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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만리(孤雲萬里)

풍운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완결

화사
작품등록일 :
2013.11.01 02:04
최근연재일 :
2014.08.1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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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7.0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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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제6부 결전 ① 다시 중원으로

중원대륙을 누비며 중원의 영웅들과 자웅을 겨루는 고구려인 양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DUMMY

모진 추위를 이겨낸 산하가 다시 꿈틀 거리고 있었다. 아직 산정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골짜기 깊은 곳에는 녹지 않은 얼음이 여전히 한 겨울의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파릇파릇한 신록의 기운은 시나브로 개마산을 기어올랐고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도 제법 우렁우렁하여 봄기운이 완연한 삼월의 정취에 흥을 돋우고 있었다.

온 천지를 얼어붙게 했던, 지난겨울 동안에도 적지 않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인혼의 기습으로 초토화 되었던 유주의 설가상단을 재건하는 일도 차질 없이 진행되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적과의 혈전 중에 부상을 당했던 현독일웅과 양천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무예 수련에 정진하여 수위를 한 층 더 높였다.

현독일웅과 양천이 예상보다 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데는 소치의 공이 컸다. 양천의 부상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낙양으로 달려온 소치는 한사코 양천을 개마산으로 데려가겠다고 고집했다. 소치의 고집을 꺾지 못한 양천은 개마산으로 가는 길에 자신보다 더 심하게 부상을 당한 현독일웅을 대동했다.

개마산에 도착한 양천과 현독일웅의 상세를 살피고 치료에 전념한 사람이 다름 아닌 소치였다. 그녀는 지난 날, 개마산에서 받아두었던 산왕녹양의 피에 갖가지 약초를 혼합하여 진기를 증강시키는 효험을 가진 환단을 제조해 두고 있었다. 산왕혈보단이라 칭한 그 약은 복용했을 경우에는 진기를 북돋우어 주었고, 물에 개어 환부에 바르면 상처를 쉬이 아물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영약의 효과도 효과였지만 두 사람의 상세를 살펴 치료에 전념한 소치의 탁월한 의술과 정성이 더 대단했다. 몸에 좋다는 약재는 어떻게든 구해 두 사람에게 먹였고, 매 끼니마다 손수 먹성을 챙겼다.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양천과 현독일웅은 과거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원기를 회복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틈틈이 두 사람은 심법 수련에 전념하여 내공 수위도 더 한 층 높아졌다. 운신이 자유로워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무예수련에 매진해 각기 자신의 절학을 더 섬세하게 다듬어 나갔다.

특히 양천은 천손련의 신물로 삼은 천궁으로 궁술을 연마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는데 진력했다. 그 결과 양천은 ‘천궁삼식’을 완성했다. 천궁삼식, 제일식 일시관천(一矢貫天)으로 시작하여 제이식 탄궁만시(彈弓萬矢), 제삼식 탄궁무영(彈弓無影)으로 구성된 천궁삼식의 위력은 가히 놀랄만했다.

독각혈망의 등지느러미 뼈를 다듬어 화살촉으로 끼운 혈망시로 펼치는 일시관천은 여느 화살보다 빠르고 위력이 강했다. 이는 천궁의 강한 탄성과 철촉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더 강한 혈망시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진 쾌거였다. 사냥에 나섰던 양천 앞에 나타난 대호가 혈망시 한 발에 두개골이 으깨어지면서 즉사했을 정도였다.

