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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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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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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4,559

작성
18.04.1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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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글자
17쪽

< #3. 상경회령부 11 >

DUMMY

좌승상이 구해준 말 옆에 다가가 등자에 발을 걸고 올라섰다.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보면 힘이 솟는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우습게도 이리 끌려왔지만 이건 전쟁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종으로 붙여준 사내 둘이 극을 들고 다가와 넘겨준다.


징 소리가 들리자, 말은 우아하게 금줄을 넘어 들어섰다. 이제 시작이다.


“아버지, 활은 잘 쏘시는 걸 봤지만 다른 건 어때요?”


“쩝···. 칼이라도 쥘 상황이 되면 뭐 죽는다고 봐야지. 원래 사냥꾼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활에 익숙한 거지. 원래 군관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뒤에 물러나 계세요. 가끔 활이나 연습한다 생각하고 날리시고요.”


고삐를 감아쥔 손을 내밀어 말의 갈기를 훑었다. 녀석이 기분 좋은 듯 히이잉거린다.


좌승상이 내세운 두 번째 조, 관중들의 관심이 쏟아진다. 몇몇 사람들은 조왕이 좌승상의 여식을 이번에 내기를 핑계로 데려가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왕도 겸이의 품새를 보더니 관심이 생긴 듯 고개를 내밀어 자세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눈을 감고 의자에 깊숙이 앉아 버렸다. 어차피 호저에게는 안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흥미가 사라진 것이다. 그냥 눈을 감고 소명과의 결혼식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즐거울 것이다. 그 생각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만 출전 전에 결혼식을 올리지, 마무리되면 올릴지 그것만 고민이 되었다.




***



폐허가 된 황궁 터라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없었지만 벽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그래서 없어진 대문 위치쯤에 병사들 몇 명이 창을 든 채 경계할 뿐 다른 외곽의 경비는 드물었다.


마차가 들어서 선수들의 천막을 향해 움직일 때 허름한 평민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거로 알 수 있었다. 몰래 구경을 하다 참혹한 광경을 보면 밤에 잠도 못 자고 오줌이나 지리지 않을까? 잔뜩 긴장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류의 귀에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팽아. 아까 도망치다가 목이 잘려나간 녀석 보았냐? 허옇게 새어 나온 게 뭐야?”


“뭐···. 그게 어른들이 말하던 골수. 그런 거 아니겠냐? 난 왜 죽을 때 오줌을 지리는지 궁금하다.”


천진난만해야 할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런 얘기들이 오가는 걸 들은 류는 더 긴장해버렸고, 곁에 앉은 소명은 자그마하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소명이 머리부터 커다란 망토로 감싼 채 내리자 천막 쪽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와 맞았다. 그중에 나이 많은 이가 소명을 보자 난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셨습니까? 좌 승상께서는 안 좋아하실 텐데···. 요.”


“뭐 알아서 하겠습니다. 장걸은요? 경기가 끝났나요?”


“잘 끝났고 안에서 다른 이들과 쉬고 있습니다. 단 쪽으로는 고개 돌리지 마세요. 조왕이 이리저리 훑어봅니다.”


“다른 이들은 반대편인가요?”


“네. 맞습니다. 마 씨랑 정이가 가 있습죠.”


그러자 소명은 류에게 알려주려 고개를 돌렸지만, 류는 이미 경기장에 나선 겸이를 보고 있었다. 온몸이 굳어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지켜보는 류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소명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냥 조용히 한마디 해줄 뿐이다.


“반대편 천막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니, 경기 후에 같이 가자.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돌아본 주위에는 창이와 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류와 찾아보던 소명은 조왕의 눈에 마주칠 뻔하여지자, 고개를 숙이고 천막으로 들어갔고, 류도 징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하자 더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외치는 고함이 장내를 가득 채웠고, 그럴수록 류는 욕지기가 솟아오르며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의 목숨이라 그런 건가?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게 자신이라면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


금줄로 다가설수록 사람들의 환호는 커졌고, 손에 술병을 든 채 시뻘게진 몇은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류의 어깨에 취객이 부딪치자, 류는 있는 힘껏 녀석을 밀어버리고는 형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앞으로 나섰다.




***




“별로 차린 건 없지만 든든히 드시고 다음 경기도 다치지 마세요.”


