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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 님의 서재입니다.

악의 사용법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윤조
작품등록일 :
2018.04.09 13:57
최근연재일 :
2018.08.01 13:03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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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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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글자수 :
219,724

작성
18.04.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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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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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7. 천사의 수술 (17) 아브락사스

DUMMY

17. 아브락사스


빠른 걸음으로 검시소 건물로 향하던 규혁은 야외 휴게소에서 서성이는 휘경을 발견하고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와의 거리가 좁아졌을 때, 규혁은 휘경이 통화 중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규혁의 귀에 다소 격양된 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최근 이 냉미남의 색다른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띠링띠링 소리를 내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하니 지영이었다.

‘ 팀장님, 배주형 주변 인물 탐문 수사 끝났습니다. 잠시 관할 지역 경찰서 들렀다가 사무실로 들어가겠습니다.’

규혁은 답장을 하려다 그만두고, 통화기록에서 지영의 번호를 찾았다. 그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에 댔을 때, 휘경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규혁은 당황해 전화를 끊었다. 휘경도 황망한 눈빛으로 전화 속 상대에게 뭐라 중얼거리더니 얼른 전화를 끊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눈에서 물기를 없앤 휘경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규혁에게 인사를 했다.

“ 오셨어요? 근데 연락도 없이······”

약간은 나무라는 말투였으나, 규혁은 모른척했다.

“ 미안합니다. 오다가 전화한다는 걸 깜빡했어요. 혹시, 방해된 건 아니죠?”

휘경은 곧 예의 그 정형화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그럴 리가요.”


“신원파악은 현장에서 바로 됐다고 들었는데요?”

차갑고 음습한 검시소 복도를 지나며 휘경이 규혁에게 물었다.

“ 맞아요. 피해자 예상 리스트 중에 있었으니까.”

“ 리스트요?”

“ 피해자들 모두 1년 사이에 출소한 소아성애전과자와 3년 이내 일어났던 미해결 사건 용의자였잖아요. 그 사람들 중심으로 리스트 작성해뒀거든요. 이기완은··· 예외였지만.”

규혁은 이기완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느꼈던 모멸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완은 조롱을 위한 케이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아, 지난 번 그 피해자요? 무기력해 보이던?”

휘경이 사무실 문을 열어주며 묻자, 규혁은 뒤따라 들어가며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 근데 그 사람은 왜 살려둔 건지 모르겠어요. 따지자면 이기완도 그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죄를 저질렀는데···”

“ 폭주하기 전 이었나보죠.”

휘경이 규혁에게 의자를 내어주며 말했다.

“ 폭주? 원인이 뭔데요?”


규혁이 물었다. 사실 휘경의 감은 맞을 때가 많았다. 비단 이번 사건 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늘 자신의 말에 무게감을 두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그가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가 수사에 도움이 되곤 했었다는 걸 규혁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이번에도 휘경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화제를 돌렸다. 담당형사가 검시관을 찾아오는 이유야 빤하지 않은가.

“ 아, 피해자 시신에서 마취제 종류의 약물이 검출 됐나 해서요. 사인도 별 다른 게 없는지 궁금하고요.”

휘경은 책상으로 가 배주형의 사법해부 결과가 적힌 서류를 집어 들었다.

“ 전반적으로 다른 피해자들과 비슷했어요. 클로로포름이 검출된 것 빼고는요. 뇌가 완전히 적출됐고, 그 밖의 외상은 전혀 없었고요.”

규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비꼬듯 중얼거렸다.

“ 이번엔 마취라도 하고 죽였나보네.”

규혁의 말에 휘경은 실소했다.

“ 설마요, 납치 할 때 썼겠죠. 피해자 몸집이 크던데. 게다가 묶인 흔적이나, 방어흔도 제압흔도 없는 거 보면··· 그렇지 않았을까요?”