제 이식 탄궁만시는 한 대의 혈망시에 가느다란 금린의 뼈를 묶어 만든 화살을 이용한 초식이었다. 내기를 주입한 화살을 발사하면 혈망시와 금린의 뼈를 묶은 실이 끊어지며 수십 개의 화살로 쪼개지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특히 린골시(鱗骨矢)는 조금 굵은 바늘 정도로 가느다란 화살(細矢)이었기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제삼식 탄궁무영은 화살이 아닌 내기를 쏘는 것이었다. 손끝에 응축하여 모은 내기를 발사하는 탄궁무영은 형체도 소리도 없이 상대를 격중하여 관통했다. 쏘아 보내는 내기의 화살, 즉 기시(氣矢)는 응축한 내기의 정도로 얼마든지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양천은 특히 제삼식 천궁무영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발출된 내기를 여럿으로 나누어 상대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양천이 천궁삼식을 창안하여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상인혼과의 접전에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검이나 도와 같은 단병기는 물론 창이나 극과 같은 장병기로 맞서는 적을 상대함에 있어 상인혼의 산판술이 훨씬 효과적이고 유용했다. 그것을 몸소 체험한 양천은 상인혼과 같이 근거리 투사무기를 사용하는 적을 제압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궁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상인혼의 산판에 비해 사거리가 길고 위력이 강한 궁술의 단점을 보완하면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근접전에서 궁술은 한 개의 화살로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다시 활을 거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이쪽이 위험에 처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한 대의 화살로 적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위력과 정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화살의 위력을 높이는 성과는 일시관천 한 초식으로 충분히 검증 되었다. 천궁과 혈망시, 그리고 양천의 내공이 조화를 이룬 일시관천의 위력은 여타의 발사 병기는 엄두도 내지 못할 사거리와 위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제이식 탄궁만시였다. 무공 수위가 높은 자는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이나 도로 쳐낼 수도 있었다. 양천 자신이 도막을 쳐서 상인혼의 산판알을 막아낸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동시에 발사된 여러 개의 화살이 한 곳의 목표에 집중된다면 피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쳐낼 수도 없게 된다. 양천은 여기에 착안하여 제이식인 탄궁만시를 창안한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이 받는 공기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화살을 묶은 끈이 끊어지도록 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화살을 묶은 끈의 강도였다. 너무 굵으면 끊어지지 않았고 너무 가늘면 쉬이 끊어져 화살을 쏘기도 전에 끈이 터져 화살이 흩어졌다. 끈의 적당한 굵기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해냈다. 그 과정에서 평노가 들인 공이 컸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제일식과 제이식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양천은 내기를 실은 화살을 수 없이 많이 쏘았다. 그러던 중 화살을 쏘는 순간 손끝에 집중된 내기가 화살과 함께 쏘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살려 빈 활을 당겼다 놓기를 수천 번, 양천은 마침내 시위에 내기를 실어 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이를 더욱더 다듬어 마지막 초식, 천궁무영을 완성하게 된 것이었다.

상세를 회복한 현독일웅이 먼저 중원으로 향했다. 요동, 유주, 제남, 낙양, 항주를 두루 거치면서 양천의 근황을 전하고 결전을 위한 만반의 태세를 당부하라는 명을 받고 떠난 것이었다.

양천은 봄이 되기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이제 돌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 재롱을 떠는 아들 ‘인(仁)’을 보는 재미도 전에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나날들 속에서도 다시 중원을 향한 준비는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룡단에서 그 동안 양성한 병력은 근 이천에 육박했고 개마산 일대에 조성된 마을도 이십여 곳이 넘었다. 이제 천손련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는 인구가 만 명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 마을들이 천손련을 구심점으로 연계하여 제법 번듯하게 농사도 지었고, 적잖은 교역물품을 중원의 설가상단으로 보내고 있었다. 교역을 통해 취득한 이윤으로 철을 사들여 병장기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도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도검을 비롯해 활과 화살은 물론 창 등에 이르기까지 당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 병장기들이 병기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한편, 요동에서는 또 다른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권민국이 수소문 끝에 한 인물을 천거하여 수병을 조련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권민국은 장강십이채를 섬멸하지 못하면 패웅각과의 싸움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에 한 동안 골몰했다. 그 때, 권민국의 고민을 해결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연빙이었다. 연빙은 당대의 여장부였던 연수영을 흠모하고 있었다. 자신의 성씨가 연씨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그녀의 충절과 비극적인 최후에 대한 안타까움이 연민과 흠모의 정으로 깊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천비고에서 나온 서찰을 통해 그녀가 자신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빙은 그 사실에 대해 남모르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권민국이 장강십이채를 상대할 묘안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연빙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연수영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자신조차 연모하는 마음이 들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휘하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고구려가 패망했다고 그들 모두가 죽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고구려 수군 출신을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이에 연빙은 조심스럽게 고구려 순군출신의 유민을 찾아보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연빙의 제안을 들은 권민국은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무릎을 쳤다. 그 길로 청룡단에 고구려 수군출신을 찾도록 명했다. 청룡단에서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낸 이가 바로 표충일이었다.

연수영의 막하 수군의 하급장교였던 사람이 고구려 패망 후, 함께하던 수하들과 함께 군선 몇 척을 수습하여 해적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청룡단주 권람은 친히 표충일을 찾아 나섰다.

표충일은 대대로 바다에서 생업을 해오던 어부의 자식으로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태종이 침략했을 때, 일개 병졸로 수군에 동원되었으나 사람됨이 영민하고 붙임성이 좋아 금방 동류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바다를 잘 알아 수군의 훈련과 전투에 공이 컸다. 이를 눈여겨 본 연수영이 그를 들어 중용하게 되었고 점차 지위를 높여 부장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었다.

