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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 님의 서재입니다.

악의 사용법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윤조
작품등록일 :
2018.04.09 13:57
최근연재일 :
2018.08.01 13:03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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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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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9,724

작성
18.07.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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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61. 갑질이 부른 비극 (8) 한恨

DUMMY

8회. 한(恨)


한강변에 위치한 A아파트. 창밖으로 펼쳐진 열기 가득한 여름 야경과는 달리 미영의 침실은 알래스카의 이글루를 방불케했다. 명도 낮은 파란색 시트에 각각 따로 덮은 새하얀 홑이불이 썰렁한 분위기를 배가 시켰다. 그 분위기에 걸맞게 부부는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남편의 행태를 따라하고는 있지만, 건초에 불이 붙듯 속은 미친 듯 타들어 가는 미영의 행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찬 기운이 팍팍 도는 남편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등에 닿을 것 같은 위치에서도 또 다시 멈추고 주저하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 당신··· 설마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죠?”


하지만 도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음조각 같은 남편의 반응에 미영은 급기야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푸라기를 잡듯 도영의 잠옷 한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 나 정말··· 정말 아무 짓도 안했다고요.”

그제야 도영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엔 포기와 혐오, 그리고 자책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울먹이는 아내를 안아줬다.

“ 그래······”

미영의 어깨가 한껏 더 떨렸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점점 남편의 품으로 파고들자, 도영의 얼굴엔 점점 더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아침 일찍 출근한 미영은 신경이 곤두서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사무실을 서성였다. 어젯밤 남편의 태도는 분명 부채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미영은 아닌 척 남편의 품에서 웃었지만 마음은 얼음장 같던 처음의 그 분위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하필이면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현주가 들어왔다. 미영은 18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썹을 확 찡그렸다. 어제부터 쌓인 스트레스가 눈앞에 덤불 쌓이듯 가시화되는 느낌이었다. 미영은 현주가 입은 옷차림에서부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바닥을 살짝 끌며 의자를 빼는 소리에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미영이 현주의 옷차림부터 트집을 잡으려 각을 세웠을 때, 현주의 책상 전화벨이 울렸다.

“ 네, 대계기업 전략팀 이현주입니다.”

전화를 받으며 점점 확장된 현주의 눈동자가 미영을 향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미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 저······ 경찰서에서 잠시 참고인 조사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미영의 책상 앞에 선 현주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주뼛거리며 서 있었다. 그에 반해 미영은 처음으로 현주 앞에서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선보였다.

“ 너, 너한테?! 아, 아니, 이현주씨한테?”

미영은 그새 사원들이 사무실을 채웠다는 사실을 잊은 채 큰 소리로 말했다가, 사람들이 쳐다보자 다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 왜··· 왜 오라는 거지?”

현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영의 미간이 세상 넓은 줄 모르고, 평수를 좁혀갔다. 그러다 한껏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현주를 슬쩍 쳐다봤다. 미영은 순식간에 모드 변경에 돌입했다.


“ 현주씨, 내가 지금껏 특별히 현주씨 트레이닝 시킨 거 알고 있지?”

세상에 다시없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불려 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현주는 황망해 눈을 껌뻑거렸다. 그 반응을 보던 미영은 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변경된 모드에 충실히 임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살짝 일어서 현주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소근거렸다.

“ 현주씨처럼 유능한 사원을 언제까지 평사원만 시킬 건 아니니까. 내 맘 알지?”

현주는 갑작스런 다정함에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 네······ 고맙습니다.”

그녀의 반응에 만족한 듯 미영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내비쳤다. 그녀의 눈은 재빨리 현주의 눈을 응시했다.

“ 내가 항상 눈 여겨 보고 있다는 거 잊지 마. 알겠지?”


현주는 황송한 듯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미영의 얼굴에 잠시 잠깐 싸한 조롱이 어렸다가 곧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얹혔다.


