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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아보미나티오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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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40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4.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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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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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8쪽

아침 -7

DUMMY

[8월 5일, 오후 16시 30분, 서울, 한국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순식간에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계속된 수술과 회진, 세미나까지 겹쳐 집에 가서는 기절하다시피 잠에 빠졌다. 그래도 고양이 밥은 빠짐없이 챙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토요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오는 듯한 주말, 이번 주는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단청은 의사가운 차림으로 병동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오후 수술도 없고, 회진도 없으니 두세 시간은 자유였다. 물론 이따 저녁에 외래 회진을 다녀와야 했지만, 금방 끝날 일이다.


향긋한 커피 향, 얼마 만에 느껴보는 달콤함일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셔?”


언제 왔는지 박시연이 곁에 서 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데, 뭔가 좋은 일이 있나보다.


“야, 넌 사람이 왔는데 아는 체도 안하니?”


“응? 언제 왔어?”


박시연이 맞은편에 앉는다.


“그래 왔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요.”


“아니 그냥, 이러저런.”


말꼬리를 흐리자, 박시연이 게슴츠레 실눈을 뜬다.


“너 애인 생겼지? 그렇지?”


“언니도 참! 내가 애인 사귈 시간이 어디 있어. 그건 그렇고 퇴근 안 해?”


잠시 당황해하며 말을 돌리자, 박시연이 피식 미소를 머금는다.


“조금 후에 할 건데, 왜? 나이트 가자고?”


“무슨 나이트야.”


단청은 입을 뾰로통하게 삐죽이며 커피 잔을 들었다. 솔직히 나이트나 클럽이라는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거기 갈 시간에 전공서적을 읽었고, 춤을 익힐 시간에 사람 뱃가죽 가르는 법을 배워왔다.


“그냥, 힘들어서 그래.”


“무슨 일인데? 애인이 헤어지재?”


“애인도 없는 데 뭘 헤어져.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손사래를 치자 박시연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달라붙는다.


“이 언니한테 말해보렴. 내가 남자 휘어잡는 법을 잘 아는데.”


“허이고, 그러셔요? 그런 분께서 아직까지 시집도 못가시고······.”


말을 잇던 단청은 박시연이 도끼눈을 뜨며 주먹을 움켜쥐자, 손바닥으로 급히 입을 막았다.


“너 노처녀 히스테리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장난이야. 장난!”


단청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자, 박시연이 슬쩍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자, 이 언니한테 말해봐봐. 저기 애들 중에 어떤 녀석이 마음에 들어?”


박시연이 그녀 뒤쪽을 흘깃 바라본다. 단청은 슬쩍 고개를 돌리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갓 인턴이나 레지던트로 보이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다. 개중에는 제법 반반하게 생긴 녀석도 있었는데, 이쪽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됐어요. 아줌마. 쟤들이 우릴 여자로 보기나 해?”


“어머나. 너는 아줌마로 보겠지. 난 아리따운 처녀로 볼 테고 말이야. 왜 안 믿겨? 이 언니가 가서 대시 좀 해볼까?”


“난 올라갈래. 한두 시간 잠이나 자야겠어.”


단청은 커피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수다나 떨고 있느니, 남은 시간 잠이나 자는 게 나을 것 같다.


“살펴가. 난 좀 있다 올라갈게.”


박시연이 커피를 홀짝이며 단청을 배웅한다.


“왜? 안 올라가?”


“저기 저 풋풋한 철부지들 조금만 더 감상하고. 혹시 알아? 쪽지라도 건넬지.”


“하이고, 염치도 없어. 어디 아들 뻘 같은 애들을······.”


단청은 말을 잇다 박시연이 주먹을 움켜쥐자, 부리나케 카페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오후 17시 30분]


원래는 숙소로 올라가 잠을 자려 했는데, 걷다보니 잠이 달아나버렸다. 단청은 병동 한쪽에 마련된 실내 정원을 거닐었다. 향긋한 꽃망울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들, 절로 심신이 맑아진다. 정원을 둘러싼 유리 벽 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요즘 계속 비가 내리는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비가 반갑고 푸근하다.


‘타닥타닥’거리며 유리창을 퉁기는 빗방울 소리, 단청은 창밖을 응시하다 슬쩍 인상을 긁었다.


‘내가 그렇게 늙었나?’


