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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만리(孤雲萬里)

풍운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완결

화사
작품등록일 :
2013.11.01 02:04
최근연재일 :
2014.08.13 03:13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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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110
추천수 :
17,172
글자수 :
530,762

작성
14.07.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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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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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글자
16쪽

제7부 파국 ③ 불구대천(不俱戴天)

중원대륙을 누비며 중원의 영웅들과 자웅을 겨루는 고구려인 양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DUMMY

“무상! 가라. 가서 염교교를 위해 싸워라!”


마미륵 혁빈이 염교교의 시신을 안고 있는 하무상을 채근했다. 하무상은 그런 혁빈을 힐끗 보고는 곧 월도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양천이라는 자가 누구냐? 나서라!”


하무상이 천손련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양천이 자리를 차고 나서려 하자 길근이 앞을 막았다. 천무각주였던 제 아비 전을신의 철피봉을 세워 잡은 전길근은 비장했다.


“련주님.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자는 부친을 살해한 흉수입니다. 부친의 원수를 갚고 싶습니다.”

“길근?! 아니다. 저자는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야!”

“설사 제가 저자의 손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자와 생사를 결하고자 합니다. 어찌 아들 된 도리로 부친을 죽인 원수를 그냥 둘 수 있겠습니까?”

“네가 무슨 수로 저자를 당할 것이냐?”

“생각이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앙천은 더 이상 길근을 만류할 수 없었다.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데야 더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길근이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아 보였다.


“좋다! 가라! 그러나 힘에 부치면 즉시 몸을 빼야 한다. 알겠느냐?”

“예. 그리하겠습니다.”


길근은 양천에게 포권을 취해 예를 표하고 하무상 앞으로 나섰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길근의 애병인 용설검(龍舌劍)이었다. 용설검은 근력이 좋고 발이 빠른 길근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천기각주 평노가 공들여 만든 강철검이었다. 용설검은 여느 검과는 달리 검신이 뱀처럼 구불구불했다. 검신의 폭은 어른 손바닥만큼 넓고 두터운 반면, 길이는 한 자 반 정도로 짧은 편이었다. 용설검은 굴곡진 칼날로 인해 직선의 날을 가진 검보다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길근은 제 아비의 철피봉을 고쳐 자신의 애병인 용설검과 결합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그것은 마치 양천이 백옥적과 엽린도를 결합할 수 있도록 한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철피봉과 용설검을 결합하자 한 자루의 창이 되었다. 길근은 그 창을 해원창(解寃槍)이라 불렀다. 아배의 원한을 푸는 창이라는 의미였다.

제 아비를 닮아 권, 봉, 창, 검, 도 등 모든 무예에 능한 길근이었다. 그의 무예실력은 천손련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다. 오단주에 결코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평이 공공연히 돌았다. 그런 까닭에 청룡단의 부단주로 임명되어 개마산에서 장정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도맡아 했던 것이었다.

그 날 이후, 길근은 해원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밥 먹을 때는 물론이고 잠잘 때조차 창을 잡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으면 연무에 들어 밤이 깊을 때까지 미친 듯이 창을 휘둘렀다.

어린 길근이 창을 잡고 나서자 하무상이 기가 차다는 듯이 천손련쪽을 노려보았다.


“진정 나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이런 코흘리개로 나를 상대하려 들어?”


하무상의 말을 받아 길근이 소리치며 하무상을 향해 해원창을 겨눠 잡았다.


“아버님을 죽인 원수! 네 놈의 목을 아버님의 영전에 바치리라. 잔말 말고 내 창이나 받아라!”

“원수? 네가 그 늙은이의 아들이로구나? 오냐 네 놈도 아비 곁으로 보내주마. 오너라!”


하무상 역시 월도를 잡고 전길근을 향해 겨누었다. 하무상의 월도가 날을 세움과 동시에 길근이 기합을 외치며 뛰쳐나왔다.