하녀들이 음식을 날라 탁자 위에 놓는 걸 보던 소명은 넌지시 장걸과 선수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른 이들이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넣어도 장걸은 단지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할 뿐이었다. 소명이 걱정스레 바라보자, 장걸이 말했다.


“그냥 아침을 많이 먹어 속이 더부룩합니다, 다음번 경기 후에 먹을 테니 너무 심려 마세요.”


그제야 소명은 알았다는 듯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때라도 든든히 드시고, 힘내세요. 그럼 전 반대쪽에도 음식을 주러 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말씀하세요.”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지 마시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장걸은 당황해 말을 하지 못했지만, 소명은 다시 망토를 머리에 걸치고 천막을 나섰다. 오히려 자기가 걱정하지 말라고, 이번 경기에서 깔끔히 이길 테니 마음의 짐은 놓으라 하려 했는데······. 오히려 한 방 먹은 듯 말을 하지 못했다.


창피함이 갑자기 몰려오자, 장걸은 수건을 머리 위에 얹고 차분히 명상하기로 했다. 쩝쩝거리며 음식 삼키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장걸은 다른 선수들에게 말했다. 힐난하듯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너무 먹지 마라. 배에 칼날을 맞으면 음식이 쏟아져···. 붕대로 감아도 몸속에 남은 찌꺼기가 썩어버린단다. 그러니 적당히 처먹어.”


장걸은 어제 오후부터 물 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고 있었다.




***



상대는 거란인 야율요추라는 도총관의 수하였다.


거란인과 고구려 유민, 여진족 모든 게 섞인 게 금이지만, 여진 출신이 지배층이다. 그럴 때 다른 핏줄이 고관의 자리에 오른 경우는 둘 중 하나다. 동료를 배반한 자거나, 아니면 뽑아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매우 출중한 자이거나.


겸이와 장 씨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야율요추는 후자였다. 그리고 그가 뽑은 사람들도 주인을 닮았다. 상대는 셋이 말을 탄 채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가 대장인지 가운데 서 있었고, 좌우에는 젊고 날카로운 두 젊은이가 어깨를 같이했다. 이들은 현상금 사냥을 주로 하다가, 가끔은 도총관의 뒷일을 처리하는 역할을 했던 이들이었다. 뒷일이라 해봤자 정적이 성 밖을 나서면 복면을 한 채 조용히 따라가 목을 베어 버리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들 눈에 겨우 둘의 상대는 우스워 보였고, 그중 하나는 말도 타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나 있지 않은가? 겁먹은 게 분명했다. 말 탄 녀석이 앞으로 나와 셋을 훑어보다가 창을 들어 땅에 꽂자 웃음이 나왔다. 무슨 허세인가?


그 녀석은 말을 터덜터덜 몰아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땅에 꽂은 창은 그대로 쥐고 말이다. 그러자 창날이 땅을 가르며 상처를 깊숙이 남겼다. 그렇게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선이 완성되자 녀석은 건방진 목소리로 외쳤다.


“이 선을 넘으면 내 창에 죽는다. 만약 덤비다가도 선을 넘어 도망치면 죽이지 않겠다. 물론 졌다고 인정하면 말이야.”


건방진 말에 어이가 없어 웃던 셋은 곧 말을 몰아 선을 넘어 달려갔다. 젊은 녀석 둘은 이 건방진 녀석을 다진고기로 만들려 달렸고, 대장은 말을 비켜 뒤에 숨은 배 나온 늙은이를 향해 달렸다.


“우아 앗!”


건방진 녀석의 고함이 울려 퍼졌고, 숨기에 급급하다고 생각했던 늙은이도 활을 들어 조준을 시작했다.


‘만만치는 않겠군.’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곁을 스쳐 지나가자 고개를 잔뜩 숙인 대장은 환도를 꺼내어 빙글빙글 돌리며 더 가까이 다가섰다. 다음 화살이 더 날카로워지자, 대장은 안장에서 몸을 빼 말 옆구리에 숨었다.


그러자, 활을 든 늙은이는 말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화살은 아깝게 스쳐 말의 몸통을 때렸다. 말이 견디기 힘든 듯 울부짖었지만 거의 다 왔다. 이제 한 번만 더 피하면 이 환도에 녀석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돌아가면 살려준다.”


어느새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대장은 놀라 환도를 떨궜다.


곁에 그 건방진 녀석이 다가와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주인 잃은 말 두 마리만 우두커니 서 있었고 바닥에는 주저앉아 상처를 누르는 부하들이 보였다.


