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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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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6.04.16 23:31
최근연재일 :
2017.03.19 01:53
연재수 :
1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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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36
추천수 :
528
글자수 :
687,446

작성
16.04.2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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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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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침 -5

DUMMY

주로 외래 이용고객들이나 보호자, 간병인, 방문객들은 내빈식당을 이용한다. 반면, 의사들은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종합병원 특성상 교대근무가 많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높으신 분들은 밖에서 따로 해결하겠지만, 오늘은 그게 아닌가보다. 병원 운영위원회를 맡고 있는 단효광이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단청은 멀뚱히 앉아 있는 단효광에게 다가갔다.


“아직 주문 전인가요?”


그녀가 맞은편에 앉자, 단효광은 살며시 미소를 지어준다.


“아직 전이지. 너 기다리느라고.”


“작은 아빠도 참, 그런데 지금 바쁜 거 아니에요?”


“그러잖아도 식사 끝나면 할 일이 많아. 연구동 개보수 작업 때문에 정신없어.”


말을 이으며 단효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단청은 뒤를 따랐다. 직원 식당은 뷔페 형식으로 식사를 한다. 각자 먹을 만큼의 음식을 식판에 담아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 된다. 일부 레지던트들과 간호사들이 단효광을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한다.


“집에는 갔다 왔어?”


묵묵히 반찬을 식판에 옮겨 담던 단효광이 뒤를 돌아다본다.


“뭐, 갈일이 있나요?”


단청은 불고기에서 파를 골라내다가 결국 뷔페집게를 내려놓았다.


“아직도 편식 하냐?”


단효광은 헤집어놓은 불고기를 보다가 혀를 끌끌 찬다.


“변할 게 있나요, 어디.”


“그건 그렇고 저번 주가 어머니 제사였는데, 얼굴이라도 비치지 그랬냐.”


계란말이를 집어 들던 단청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뷔페집게를 내려놓았다. 계란말이 이곳저곳에 파가 송송 박혀있다.


“제가 가서 뭐해요. 아버지 혼자 알아서 하실 텐데.”


단효광은 식판을 든 채 말없이 한편 식탁으로 향한다. 단청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다 뒤를 따랐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그녀는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져버렸다. 식판에 있던 밥을 다 먹을 즈음, 단효광이 침묵을 깬다.


“아직도 아버지를 원망하니?”


“원망하지 않아요. 단지 보고 싶지 않을 뿐이죠.”


“그래서 운영위원을 하지 않겠다는 거냐? 혜택이 많은 자리야. 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도 널렸고.”


작은 아빠의 말에 단청은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 사람들보고 실컷 하라고 하세요.”


“네 아버지는 병원장이야. 다른 사람 시키고 싶어 하겠니? 니가 아버지를 도와야지.”


“작은아빠는 관리이사시잖아요. 아버지께는 작은아빠만으로 충분해요. 그리고 이렇게 운영위원을 뽑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낙하산 인사 따위 전 관심 없다고요.”


단청의 대답에 단효광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단현은 이 병원 원장이다. 또한 우리나라 뇌신경 연구에 한 획을 그은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이기도 하다. 반면, 작은 아빠는 의사보다는 경영자에 가까웠다.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총책임자가 작은아빠였으니, 그녀 하나쯤 병원 운영위에 꽂는 일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울게다.


“난 네가 병원장의 딸이라서 혜택을 주는 게 아니야. 니가 의술보다는 경영이나 지원에 더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지.”


“하하하, 제 어딜 봐서요?”


단청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자, 단효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만다.


“아무튼 펠로우 생활 끝나면 운영위에 들어오도록 해. 전문의면 운영위에 들어올 자격은 충분해.”


“싫어요.”

“고집 센 거는 아주 똑 닮았어. 너희 엄마하고.”


단효광이 푸념을 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식사를 대충 끝낸 단청은 혀를 빼꼼 내밀었다.


“전 이만 가봐야 되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단청은 작은 아빠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오후에 수술이 2건이나 잡혀 있는데, 이번에 또 늦으면 김무영 과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다. 식판에 남은 잔반을 처리하고 있는데, 곁으로 다가온 작은 아빠가 잔반을 쳐다보며 한소리 해댄다.


“파 골라내는 것도 아주 똑같아, 쯧쯧.”



[오후 23시 10분]


차를 몰고 병원 주차장을 나섰다. 거의 2일 만에 집에 가는 길이다. 쉴 새 없이 지나치는 차량들,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끔 궁금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단청은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손으로 눈을 비볐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룸미러에 얼굴을 들이대고 살피니 흰자위가 새빨갛다.


오염으로 감염이 되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다. 눈이 뻑뻑해서 맞은편에 서 있는 차량의 전조등을 쳐다볼 수가 없다. 흐릿한 잔영이 주위를 아른거린다. 2일전부터 그랬는데, 조금씩 심해지는 것도 같다. 좀 쉬나보면 나아질 테지만, 계속 그러면 안과에 들려볼 생각이다.



집에 돌아오니 중국집 전단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시켜먹지도 않을 건데, 왜 이렇게 전단지를 돌려대는지 모르겠다. 조막만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월세 집, 아버지께 손을 벌리면 커다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가 뚝하고 떨어지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어두운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단청은 싱크대 안에 넣어둔 고양이 사료를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 창고 앞에 놓아둔 고양이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있다. 수시로 밥을 주고는 싶은데, 늘 바쁘다보니 형편이 안 된다. 그래도 어딘가에 숨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면 괜스레 뿌듯하다.


