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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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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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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90,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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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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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25장 [잔향을 쫓아] -01-

DUMMY

익숙하지 않은 몸의 흔들림에 태민은 눈을 떴다. 쉼 없이 뒤로 물러나고 있는 밤 사막과 바람에 나풀거리는 긴 머리카락이 보였다. 머리카락에서는 여성 특유의 채취가 땀과 섞여 미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두 팔은 여성의 어깨에 둘러있고, 허벅지에서는 압박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있다는 사실이 왠지 현실성이 없었기에 태민은 꿈을 꾸고 있는 줄만 알았다.


“예원 누나…?”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업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수진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다. 늦긴 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와준 것이다.


“태민 학생? 태민 학생!”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민은 다시 눈을 감았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피곤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주변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그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 ※ ※





“빨리 안젤루스에게 무전을 넣어! 이 느림보들아!”


험악한 남성의 목소리에 잠시 정신이 돌아왔다. 몸 아래 깔린 모래는 계절을 착각한 듯 얼음처럼 차가웠다. 남성의 이어지는 불평을 들으며 태민은 다시 잠들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헬리콥터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좌우에는 PA슈트를 입은 팔루치아 대원들이 있었고 바로 앞에는 수진이 불안한 눈빛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태민은 무언가 생각나는 게 있어 손을 움직였다. 손은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움직였고, 그곳에 아직 예원이 준 권총이 남아있음을 확인하자 편안한 미소와 함께 다시 눈을 감았다.





※ ※ ※





“잘했어! 아주 완벽해!” 말과는 전혀 다르게 안젤루스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패트릭은 애초에 그곳에 없었고 이제는 행방이 묘연해졌군. 캡틴 콜린트는 자신의 배와 함께 심해에 가라앉아 더 이상 정보를 제공해주지도 못해! 게다가 전 세계는 너희를 테러리스트로 지목했으니 이제 우리 팔루치아는 그 뒤를 봐주는 거대한 범죄조직이 되겠군. 이런 망할! 이보다 더 나은 상황은 생각할 수도 없겠어! 이런 머저리들을 애초에 믿는 게 아니었는데!”


그 순간 수진이 작전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치며 일어섰다.


“말조심해 뚱땡이. 네놈이 우리 관리자님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누구는 안 그런가? 너희들에게 당한 피해가 얼만데. 아, 잘 됐다. 어차피 내가 너희들하고 손을 잡은 이유는 캡틴 콜린트 때문이었어. 이제 그도 없으니 우리 동맹관계는 여기서 끝내는 게 어때?”

“그거 좋네! 그럼 일단 네놈 머리에 총알부터 박아줄게!”


수진이 실제로 권총을 꺼내 드는 순간, 상황실에 있던 여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그녀를 조준했다. 모두들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상대의 행동에 집중했다. 조그마한 행동으로 수십 개의 총구가 불을 뿜을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동맹을 깨는 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다.” 그 말을 한 건 긱 옆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스티븐이었다. “어차피 블랙 레벨은 알고 있었을 테지만 이번 움직임으로 팔루치아가 우리와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 명확해졌지. 찢어져 봐야 서로에게 불이익만 있을 뿐이야.”

“불이익?” 안젤루스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공격대상을 스티븐으로 바꿨다. “너희들한테야 불이익이겠지. 우리들의 막강한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받을 불이익은 뭐지? 내가 생각하기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데!”

“아직 블랙 레벨 본사에 있는 자료는 건드려보지도 않았잖아?”

“본사의 자료?”


안젤루스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손짓으로 여대원들이 권총을 내리게 했다. 수진도 상당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인지하고 권총을 집어넣었다.


스티븐이 손가락 끝으로 작전 테이블 가장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예전에 패트릭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블랙 레벨은 대부분 자료를 서버에 저장하지만 본사의 컴퓨터에 따로 정리하는 자료가 있다. 그 컴퓨터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마이크 패트릭이 가지고 있는 개인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직접 컴퓨터를 제어하는 방법이지. 물론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도록 철저한 보안이 걸려 있지만, 우리 쪽에는 S3기밀에 접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엔지니어가 있다.”


안젤루스는 대충 알았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를 기묘하게 올렸다.


“지금 선실에서 쉬고 있는 그 덩치 큰 겁쟁이를 말하는 거군. 하지만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자료가 패트릭을 죽이는데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어떻게 알지? 그리고 왜 그걸 먼저 쓰지 않은 건데?”