“하앗!”


천종무진보를 펼치며 하무상을 향해 짓쳐드는 길근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길근의 공격에 흠칫 놀란 하무상이 월도를 휘둘러 해원창을 막았다. 직수착암세로 힘껏 찔러온 창을 월도로 쳐내 막은 것이었으나 창날이 아슬하게 하무상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길근은 재빨리 창을 거둬 유수농월세로 전환하며 하무상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창으로 찌르고 베었다. 당대의 고수라는 하무상이 전력을 다해 길근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을 만큼 그의 창술은 빠르고 매서웠다.

그러나 하무상은 중원의 패자(覇者)였다. 길근의 공격을 막으면서도 빈틈을 찾아 월도를 들이 밀어 반격했다. 가슴을 찔러 오는 창을 월도로 쳐내고 앞으로 육박하여 길근의 허리를 베어 들었다.

길근은 날아드는 월도를 창대로 막고, 창대의 꼬리로 하무상의 발등을 찍었다. 하무상은 재빨리 발을 뺐다. 길근의 창꼬리가 계속해서 하무상의 발끝을 따라붙었다.

뒤로 밀려나던 하무상이 월도를 쳐올려 길근의 창대를 밀어내고 칼을 내려 쳤다. 월도가 길근의 어깨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길근은 창날을 돌려 하무상의 월도를 막았다.


“카캉! 가가가각!”


쇠 부딪히는 소리와 두 병장기가 맞물려 밀리는 소리가 울리고 온 몸의 힘을 각자의 병장기에 실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노련한 대호와 패기에 찬 청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전력을 쏟아 부었다. 한 동안 힘겨루기를 하던 두 사람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밀치며 물러섰다.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하무상은 진심으로 어린 길근의 무예에 감탄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였다. 그러나 그 애송이가 보여주는 무위는 제 아비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 아비보다 패도적인 기세도 강했고 몸놀림도 빨랐다. 찔러오는 창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공세에서 수비로 돌아서는 수완도 빈틈이 없었다. 창날을 막은 월도에 전해지는 힘도 여간이 아니었다.


“끝장을 내주마. 각오해라!”


길근이 다시 창을 고쳐 잡고 하무상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천종무진보로 날아올라 천중격신세로 베어내리는 길근의 공세는 빠르고 강맹했다.

하무상은 왼발을 뒤로 틀어 몸을 빼면서 월도를 쳐올려 창날을 막고 길근의 가슴을 짓쳐 베었다.

길근은 월도에 튕겨진 창의 힘을 의지해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돌며 칼을 피하고 내려섰다. 그리고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하무상의 빈 허리를 향해 창날을 들이 밀었다.


“읏차!”


하무상의 입에서 처음으로 기합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리를 향해 날아오는 창을 황급히 피하며 월도를 내리친 것이었다. 그의 월도가 땅을 찍으며 불꽃을 튕겨 냈다. 길근이 찍어 내리는 월도를 빗겨내고 하무상의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려 차고 들었다. 하무상도 급히 발을 들어 연속으로 차고 들어오는 길근의 발을 막아 냈다.


“퍼퍼퍼퍽!”


두 사람의 발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끝에 길근이 땅에 박은 창대를 축으로 삼고 몸을 틀어 올리며 하무상의 옆구리를 향해 발을 꽂아 넣었다. 하무상은 월도를 잡았던 한 손을 놓아 길근의 발등을 막고 돌아서며 횡으로 칼을 그었다.


“카캉!”


다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하무상의 월도를 막은 창대의 철피에서 불꽃이 튀었다. 길근은 창대를 잡은 손을 노리고 미끄러져 내리는 칼날을 피해 창을 하무상의 면전으로 밀고 아랫배를 걷어찼다.


“퍽!”