반투명 유리창에 어슴푸레하게 몸매가 비친다. 소위 요즘 걸 그룹처럼 빠방한 몸매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밀리지는 않을 몸매라 여겨왔다. 게다가 얼굴도 이만하면 평균 이상이 아닌가. 학창시절, 그리고 레지던트 시절에 이성에게 좋아한다는 쪽지도 제법 받았다. 솔직히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내 얼굴이 어때서? 이만하면 연예인 급은 아니래도······.’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머리칼을 쓸어내리던 단청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소녀다. 한수련. 단청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다시 유리창을 통해 뒤쪽을 살폈지만, 역시 사람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분명히 유리창에 반사된 소녀의 모습을 봤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단청은 황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8월 7일, 오전 10시 05분, 서울, 한국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월요일 오전이다. 단청은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수술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동안의 검사를 종합해 볼 때, 환자의 상태는 폐암 2기에 해당한다. 암세포가 우폐 중엽에 위치해 있었으며 병변의 직경은 약 2.5센티였다. 수술 전 환자에게 진행될 수술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미리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환자는 이미 침대에 누워있다. 파란 수술 모자를 눌러 쓴 환자, 얼굴에는 커다란 마스크를 두르고 있다. 병동 간호사가 다가와 환자의 손목을 잡고 인식표(認識票: 수술 받을 환자의 인적사항과 혈액형이 적힌 플라스틱 재질의 팔찌)를 확인한다.



병동 간호사로부터 환자가 인계되자, 대기하고 있던 수술실 간호사가 침대의 제동장치를 풀어 복도 쪽으로 끌어당긴다. 단청은 슬그머니 다가가 자신이 수술해야 할 환자의 상태를 살폈다. 자그마한 체구, 까만 구슬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천정에 고정되어 있다.


하얀 피부가 유독 인상적인 14세의 소녀, 한수련. 수술실로 들어서기 전 환자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 어른도 그럴 진데, 아이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수술대기실에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으니, 아이는 침대에 누워 거의 1시간동안 홀로 공포와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소녀는 달랐다. 공포, 슬픔, 아니 다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문득 소녀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맑고 영롱하지만 유리알처럼 감정이 없는 눈. 단청은 숨이 턱 막혀 버렸다.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되기 20분 전, 단청은 다시금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한수련의 몸 상태에 대한 자료가 한 다발이다. 환자가 수술대에 눕기까지 병원 위원회의 공이 컸다. 돈이 없다며 때를 쓰는 보호자를 설득해서 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것도 일이지만, 전반적으로 김무영 과장이 없었다면, 한수련은 수술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무영 과장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후우.’


단청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수술 전에 이루어진, 예를 들어 심장 초음파 검사(echocardiography)에서 환자의 심장상태는 수술 받기에 무리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흉부CT에서는 종양의 위치와 크기, 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 PET-CT에서는 종양의 성질과 전이 여부(폐암은 간과 뇌, 뼈로 전이가 특히 잘됨)를 확인했으며, 두경부 MRI 검사(PET 검사에서 잘 확인 안 되는 뇌 전이를 파악)에서도 이상 없었다.


의사가 확인하고 또 확인할수록 환자한테는 유리하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단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이 시작됐다. 환자는 정맥 및 머리 부분에 심전도, 뇌파도등 각종 장치를 착용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연상케 한다. 환자, 유독 눈빛이 맑았던 소녀는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다. 수술 전 처치(premedication: 마취를 걸기 전 투여하는 약재로, 기관 마취시의 분비물을 줄이는 역할을 함. 이 약재를 맞으면 침도 잘 나오지 않아 갈증을 느끼게 된다)가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후드 삽입 마스크를 통해 흡입식 전신마취제가 뿜어지고, 손목을 통해 정맥마취제도 주사된다.


지속적으로 소녀의 몸 상태를 파악하던 마취의는 에테르 스크린(Ether screen: 마취의와 수술진 사이에 치는 스크린) 너머로 신호를 보낸다. 마취가 시작되고 있다는 메시지다. 조용한 수술실 내부, 수술용 도구가 달그락 거리는 소음만 간헐적으로 들린다. 곧 소녀의 커다란 눈이 천천히 감겨든다.


“준비는?”


일순 수술실 문이 벌컥 열리며, 수술복장을 갖춘 김무영 과장이 들어선다.