표충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봐준 사람이 연수영이었기에 진심으로 그녀를 따르고 충성을 다했다. 연수영은 비록 여자이지만 호방하고 담대하기가 어지간한 남자를 능가했고, 군사전략과 부대지휘에도 탁월했다. 이에 그녀의 막하에 있는 모든 수군은 진심으로 그녀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표충일은 그 중에서도 충성심이 남달랐다.

연수영이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후 그도 군을 떠나려 하였으나 시국이 위중하여 수군에 남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예전처럼 군무가 신나지 않았다. 새로 온 장군들은 정작 바다에 나가서는 조금만 파도가 세도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부하들 닦달하기는 호가 났고 조정의 눈치를 살펴 아부하는 데는 도가 터있었다. 이런 형편이니 표충일은 수군에 몸을 담고 있어도 낙이 없었다. 상관들의 눈을 피해 동류들과 어울려 술타령에 낚시질로 소일하던 중, 전쟁이 다시 벌어지자 몸을 빼쳐 나온 것이었다. 고구려가 패망한 이후 부서진 군선들 몇 척을 수리하여 신라와 당나라 배들을 상대로 수적질을 하면서 고구려 수군 출신을 모아 제법 세를 불렸던 것이다.

권람은 양천의 친모가 연수영이며 양천을 중심으로 천손련을 결성하여 중원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설명하여 그를 설득했다. 권람의 설득을 받아들인 표충일은 권민국의 지시에 따라 요동의 청랑단에 근거를 두고 요하와 바다를 오가며 수군을 조련하고 있었다. 청년의 몸으로 군문에 들었으나 이제 초로에 접어든 표충일은 바다에서 보낸 세월만큼이나 깊은 경륜으로 수전에 능했다.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은 물론이고 과거 수군에 몸을 담았거나 바다에 익숙한 뱃사람으로서 신라와 당에 대한 원한이 깊은 사람들을 찾아내고 청룡단에서 가려 뽑은 사람들로 충원된 수군은 어지간한 수적 따위는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바야흐로 강이 녹아 뱃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개마산과 요동에서 다시 중원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동안 제남에서는 권민국을 중심으로 중원 장악을 위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열락궁 지부들이 있던 곳에 무봉궁 지부를 두어 정보망을 더욱 촘촘히 구축하였고, 설가상단을 완벽히 재건하여 중원상권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갔다. 패웅각과의 싸움이 수면 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원 도처에서 상가상단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지만 금가상단과 설가상단의 연합 상단은 조금씩 상권을 장악하여 상가상단에 필적할 만큼 세를 키웠다.

권민국이 특히 심혈을 기울인 일은 염교교를 사로잡아 문초를 하던 중 단서를 잡게 된 패웅각의 배후 세력을 밝히는 일이었다. 염교교가 독이 오를 대로 올라 내지른 한 마디를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흥, 네놈들이 무사할 줄 아느냐?”

“네 뒤에 패웅각이 있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그 패웅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괜한 고생하지 말고 패웅각에 관해 소상히 밝히거라.”

“패웅각? 내가 고작 패웅각 정도로 네놈들을 겁박한다고 생각하느냐? 오냐 그렇게 생각해라. 반드시 이 치욕을 갚아줄 테니!”

“그래? 그렇다면 패웅각 말고도 다른 배후가 있다는 말이로구나. 그래 그 잘난 배후가 도대체 무엇이냐?”

“헛된 수작 하지 말고 속히 나를 풀어라.”

“그렇게는 안 되지! 반드시 네년의 배후를 실토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염교교의 배후를 채 밝히기 전에 설가상단의 사단이 나 염교교를 풀어주고만 것이었다. 그 후로 권민국은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패웅각의 배후를 밝히고자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항주 일대를 거쳐 패웅각으로 향하는 정체모를 무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비록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개개인의 무공이 초절정 고수로 짐작되는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항주로 들온 경로를 역으로 잡아가다보니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확인 되었다. 이에 권민국은 중원의 남쪽 바다에 위치한 섬들을 조사하고 그들의 근거지로 짐작되는 몇 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을신은 그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개마산에서 보내온 장정들을 다시 조련하여 백검장과 석가제일문으로 보내고 전면전을 치르기 위한 전단을 짜는 일로 눈코 뜰 새 없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 결과 궁수대와 장창대, 도검대가 협력하여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단을 양성했다.