얼굴로 날아온 창대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히는 순간 하무상은 아랫배를 무겁게 강타하는 길근의 발길질에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하무상이 다시 자세를 고쳐서는 동안 길근도 떨어지는 해원창을 한 손을 받아 잡아 기수식으로 창을 겨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하무상이 말했다.


“좋구나! 흐흐흐. 애송이 각오해라!”


말을 마친 하무상이 깊은 숨을 들어 마시고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서 묵빛 안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옅은 묵빛이 점점 짙어지면서 완연하게 흑무로 변하자 월도의 칼날이 파공음을 내며 떨기 시작했다.


“클클클, 패력흑정양기공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흑면독군(黑面毒君) 타륵(朶鰳)이 혼잣말로 뇌까렸다.


“그렇구먼. 그 놈 별 허접한 걸 다 주워 배웠구먼.”


색탐마군(色貪魔君) 조무(曹無)가 말을 받았다.


“허긴, 염교교가 열락혼혈색기공을 익혔으니 무상 저 놈은 패력흑정양기공을 익히는 게 궁합이 맞지. 연놈이 질펀한 사랑 놀음깨나 했겠구먼! 크흐흐흐!”


열락혼혈색기공과 패력흑정양기공은 남녀가 교접을 통해 내력을 증진시키는 비전이었다. 그 이치는 천손련의 천무록에 적힌 음양합일성기공과 같은 것이었으나 타인의 내력을 취한다는 점에서 궤를 달리했다.

음양합일성기공은 한 쪽이 내력을 상대에게 주입하여 혈도를 타통케 하고 내력을 받은 쪽은 내력을 일주천 하여 다시 상대에게 보내는 것을 반복함으로써 서로의 혈도를 뚫어 기의 흐름을 원활케 하므로써 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열락혼혈색기공과 패력흑정양기공은 상대의 내력을 흡수해 정혈을 고갈시킴으로써 상대를 말려 죽였다. 그런 까닭에 무림에서는 사악한 마공으로 지정하고 이를 익히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그럼에도 속성으로 내력을 증진하려는 자들이 속출하게 되자 마침내 열락혼혈색기공과 패력흑정양기공을 익힌 자는 무림공적으로 지목하게 된 것이었다.

흑무에 덮여가는 하무상을 보고 소치가 소리쳤다.


“근아, 조심해라. 사악한 마공이다.”


소치가 외치는 소리를 들은 길근이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길근은 아버지 전을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 위해 그 날의 참상을 목격한 천무각의 대원들에게 자세한 얘기를 청해 들었다. 그 때 하무상의 전신에서 흑무가 피어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 길로 하무상의 변화가 어떤 무공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패력흑정양기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패력흑정양기공과 열락혼혈색기공은 체내의 힘을 일시적으로 배가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수련의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일각에서 반 시진 정도에 걸쳐 폭발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체내에 지속적으로 내력을 축적해야 했다. 심법 수련만으로는 필요한 내력을 충당할 수 없기에 타인의 내력을 흡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무상의 수련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길어야 반 시진일 것은 분명했다. 반 시진이 지나면 급격히 기력이 쇠할 것이었다. 그 반 시진을 버티는 것이 관건이었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길근은 한 가지 묘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괴력을 뿜어내는 동안만 마주치지 않고 상대를 잡아 둘 수 있다면 승산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라야 했다. 재빨리 움직여 상대를 공격하면서도 상대와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길근은 빠르기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타고난 몸도 빨랐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꾸중을 들어가며 천무삼보법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전을신은 보법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해 가르쳤다. 그런 까닭에 어렸을 때부터 익힌 보법은 아버지를 능가했다. 특히 인세무극보를 펼치면 다섯 개의 환영을 만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세 개의 환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인세무극보를 극성으로 끌러 올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였다. 길근은 최대 이각을 버틸 수 있었다. 그 이각의 시간에 모험을 걸어보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력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지종무횡보로 상대하다 적의 동태를 봐가며 인세무극보를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애송이, 간다!”


