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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만리(孤雲萬里)

풍운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완결

화사
작품등록일 :
2013.11.01 02:04
최근연재일 :
2014.08.13 03:13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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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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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2
글자수 :
530,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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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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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제7부 파국 ② 한천비설(寒天飛雪)

중원대륙을 누비며 중원의 영웅들과 자웅을 겨루는 고구려인 양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DUMMY

“각주님, 그만 하시지요.”


오열하는 하무상을 보다 못한 상인혼이 나섰다. 패웅각이 와해되고 자신의 기반인 상가상단마저 궤멸된 상인혼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의 꿈을 잿더미로 만든 천손련에 대한 복수뿐이었다. 이미 패웅각은 흑사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아니, 처음부터 패웅각은 흑사도의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온 세월이 한스러웠다. 그나마도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불과했다. 설령 패웅각이 흑사도의 힘으로 재건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던져주는 찌꺼기를 바라고 꼬리를 흔드는 개가 되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깨끗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의 꿈을 망친 자들에게 복수의 칼을 꽂고 죽을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제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만 하시고 일어나시지요.”


상인혼의 채근에 하무상이 염교교의 시신을 안고 일어서 제 편으로 돌아갔다. 하무상의 오열을 지켜보던 상인혼은 오히려 심중이 담담해지고 차분히 가라앉으며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이었다.

상인혼은 담담히 눈을 들어 천손련 측에 선 설민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설대인, 우리는 묵은 빚이 있지 않소? 이제 그만 끝을 냅시다.”


설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을 받았다. 상인혼을 향해 다가가는 설민의 한 쪽 다리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설가상단을 기습한 상인혼의 철비산에 맞은 다리였다. 절뚝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한 번 내려 본 설민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 당신에게 받을 빚이 있지. 오늘은 그 묵은 빚을 받아야겠소.”


그런 설민을 설지가 가로막고 나섰다.


“아버님! 저자는 제 손에 맡겨 주세요. 상단 가족들의 원수를 꼭 제 손으로 갚고 싶어요.”


설민은 설지를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아니다. 지아야! 이건 애비의 몫이다. 만약 내가 원한을 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거든 그 때 네가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야. 비켜서라.”

“안 돼요. 아버님. 그런 몸으로는 무리입니다.”


서로 나서겠다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양천이 나섰다.


“각주님. 불편하신 다리로 저자를 상대하시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물러서시지요.”


설민은 굳은 각오를 담은 얼굴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양천의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련주님! 제가 다리는 좀 불편할지 몰라도 저자 하나쯤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저자는 설가상단을 잔인하게 도륙한 장본인입니다. 저자를 내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싸움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인혼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가로챘다.


“서로 먼저 사지에 들겠다는 부녀의 정이 갸륵하구료. 부녀가 함께 오시오. 어차피 마지막이니 내 특별히 부녀를 함께 보내드리지요.”


그 순간, 설지가 신형을 날려 상인혼을 향해 쏘아가며 비도를 날렸다.


“닥쳐라! 악적!”


설지의 손끝을 떠난 두 자루의 비도가 파공음을 일으키며 상인혼의 심장과 미간을 향해 날았다. 유엽비도술 중 이도회풍의 수법이었다. 한 자루의 비도는 곧바로 상인혼의 심장을 향했고 다른 한 자루는 삼장 높이로 솟아올랐다가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쐐에액!”


상인혼도 철산판에 얹었던 손가락을 튕겼다. 산판알을 튕기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핑-, 핑!”


산판을 벗어난 두 알의 철산알이 설지의 비도를 향해 마주쳐 갔다. 철비산 구식 중 제 이식 이사역백의 수였다.


“팅-팅!”


철산과 비도가 허공에서 격돌하며 켱쾌한 쇳소리를 냈다. 철산 알이 비도를 격중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비도는 다시 설지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그 모습을 본 상인혼이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오호! 설낭자 그 동안 진전이 있었던 게로군! 축하하오!”


그랬다. 모용세가에서 풀려난 직후 설민과 설지는 권민국의 권유를 받고 개마산으로 들어갔다. 설민이 부상당한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설지는 자청해서 청룡단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장에 든 설지는 오로지 상인혼의 철비산 구식을 파훼하는 수법을 찾는 일에만 골몰했다.