규혁은 휘경의 이번 추리 또한 제법 말이 된다고 생각했으나,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조심스럽게 추정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으나, 범인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말투였다. 규혁은 책상에 기대 서류를 뒤적이는 휘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다 그 옆 책상에 펼쳐진 채로 놓인 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뇌 수술관련 사진과 기사가 실린 의학 잡지였다. 규혁은 순간 흠칫해 휘경을 쳐다봤다. 그때, 휘경이 부검에서 찾은 다른 정보를 알렸다.

“ 위 내용물에서 다량의 음식물과 알코올이 발견됐어요. 아마 살해당하기 전까지 엄청 먹고 마셨을 거예요. 이미 알코올을 섭취했었으니, 마취 효과가 훨씬 좋았을 테고요. 피해자 활동 지역의 술집을 탐문해 보는 게······”

휘경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 서류를 덮고 규혁을 봤다. 규혁은 몰래 훔쳐보다 들킨 기분이 들어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휘경은 부자연스런 표정을 짓는 규혁을 보고 피식 웃었다.

“ 적절한 미소는 단 번에 나오는 게 아니네요. 그나저나··· 검시 결과가 크게 도움이 안 되네요. 마취제도 흔하디흔한 종류고.”


규혁은 머쓱해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신경외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으니, 관련 서적을 보아한들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한 규혁은 이만 돌아가려다, 이기완을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지영 때문에 묻지 못한 의문 하나를 떠올렸다.

“ 아, 지난 번 병원에서 봤던 이기완 기억하시죠?”

문 옆에 기대서 있던 휘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규혁이 이어 물었다.

“ 만난 순간부터 계속 멍한 표정이었는데, 병원에서만 몇 번이나 지속해서 눈을 껌뻑였거든요. 그건 왜 그런 겁니까?”


휘경의 뇌리에 얼이 빠진 이기완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S병원 로비. 규혁은 로보토미의 후유증이 의심된다며 1년 전 출소한 이기완을 데리고 휘경 앞에 나타났다. 미리 연락을 받은 터라, 휘경은 진우에게 CT검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 이 사람이에요?”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던 이기완은 휘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몇 차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는 휘경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눈을 껌뻑거렸다.


“ 로보토미 부작용 증상이야 워낙 다양하니까요. 뇌 일부가 손상됐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규혁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의 말처럼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규혁을 배웅하기 위해 사무실 복도까지 따라나섰던 휘경은 규혁의 모습이 사라지자, 불필요한 미소를 거뒀다.

“ 정말, 알을 깨준 아브락사스 쯤으로 여기는 건가···?”


-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영일 국제고 기숙사. 새벽 2시지만 거의 모든 방에 훤하게 불이 켜있다. 고 3인 휘경은 집중해 읽던 책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울다 잠든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읊조리며 맹세했다.

“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도, 스스로 새롭게 태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파괴해주겠어. 영원히 널 괴롭히지 못하도록······”

스탠드가 켜진 그의 책상 위에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놓여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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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9 덕훈
    작성일
    18.04.24 09:35
    No. 1

    '아브락사스' 어디서 들어봤다 계속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마지막에 정답이 있었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윤조
    작성일
    18.04.24 20:28
    No. 2

