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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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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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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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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4.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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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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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글자
12쪽

< #2. 서경 6 >

DUMMY

하지만 옆구리를 찌른 칼을 잡은건 김존심이었다. 그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기괴했다. 사람이 저리 흉악한 표정을 지을수 있는가?


"으으윽······."


고통스럽지만 칼을 쥔 손을 잡아 힘을 써봤다. 하지만 김존심도 사정 보지 않고 힘을 주어 내리누른다. 만약 칼을 뺏기면 뒤는 없다는 듯이 그도 죽을 둥 살 둥이었다. 이제 입에서 피까지 토하며 쿨럭대는 조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존심을 바라봤다.


"미안하네······. 자네가 내 편이 될 생각이 있어 보였으면 이러지는 않았을걸세.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야. 우리는 졌네. 어떻게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마지막으로 배반한 김존심을 향해 욕이라도 뱉으려던 조규는 욕 대신 피를 토하며 눈을 감았다. 살아서 처음 살인을 해본 김존심은 그 경험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 구름이 걷혀 달빛이 환히 비치자 피 묻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다시 되뇌었다. 결심한 그는 목에 칼을 갖다 대 톱질을 하듯이 오랫동안 잘라냈고 다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죽은 조규의 눈을 바라봤다.


"진정 미안하네만······. 내 생각에는 이게 맞는 거 같네."


자른 목을 든 김존심은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덜대며 횃불이 가득 켜있는 개경군영을 향해 걸어갔다.


"어···. 뭐···. 뭐야?"


군영을 지키며 경계를 서던 병졸은 초라한 행색의 사내가 피범벅이 되어 다가오는 걸 보아 매우 놀랐다. 창을 들이대고 여럿이 달려들자 김존심은 힘없이 말했다.


"평장사 나리를 뵈러 왔네. 날 데리고 가주게나."


그제야 병사들은 손에 들린 목을 보고 모두 기겁을 했다. 하지만 차분한 말투로 계속 평장사에 데려가달라는 말에 그들은 김존심을 본진으로 데려갔다.





***




병졸들이 삼엄하게 주위를 둘러쌌다. 초라하고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피범벅이 어울리지 않았다. 혹여나 무술의 고수라 자신들의 지휘관을 노리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됐다. 다들 물러가라."


"하지만···."


"그냥 가. 얘기를 좀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으니. 말동무나 돼주지. 뭐."


평장사인 윤인첨은 없었다. 병사들이 데려온 곳에는 본 적이 없는 사내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다른 병졸들이 모두 우르르 나갔다. 떡 벌어진 어깨에 상석에 걸터앉은 그는 눈빛이 흉흉했다. 뺨에 살짝 남은 흉터는 그의 생이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기품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전부 거친 것이 분명히 무인이다.


"어르신, 저는 김존심이라 하며 서경유수 밑에서 잡무를 보는 녀석입니다. 평장사 어른께 긴히 전해드릴 게 있어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하하하···. 전할 것이 그 목이더냐? 조위총이 녀석이 그처럼 우리 목을 베겠다고 했더냐? 아니면 투항의 선물이라 하면 적어도 조위총의 목을 가져오지 그랬나?"


호탕한 웃음 뒤에 사나운 살기가 쏟아진다. 아직 늦은 겨울인데도 땀이 흐른다. 깜짝 놀라 들었던 목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 아닙니다. 이건 제가 조위총을 벗어나기 위해 결심했다는 걸 알려드릴 증표고 전해드릴 건 이겁니다."


행여나 손의 피가 묻을까 조심히 꺼냈다. 비단 조각으로 쌓여있어 스며들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조심조심 꺼내어 사내에게 내밀었다. 받아 한참을 읽던 그는 갑자기 껄껄대며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재미있는 일이로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쯤에 평장사인 윤인첨이 막사의 천을 들어 제치고 들어왔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신가? 중랑장."


"아···. 아닙니다. 평장사 나리. 이거 세작 녀석이 가져온 서찰인데···. 내용이 꽤 웃깁니다."