함께 수련하는 동료들에게 청하여 작은 팥알을 자신에게 쏘게 했다. 먼저 산판알을 대신해 날아오는 팥알을 끝까지 쳐다보는 훈련을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팥알도 피하지 못했다. 팥알이 날아오는 궤적을 쫓다가 눈언저리를 수없이 맞았다. 마침내 하나의 팥알을 끝까지 보게 된 설지는 팥알의 개수를 늘려갔다. 그렇게 수련을 거듭해 나중에는 한 주먹의 팥알을 던지도록 했다. 온 몸에 팥알 세례를 받기를 수업이 반복한 그녀는 끝내 날아오는 모든 팥알의 궤적을 읽어내고 피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팥알을 이용한 수련을 마친 설지는 비도를 던져 날아오는 팥알을 맞히는 훈련에 돌입했다. 날아오는 작은 팥알을 비도로 맞히기는 쉽지 않았다. 수천 번, 수만 번 비도를 던져야했다. 비도를 던지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회수하는 일이었다. 던져진 비도를 회수하기 위해 같은 길을 수 없이 오가는 설지를 눈 여겨 본 사람은 천기각주 평노였다.

어느날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설지에게 평노가 찾아 왔다. 그는 설지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설낭자. 만든다고 만들어 봤는데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소.”


천기각주가 건넨 상자 속에는 백옥을 깎아 만든 두 개의 옥팔찌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본 설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각주님, 이건 팔찌 아닌가요?”

“얼핏 보기에는 그리 보입니다만 단순한 팔찌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 자 일단 자세히 살펴보시지요.”


하얀 백옥을 깎아 만든 팔찌는 매끄러웠다. 팔찌의 윗부분에 붉은 색 작은 꽃모양의 보석이 네 개가 붙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괘나 고급스럽고 귀한 물건처럼 보였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것이 없었다. 반지를 살펴보던 설지가 다시 한 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평노를 쳐다보았다.

그런 설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평노가 유엽비도를 꺼내보라고 했다. 설지가 비도를 꺼내 놓자 평노는 팔찌에 붙은 붉은 보석을 손톱으로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러자 보석이 팔찌에서 떨어지며 가느다란 실이 붙어 딸려 나왔다. 평노는 비도의 머리에 난 작은 구멍으로 보석을 밀어 넣어 실을 묶었다.


“이 실은 혈망가죽을 가늘게 잘라 잠사와 함께 엮은 것입니다.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겝니다.”


그제서야 설지는 팔찌가 어떤 용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팔찌에서 뽑아져 나온 실의 길이는 무려 십장에 달했다. 네 자루의 비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아 던지면 팔찌에서 나온 실이 풀어지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그러면 굳이 비도를 회수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비도를 회수하려면 팔찌를 낀 손을 뒤로 잡아채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각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려!”

“조금이라뇨?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팔찌의 용도를 알게 된 설지는 뛸 듯이 기뻐하며 곧 바로 두 개의 팔찌에 여덟 자루의 비도를 연결했다. 처음에는 비도를 회수하는 일도 익숙지 않았다. 뒤로 잡아채 보았으나 비도가 온전히 돌아오지 않기도 했고 너무 세게 잡아채면 뒤로 날아가기도 했다. 때로는 비도에 묶은 실이 서로 엉켜 골탕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설지는 실망하는 기색 없이 끼니를 걸러 가며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보름이 지나자 비도를 회수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다시 회수된 비도를 손으로 잡는 훈련을 반복했다. 날아오는 비도를 잡다가 손가락이며 손바닥에 상처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녀의 손은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 때마다 소치는 설지의 손가락에 약을 발라주고 따뜻한 수건으로 부은 손을 감싸주며 치료해 주었다. 설지는 그런 소치가 한 없이 고맙고 좋았다. 어린 나이에 모친을 여읜 설지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듯함이었다. 때로는 소치가 엄마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큰 언니 같기도 했다.