“위험부담이 크니까. 그리고 거기에 정보가 있는지는 확인해봐야 알겠지. 솔직히 말해 거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S3기밀도 접근만 못 할 뿐 서버에 올라와 있었으니까. 패트릭 혼자만의 개인자료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 블랙 레벨 사장의 개인자료, 너희들에게 구미가 당길 이야기지 않나? 그리고 그 컴퓨터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너희 여객선의 위치를 알아낸 것처럼 패트릭의 현재 위치를 알아낼 수도 있을걸. 하지만 본사를 공격하는 것이니만큼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가 되겠지.”


그 말을 들은 안젤루스는 팔짱을 끼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척했다. 누가 봐도 일부러 연기하고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초보적인 연극이었다.


“좋아. 동맹은 잠시 연장된다. 그럼 누가 갈 건지, 그리고 필요한 건 무엇인지 지금 당장 여기서 정하지.”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면서 말했다.


“내가 간다.”


수진은 그렇게 말하고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긱과 스티븐을 바라봤다. 두 명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우리들 중에서 그런 임무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수진이니까.”


긱이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렇다면 수진과 건진, 이 둘이 함께 미국 본사에 가는 게 낫겠군.”


스티븐이 제시한 방향을 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인원이 많아 봤자 들킬 확률만 높아질 뿐이죠. 제가 길을 열고 김건진씨가 컴퓨터를 조작하는 게 현재로써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수진은 안젤루스를 돌아봤다. “제가 본사에서 정보를 뽑아내는 즉시 이쪽에서는 태민 학생이 곧바로 그곳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놔야겠죠.”


안젤루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필요하다면 해줘야겠지. 그런데 저놈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괜찮겠어?”


그 말에 상황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태민에게 향했다. 확실히 태민은 평상시와 달라 보였다. 상황실에 들어온 뒤로 내내 무표정으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멍하게 뜬 눈은 작전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긱이 걱정이 됐는지 선글라스를 아래로 살짝 내리면서 물었다.


“태민, 방금 말한 대로 해도 괜찮겠어?”


물음에 태민은 고개를 천천히 들어 긱을 바라봤다. 여전히 멍한 눈이었다.


“예.”

“아니, 혹시라도 네가 불편하거나 하면…”


태민은 긱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1초라도 빨리 마이크 패트릭을 찾아낼 수 있다면, 제가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태민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안젤루스조차 태민의 상태를 염려할 정도다. 그는 마치 껌을 씹듯이 입을 움직이다가 결국에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상태 나쁜 놈은 방해만 된다. 할 용기가 없다면 나중에 빼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지 말고 지금 당장 말해. 특별히 네가 완전히 부숴놓은 PA슈트에 대한 청구는 눈감아 주도록 할 테니까.”


태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안젤루스를 무섭게 노려보며 대답했다.


“적어도 나로 인해 팔루치아가 피해를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안젤루스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흥. 눈빛은 아직 살아 있군. 블랙 레벨 제군들. 걱정 말고 작전을 진행시켜도 되겠어.”





※ ※ ※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은 수진과 김건진이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 밤바다를 감상하고 있던 긱과 스티븐이 두 사람이 지나갈 때 옆에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수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두 사람의 손바닥을 때리고 지나갔다. 김건진은 조금 망설였지만 긱이 재차 요구하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부딪쳤다. 제일 마지막에 서 있던 태민도 비록 힘이 없어 마네킹처럼 팔을 올리긴 했지만 그 행위에 동참했다. 그런데 수진은 다른 두 사람과 다르게 손바닥을 부딪치는 걸로 끝나지 않고 단단한 악수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행동에 태민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수진은 옅으며 어딘가 슬퍼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태민 학생, 사막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것들까지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겠죠. 그러니까…. 으음, 그러니까 말이죠…. 어휴, 말주변이 없어서 뭐라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아마도 이 일은 우리에게 있어 패트릭을 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예요. 언젠가 다시 기회가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죠. 1년 혹은 10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겠죠. …미안해요. 태민 학생에게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닌데.”

“무슨 말인지 잘 알겠어요.”


수진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긱과 스티븐이 도와줄 거예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헬리콥터 옆에 서 있던 안젤루스에게 다가가 장비를 받은 다음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옆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건진도 수진이 했던 행동을 보고 손바닥을 치는 대신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정보를 뽑아내는 즉시 최단속도로 안젤루스에게 전달할 걸 약속할게.”

“그 말만으로도 든든하네요.”