5품의 중랑장이 평장사에게 저리 격의 없이 얘기한다? 분명히 정변의 주역이다. 그러면 누구인가? 김존심은 몸서리쳤다. 분명 소문에 중랑장이면 이의방이다. 윤인첨이 원수로 나서 절령에서 대패했을 때 개경 군을 이끌고 서경 군을 짓밟은 용장 이의방이다.


"허허···. 이거 조유수가 미쳤구먼. 금이라니···. 미쳐도 한참을 미쳤어."


평장사가 하얀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글을 보더니 허탈한 웃음을 내비쳤다. 이후 둘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향후 전국이 어떻게 돌아갈지 얘기를 하다가 멀뚱히 서 있는 김존심을 바라봤다.


"어쩔까요? 베어 버릴까요?"


이의방의 날 선 목소리가 가슴을 후려쳤다.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려왔다. 울먹이며 엎드려 두 손을 비비며 빌었다.


"주상께 데려가면 될걸세. 한동안 쉬게 해주고 봄이 되면 서경을 흔들 때 써먹는 건 어떨까?"


윤인첨의 한마디에 죽었던 목숨이 살았다. 비루먹은 강아지 보듯이 눈초리를 찌푸리지만, 쓸모가 있어 살리기로 한 것이다.


"감···. 감사합니다."


김존심은 달려들어 평장사의 두 팔을 잡고 고맙다며 울부짖었다. 참 흉물스러워 보였다.


"저리 꺼져라. 감히."


이의방의 발길질에 나동 굴어 탁자를 쓰러뜨렸다. 행여 눈에 벗어날까 쏟아진 지도와 서찰을 챙겨 흙을 털었다. 그때 보였다. 몇 번을 접혔던 종이에 적힌 작은 글씨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들어온 병사들은 잘 위장해서 주변에 숨겨놓았습니다. 때가 되면 일어설 것입니다.]


그때 알았다. 김존심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말이다. 이미 개경 군은 서경을 뺏을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희생을 줄이려 조심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난 잘 택했다. 이기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는 편 아닌가?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입으로는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갔다. 거울이라도 볼 수 있으면 참으로 기괴한 표정이었으리라.




***




[적들이 사라졌다. 도망갔다.]


며칠 후 망루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성내는 다시 기쁨에 들떴다. 결국, 이긴 것 아닌가? 적들을 이기지 못했으나 적들도 우릴 이기지 못했다. 그렇게 저잣거리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얘길 나누기 시작했다.


[거보라고!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야···. 개경 것들은 안돼. 암 안된다니까···.]


이렇게 사람들 마음에도 기쁨이 흘러넘쳤다. 흡사 따뜻한 바람이 불어 몸서리치던 겨울이 사라진 듯 말이다. 하지만 산원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봄이 올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저 대동강 변 너머로 녀석들이 돌아와 다시 포위를 시작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다른 성들은 다시 깃발을 바꿔 달고 개경 편을 들기로 했다는 것을 말이다. 저잣거리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른다. 연주가 함락돼서 그곳에 개경 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씁쓸한 표정으로 망루 위에서 이곳저곳을 바라볼 뿐 산원은 할 일이 없었다. 다른 장수에게 성문 수비를 맡기고는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이···. 이 녀석! 그렇게 술이나 푸고 있을 거면 류 녀석 말 타는 법이라도 가르치란 말이다."


아비는 추운 겨울. 높은 망루에서 찬 바람을 맞다 왔는데 아들 녀석은 따뜻한 방안에서 탁주나 마시다 혼쭐이 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잔소리를 얻어맞던 겸이는 버티지 못하고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네···. 네···. 제가 오늘 안으로 말 타는 법은 아주······. 거 뭐냐? 그래 고려 제일로 만들어 놓겠소이다. 아니지. 버금이지···. 내가 있잖아."


비틀거리며 겸이는 집을 나섰다. 요 망측한 것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잡아다가 혼쭐을 내며 승마를 가르칠 텐데······. 분명 화풀이가 아니라 교육이다. 형으로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희생하며 가르칠 것이다. 분명 화풀이가 아니라고···.아마 찾는 시간이 걸리면 걸릴수록 어쩔 수 없이 교육의 강도는 올라갈 것이다. 가르칠 시간이 줄어드니 더 힘들게 가르쳐야 하는 법.


