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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 님의 서재입니다.

악의 사용법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공포·미스테리

윤조
작품등록일 :
2018.04.09 13:57
최근연재일 :
2018.08.01 13:03
연재수 :
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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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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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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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사의 수술 (6) 언론 플레이

DUMMY

6회. 언론 플레이


“ 이모, 여기 국밥 세 그릇이요.”

현장 근처 마을의 국밥집에서 식사 주문을 하던 상민의 등 뒤로 속보가 전해졌다.

“벌써 세 번째 피해자가 발견됐습니다. 4일 전, 온 국민을 경악시키며 시작된 뇌 실종 살인사건이 연쇄살인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이에 따라 사건은 각 지방 경찰서에서 서울 경찰청의 연쇄살인 전담팀으로 이관되었으며······"

마른 행주로 커다란 소쿠리에 담긴 수저를 닦아 정리하던 주인이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 세상에······ 말세여. 말세.”


찌푸린 얼굴로 TV뉴스를 보던 지영은 주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 하여간, 저 인간들은 벌써부터 언플질이구만. 아직 수사방향도 못 잡았는데.”

비난 섞인 지영의 말에 상민은 등을 돌려 TV화면을 스윽 훑었다. TV엔 자극적인 붉은 코트를 입은 여기자가 시청자의 관심을 놓칠세라 자극적인 말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 저런 사람도 있어야지. 이렇게 잡다한 것이 섞여 맛있는 국밥이 되잖아. 세상도 그런 거지 뭐. 그래서 재밌잖아?”

주인이 가져온 국밥 냄새에 식탁 앞으로 돌아앉은 상민이 국그릇에 수저를 넣어 휘휘 저으며 말했다. 장난스럽게 상민을 흘겨보던 지영은 야유를 날렸다.

“ 에이~ 기자가 예뻐 그런 거 아니고요?”

상민이 헤벌쭉 웃었다.

“근데 뇌를 가져다가 뭐에 쓰려는 걸까요? 환상에 빠진 사이코 컬렉터인가?”

지영은 당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인상을 쓰며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4일 동안 일어난 세 건의 살인사건.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 경기 북부와 남부, 그리고 다시 북부의 끝에 버려진 사체. 그리고 마지막엔 인간에 대한 연민 따윈 아예 보이지도 않는 사체 처리. 그나마 앞선 두 피해자는 그렇게 참혹하게 발견되진 않았다. 지영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뇌가 그대로 드러난 채 고꾸라져 있던 이상득의 사체를 떠올렸다.

“ 아님, 세 번째 피해자를 향한 복수 아닐까요? 그 전의 둘은 예행연습 같은 거고?”


“ 복수든 사이코든 둘 다 배재할 수 없지만, 복수에서 시작된 건 맞는 것 같아.”

지영의 질문에 묵묵히 밥만 먹던 규혁이 고개를 들었다. 심상치 않은 그의 눈빛에 상민과 지영의 관심이 집중됐다.

“ 세 번째 피해자가 전과자였어. 나머지 둘은 2015년과 2016년에 일어난 사건의 용의자였고.”

“ 뭐?!”

지영과 상민이 이구동성으로 반응했다.

“ 아, 피해자 신원이 모두 파악됐다고 했지?”

상민이 얼른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열며 말했다. 지영은 규혁에게 듣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게다가 모두 소아성애 범죄와 관련된 사람들이야. 죽기 전에 천사의 수술이라 불리던 로보토미를 당한 것 같고.”

“ 천사의 수술은 뭐고, 로보토미는 뭐에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지영이 물었다. 상민도 비슷한 표정으로 규혁을 쳐다봤다.

“ 전두엽을 절제해서 난폭한 인간들을 온순하게 만들던 수술이래. 그땐 몰랐겠지만,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을 잘라버렸던 거지. 일종의 인격살해 같은 거라고 들었어.”

“ 그럼 소아성애 범죄자들을 살아 있는 유령처럼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 나머지 두 사람은 용의자였다며?”

상민은 경악과 의아함을 모두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

“ 두 사건 모두 정황적 증거뿐이었는데, 영장이 안 나왔데요.

그래서 DNA감식을 피해 간 것 같고······”

“ 제길··· 또 어느 귀한 집 자식들 이었나보네.”

상민은 넌더리가 난다는 듯 비아냥댔다.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지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만약 정말 그 목적이었다면··· 전 이해가 되기도 해요. 솔직히 우리나라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맞잖아요. 피해자는 인생 자체가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지영이 범인의 편을 드는 뉘앙스로 발언하자, 규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영을 쏘아봤다.

“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너, 수사관이 편들기 시작하면, 사건에 휘말릴 뿐, 사건을 해결할 수 없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도록 해.”