“마취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내가 빨리 왔군.”


김무영은 어깨와 팔을 휙휙 저어 보더니, 수술대 쪽으로 다가온다. 순환간호사(Sirculating Nurse: 수술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수술실 내부를 돌아다니며 멸균 영역 밖에서 수술 팀을 돕는다)에게 수술 시작 사인을 보낸 김무영 과장은 고개를 돌려 환자 쪽을 살폈다.


“시작하지.”


수술은 환자의 겨드랑이 쪽에 3~4개의 구멍을 뚫는 흉강경 수술로 진행된다. 이번에는 김무영이 직접 나섰다. 아무래도 환자가 너무 어리고, 교통사고 당한 것을 염두에 둔 조치로 여겨진다. 사실,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환자의 상태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상적이었다. 며칠 전에 흉부 X레이 검사에서 갈비뼈 3대에 금이 갔다는 소견을 들었다. 헌데, 지금은 멀쩡하지 않은가. 뼈가 수일 만에 다시 붙었을 리도 없고, 결국 오진일 것이다.


“뭐해? 석션(suction) 안하고?”


생각에 잠겨 있던 단청은 김무영의 불호령에 화들짝 놀랐다. 단청은 급히 석션기를 환부로 가져가 흐르는 핏물을 청소했다. 겨드랑이 선을 따라 천공을 끝낸 김무영이 흉강경 토르카를 든 채 눈살을 찌푸린다.


“수술에 집중하자고.”


“죄송합니다.”


단청은 등골을 훑고 지나치는 긴장감에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김무영이 이마에 매단 수술용 루페(lupe: 확대경)를 툭하고 팔등으로 처 올린다.


“환자의 현재 상태는 어떻다고 보나?”


질문이 이어진다. 흔히 수술실에서 노련한 전문의들이 전임의나 레지던트를 긴장시킬 때 하는 행동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너무 경직돼 있을 때도 긴장을 풀기위해 대화를 하기도 한다.


“현재 폐암 2기로 2.5센티의 암을 제거하면 됩니다. 암의 위치는 우폐 중엽입니다.”


“맞아. 기관지에 가까워서 까다로울 수 있는데, 여차하면 우폐의 중엽과 하엽을 제거해야 할 수도 있어.”


말을 하면서도 김무영의 손놀림은 느려지지 않는다. 단청은 김무영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폐는 오른 쪽, 왼쪽 한 쌍이다. 오른쪽을 우폐, 왼쪽을 좌폐라 부르는데, 우폐는 상엽, 중엽, 하엽으로 나뉘고, 좌폐는 상엽과 하엽으로 나뉜다. 우폐가 전체 용적의 55%를 차지하고, 좌폐는 45%의 용적을 차지한다.


“이게 뭐지?”


흉강경 비디오 모니터를 살피던 김무영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중엽에서 발견된 병변을 쐐기 절제술로 제거하는 도중, 문제가 생겼다. 단청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흰색 병변이 폐 전체에 퍼져 있다. 더불어 림프절이 딱딱하게 굳어 혈관과 달라붙어 버렸다. 김무영은 겸자를 움직여 림프절 쪽을 조심스레 살폈다.


“기관지 쪽도 퍼졌군.”


그가 혀를 끌끌 찬다. 폐와 기관지 쪽에도 병변이 보였기 때문이다. 환자의 CT 사진과 검사 자료를 살피던 김무영이 눈살을 찌푸린다.


“이거 검사 확실히 한 거야? 이정도면 PET 소견하고도 안 맞잖아.”


“확실합니다. 제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단청은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환자 상태는 2기가 아니라 기수로 치면 말기였다.


“이해 할 수가 없군. 일단 조직검사부터 하지.”


김무영은 흉강경을 움직여 폐 조직 일부와 폐엽과 폐엽 사이의 림프절 일부를 잘라내 환자 몸 밖으로 빼내었다. 조직을 받아든 간호사가 밀폐 용기에 담아 수술실 바로 옆 조직검사실로 향한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약간 시간이 걸린다. 단청은 멍하니 압축 심폐기를 응시했다.


‘쉭, 쉭’ 소리를 내며 환자의 폐를 대신하는 기계(수술 받는 폐의 호흡을 멈추고 반대편 폐만 숨 쉬게 하는 장치)의 소음만이 수술실 내부를 울려든다. 긴장된 순간이 흐르고,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온다.