경찰청 4층에 위치한 TF팀 취조실. 상민과 현주가 마주 앉아 있다. 하지만 현주의 눈빛은 탐사하듯 천천히 취조실 내부를 유영했다. 상민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원하는 만큼 곳곳을 모두 훑고 관찰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 이렇게 생겨먹었군요. 취조실이란 곳이···”

“ 평소에 관심 많았나 봐요? CSI 마니아?”


상민의 질문에 한동안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현주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 설마요. 언니가 죽었을 때 와 보고 싶었던 곳이라 그렇죠.”

의외의 말에 다소 놀란 상민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상대의 기분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녀는 자기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 제가, 이현아 동생인 거 알고 부르신 거 아니에요?”

이미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상민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 진술을 이어나간 것이다.

“ 뭘 그렇게 놀라세요. 박미영 팀장님 조사 중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언니 얘긴 나올 것 같아서요.”


“ 저 여자 수상한데?”

취조실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규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영도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마디 보탰다.

“ 어제도 묘했어요.”

“ 뭐가?”

유리 너머만 응시하던 규혁의 시선이 곁에 선 지영에게 향했다.

“ 박미영씨랑 얘기 도중에 눈이 마주쳤는데, 분노를 억누르는 게 보이더라고요. 진짜 이현아씨의 죽음에 박미영이 연관된 건 아닐까요?”


경찰청 건물 입구로 베이지 색 면바지와 새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계단을 걸어 올라가 4층 TF팀 사무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지만,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들어갈까 고민하던 그는 문 밖에 서서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후 휴대전화 속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검시관님.”

“ 왔는데, 아무도 안 계셔서요. 네? 취조실이요?”


규칙적인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리자, 규혁과 지영, 해준은 모두 입구를 쳐다봤다. 해준이 벌떡 일어서 문을 열자, 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돌았지만, 곧 서로 눈인사를 했다. 그때, 유리 너머로 자극적인 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유리 너머로 넘어갔다.


“ 진작······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 무슨 말이죠?”

“ 언니가, 죽었을 때, 백 번도, 더, 말해거든요. 당신들한테.”

상민의 의아한 표정이 무색해질 만큼,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를 꼭꼭 씹어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녀의 태도에 상민은 다소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우리 언니는, 자살한 게 아니라고. 언니는, 살해당한 거라고······”

고압적으로만 느껴지던 그녀의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의 눈빛은 어느새 슬픔과 억울함,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목소리에선 더 많은 분노가 표출됐다.

“ 언니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고!”


결국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되었다. 상민은 안타까운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현주는 고개를 들어 상민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곧 내면에 겹겹이 쌓아 두었던 한을 터뜨렸다.

“ 근데, 당신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았어. 내가 내민 증거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지. 당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작가의말