소치 또한 설지가 가여웠다. 자신 역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픔이 있었기에 설지가 자라면서 느꼈을 상실감과 허전함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설지를 불러 이것저것 챙겨 먹이고 다친 곳을 치료해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둘 사이의 정이 깊어지는 것처럼 비도를 다루는 설지의 솜씨 또한 나날이 늘어갔다. 던져진 비도를 회수하여 손에 잡는 것도 완전히 익숙해져 보지 않고도 해낼 수 있게 되자 설지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비도에 연결된 실을 손가락에 걸어 날아가는 비도를 조종해보기 시작했다.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자 점차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비로를 따라 풀어지는 실을 손가락에 자연스럽게 걸칠 수 있게 되었고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비도의 방향을 틀수도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함께 움직이던 네 자루의 비도를 제 각각 달리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설지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가늘고 곱기만 하던 손가락에 비도가 남긴 잔 흉터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비도를 잡은 손가락과 실이 걸린 마디마다 굳은살이 박혔다. 그러나 흉이 늘고 굳은살이 두터워 질수록 설지의 비도는 그녀가 뜻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고된 수련의 완성은 여덟 자루의 비도를 한꺼번에 날려 팔방을 포위하고 상대를 격살하는 초식으로 완성되었다. 다시 거기에 팔찌에 연결되지 않은 네 자루의 비도를 함께 날릴 수 있는 수법을 가미하여 그녀만의 비도식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리고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직선으로 날아오는 팥알을 맞히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비도를 날려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만족스러워 했다.

그만큼 설지는 악착스럽고 끈질긴 구석이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악착스럽게 비도 수련에 매달린 데는 아버지 설민의 부상도 한 몫을 했다. 설민이 입은 부상은 겉으로는 심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모용세가에 갇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뼈와 살이 썩은 것이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부종을 가라앉히고 피고름을 빼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어도 큰 차도가 없었다. 단순히 약만으로는 치료가 어려워지자 소치는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부를 칼로 찢고 상한 뼈를 긁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다리를 잘라내야 할 형편이었다. 소치가 그런 치료 방법을 제안하자 설민은 두 말 없이 치료에 응했다.


“관우가 팔에 독화살을 맞고 그리 치료했다지요? 관우가 한 일은 난들 못하겠습니까? 전 괜찮으니 주저 마시고 치료해 주십시오. 오히려 이런 일로 주모께 심려를 끼쳐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치료를 한다고 해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긴 힘들 것 같습니다. 이미 힘줄이 상해 있습니다. 다리를 약간 절게 되실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아니겠습니까?”


설민은 수건을 입에 물고 살을 찢고 뼈를 긁어내는 고통을 견뎌 냈다. 산판알이 뼈에 부딪혀 부서지며 환부의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런 까닭에 고름을 짜내도 계속해서 환부가 썩어 들어갔던 것이었다. 결국 어른 손바닥만큼의 살을 도려내야 했다. 그렇게 험한 치료를 받고서야 설민의 환부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를 저는 것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기는 했지만 불편한 다리로 무예를 펼치기는 쉽지 않았다. 걸핏하면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상대의 공격을 막고 피하는 일도 둔하기만 했다. 그 와중에 설가상단의 재건을 위해 유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설민의 무공은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도술 만큼은 큰 움직임 없이도 펼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설민 역시 자신의 불편한 다리로는 근접박투나 단병접전이 불리함을 알았기에 비도술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비도술은 과거에 비해 한층 높아진 경지에 이르렀다.

설지는 아버지 설민이 상인혼을 상대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불편한 다리로 상인혼의 공격을 피해낼 수 없을 것은 자명했다. 그렇다면 같이 죽는 방법을 택할 것이 뻔했다.

설지가 먼저 상인혼을 향해 출수를 한 것도 그런 아버지의 결심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즉, 스스로가 상인혼의 주적이 됨으로써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아버지를 결전의 한 복판에서 밀어낸 것이었다.


설지는 매서운 살기를 뿜어내며 상인혼의 능글맞은 말을 잘랐다.


“흥, 가증스런 인간! 당신의 사악한 흉심이 웃음으로 가려질까?”


설지의 날카로운 대꾸에도 불구하고 상인혼은 입가에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했다.


“쯧쯧! 어린 처자가 입이 그리 걸고 매워서야 어찌 시집을 가겠누?”

“별 걱정을 다 하는구나! 남 걱정하지 말고 당신 걱정이나 해야 할 걸? 오늘은 결코 살아가지 못할 테니!”

“그런가? 내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었구나! 어디, 그럼 설소저의 손속 견식이나 해볼까?”


장사치는 누구를 만나든, 어떤 상황이 든 먼저 웃음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상인혼 다웠다. 나이어린 설지의 거친 막말에도 그는 언성을 높이지도 싫은 내색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변함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친근한 어조로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의 너그러운 웃음, 부드러운 말과는 달리 산판알을 튕겨내는 그의 손속은 비정하고도 빨랐다.


