는 안 되니 협공하라!”


어느 정도 진을 갖추고 대비를 하자 추격대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어디론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한창 꿀잠을 자려다가 졸지에 기습을 당한 반인족은, 불이 피어오르고 잠시 뒤에 먹구름 속에서 달까지 얼굴을 비추자 그 참상(慘狀)에 넋을 잃었다.


잠깐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풀숲에는 천오백여 명이 죽어서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이 급소를 찔린 채.


어디 그뿐인가? 다친 사람도 수백 명.


이미 노출이 되었으니 이제 와서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전진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보초를 배로 늘리고 이미 발각이 되었으니 여기저기에 모닥불을 피운 채 거의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이대로 돌아가면 선발대장 칭두 꼴이 나는지라 대장 친친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내놓고, 축성지로 행군을 계속했다.


중상자들은 버려둔 채 발길을 재촉하여 진군을 하였는데, 두 번째 야숙도 탁녹대평원의 풀숲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야숙지 주변에 둥글게 호를 파게 하고 모닥불도 피웠다. 그리고 보초를 배로 늘린 뒤, 불안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시 뒤 달이 떠올라 사방이 밝으니 야습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잠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데 삼경 말(1시)에 사방에서 소리도 없이 다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경신술로 한 걸음에 건너뛰니 야숙지 주변에 파 놓은 호(壕)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말이다.


그것은 스스로의 운신을 옭아매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새처럼 공중을 날 듯이 건너뛰어 반인족이 보이는 대로 대부분 검강을 발현하여 휘둘러 대니, 뻔히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또 어제처럼 진을 이루며 모여들었으나 사방에서 가슴을 찌르는 비명이 난무한다.


“으아악!”


“커흑!”


“끄으······.”


비참하게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달이 밝으니 이제 곧 물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한참을 더 공격한 뒤에야 또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마치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이럴 수가! 이렇게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허무하게 당하다니!”


“대장님! 안 되겠습니다. 이미 다 죽고 절반도 남지 않았습니다. 죽더라도 돌아가서 죽죠.”


“어차피 죽을 거면 불명예스럽게 죽지 말고 가면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죽는 것은 괜찮은데 죄 없는 부하들만 죄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대로는 절대 안 됩니다.”


너도나도 나서서 말을 쏟아 낸다. 이렇게 내부 의견이 분분하자 모두 대장 친친두의 입만 바라보았다.


이제야 대장 친친두는 선발대장 칭두가 왜 진군을 못 하고 그런 말을 했었는지 이해가 되었으나, 자기는 결코 칭두처럼 불명예스럽게 목이 잘리어 효수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후퇴는 안 될 말!


전사는 죽어도 싸움터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우리가 설혹 후퇴를 하더라도 본대에 합류하기 전에 모두 죽고 말 것이다. 죽더라도 앞으로 전진(前進)하며 적을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는다.”


후퇴를 주장했던 사람들은 모두 힘이 빠졌으나 대장의 결정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각오를 다졌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죽는 거라면 대장님 말씀처럼 용감하게 싸우다 죽죠.”


이렇게 해서 싸우다 죽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반인족 습격대. 그들은 부상이 심한 동료들은 그냥 벌판에 버려두고 독기(毒氣)로 무장을 한 채, 다시 축성지를 공격하기 위한 길에 올랐다.


마음속에 죽음을 각오하자, 이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것!



······그렇게 길을 떠난 날.


마침내 다시 벌어지는 3차 격전.


이번 싸움은 벌건 대낮에 벌어졌다.


해가 중천에 떠서 세상을 태울 듯이 이글거리는 빛으로 끝없는 평원을 달구고 있을 때.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아서 허기져 있는 반인족 습격대를 천인족의 추격대(追擊隊)가 풀숲에서 급습을 했다.


탁녹대평원을 거의 벗어나서 환시 축성지로 방향을 돌리는 중인데,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자 이미 죽음을 각오한 반인족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워낙 개개인의 전력(戰力) 차가 큰지라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압!”


“으아아악!”


결국 여기저기에서 쓰러지는 것은 거의가 다 반인족(半人族) 전사들이니, 그 수가 점점 줄어서 이제는 산 사람이 오백 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천인족 무사들이 돌연 공격을 멈추더니 손짓으로 돌아가라는 시늉을 한다. 친친두를 비롯한 반인족 전사들은 그 손짓이 이제 돌아가면 살려 주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였다.


‘돌아가면 살려 준다고? 이제서야?’


그러나 이제는 불명예스럽게 돌아갈 수 없다. 오천 명이 출발하여 지금 싸울 수 있는 전사는 겨우 오백여 명!


이대로 돌아가면 불명예만 남을 것이니!


“지금부터 우리는 적과 동귀어진(同歸於盡)한다. 죽은 동료들의 피맺힌 원한을 갚고 모두 여기서 죽자!”


“와아! 함께 죽자!”


세상에서 함께 죽자고 달려드는 적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이럴 때는 무림의 고수도 자칫 잘못하면 하수에게 당하기 쉬운 법!


일체의 방어를 포기한 채 죽어 가면서 함께 죽자고 도검을 내지르니, 천인족의 무사들도 하나둘 죽거나 부상을 당하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전원이 한 명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렇게 당당히 부딪쳐왔다. 자신의 생명을 도외시한 채 말이다.


“하아압!”


“이야아~”


“끄윽! 함께 죽자 이놈!”




감사합니다. - 설련하(偰輦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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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140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1.09.06 1,259 11 17쪽
139 139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1.09.05 1,261 11 18쪽
138 138화. 추풍낙엽 같은 생명들 21.09.04 1,263 11 19쪽
137 137화. 비겁하게 피해가지 않는다 21.09.03 1,273 11 18쪽
136 136화. 요계왕과의 결투 21.09.02 1,288 11 19쪽
135 135화. 요계(妖界) 수행 21.09.01 1,284 11 18쪽
134 134화. 소원림의 복수전(復讐戰) 21.08.31 1,303 10 18쪽
133 133화. 새로운 한울 21.08.30 1,288 1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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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131화. 인수(人獸) 합격(合擊) 21.08.28 1,293 11 18쪽
130 130화. 요수 소탕작전 21.08.27 1,290 11 18쪽
129 129화. 환시성 내성 완공 21.08.26 1,292 11 19쪽
128 128화. 적의 생명도 중시한다 21.08.25 1,274 10 17쪽
» 127화. 우르강의 혈투(血鬪) 21.08.24 1,278 11 19쪽
126 126화. 반인족의 침략(侵略) 21.08.23 1,276 12 18쪽
125 125화. 아구산의 화산 폭발 21.08.22 1,303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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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123화. 지옥의 심판(審判) 21.08.20 1,292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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