김건진은 악수를 나눴던 손으로 태민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힘내라.”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 단순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지만 태민의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잠시 후, 두 사람을 태운 헬리콥터가 이륙해 밤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태민과 긱, 스티븐은 헬리콥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착륙장에 서 있었다. 헬리콥터가 소리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 ※ ※





헬리콥터가 이제 막 출발했기 때문에 연락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세 사람은 선실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간편한 것을 먼저 몸에 걸치고 조금 무게가 나가는 것은 바로 가지고 나갈 수 있게 정렬했다. PA슈트가 완전히 부서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태민도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가죽으로 된 권총집을 허리에 차서 예원의 권총을 집어넣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략적인 준비가 끝나자 긱이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있는 태민을 보며 말을 걸었다.


“태민, 잠깐 밖에 나가서 요기라도 하지 않을래? 끝내주는 이탈리아 식당이 있더군.”


긱은 힘있게 웃으며 엄지로 밖을 가리켰다. 하지만 태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식욕이 없어요.”

“그 식당 스파게티를 눈앞에 두면 생각이 달라질걸? 내 개인적으로도 이탈리아 요리에 편견이 있었는데 그 편견이 완전히 사라졌을 정도야.”

“아니요. 저는….”

“그러지 말고, 한 번 같이 먹어보자.”


긱은 억지로라도 데려갈 생각으로 태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때 스티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았다.


“싫다는데 억지로 데려갈 셈이냐?” 스티븐은 태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태민. 이 녀석이 눈치가 워낙 없어서. 하지만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니까 이해해줘.”

“눈치가 없다니? 배고플까 봐 사비로 밥을 사주겠다는데.”


긱이 일부러 흥분한 척하며 말했다.


“그 밥은 나에게 사주면 되겠군. 허기로 인해 배가 등에 붙을 지경이거든.”

“뭐? 넌 멀쩡하잖아!”


스티븐은 긱을 억지로 선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홀로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태민, 몸조리 잘하고 있어.”


그 말에 태민은 거짓말을 들킨 죄수처럼 몸을 움찔했다.


“감사합니다.”


스티븐은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문을 선실 문을 닫아줬다. 문밖에서 들려오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됐다. 태민은 리모컨을 들어 실없는 개그가 나오던 TV를 껐다. 그러자 적막이 소리 없이 다가와 태민을 감쌌다. 잠시 동안 아무 반항 없이 적막을 받아들였던 태민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얼핏 보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오른손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도 쉬지 않고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태민은 손에 힘을 완전히 빼서 털어보기도 하고, 다른 손으로 마사지를 해보기도 하고, 힘을 잔뜩 줘 주먹을 쥐어보기도 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떨림을 잡아보려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때 세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미안해. 내가 급격하게 회복시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사과할 필요 없어.” 태민은 손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며.”

[그건 그렇지만…. 혹시나 앞으로 있을 싸움에 방해라도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이 정도는 괜찮아.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너 지금도 식욕이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태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뿐이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잖아!] 태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바보였어. 팔루치아 사람들이 온다는 걸 까먹고 무리하게 회복을 시키다니…. 차라리 리엔이었다면 냉철하게 판단해서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태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주먹으로 침대 모서리를 강하게 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미안해.]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해. 패트릭을 죽일 때까지는 쓰러질 수 없어. 그러니까 세아야. 너도 약한 소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무리한 억지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 줬으면 좋겠어.”

[…응.]


태민은 침대 옆에 있던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초승달 아래에 검은 바다가 조용히 배를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 ※ ※





수진과 김건진이 미국으로 떠나고 나흘이 막 지났다. 모두들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실패했다면 정보를 얻는 건 물론이고 두 사람의 목숨 마저 위험했다.


오일째 되는 날 아침, 태민이 창문밖으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선실 문이 열리며 델타1이 그 커다란 몸을 드러냈다. 태민과 긱, 스티븐은 당장에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등장에 놀라지 않았다.


“왔군.”


긱의 말에 델타1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상황실로 오도록.”


세 사람은 델타 1을 따라 상황실로 들어갔다. 안젤루스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일행을 보고 작전 테이블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지도가 펼쳐져 있던 작전 테이블에 생소한 시설이 3D 데이터로 표시됐다.


안젤루스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물었다.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스티븐이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바다에서 사용하는 석유시추시설이군. 이게 어쨌다는 거지?”

“미국으로 출장 간 2인조께서 보내온, 도착한 지 5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자료다.” 안젤루스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화면이 시추시설의 파이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이것이 이 시설의 본 모습이다.”


작전 테이블에 보여진 모습은 해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거대한 시설이었다. 긱이 테이블을 두 손으로 치며 소리쳤다.


“해저 연구소? 패트릭 이 녀석이 아직 미련이 남아있었던 건가?”