하무상이 길근을 덮쳐오며 월도를 휘둘렀다. 그의 성명절기인 잔월도법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전체가 십팔 수인 잔월도법은 하육패, 중육도, 상육잔월로 짜여 있었다.

하육패라 함은 패도질타, 패도만행, 패도무별, 패도불민, 패도기정, 패도역리의 여섯 초식을 일컫는 것이었다. 이 여섯 초식은 대체로 잔 기교가 없고 패도적인 도법이었다.

도행혈수, 도휘혈풍, 도영혈무, 도세혈우, 도기혈림, 도강혈세 여섯 초식은 월도와 같은 대도로는 펼치기 어려운 초식이었다. 일반적으로는 가벼운 검으로나 펼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교를 대도 중에서도 가장 큰 월도로 펼친다는 것이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 중육도조차 상육잔월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잔월비정으로 시작하여 잔월분광, 잔월무흔, 잔월파천, 잔월암혼으로 이어지다 잔월무허로 끝을 맺는 여섯 초식은 하무상 그를 패웅각의 각주자리에 올려놓은 무적의 도법이었다.

그 무적의 상육잔월이 아직 애티도 벗지 못한 전길근을 상대로 펼쳐진 것이었다. 그것도 패력흑정양기공을 빌어서.

하무상의 월도가, 그 초식의 이름에 걸맞게 허공에 초승달 모양의 그림자를 가득히 그리며 노도처럼 길근을 덮치기 시작했다. 유장하게 횡으로 베어가던 월도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폭포수처럼 찍어 내리는가 하면, 어느새 깃털처럼 가볍게 앞으로 찔러 들어 왔다. 찔러 들던 칼끝이 순식간에 좌상에서 우하로 거침없이 내리 긋고, 땅을 차고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래서 위로 솟구쳤다.

그러나 하무상의 월도는 매 번 길근의 그림자만을 찍고 베었다. 길근의 움직임은 월도의 움직임 보다 꼭 일촌정도 빨랐다. 아슬아슬하게 칼끝을 피해나가는 길근을 집요하게 월도가 따라 붙으며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듯이 길근의 움직임도 꼭 그만큼씩 빨라졌다.


“으핫!”

“차!”


일각 여를 쫓고 쫓기는 속에서 두 사람의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고 하무상의 몸이 월도의 잔영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길근의 모습이 하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인세무극보가 펼쳐진 것이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다시 넷, 다섯으로 늘어가는 길근을 잔월의 그림자가 쉼 없이 따라 붙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칼날에 튕겨져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물기 머금은 풀잎들이 흙먼지처럼 날아올랐다. 허공을 가르는 월도의 파공음만 간단없이 이어지기를 다시 일각 여, 누구의 입에서인지 모르게 한마디 무거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날아올랐던 풀잎들이 가라앉자 두 사람의 정지된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하무상의 월도가 한 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은 길근의 목 위에 얹혀 있었다. 길근의 창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하무상의 복부에 박혀 있었다. 창날을 따라 진득한 핏물이 흘러 떨어졌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하무상의 입가에서 한 줄기 짙은 선혈이 흘러 나왔다. 길근의 목에서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양패구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전길근이 천천히 창을 밀며 일어났다. 그에 따라 하무상은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허리를 펴고 일어선 길근이 창을 밀었다 빼자 하무상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풀썩!”


하무상이 쓰러지는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천손련쪽에서 또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이겼다!”


전길근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는 동안 부릅떴던 하무상의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텅 빈 허공과도 같이 초점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하무상은 흑사도에서의 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길러준 은혜를 갚으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육이었다. 철저하게 복종을 강요했다. 아홉 살, 어린 아이는 그렇게 사육되었고 그렇게 길들여지며 자랐다. 그런 그의 곁에는 언제나 밝은 표정의 소녀가 있었다. 염교교였다. 똑 같이 사육당하고 있는 처지에서도 소녀는 늘 소년을 오라비처럼 따르고 좋아했다. 소년은 그런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더 열심히 복종하고 더 처절하게 싸웠다. 이겨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겨야 소녀에게 먹을 것을 나눠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란 소년은 적수가 없었다.