“나비야. 맘마 먹자.”


골목길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창고 한편을 밝히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찾으려고 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녀석, 그렇지만 놈은 분명 이 근처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단청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홀로 살아가는 녀석. 고고하고 숭고하다.


‘야옹.’


녀석이 나타났다. 검은 고양이, 얼핏 그 윤곽이 잡혔지만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단청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여기 맘마 있다. 이리와.”


언제나처럼 녀석은 답이 없다. 그래도 이대로 두면 녀석은 알아서 사료를 챙겨 먹을 게다. 제법 오랫동안 먹이를 줘 왔지만, 녀석은 단 한 번도 이쪽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 사람을 무서워하는 길고양이. 적어도 녀석은 나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위험은 없다. 그렇기에 단청은 녀석과 친해지지 않았다. 사람과 친해지면 녀석만 괴로워질 테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녀석은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다시 이 자리에 와 있다.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외감과 동시에 부러움이 느껴진다.


단청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지나간다. 구름 뒤편에는 별들도 보인다. 그래, 오늘도 하루를 살았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단청은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찬 기운이 흐르는 방으로 들어갔다.



[8월 3일, 오전 08시 10분, 서울, 한국대학교, 의과대학병원]


오늘따라 병원 입구가 어수선하다. 아침부터 경찰들이 들이닥쳐 원무과 간호사들과 함께 서류를 뒤적이고 있다. 사실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폭력시비나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누군가는 늘 다치기 마련이니까.


“무슨 일이에요?”


단청이 간호스테이션으로 다가가 넌지시 묻자, 간호조무사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그 며칠 전에 무연고 환자 있잖아요. 그 환자 보호자를 찾았대요.”


“며칠 전이라면, 삼일 전 응급실에 실려 왔던 그 아이요?”


단청은 아이를 기억해냈다. 당시 응급실 당직이 그녀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새벽 1시, 철제 이동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응급실 안으로 들어왔었다. 환자는 10대 중반의 여자아이,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가 유독 인상적인 소녀였다. 구급대원의 설명에 따르면, 소녀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걸, 지나가던 사람이 신고했는데 새벽시간대라 차가 없어서 2차 사고를 면한 것이 기적이란 말도 덧붙였다. 다른 의사들이 그녀를 치료했는데, 단청은 먼저 온 환자들을 돌보느라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일단 응급 치료는 했는데,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요.”


원무과 쪽에 있던 수간호사의 말에 단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수간호사가 단청에게 서류를 보여준다.


[행려환자 인적사항, 성명: 불명, 주소: 불상, 십지지문 자료 감정결과 동일지문 발견 안 됨]


“지문이야 미성년자니 아직 등록이 안됐을 테지만, 이름과 주소도 모른다는 건 좀······.”


단청의 물음에 수간호사가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짚는다.


“그 아이, 지갑이나 핸드폰 등 신원을 알아낼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어요. 오늘 새벽에 깨어나 이름을 말해줘서, 겨우 보호자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런데요?”


“그 아이 엄마한테는 연락이 닿지 않고, 이모던가? 아무튼 그 분께만 연락이 됐다던데요?”


수간호사의 설명을 듣던 단청은 고개를 돌려 원무과 쪽을 다시 살폈다. 경찰들과 간호사들이 어떤 아줌마를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주머니는 병원 간호사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는데, 치료비 관한 대화로 여겨졌다.


“그게 문제가 아니죠.”


녹색 진료 복을 입은 레지던트가 다가오더니 대화에 낀다. 젊은 레지던트는 간호 스테이션에서 무언가를 적으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한테서 암이 발견됐어요.”


“암이라고요? 아이에게?”


단청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레지던트를 바라봤다. 레지던트는 목에 걸고 있던 청진기를 스테이션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토했다.


“사실, 제가 아이를 진료했는데 흉부 X-레이검사 결과, 폐에서 제법 큰 종양이 발견됐어요. 갈비뼈 3개도 같이 금이 간 걸 확인했는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나요?”


단청의 물음에 레지던트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가 보이는 데, 좀 더 정확한 소견을 얻으려면 CT를 찍어야 합니다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죠.”


그녀는 레지던트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이른바 ‘무연고 환자’들을 일선병원에서는 소극적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치료비를 제대로 받을 수 없거니와, 보호자 동의 없이 수술을 했다가 자칫 의료 책임이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의료진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 응급의료법상 환자가 치료비를 낼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이를 대신 지불하는 ‘응급의료기금’이 있지만, 활용도는 매우 낮았다.



기금 신청 절차가 매우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무연고 환자들에게 적극적인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졌을 경우, 의료진에게 면책을 주는 면책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일단 골치 아픈 환자는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태도가 만연해 있었다. 여러 가지 미흡한 제도적 장치도 문제겠지만, 보호자 동의, 수납을 먼저 요구하는 병원들의 의료관행도 심각한 허점이었다.


“아직은 모르죠. X레이 촬영만으로 암을 진단하긴 힘들고, 또 예전에 결핵이나 다른 질병을 앓았던 흔적일 수도 있지만······.”


레지던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단청은 간호사들과 원무과 안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X레이 촬영 결과만으로 암이 의심되고 정말 암이 맞는다면, 이는 말기에 해당한다. 폐암 환자의 70%가 말기인 점, 이는 물론 PET-CT 검사와 뼈스캔 검사, 뇌 MRI, 조직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해봐야 확실한 진단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 걸리는 것은 환자의 나이다. 14살 소녀에게 폐암이라니, 흔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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