    실은 저도 내용만 생각나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다시 책을 들춰봤습니다. ^^;;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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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6. 갑질이 부른 비극 (3) 표리부동 18.07.04 313 5 8쪽
56 55. 갑질이 부른 비극 (2) 타살의 정황 18.06.30 319 5 7쪽
55 54. 갑질이 부른 비극 (1) 뜻밖의 자살 18.06.27 364 5 9쪽
54 5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8) 진실 +2 18.06.23 411 4 9쪽
53 5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7) 신출귀몰 +4 18.06.20 398 6 8쪽
52 5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6) 살의의 원인 18.06.16 390 6 8쪽
51 5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5) 격투 18.06.13 347 5 8쪽
50 4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4) 두 남자 +2 18.06.09 436 6 7쪽
49 48.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3) 제 3의 인물 +2 18.06.06 412 5 8쪽
48 4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2) 막장 드라마 +4 18.06.02 376 6 7쪽
47 4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1) 체포 +2 18.05.30 405 6 8쪽
46 45.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0) 불길한 예감 +2 18.05.26 404 6 8쪽
45 44.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9) 그 놈 +4 18.05.23 440 7 7쪽
44 4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8) 지키는 자 vs 지켜보는 자 +4 18.05.19 522 6 8쪽
43 4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7) 타로카드 +4 18.05.18 490 9 8쪽
42 4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6) 그 여자, 연희 +2 18.05.17 449 9 9쪽
41 4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5) 스페이드 무늬 +2 18.05.16 488 8 8쪽
40 3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4) 그 여자 18.05.15 467 7 7쪽
39 38.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3) 타살(打殺) +4 18.05.14 460 7 7쪽
38 3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2) 미워도 다시 한 번 18.05.13 478 7 8쪽
37 3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 만남 +2 18.05.12 487 7 8쪽
36 35. 천사의 수술 (35) 안개 +2 18.05.11 475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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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3. 천사의 수술 (33) 무너지는 정황 +4 18.05.09 476 8 9쪽
33 32. 천사의 수술 (32) 퀵배송 +2 18.05.08 479 7 7쪽
32 31. 천사의 수술 (31) 휘경과 진우 +2 18.05.07 523 8 8쪽
31 30. 천사의 수술 (30) 짙은 혐의 +2 18.05.06 487 7 9쪽
30 29. 천사의 수술 (29) 공범 18.05.05 515 8 8쪽
29 28. 천사의 수술 (28) 형사의 감 +2 18.05.04 500 8 8쪽
28 27. 천사의 수술 (27) 서글픈 인생 18.05.03 476 8 8쪽
27 26. 천사의 수술 (26) 목격자 18.05.02 488 9 9쪽
26 25. 천사의 수술 (25) 인터뷰 요청 +2 18.05.01 525 9 9쪽
25 24. 천사의 수술 (24) 후회 +2 18.04.30 523 7 7쪽
24 23. 천사의 수술 (23) 용의자 18.04.29 473 7 8쪽
23 22. 천사의 수술 (22) 비명소리 18.04.28 499 10 8쪽
22 21. 천사의 수술 (21) 귀신이 곡할 노릇 +4 18.04.27 529 10 8쪽
21 20. 천사의 수술 (20) 복수 18.04.26 495 10 8쪽
20 19. 천사의 수술 (19) 진짜 타깃 +2 18.04.25 535 10 8쪽
19 18. 천사의 수술 (18) 호랑이 굴 +2 18.04.24 549 10 8쪽
» 17. 천사의 수술 (17) 아브락사스 +2 18.04.23 557 11 8쪽
17 16. 천사의 수술 (16) 진실 +2 18.04.22 545 10 9쪽
16 15. 천사의 수술 (15) 범행장소 +2 18.04.21 539 10 8쪽
15 14. 천사의 수술 (14) 열혈기자 김혜란 +6 18.04.20 632 11 10쪽
14 13. 천사의 수술 (13) 치유모임 +4 18.04.19 605 10 8쪽
13 12. 천사의 수술 (12) 댓글 여론 +4 18.04.18 559 9 9쪽
12 11. 천사의 수술 (11) 한강변의 사체 +2 18.04.17 557 9 8쪽
11 10. 천사의 수술 (10) 아픈 과거, 영지 +2 18.04.16 567 9 9쪽
10 9. 천사의 수술 (9) 불길한 예감 +4 18.04.15 561 10 8쪽
9 8. 천사의 수술 (8) 조롱 II +2 18.04.14 565 13 8쪽
8 7. 천사의 수술 (7) 조롱 I +2 18.04.13 562 11 9쪽
7 6. 천사의 수술 (6) 언론 플레이 +2 18.04.12 592 12 9쪽
6 5. 천사의 수술 (5) 인성 +2 18.04.11 641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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