아직도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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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갑질이 부른 비극 (8) 한恨 18.07.28 274 3 8쪽
61 60. 갑질이 부른 비극 (7) 새로운 인물 +1 18.07.25 293 3 8쪽
60 59. 갑질이 부른 비극 (6) 미지의 세계 +2 18.07.14 379 3 8쪽
59 58. 갑질이 부른 비극 (5) 후안무치 18.07.11 396 4 8쪽
58 57. 갑질이 부른 비극 (4) 마녀라 불린 여자 +2 18.07.07 368 5 8쪽
57 56. 갑질이 부른 비극 (3) 표리부동 18.07.04 313 5 8쪽
56 55. 갑질이 부른 비극 (2) 타살의 정황 18.06.30 319 5 7쪽
55 54. 갑질이 부른 비극 (1) 뜻밖의 자살 18.06.27 364 5 9쪽
54 5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8) 진실 +2 18.06.23 411 4 9쪽
53 5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7) 신출귀몰 +4 18.06.20 398 6 8쪽
52 5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6) 살의의 원인 18.06.16 390 6 8쪽
51 5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5) 격투 18.06.13 347 5 8쪽
50 4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4) 두 남자 +2 18.06.09 436 6 7쪽
49 48.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3) 제 3의 인물 +2 18.06.06 412 5 8쪽
48 4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2) 막장 드라마 +4 18.06.02 376 6 7쪽
47 4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1) 체포 +2 18.05.30 405 6 8쪽
46 45.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0) 불길한 예감 +2 18.05.26 404 6 8쪽
45 44.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9) 그 놈 +4 18.05.23 440 7 7쪽
44 4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8) 지키는 자 vs 지켜보는 자 +4 18.05.19 522 6 8쪽
43 4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7) 타로카드 +4 18.05.18 490 9 8쪽
42 4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6) 그 여자, 연희 +2 18.05.17 449 9 9쪽
41 4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5) 스페이드 무늬 +2 18.05.16 488 8 8쪽
40 3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4) 그 여자 18.05.15 467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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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2) 미워도 다시 한 번 18.05.13 478 7 8쪽
37 3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 만남 +2 18.05.12 487 7 8쪽
36 35. 천사의 수술 (35) 안개 +2 18.05.11 475 7 10쪽
35 34. 천사의 수술 (34) 무혐의 +2 18.05.10 463 7 8쪽
34 33. 천사의 수술 (33) 무너지는 정황 +4 18.05.09 476 8 9쪽
33 32. 천사의 수술 (32) 퀵배송 +2 18.05.08 479 7 7쪽
32 31. 천사의 수술 (31) 휘경과 진우 +2 18.05.07 523 8 8쪽
31 30. 천사의 수술 (30) 짙은 혐의 +2 18.05.06 487 7 9쪽
30 29. 천사의 수술 (29) 공범 18.05.05 515 8 8쪽
29 28. 천사의 수술 (28) 형사의 감 +2 18.05.04 500 8 8쪽
28 27. 천사의 수술 (27) 서글픈 인생 18.05.03 476 8 8쪽
27 26. 천사의 수술 (26) 목격자 18.05.02 488 9 9쪽
26 25. 천사의 수술 (25) 인터뷰 요청 +2 18.05.01 525 9 9쪽
25 24. 천사의 수술 (24) 후회 +2 18.04.30 523 7 7쪽
24 23. 천사의 수술 (23) 용의자 18.04.29 473 7 8쪽
23 22. 천사의 수술 (22) 비명소리 18.04.28 499 10 8쪽
22 21. 천사의 수술 (21) 귀신이 곡할 노릇 +4 18.04.27 529 10 8쪽
21 20. 천사의 수술 (20) 복수 18.04.26 495 10 8쪽
20 19. 천사의 수술 (19) 진짜 타깃 +2 18.04.25 535 10 8쪽
19 18. 천사의 수술 (18) 호랑이 굴 +2 18.04.24 549 10 8쪽
18 17. 천사의 수술 (17) 아브락사스 +2 18.04.23 556 11 8쪽
17 16. 천사의 수술 (16) 진실 +2 18.04.22 545 10 9쪽
16 15. 천사의 수술 (15) 범행장소 +2 18.04.21 539 10 8쪽
15 14. 천사의 수술 (14) 열혈기자 김혜란 +6 18.04.20 632 11 10쪽
14 13. 천사의 수술 (13) 치유모임 +4 18.04.19 605 10 8쪽
13 12. 천사의 수술 (12) 댓글 여론 +4 18.04.18 559 9 9쪽
12 11. 천사의 수술 (11) 한강변의 사체 +2 18.04.17 557 9 8쪽
11 10. 천사의 수술 (10) 아픈 과거, 영지 +2 18.04.16 567 9 9쪽
10 9. 천사의 수술 (9) 불길한 예감 +4 18.04.15 561 10 8쪽
9 8. 천사의 수술 (8) 조롱 II +2 18.04.14 565 13 8쪽
8 7. 천사의 수술 (7) 조롱 I +2 18.04.13 562 11 9쪽
7 6. 천사의 수술 (6) 언론 플레이 +2 18.04.12 592 12 9쪽
6 5. 천사의 수술 (5) 인성 +2 18.04.11 641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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