“ 우리 좀 솔직해 지죠. 사건 판결 보면, 종신형이나 사형을 팍팍 때려도 모자랄 판에 쥐꼬리만큼 형을 주거나, 벌금형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태반이잖아요. 선배도 울분을 터뜨리곤 했으면서 갑자기 웬 성직자 코스프레에요?”

지영이 분기탱천해 대들자, 규혁은 대꾸하기도 짜증나는지 화풀이 하듯 국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민이 교통정리를 했다.

“ 자자, 진정하고. 성팀장 말은 범인부터 잡자는 뜻이잖아. 그리고 아직 복수일지 모른다는 것도 추정일 뿐이고.”


만약 복수가 목적이었다면, 그래서 세 번째 피해자가 목표였다면, 사건은 이쯤에서 끝날 터였다. 하지만··· 상민은 뭔가 불안했다. 앞 선 두 명의 피해자가 아무리 나쁜 놈들이라지만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냉담한 자라면, 이대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우리나라에만도 소아성애 범죄자의 수는 허다했다. 게다가 지영의 말처럼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만약 상징성을 띤 범죄라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상민은 문득 아득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 문 검시관 말로는······ 이게 서막인 것 같다고 했어요.”

규혁이 걱정스럽게 말을 꺼내자, 상민은 소름이 끼쳤다. 지영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규혁을 쳐다봤다.

“ 검시관 말로는 범인이 연습을 했던 것 같데요. 그리고 세 번째 피해자에 와서 성공, 이번엔 전두엽만 가져 간 거죠.”

규혁의 말에 지영은 다시 상득의 사체를 떠올렸다. 소아성애라는 민감한 사안에 범인의 입장을 편들긴 했지만, 그가 일으킨 범죄 자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계속 될 거라니···

“ 선배, 서둘러야겠어요. 우선, 관련 소아성범죄 피해자 주변부터 탐문······”

말을 하던 지영이 멈칫하고, 괴로운 듯 마른세수를 했다.

“ 우리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여야 한다는 거지··· ”

상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규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해준이었다.


“ 새벽에 발견된 피해자 집이 이 근처라네요. 들렀다 가야겠어요.”

“ 이 근처···?”

상민과 지영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각은 어젯밤 10시. 어쩌면 범행을 벌인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규혁과 상민, 지영이 백열 가로등이 드문드문 설치된 좁다란 골목을 지나고 있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뒤틀린 나무 문 너머로 작은 마당이 펼쳐진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상민은 이미 집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고, 규혁과 지영은 열려 있는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 계세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규혁이 몇 차례 목청 높여 주인을 부르자, 잠시 후 대청마루에 연결된 반투명 유리문이 스르륵 열렸다.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노파가 힘없이 밖을 내다봤다.

“ ······ 누구여?”

노파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규혁을 올려다보며 묻자, 지영이 붙임성 있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할머니. 여기가 이상득씨 댁이 맞나요?”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지영을 쳐다보던 노파는 ‘이상득’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우리 아들인디······ ”

“ 혹시··· 어제 아드님 만나셨어요?”


노파는 출소날짜인 어제 아들이 오지 않아, 종일 애타게 기다리던 터였다. 심한 류마티스 때문에 두부 한 모 사들고 가지 못한 것이 내심 맘에 걸리던 차에, 아들이 또 사고를 쳤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노파가 눈치를 살피며 지영에게 물었다.

“ 누구여들······?”

“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는 규혁의 말에, 노파는 지레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

“ 우리 아들은 벌써 죄 다 받았어. 왜 또 잡아 갈라고 그러는 겨?”

안타까운 표정으로 노파를 바라보던 지영은 다가가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아뇨. 안 잡아가요. 할머니···”

지영이 선뜻 말을 잇지 못하자, 규혁이 나서 말했다. 어차피 노파가 알아야 할 일이었다.

“ 아드님은··· 어제 피살된 채 발견됐습니다. 저희는 아드님 행적을 확인하러 온 거고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지, 믿겨지지 않는 건지 노파는 규혁과 지영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규혁이 입을 열었다.

“ 할머님, 아드님은 어제 살해됐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여? 응? 뭔 소리냐고!!”

