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갑질이 부른 비극 (1) 뜻밖의 자살
1. 뜻밖의 자살
비탈진 길에 위치한 구산동의 한 원룸. 가벼운 외출복 차림의 진욱이 투덜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 듯, 그는 연신 휴대전화를 다시 누르길 반복한다.
“ 아, 진짜.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같이 병원 가자고 월차까지 내랬으면서···”
4층 401호 문 앞에 선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푹 쑤셔 넣고, 헉헉 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초인종을 누른다.
빈 방에 벨소리가 울린다. 다섯 평 남짓한 원룸엔 싱글 침대와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맞은편엔 세탁기가 딸린 작은 싱크대가 서있다. 책상 위엔 진욱에게 안겨 웃음꽃을 피운 여성의 사진이 든 액자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휴대폰이 부재중 전화 표시를 나타내며 깜빡이다 멈춘다. 잠시 후, “삐삐”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 문 왼쪽에 위치한 현관문이 열린다. 진욱이다.
“ 아, 김신아! 내가 전화를 몇 번이나······”
1초면 화장실을 제외하고 모두 둘러 볼 수 있는 좁은 원룸.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짜증이 배어 있던 진욱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깃든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휴대폰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으로 향한다. 그는 책상으로 발을 옮겼다가 그 위에 놓인 ‘유서’를 발견하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 이게 무슨······? 신아야! 김신아!!”
그는 다급히 화장실로 가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좁은 원룸은 순식간에 피 비린내로 가득 찼다. 진욱의 눈에 손목을 그은 채 쓰러져 있는 신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왼쪽 손은 깊숙한 대야에 반쯤 걸쳐 있었다. 대야의 3분의 2쯤 고인 붉은 액체가 피가 섞인 물인지, 피 자체인지 알 수 없었다. 진욱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의 오른쪽 손을 잡았다. 차디찬 그녀의 손에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진 듯 주저앉았다.
“ 아, 카라멜마끼아또는 시럽 두 번 추가해 주세요.”
규혁이 경찰청 앞 단골 커피숍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그 때 등 뒤에서 걱정을 가장한 깐족거림이 들려왔다.
“ 그러나 당뇨 걸린다니까요. 늙어서 부인 고생시키지 마시고, 지금부터 조절 좀 하세요.”
규혁의 양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한 사람을 향해 쏘아붙였다.
“ 맘대로 남의 미래 망쳐놓지 말고, 니 미래나 신경 쓰지 그래?”
규혁은 커피도 챙기지 않고 휙 밖으로 나가 버렸다. 지영은 벙찐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 뭐야, 뭐 저렇게 유치해?”
“ 아메리카노 세 잔, 시럽 추가한 카라멜마끼아또 한 잔 나왔습니다.”
커피숍 직원이 음료가 나왔다고 안내하며, 지영에게 커피 트레이를 내밀었다. 지영은 음료를 받아들고, 다소 어색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 계산은 다··· 된 거죠?”
“띵” 소리를 내며 경찰청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인상을 쓴 채 팔짱을 끼고 선 규혁과 커피 트레이를 든 지영이 앞 다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지영은 한 발 앞선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 그 봐요~ 먼저 가도 결국 같이 올 걸. 남자가 치사하게~”
규혁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멈춰 섰다가, 그녀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 그러니까 팀장님이 연애를 못 하는 거예요. 매너가 좋아, 자상하길 해, 그렇다고 유머 감각이 있어, 외모가······ ”
지영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순간 말을 멈췄다. 규혁이 뒤돌아서 ‘이게 정말’ 이라는 표정으로 살벌하게 그녀를 째려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가슴에 참을 인자를 새기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하던 말을 마저 끝맺었다.
“ 외모는······ 출중하지. 하여간 저 성질머리, 얼굴값 지대로 한다니까.”
사무실 문이 다시 열리자, 상민은 막 들어오는 지영을 주시했다. 간만의 차로, 커피를 사러 간다던 규혁이 빈손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든 커피 트레이를 확인한 상민은 역시나 싶은 표정으로 묘한 웃음을 흘리며 지영에게 물었다.