“싸울 거야?”


대장은 고개를 떨구고는 말을 돌렸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 사이에 야유가 한껏 섞여 있었다. 야유 하나하나가 상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단위에 도총관은 한껏 실망한 표정이었다.


대장은 땅에 주인을 잃고 꽂힌 창을 뽑아 들었다. 목숨을 부지하고 당황해하는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대···. 대장?”


대장은 고통 없이 부하들의 목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말을 돌려 선을 넘었다.



***



“하···. 이런 녀석들 참 싫어하는데···.”


겸이는 한숨을 쉬고는 말을 몰아 상대를 맞이하러 달려나갔다.



***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위나라 오기가 한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倖生卽死). 뭐 죽길 각오하면 살고 살려 하면 죽는다는 말이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상대하는 겸이로서는 죽을 맛이다.


[부우웅]


녀석의 창이 어깨 위부터 가슴을 한 번에 노리고 떨어진다. 힘줘 한 번에 결판을 내려는 듯 힘이 가득 실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흉흉하다.


“젠장!”


극을 들어 창날을 쳐냈다. 녀석은 튕겨 나가는 창을 돌려 겸이의 가슴을 향해 찌른다. 다시 막는다. 이 허연 머리를 휘날리는 거란인은 방어는 도외시한 채 미친 듯이 겸이를 향해 찔러댈 뿐이다. 근소하게나마 겸이가 빨라 모두 쳐내지만 막은 후 이격을 날리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면 될 텐데···. 한 번만 삐끗거리면 그대로 네놈은 말에서 떨어질 줄 알아.’


하지만 이 사내는 검게 썩어버린 이가 드러나도록 숨을 몰아쉬면서도 멈추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녀석도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겠지만, 그래도 기세가 흉흉하여지자 장씨가 활을 들고 달려 사각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발만 말에 꽂으면 쓰러질 것으로 보였다.


“놔둬요!”


서로 창이 맞부딪치는 순간 힘껏 밀어낸 겸이가 한숨 돌리며 장 씨를 말렸다.


“무슨 소리냐? 그냥 죽이자!”


“그러면 이 녀석이 억울해서 원귀가 될 거고. 그럼 매일 밤에 괴롭힐 거 아닙니까? 아주 작정하고 덤벼드는데 한없이 보내주자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까지 네놈한테 죽은 녀석이 수십은 넘을 텐데···. 그게 말이 되냐?”


“어쨌든 제발. 부탁드리는 대로 놔둬요. 아버지!”


아버지라는 마법의 단어를 들어버린 장 씨는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활을 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힘이나 창술은 겸이에 밀리나, 이 거란인은 마술이 뛰어났다. 세차게 허리를 노리고 겸이의 극이 날아들자, 허리를 굽혀 피하거나 심할 때는 등자에서 발을 빼서 말 뒤로 돌아 숨었다. 말의 목을 쳐서 쓰러뜨리려 하면 어느새 겸이를 노리고 창이 날아왔다.


‘죽이고 싶지 않네. 멋진 노인네야.’


겸이는 장 씨에게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했다. 창날이 가득 힘을 지닌 채 옆에서 쓸어오자 갑옷이 덮인 어깨를 내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을 길게 휘둘렀다.


녀석의 모(矛)가 겸이의 어깨에 박혔다. 엮여있던 쇠사슬이 조각나 튀어버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나마 극이 아니라 모라는게 다행이다. 양날로 찌르기에 특화된 모는 사실 휘두르는 공격으로 중상을 입히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다만 극처럼 찌르기와 휘두르기 둘 다 좋은 창보다는 가벼워 빠른 공격에 유리할 뿐이었다.


길게 상흔을 남기며 창날이 훑어 지나갈 때 겸이는 극을 놓칠 만큼 길게 잡아 극(戟)을 녀석의 머리에 명중시켰다. 아슬아슬하게 덧붙여진 반원 칼날을 피해 두꺼운 나무 부분으로 말이다. 상대는 투구의 끈이 끊어져 날아갈 정도로 충격을 받자 정신을 잃고 말 위에서 내동댕이쳐졌다.


녀석은 땅 위에 대자로 뻗어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의 사투가 힘들었는지 기침을 섞어가며 힘들게 숨을 쉬면서 말이다. 이마 위에서 선혈이 흘러내리자 그는 그냥 눈을 감았다. 졌다. 그러니 죽을 생각이다.