노파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열린 마루 문 사이로, 아들을 위해 차려 놓은 따뜻한 밥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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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 갑질이 부른 비극 (5) 후안무치 18.07.11 396 4 8쪽
58 57. 갑질이 부른 비극 (4) 마녀라 불린 여자 +2 18.07.07 368 5 8쪽
57 56. 갑질이 부른 비극 (3) 표리부동 18.07.04 313 5 8쪽
56 55. 갑질이 부른 비극 (2) 타살의 정황 18.06.30 319 5 7쪽
55 54. 갑질이 부른 비극 (1) 뜻밖의 자살 18.06.27 364 5 9쪽
54 5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8) 진실 +2 18.06.23 411 4 9쪽
53 5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7) 신출귀몰 +4 18.06.20 398 6 8쪽
52 5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6) 살의의 원인 18.06.16 390 6 8쪽
51 5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5) 격투 18.06.13 347 5 8쪽
50 4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4) 두 남자 +2 18.06.09 436 6 7쪽
49 48.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3) 제 3의 인물 +2 18.06.06 412 5 8쪽
48 4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2) 막장 드라마 +4 18.06.02 376 6 7쪽
47 4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1) 체포 +2 18.05.30 405 6 8쪽
46 45.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0) 불길한 예감 +2 18.05.26 404 6 8쪽
45 44.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9) 그 놈 +4 18.05.23 440 7 7쪽
44 43.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8) 지키는 자 vs 지켜보는 자 +4 18.05.19 522 6 8쪽
43 42.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7) 타로카드 +4 18.05.18 490 9 8쪽
42 41.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6) 그 여자, 연희 +2 18.05.17 449 9 9쪽
41 40.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5) 스페이드 무늬 +2 18.05.16 488 8 8쪽
40 39.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4) 그 여자 18.05.15 467 7 7쪽
39 38.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3) 타살(打殺) +4 18.05.14 460 7 7쪽
38 37.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2) 미워도 다시 한 번 18.05.13 478 7 8쪽
37 36. 집착이라는 이름의 욕망 (1) 만남 +2 18.05.12 487 7 8쪽
36 35. 천사의 수술 (35) 안개 +2 18.05.11 475 7 10쪽
35 34. 천사의 수술 (34) 무혐의 +2 18.05.10 463 7 8쪽
34 33. 천사의 수술 (33) 무너지는 정황 +4 18.05.09 476 8 9쪽
33 32. 천사의 수술 (32) 퀵배송 +2 18.05.08 479 7 7쪽
32 31. 천사의 수술 (31) 휘경과 진우 +2 18.05.07 523 8 8쪽
31 30. 천사의 수술 (30) 짙은 혐의 +2 18.05.06 487 7 9쪽
30 29. 천사의 수술 (29) 공범 18.05.05 515 8 8쪽
29 28. 천사의 수술 (28) 형사의 감 +2 18.05.04 500 8 8쪽
28 27. 천사의 수술 (27) 서글픈 인생 18.05.03 476 8 8쪽
27 26. 천사의 수술 (26) 목격자 18.05.02 488 9 9쪽
26 25. 천사의 수술 (25) 인터뷰 요청 +2 18.05.01 525 9 9쪽
25 24. 천사의 수술 (24) 후회 +2 18.04.30 523 7 7쪽
24 23. 천사의 수술 (23) 용의자 18.04.29 473 7 8쪽
23 22. 천사의 수술 (22) 비명소리 18.04.28 499 10 8쪽
22 21. 천사의 수술 (21) 귀신이 곡할 노릇 +4 18.04.27 529 10 8쪽
21 20. 천사의 수술 (20) 복수 18.04.26 494 10 8쪽
20 19. 천사의 수술 (19) 진짜 타깃 +2 18.04.25 535 10 8쪽
19 18. 천사의 수술 (18) 호랑이 굴 +2 18.04.24 549 10 8쪽
18 17. 천사의 수술 (17) 아브락사스 +2 18.04.23 556 11 8쪽
17 16. 천사의 수술 (16) 진실 +2 18.04.22 544 10 9쪽
16 15. 천사의 수술 (15) 범행장소 +2 18.04.21 539 10 8쪽
15 14. 천사의 수술 (14) 열혈기자 김혜란 +6 18.04.20 632 11 10쪽
14 13. 천사의 수술 (13) 치유모임 +4 18.04.19 605 10 8쪽
13 12. 천사의 수술 (12) 댓글 여론 +4 18.04.18 559 9 9쪽
12 11. 천사의 수술 (11) 한강변의 사체 +2 18.04.17 557 9 8쪽
11 10. 천사의 수술 (10) 아픈 과거, 영지 +2 18.04.16 567 9 9쪽
10 9. 천사의 수술 (9) 불길한 예감 +4 18.04.15 561 10 8쪽
9 8. 천사의 수술 (8) 조롱 II +2 18.04.14 565 13 8쪽
8 7. 천사의 수술 (7) 조롱 I +2 18.04.13 562 11 9쪽
» 6. 천사의 수술 (6) 언론 플레이 +2 18.04.12 592 12 9쪽
6 5. 천사의 수술 (5) 인성 +2 18.04.11 641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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