“ 왜 따로 들어와? 같이 온 거 아냐?”
“ 같이 오긴, 누가 같이 와요?”
지영은 투덜대며, 회의 테이블에 커피 4잔이 든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상민이 커피 트레이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꺼내며 장난기어린 눈으로 지영을 쳐다봤다.
“ 이걸 니가 샀다고?”
지영은 어깨를 들썩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오던 해준은 지영을 보고 환한 미소를 날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 선배, 안녕~”
지영은 갑자기 해준에게 저벅저벅 다가가 헤드락을 걸었다.
“ 안녕? 이게 아주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하극상이야, 하극상~!”
그때, 보고서를 말아 만든 기다란 종이뭉치 막대가 지영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퍽”소리를 냈다.
“ 아! 씨 누구야~!”
“ 씨? 여기, 걔 말고, 하늘같은 니 선배들 밖에 더 있어?”
규혁이 지영의 옆구리에 끼인 해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말린 종이를 반대로 말아 평평하게 만든 후 테이블 위에 얹어 놓으며 지영을 째려보았다.
“ 누가 누구더러 하극상이래? 똥 뭍은 개도 아니고.”
순간 지영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만큼 그녀의 팔 힘도 세졌다. 그 속에 끼어 있던 해준은 낑낑거리며 그녀의 헤드락을 풀기 위해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상민은 킥킥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다 지영을 툭 쳤다.
“ 우리 해준이 숨 막히겠다. 적당히 해.”
그제야 지영은 해준이 생각났는지, 얼른 팔의 힘을 풀었다. 해준은 비틀거리면서도 헤죽거리는 얼굴로 테이블에 앉았다. 규혁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해준을 바라보다, 탁자 위의 보고서를 팀원들에게 건넸다.
“ 아까 전화로 말했던 사건이에요?”
규혁이 상민에게 보고서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 어, 좀 전에 해준이가 급하게 정리했어.”
“ 정리하면서 대충 봤는데, 자살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게 좀 많아요.”
언제 지영의 옆구리 속에서 버둥거렸냐는 듯, 해준은 평소와 같은 진지한 자세로 회의에 임했다. 뒤늦게 자리에 앉은 지영은 파일을 스윽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 마포서요?”
“ 어. 지난 번 사건, 뉴페이스 흔적 좀 찾아보려고 그 지역 CCTV확인하러 갔었거든. 근데 큰 소란이 생겨서···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데, 경찰이 다급히 자살로 처리하려는 것 같아서.”
“ 이럴 경우, 남자친구가 가장 유력한 용의잔데··· 이 사람이 필사적으로 수사해달라는 거보니,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닐 확률이 높겠네요?”
지영이 보고서에 얼굴을 묻은 채 테이블에 손가락을 튕기며 물었다.
“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고 의혹을 피하기 위해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규혁이 나무라듯 지영을 향해 말했다. 지영은 입을 삐죽였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상민은 얼른 사건의 미심쩍은 부분을 설명했다.
“어쨌든, 가장 이상한 건 몇 달 전에 피해자와 절친했던 사람도 자살했다는 거야.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규혁과 지영, 해준 모두가 상민을 쳐다봤다. 상민은 눈을 크게 뜨더니 그들에게 되물었다.
“ 어떻게 할까?”
“ 강북서에서 사건 신청서는 받아 온 거죠?”
규혁의 질문에 상민은 오른쪽 눈을 찡끗 감았다 떴다.
“ 당근~!”
“ 그럼, 시작하죠. 선배는 피해자 가족과 애인 만나서 정식으로 수사 진행한다고 알려주시고요, 이 형사는 피해자와 친했다던 사망자, 이 두 사람의 1년 간 디지털 기록 모두 확인해봐. 지영이 넌··· ”
규혁은 부러 뜸을 들이며 지영을 쳐다봤다.
“ 넌 나랑 현장에 가고.”
규혁이 보고서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영도 입을 삐죽거리며 따라 일어섰다.
- 작가의말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모두 안전에 유의하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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