“타타타타탁!”


손가락으로 산판알을 튕겨내는 소리보다 빠르게 다섯 개의 산판알이 설지의 요혈을 향해 쏘아졌다. 설지는 날아오는 산판알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빼치는 순간 또 다른 산판알이 날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 대신 두 손을 앞으로 휘저어 여덟 자루의 비도를 동시에 날렸다.

설지의 손에서 벗어난 비도는 날아오는 산판알을 마주쳐 나갔다. 산판알에 부딪힌 비도를 회수하는 대신 손가락을 움직여 다시 선회를 시켰다. 여덟 자루의 비도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올랐는가 싶은 찰나, 모든 비도가 일제히 방향을 바꿔 상인혼을 팔방으로 압박해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권민국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설지 소저의 한이 괘나 깊었던 모양입니다.”


양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권민국의 말을 받았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졸지에 가족 같은 가솔들을 잃고, 부친마저 불구가 되었으니 그럴 만하지요.”

“소저의 비도가 마치 한 서린 겨울하늘에 내리는 눈발 같습니다.”


설지의 은빛 비도가 하늘을 덮은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그렇군요. 한천비설(寒天飛雪)이로군요.”


그렇게 양천과 권민국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상인혼은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무인을 만났고, 많은 무예를 견식했지만 이처럼 비도를 다루는 사람을 일찌기 만나 본적이 없었다. 날아오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벗어나는 가 싶은데 다시 방향을 트는 비도의 움직임이 괴이하다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헉!”


상인혼이 다급한 비명을 토하며 급히 신형을 날려 서있던 자리를 벗어났다.


“차앗!”


설지가 일성의 기합과 함께 다시 팔을 휘돌리자 상인혼이 벗어난 자리로 쇄도하던 비도들이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마치 쇠사슬에 달린 철추를 휘돌리듯이 실에 연결된 비도를 조종하는 설지의 몸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왼팔을 낚아 채 회수한 비도를 다시 날리고 오른 팔을 당겨 비도를 회수했다.

상인혼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이 자신을 따라 움직이는 날카로운 비도를 이리저리 피하며 다시 산판알을 쏘았다.

설지는 회수한 비도를 손의 쥔 채로 산판알을 피해 몸을 솟구쳤다.

그 순간 상인혼이 회심의 미소를 띠며 허공에 든 설지를 향해 산판알을 튕겨냈다. 설지 역시 회수했던 비도를 날렸다. 설지의 비도가 상인혼을 덮쳐가는 것 보다 빠르게 산판알이 설지를 짓치고 들었다. 설지는 급히 허리를 꺾어 산판알을 흘려보냈다.

그 순간, 설민이 몸을 날려 설지 앞을 막아섰다. 설지가 산판알을 피하고 몸의 중심을 잡으려는 찰나 또 다른 산판알들이 날아온 것이었다. 상인혼이 펼친 수법은 하나의 뒤를 둘이 따르고, 둘의 뒤를 넷이 따르고, 다시 그 뒤를 차례로 배씩 늘어가는 산판알이 따르는 철비산 최후의 절초 승산파천이었던 것이다.


“크윽!”

“컥!”


두 마디의 밭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설민은 전신에 철산알이 박힌 채 설지 앞으로 떨어졌다. 상인혼은 가슴에 박힌 두 자루의 비도를 손으로 움켜쥐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설지가 네 자루의 비도와 함께 팔찌에 연결하지 않은 두 자루의 비도를 날린 것이었다. 설지의 손끝에서 어지럽게 움직이는 비도에 집중하느라 그 속에서 쏘아져 나온 두 자루 비도를 예상하지 못한 상인혼은 가슴에 뜨거운 느낌이 들고서야 그 사실을 알아챘다.


“아버님!"


설지가 다급하게 설민을 부축해 안았다. 양천 또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설민에게로 뛰어왔다.


“쿨럭, 쿨럭! 련주님, 설지를, 부탁합니다.”

“각주님! 속히 각주님을 뫼셔라!”