화풀이는 아니라니까······.




***




한동안 류 녀석이 다닐만한 곳을 찾던 겸이는 화가 났다. 이제는 술기운도 사라졌다. 기분 좋은 취기마저 사라지니 조금 더 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허허···. 이 녀석 봐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겸이의 귀에 기합 소리에 섞인 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벽 너머였다. 바로 옆에 있는 유수부 후원 쪽이다. 이 녀석이 건방지게도 유수부를 밥 먹듯이 넘나드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담에 매달려 고개를 빼꼼히 내민 겸이의 눈에는 류가 목검을 들고 내려치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엉성한지. 힘은 있으나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듯했다. 게다가 저 녀석은 뭐야?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 류에게 꾸지람하는 저 촌뜨기 같은 녀석은?


잠시 후 유수부 정문을 지나쳐 후원으로 향하는 겸이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내가 괴롭힐 내 동생을 감히 먼저 괴롭히다니······. 아니 훌륭한 교육을 앞둔 동생에게 저런 잡다한 무예를 가르치다니 말이다.


보초를 서는 병졸들 모두 겸이를 알고 있어 통과는 쉬웠다. 산원의 아들이며 별명은 서경의 여포 아닌가? 저번 전투 때 철기들 덕분에 산 병사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그들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여엉차거리며 커다란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쿵 소리와 함께 꺅 소리가 들렸다.


'쿵? 꺅?'


겸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웬 꼬마 계집이 문에 부딪혀 쓰러져있었다. 이마가 벌겋다. 분명 입은 걸 보니 귀한 아이다.


"연이 아기씨!"


류 녀석이 목검을 놓고 달려온다. 촌뜨기도 달려와 연이라는 아이를 흔든다.


"어···. 그건 말이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문을 좀 세게 열기는 했지만 말이야."


"형! 유수 님 딸이야. 이게 무슨 짓이야?"


류 녀석은 평소와 달리 건방지게 형에게 '짓'이라는 말을 해버렸고 경황이 있었으면 혼쭐을 낼 겸이도 정신이 없었다.


"아···. 아니···."


주절거리는 겸이는 횡설수설했고 정신을 차린 연이라는 아이는 겸이를 보며 괜찮다고 웃었다.


"괜찮습니다."


자그마한 혹이 났는지 이마를 만지는 아이는 꽤 예뻤다. 옆에 붙은 류 녀석의 표정을 보니 알 듯했다. 녀석···. 사랑에 빠졌구나.


"죄송합니다. 급히 오다 보니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아기씨. 용서해주십시오."


"류의 형님이면 철기들의 수장 아닙니까? 이번에 힘들 때 아버님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일어서 고개를 살짝 조아려주는 게 요망한 꼬마애였다. 겸이도 류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이 뇌리를 스치니 류 녀석의 허황한 소망은 빨리 끝내는 게 나을 듯하다.


"아닙니다. 아기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자. 류야. 가자. 무예랑 승마를 가르칠 테니 제대로 배우자."


겸이는 어서 류를 끌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말이 촌뜨기 녀석에게 상처가 될 줄 몰랐다.


"아···. 류의 형님이셨구먼. 뭐 승마는 잘 타신다니 가르치면 될 것이나. 무예는 제가 스승입니다."


그제야 제대로 얼굴을 쳐다봤다. 강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 유수 댁에 새로 온 호위무사라는 분인가 봅니다. 뭐 류에게 그동안 가르치신 건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제대로 가전 무예를 배워야지요. 어중이떠중이 배우다가는 나중에 망칩니다."


사내는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겸이는 씩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는데 잘된 일 아닌가? 사이에 끼인 류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둘의 눈에서 불꽃이 튀고, 연이는 재미있는 구경을 한다는 듯이 기대감에 부풀어 버렸다.


"한번 살짝만 겨뤄볼까요?"


걸렸다. 녀석. 겸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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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4. 태평루 4 > +7 18.04.22 7,233 1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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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3. 상경회령부 2 > +5 18.04.15 9,577 152 9쪽
16 < #3. 상경회령부 1 > +7 18.04.14 9,925 17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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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 서경 11 > +12 18.04.12 10,045 15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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