소년이 장성하여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들은 소년에게 명했다. 중원으로 가라고, 가서 중원을 장악하라고, 중원 무림의 패자가 되라고.


“염매! 기..다...려....”


하무상의 배에서 흐르는 피가 빗물에 씻겨 물줄기를 타고 흘렀다. 살기 위해 몸부림 쳤던 한 사내의 피가 그 몸부림 같이 요동치며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무협의 세계에 심은 민족혼


작가의말

오늘은 하무상을 보냈습니다.

악역이지만 애정을 갖고 설정한 인물인데 이렇게 처참하게 보내자니 짠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나도 하무상처럼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부터 사육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밑도 끝도 없이 드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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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작품 후기 +3 14.08.13 3,995 38 4쪽
85 제7부 파국 ⑦ 남은 이야기들 +7 14.07.30 4,982 94 14쪽
84 제7부 파국 ⑥ 최후의 결투 +2 14.07.29 4,299 105 17쪽
83 제7부 파국 ⑤ 난전의 소용돌이 +4 14.07.26 4,156 105 15쪽
82 제7부 파국 ④ 약독의선(藥毒醫仙) +5 14.07.25 4,060 119 16쪽
» 제7부 파국 ③ 불구대천(不俱戴天) +4 14.07.23 4,018 113 16쪽
80 제7부 파국 ② 한천비설(寒天飛雪) +4 14.07.22 4,276 100 20쪽
79 제7부 파국 ①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4 14.07.21 4,271 120 15쪽
78 제6부 결전 ⑩ 화산(華山)으로 +2 14.07.19 4,088 108 16쪽
77 제6부 결전 ⑨ 통한의 땅, 서백파(西白坡) 14.07.17 4,013 116 15쪽
76 제6부 결전 ⑧ 서백파(西白坡)의 혈투 +3 14.07.16 4,789 116 15쪽
75 제6부 결전 ⑦ 천무각에 이는 소용돌이 14.07.15 4,126 111 12쪽
74 제6부 결전 ⑥ 막 내린 전설(傳說) +4 14.07.11 4,559 131 14쪽
73 제6부 결전 ⑤ 장강일신(長江一神) +2 14.07.09 4,468 115 17쪽
72 제6부 결전 ④ 파양호의 핏빛 아침 14.07.08 4,710 125 15쪽
71 제6부 결전 ③ 지략과 지략 +2 14.07.04 4,569 119 16쪽
70 제6부 결전 ② 영웅과 영웅 +5 14.07.03 4,669 133 18쪽
69 제6부 결전 ① 다시 중원으로 +2 14.07.01 4,984 122 18쪽
68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⑩ 깊어지는 고뇌 +2 14.06.28 4,849 142 17쪽
67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⑨ 과유불급(過猶不及) +2 14.06.26 5,053 137 14쪽
66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⑧ 모용세가에 부는 혈풍 +2 14.06.24 4,869 127 21쪽
65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⑦ 엇갈리는 암계(暗計) +4 14.06.20 4,660 128 15쪽
64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⑥ 전쟁에는 정도가 없다. +2 14.06.19 4,552 128 11쪽
63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⑤ 모용세가에 닥친 암운 14.06.14 4,973 132 19쪽
62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④ 처절한 재회 +2 14.06.12 5,101 133 14쪽
61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③ 반격 - 성동격서(聲東擊西) +2 14.06.10 5,087 148 12쪽
60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② 현명한 잔인함 +2 14.06.08 6,049 176 13쪽
59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① 무창보의 혈사(血事) +4 14.06.04 6,669 196 14쪽
58 제4부 출정 ⑩ 항주에 지는 꽃 +2 14.06.02 5,690 15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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