[죽여라!]


[목을 베어 하늘로 던져버려! 아니면 내장을 뽑아내서 말아버리라고!]


피에 굶주린 고함을 무시한 겸이는 단위에 자리 잡은 좌승상에게 눈을 돌렸다. 마주친 두 눈은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장내는 피를 원하는 야수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좌승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의 입이 열리고, ‘죽여라’라는 한마디만 떨어지면 원하는 피투성이 잔치가 열리는 것이다. 모두 좌승상의 입만 바라보며 즐겁게 옆 사람과 소곤대고들 있었다.


“우리는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살다가 말에서 죽는다. 비록 말에서 떨어졌지만, 그는 다시 등자를 밟고 안장에 앉아 대초원을 누빌 수 있다.”


기마 민족의 자긍심을 부추긴다. 교묘한 말투다.


“나를 대신해 나간 그가 상대를 살리려 한다. 그는 고려인이지만, 우리를 동경해 몸을 맡기려고 한 자이다. 우리에게 관용과 사랑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난 목숨을 걸고 싸운 그의 뜻을 존중한다. 살려라.”


좌승상의 말을 들은 도총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자신의 수하를 살려준다니 고맙다는 표시일 것이다. 게다가 멋진 경기를 펼쳐 자신의 면도 살았기에 그럭저럭 마무리하려 한 것이다.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금세 마음을 바꿨다. 흡사 갈대밭에 불던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결이 바뀌는 것처럼 순식간이었다.


[녀석! 멋있다. 네가 남자다]


[저 거란인도 최선을 다했어. 지기는 했지만,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다음번에도 저 거란인이 나오면 난 그에게 걸 거야]


징 소리가 나자 겸이와 장 씨는 천막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껏 걱정한 장 씨는 다가와 겸이의 상처를 훑어보며 울상이었다.


“괜찮아요. 생각보다는 깊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녀석. 말이 쉽구나.”


겸이의 무덤덤한 말투에 화가 잔뜩 난 장 씨는 상처에 이리저리 박혀버린 사슬 조각을 눈여겨보다 뜯어버렸다.


“아···. 아파요···.”


“그럼 몸에다가 쇳조각을 박고 살 거야? 이리와. 마저 뽑게···. 한 댓개 남았구먼.”


둘이 이리 티격태격하며 돌아갈 때 목숨을 부지한 거란인은 주저앉아 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찼다가 고마움이 밀려들어 오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도총관이 벌을 내릴지 아니면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할지······. 앞으로의 삶이 어쩔지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패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면 경기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서도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아직 몇 가지 일은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다.




***




조왕의 손짓에 좌승상은 옆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감동적인 말이야. 그렇지 우리는 말에서 나고 죽는 운명이야. 정확히 우리 금을 나타내준 말이야.”


“어느 앞이라고 흥분해서 말이 헛나왔습니다. 귀를 어지럽혔으니 송구할 뿐입니다.”


의례적인 말에 조왕은 손사래를 쳤다. 언제나 단도직입적인 말을 좋아하는 그는 이런 말장난이 싫었고 잘하지도 않았다.


“뭐. 대회를 위해 준비를 잘해준 거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달리 생각하면 그렇게 소명 소저를 주기 싫어하나 해서 서운하기도 하고 말이야.”


소명의 얘기가 나오자 좌승상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조왕은 기분이 좋아져 껄껄거리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작은 소란이 벌어지며 병사들이 제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에게 막힌 웬 사내가 다급히 고함을 질렀다.


“조왕 전하를 알현합니다.”


좌승상을 놀리는 재미를 방해받자 조왕은 사내를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눈은 곧 풀렸다. 곱상하게 생긴 남자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녀석의 옆에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소명보다는 못하지만 그건 아직 어려서일 수도 있다. 후일에 꽃이 피어나듯 자태가 고와지면 비견할 만할 듯하다.


조왕은 갑자기 몰려온 시장기에 당황스러웠다. 인상을 잔뜩 쓴 그는 외치듯 말을 뱉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대회는 중지하고 식후에 진행하도록 하자. 저것들도 데려오도록. 무슨 얘기가 있어 목을 걸었는지 궁금하군.”


그 남녀를 바라본 좌승상은 아연실색했다.


창이와 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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