양천의 다급한 외침에 천금각의 무사들이 뛰쳐나와 설민을 부축해 들어갔다. 상인혼이 피가 흐르는 가슴을 손으로 싸잡은 채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대인. 당신이, 부럽소. 쿨럭! 컥! 그래도....., 당신과......, 함께 가니......, 외롭지는......, 않겠구려........, 크흐흐흐”


상인혼은 서서히 감겨오는 눈을 들어 하무상과 패웅각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중얼 거렸다.


“트, 틀렸어........, 절대......, 저들을........., 이기지......., 못.......”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상인혼이 눈을 감았다. 상인혼은 마지막 순간에야 깨달았다. 가장 큰 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천손련과 패웅각의 차이는 거기에 있었다. 천손련의 사람들은 위아래 구분 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한 마음으로 뭉쳐 있었다. 이에 반해 패웅각은 서로를 이용하고 불신할 뿐이었다. 장사치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그 쉬운 이치를 깨닫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찌푸렸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뇌성이 터졌다. 어두운 하늘을 가르는 섬전이 화산의 주봉을 넘어 꽂혔다. 슬픈 혼들이 타는 냄새가 바람결에 묻어왔다.




무협의 세계에 심은 민족혼


작가의말

언제나 깨달음은 후회를 남기지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생의 중요한 것들을 깨닫는 인간사를 생각합니다.

또 상인혼과 설민을 보냅니다.

내일은 누구를 보내게 될지.............

오늘도 즐거운 하루, 행복한 하루,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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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만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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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작품 후기 +3 14.08.13 3,995 38 4쪽
85 제7부 파국 ⑦ 남은 이야기들 +7 14.07.30 4,982 94 14쪽
84 제7부 파국 ⑥ 최후의 결투 +2 14.07.29 4,299 105 17쪽
83 제7부 파국 ⑤ 난전의 소용돌이 +4 14.07.26 4,156 105 15쪽
82 제7부 파국 ④ 약독의선(藥毒醫仙) +5 14.07.25 4,060 119 16쪽
81 제7부 파국 ③ 불구대천(不俱戴天) +4 14.07.23 4,018 113 16쪽
» 제7부 파국 ② 한천비설(寒天飛雪) +4 14.07.22 4,277 100 20쪽
79 제7부 파국 ①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 +4 14.07.21 4,271 120 15쪽
78 제6부 결전 ⑩ 화산(華山)으로 +2 14.07.19 4,088 108 16쪽
77 제6부 결전 ⑨ 통한의 땅, 서백파(西白坡) 14.07.17 4,013 116 15쪽
76 제6부 결전 ⑧ 서백파(西白坡)의 혈투 +3 14.07.16 4,789 116 15쪽
75 제6부 결전 ⑦ 천무각에 이는 소용돌이 14.07.15 4,126 111 12쪽
74 제6부 결전 ⑥ 막 내린 전설(傳說) +4 14.07.11 4,559 131 14쪽
73 제6부 결전 ⑤ 장강일신(長江一神) +2 14.07.09 4,468 115 17쪽
72 제6부 결전 ④ 파양호의 핏빛 아침 14.07.08 4,710 125 15쪽
71 제6부 결전 ③ 지략과 지략 +2 14.07.04 4,569 119 16쪽
70 제6부 결전 ② 영웅과 영웅 +5 14.07.03 4,669 133 18쪽
69 제6부 결전 ① 다시 중원으로 +2 14.07.01 4,985 122 18쪽
68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⑩ 깊어지는 고뇌 +2 14.06.28 4,849 142 17쪽
67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⑨ 과유불급(過猶不及) +2 14.06.26 5,053 137 14쪽
66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⑧ 모용세가에 부는 혈풍 +2 14.06.24 4,869 127 21쪽
65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⑦ 엇갈리는 암계(暗計) +4 14.06.20 4,660 128 15쪽
64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⑥ 전쟁에는 정도가 없다. +2 14.06.19 4,552 128 11쪽
63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⑤ 모용세가에 닥친 암운 14.06.14 4,973 132 19쪽
62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④ 처절한 재회 +2 14.06.12 5,101 133 14쪽
61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③ 반격 - 성동격서(聲東擊西) +2 14.06.10 5,087 148 12쪽
60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② 현명한 잔인함 +2 14.06.08 6,049 176 13쪽
59 제5부 짙어지는 전운 ① 무창보의 혈사(血事) +4 14.06.04 6,669 196 14쪽
58 제4부 출정 ⑩ 항주에 지는 꽃 +2 14.06.02 5,690 15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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