다시 중원으로 향할 시점이 다가 오자 양천은 요동 일대를 근거로 고구려 유민과 거란, 말갈 족 등을 규합하여 당에 대항하고 있는 대조영을 만나보기로 했다. 당 조정의 관심을 잡아 둘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권민국의 제안도 한 몫을 했지만 양천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양천이 듣기로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은 부친 양만춘 성주의 막하 장수였다고 했다. 그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대조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군왕의 풍모를 갖춘 사람인지도 궁금했다. 만약 그가 군왕으로서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도우리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양천 스스로가 군왕이 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저만치 달아나곤 했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의 한 복판에서 어머니 연수영이 생을 달리했다. 권력의 비정함은 자신과 한 핏줄인 누이조차도 정적으로 삼게 하는 것이었다. 연수영을 모함하여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녀의 배다른 동생 연정토였다. 양천은 그 비정함이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그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양천은 대조영 측에 연통을 넣어 요동에서 만날 것을 제안하고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요동에서 연락이 오기만 하면 즉시 떠나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을 떠날 생각을 하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양천의 아쉬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요동에서 기별이 왔다. 양천은 기별을 받고는 바로 다음날 다시 중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


“부디 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소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힘주어 말했다. 다시 지아비를 사지나 다름없는 중원으로 보내야 하는 그녀의 심정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러나 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에 몸조심하라는 말밖에 달리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러리다. 너무 염려치 마오.”


양천은 제 품에 안겨 한사코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들을 소치의 품으로 넘겨주며 답했다. 제 어미 품으로 넘겨진 아이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고삐를 쥔 양찬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도 떠나야만 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인사를 마치고 말에 오른 양천은 애써 소치와 아이를 외면하며 앞으로 달렸다. 그런 양천의 뒷모습을 향해 소치는 말없이 손을 흔들었고 아이는 제 아비를 잡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뻗어 휘저으며 울음소리를 키웠다.

양천과 청룡단에서 차출되어 중원으로 들어가는 병력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진 벌판으로 개마산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새로운 태양이 뜨고 있었다.




무협의 세계에 심은 민족혼


작가의말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양천의 행로,

그의 앞에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양천은 다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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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작품 후기 +3 14.08.13 3,995 38 4쪽
85 제7부 파국 ⑦ 남은 이야기들 +7 14.07.30 4,982 94 14쪽
84 제7부 파국 ⑥ 최후의 결투 +2 14.07.29 4,299 105 17쪽
83 제7부 파국 ⑤ 난전의 소용돌이 +4 14.07.26 4,156 105 15쪽
82 제7부 파국 ④ 약독의선(藥毒醫仙) +5 14.07.25 4,060 119 16쪽
81 제7부 파국 ③ 불구대천(不俱戴天) +4 14.07.23 4,018 113 16쪽
80 제7부 파국 ② 한천비설(寒天飛雪) +4 14.07.22 4,276 100 20쪽
79 제7부 파국 ①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4 14.07.21 4,271 120 15쪽
78 제6부 결전 ⑩ 화산(華山)으로 +2 14.07.19 4,088 108 16쪽
77 제6부 결전 ⑨ 통한의 땅, 서백파(西白坡) 14.07.17 4,013 116 15쪽
76 제6부 결전 ⑧ 서백파(西白坡)의 혈투 +3 14.07.16 4,789 116 15쪽
75 제6부 결전 ⑦ 천무각에 이는 소용돌이 14.07.15 4,126 111 12쪽
74 제6부 결전 ⑥ 막 내린 전설(傳說) +4 14.07.11 4,559 131 14쪽
73 제6부 결전 ⑤ 장강일신(長江一神) +2 14.07.09 4,468 115 17쪽
72 제6부 결전 ④ 파양호의 핏빛 아침 14.07.08 4,710 125 15쪽
71 제6부 결전 ③ 지략과 지략 +2 14.07.04 4,569 119 16쪽
70 제6부 결전 ② 영웅과 영웅 +5 14.07.03 4,669 133 18쪽
» 제6부 결전 ① 다시 중원으로 +2 14.07.01 4,985 122 18쪽
68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⑩ 깊어지는 고뇌 +2 14.06.28 4,849 142 17쪽
67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⑨ 과유불급(過猶不及) +2 14.06.26 5,053 137 14쪽
66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⑧ 모용세가에 부는 혈풍 +2 14.06.24 4,869 127 21쪽
65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⑦ 엇갈리는 암계(暗計) +4 14.06.20 4,660 128 15쪽
64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⑥ 전쟁에는 정도가 없다. +2 14.06.19 4,552 128 11쪽
63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⑤ 모용세가에 닥친 암운 14.06.14 4,973 132 19쪽
62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④ 처절한 재회 +2 14.06.12 5,101 133 14쪽
61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③ 반격 - 성동격서(聲東擊西) +2 14.06.10 5,087 148 12쪽
60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② 현명한 잔인함 +2 14.06.08 6,049 176 13쪽
59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① 무창보의 혈사(血事) +4 14.06.04 6,669 196 14쪽
58 제4부 출정 ⑩ 항주에 지는 꽃 +2 14.06.02 5,690 15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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