“동결절편 조직검사 결과입니다. 환자 우폐 중엽, 하엽, 기관지 림프절 단면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조직검사실에서 마이크를 통해 환자의 검사를 보고한다. 김무영은 입맛이 쓰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다시 흉강경 모니터를 응시했다.


“암 세포가 폐 전체에 퍼졌어. 어찌해야 하나?”


“이 환자의 경우 우폐 전체를 잘라내면······.”


말을 잇던 단청은 입술을 와락 깨물었다. 자신이 한말이 무슨 뜻인지, 말을 하던 중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흉부외과에서 가장 위험한 수술이 폐 하나를 전부 들어내는 수술이다. 사망률이 거의 20%에 이르는 위험한 수술임과 동시에 향후 5년 생존율 역시 매우 낮은 수술이다. 이쯤 되면 방사선치료와 항암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그건 말기 폐암 환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다.


그 많은 검사가 전부 잘못됐다거나, 아니면 수일 만에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뜻인데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수일 만에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폐 전체를 잘라내려면 개흉술(살을 절개하는 수술)로 전환해야 하는데, 환자의 몸 상태로 볼 때 무리하다고 생각되는군.”


“동의합니다.”


단청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무영은 다시 흉강경을 움직였다.


“병변이 폐 전체로 퍼졌으니,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해서 일단 암 세포를 줄여보자고. 최대한 줄여본 연후에 다시 수술을 해서 폐를 최대한 살려내야지.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야.”


“알겠습니다.”


단청은 입술을 곱씹었다. 분명히, 환자의 상태는 2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며칠 만에 말기라는 결과가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환자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거듭 확인했다. 또한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 모든 수술 과정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되새겼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단청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마에서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손에 쥔 수술 도구들도 거칠게 떨려든다. 입술을 곱씹었는데도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네가 지금 할 일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액관을 연결하고 빨리 수술을 끝내는 일이야.”


“죄송합니다.”


김무영이 다시 주의를 준다. 단청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수술을 마무리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오후 12시 40분]


단청은 멍하니 직원 식당에 앉아 있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겨우 국에 말아 한 술 떴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니 환한 햇살이 비춘다.


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그동안 뭘 해왔던가? 스스로 너무도 나약하게 느껴진다. 단청은 눈을 감은 채 가슴을 부여잡았다. 왠지 모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을 헤집어 놓는다. 참을 수 없는 실망감이다.


“밥 안 먹고 뭐해?”


김무영 과장의 목소리다. 단청은 깜짝 놀라 눈을 치떴다. 맞은편 식탁에 김무영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는 수저를 들고 국을 떠먹기 시작했다. 단청은 그 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지금 보니 김무영 과장도 많이 늙어보였다. 50대 초반의 흉부외과 전문의, 레지던트와 다른 전문의들에게 김무영은 언제나 껄끄럽고 어려운 상대였다.


“왜? 아까 수술 때문에 그러나?”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올리던 김무영이 한소리 한다. 단청은 자신도 모르게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제가 부족해 보여서요.”


“부족한 거 없어. 펠로우 시절에는 다 그래.”


김무영은 연신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평소에는 근엄하고 어려워 보였는데, 밥 먹는 모습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제가 실력으로 과장님을 따라 잡으려면 100년은 걸리겠죠?”


“아마 더 걸릴 거야.”


김무영의 대답에 단청은 입을 삐죽였다.


“솔직히 100년은 농담이구요. 넉넉하게 20년?”


김무영이 수저를 들다 말고 눈살을 찌푸린다. 단청은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세게 나가기로 했다.


“15년이라고 하시면 화내실 건가요?”


“자네가 날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야.”


김무영은 수저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스스로 몸 관리를 하지 않는 것. 자기 몸 건강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이, 지금 다른 사람을 치료하겠다는 건가?”


“······.”


그가 턱짓으로 앞에 놓인 식판을 가리킨다.


“어서 수저 들어. 병동에 늦게 올라와도 좋으니까 밥 다 먹고. 할 수 있지?”


김무영의 잔잔한 음성에 단청은 수저를 들고 밥을 떴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물. 단청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지로 밥알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소리 없이, 그렇지만 격하게 어깨를 떠는 그녀를 바라보며, 김무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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