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반가외
상상의 나래를 펴다.
희미하게나마 사위를 밝혀주던 초승달마저 먹장구름에 까무룩히 잠겨들고,칠흑같은 어둠에 풀벌레소리만 간간히 들리는데 어디선가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언진이 기거하는 초막 밖 언저리에 와 멈추어 선다.
“형님,계십니까?”
기척에 일어나 앉은 언진은 초막 입구를 가렸던 거적을 들추며 구부정하니 얼굴을 내밀고 말 없이 우두장승마냥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천생이 아자인 언진은 그만의 방식으로 몇가지 간단한 손짓으로 지인들과 소통을 하곤 했는데,
초막을 찾아 온 문대 또한 어둠이 눈에 익어 언진의 손바닥을 보곤 말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린 후 작은 목패를 꺼내 내밀었다.
물끄러미 문대의 머리 꼭두만 내려보던 언진은 잠시 후 초막으로 들어가 길쭉한 나무상자를 들고 나와 문대의 발치께에 넌지시 내밀곤 우두망찰 별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응시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형님,보중하소서.”
문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리며 나무상자를 조심히 들어 어깨를 가로질러 허리에 매듭을 묶은 포대에 넣고는 두 말 없이 산아래쪽을 향해 질주해 나아갔다.
문대가 떠나간 후,밤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언진은 어둠에 익숙 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 휘우듬히 걸쳐진 거적떼기를 들치고 안으로 들어가 단촐한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언진은 둘러 맨 행장을 추스르며 손에 들린 작은 목패를 그새 먹장구름 사이로 살짝 나온 희뿌염한 월광에 비춰보며 발길을 내디뎠다.
‘화반가외라...7년만이군.’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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