안젤루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이전 것은 크로노스에 의해 날아갔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면 상당한 애착이 있나 보군. 그렇다면 블랙 레벨 사장님이 거주하고 있을 확률도 높다는 거고.” 그리고는 손을 움직여 연구소를 계속 돌려봤다. “석유시추시설은 위장이고 사실은 해저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야. 누구 생각인지 몰라도 유치한 아이디어군. 그런데 이거 커도 너무 큰데? 구역 하나는 거의 작은 도시만 하잖아. 혹시 이따위 걸 만든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나?”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안젤루스는 재미없다는 듯이 입으로 뿡소리를 내더니 화면을 세계 지도로 전환했다. 그리고 현재 일행의 배가 있는 인도양이 크게 확대됐다. 조금 늦게 해저 연구소의 위치가 표시됐다. 그 순간 세 명은 숨을 삼켜야 했다. 해저 연구소의 위치가 현재 있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긱이 손으로 턱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가깝군. 지금 출발하면 이 더럽게 느린 배로도 반나절도 안 걸리겠어.”


스티븐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안젤루스, 이 시설의 방어가 어떻게 되어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나?”

“있지.” 안젤루스가 손가락을 움직이니 작전 테이블이 시추시설을 확대하면서 그 안에 주둔해있는 병력들을 표시했다. “일반 보병 50명이 전부긴 하지만 설치되어 있는 무기가 꽤 막강해. 저격, 로켓 발사기는 기본에 대구경을 사용하는 고정식 기관총이 층마다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어. 그리고 이놈들이 사용하는 탄환은 모두 LN탄환이라고 되어있군. 이거 너희들이 자주 쓰는 그 폭발하는 탄환 맞지?”


긱이 고개를 끄덕였다.


“LN탄환이 기관총용으로도 제작된 건가? 생각만 해도 무서운데. 이런 덩치 큰 여객선으로 접근했다가는 뭘 해보기도 전에 침몰하겠어.”’


안젤루스가 손톱 끝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어떻게 저걸 뚫을 방법은 없나? 지금쯤 블랙 레벨도 이 자료가 유출된 걸 알고 대책을 세우고 있을 거야. 저곳을 조금이라도 빨리 우리가 점령해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긱은 고개를 저었다. “핀 뽑힌 수류탄을 막아달라는 요청이나 다름없다고 그거. 폭발 직전의 수류탄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몸으로 덮는 수밖에 없잖아.”

“제길! 그렇다면 최대한 넓게 퍼져서 접근하는 방법으로…”

“아니.” 안젤루스의 말을 끊은 사람은 태민이었다.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할 수 있어.”



작가의말

미국으로 간 수진 씨와 김건진 씨의 활약은 과감하게 패스!

왜냐면 주인공이 아니라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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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마리: 내가 나를 잡아먹은 날]

네이버N스토어, YES24 e연재, 바로북에서 유료 연재 중!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_(_ _)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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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81 레하
    작성일
    14.01.28 10:10
    No. 1

    스피드 있는 전개 오히려 환영입니다. ㅎㅎ 그리고 재밌게 봤습니다 태민이 어땋게 된걸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7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1.28 11:37
    No. 2

    전개가 시원시원하네요
    이번 일은 예원의 도움을 받는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쥔공이 막강한 힘이 있더라도 혼자는 어렵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항비
    작성일
    14.02.02 01:01
    No. 3

    오늘 정주행 완료했네요
    즐겁게 읽고 갑니다 ^^
    앞으론 덧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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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22장 [오랜 친구] -06- +7 14.01.04 3,559 121 17쪽
109 22장 [오랜 친구] -05- +8 14.01.02 3,553 112 13쪽
108 22장 [오랜 친구] -04- +5 13.12.31 3,520 124 15쪽
107 22장 [오랜 친구] -03- +4 13.12.28 3,381 120 16쪽
106 22장 [오랜 친구] -02- +3 13.12.26 3,364 106 15쪽
105 22장 [오랜 친구] -01- +6 13.12.24 3,601 110 14쪽
104 21장 [재회] -04- +6 13.12.21 4,192 119 18쪽
103 21장 [재회] -03- +10 13.12.19 3,165 124 16쪽
102 21장 [재회] -02- +10 13.12.17 3,691 124 15쪽
101 21장 [재회] -01- +6 13.12.14 3,120 109 15쪽
100 20장 [내키지 않는 관계] -04- +13 13.12.12 3,074 133 15쪽
99 20장 [내키지 않는 관계] -03- +6 13.12.10 3,475 12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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