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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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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15,092
추천수 :
717
글자수 :
402,771

작성
23.01.1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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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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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74화

DUMMY

“그렇군요··· 엄마랑 동생은 그럼 이제 볼 수 없는 건가요...?”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인 넬리가 로안에게 물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최선을 다해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거든.”


로안은 넬리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언뜻 보면 개운해 보이면서도 슬퍼 보이기도 하고 짐을 덜어낸 듯한 기분이 드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로안의 느낌은 사실이었다. 넬리는 개운했다. 참 힘든 삶이라고 생각했다. 병든 엄마에 철부지 동생 넬리의 두 어깨를 짓누르던 것이 사라진 그녀는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분명 개운할 것인데 왜인지 눈물이 흘렀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로안은 그녀가 홀로 울 수 있게 방을 빠져나왔다.


“괜찮을까요?”


밖으로 나온 로안과 엘레니아가 대화를 나누었다.


“괜찮아지길 바라야죠. 털고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넬리를 엘카사디아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어때요?”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었거든요.”


엘레니아와 로안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넬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생각한 그들은 방으로 돌아가 넬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감사합니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움직일 수 있겠니?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질 않아서 근육이 다 빠졌을 텐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 두 분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나는 대로 말해줄 수 있겠어? 괴로운 기억이겠지만···”

“저도 그러고 싶은데 사실 기억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기억이 드문드문 명확하지가 않아요.”


미간을 좁힌 넬리는 기억을 떠올려 보려 해도 기억의 파편들이 여러 곳으로 나뉜 터라 이게 정말 제대로 된 기억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기억은 점차 돌아올 거야. 그리고 넬리 너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갈 곳이 없다면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니?”

“···함께요?”

“네가 그때 우리를 도와준 것처럼 우리도 너를 도울 수 있게 말이야.”


넬리는 고민하는 듯 고개가 바닥으로 향했다.


“그래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 * *


밖으로 나온 로안과 엘레니아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넬리가 걷고 있었다. 사건이 끝나고 아이언하트 기사단의 수족들도 없어졌는데도 마을의 침체된 분위기는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넬리는 그 침체된 마을의 분위기가 자신 때문일 것이라 직감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넬리는 언덕 위에 있던 집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말에 로안과 엘레니아는 그 집으로 다시 향하였다.

낡고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집은 이제 더 이상 집이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넬리는 추억이 담긴 이 집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넬리.”

“저는 괜찮아요. 이젠 울지 않을 거예요.”


로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곧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억지로 씩씩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익숙한 듯 나무 판자를 들어 올렸다. 그곳엔 그녀의 가족들이 남긴 물건들이 있었다.


“이건 어머니의 목걸이예요. 그리고 이건 동생이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만들어주었던 목검이에요. 그리고 이건···”


그녀가 집었던 물건을 힘없이 축 늘어트렸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가 고개를 들어 뒤에 서있던 로안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녀의 모습에 엘레니아는 두 무릎을 꿇고 그녀를 끌어안아주었다.


“괜찮아요. 이젠 다 괜찮아질 거예요.”


로안은 입안이 썼다. 그 씁쓸함의 정도가 못 참을 정도로 썼다.


“돌아가자. 물건은 챙겨야지.”


가벼울 줄만 알았던 귀환의 시작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로안은 비박하고 있는 자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누워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점찍은 별들의 자수가 금방이라로 흘러내릴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무진이던 시절 이런 우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피웠던 담배가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담배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는 풀잎 하나를 뽑아 입에 물었다. 이게 담배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았다.


* * *


엘카사디아가 보였다. 보름가까이 이어졌던 강행군의 끝이 보이는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엘레니아는 그동안 자신의 창성 기사단이 얼마나 성장했을까 하는 설렘에 어젯저녁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리고 로안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조금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에, 엘레니아 단장님...?”


병사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 문을 열어줄 수 있겠는가?”


엘레니아의 공손한 부탁에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위에 있는 병사를 불렀다.


“성문을 열어라! 엘레니아 단장님이 돌아오셨다! 성문을 열어라!”


그들은 호들갑을 떨며 창성 기사단장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 소문이 어찌나 빠르던지 근처에 있던 다른 기사들도 모두 모여 엘레니아의 귀환을 환영했다.


“이봐 엘레니아 여행은 어땠나?”


붉은 깃발 기사단장이 그녀에게 물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좋은 경험이라. 그리고 옆에 있는 자네 또한 더욱 듬직해졌구만.”


붉은 깃발 기사단장은 로안의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듯 놀란 모습을 보였다.

로안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요렌츠 영주님이 기다리고 계실 걸세. 자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무래도 밤을 지새우더라도 끝나지 않을 것 같구만. 그보다 옆에 소녀는 누구인가··· 둘이 설마···”


붉은 깃발 기사단장 엘리엇은 두 눈을 번뜩이며 둘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눈치챈 둘은 서로 얼굴을 붉혔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거의 동시에 둘이 외쳤다. 엘리엇은 둘의 화끈한 반응에 김샌다는 듯 표정이 사라졌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뭘··· 죽일 듯이 노려보고 그러나. 어쨌든 무사 귀환을 축하하네 엘레니아 단장 그리고 음··· 로안, 자네에 대한 명성은 여기까지 들려오더군. 힘든 일을 했구만 그래.”


그렇게 말하며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본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둘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만 가볼까요?”

“그, 그래요.”


넬리는 어색해져 버린 둘의 눈치를 보며 뒤따랐다.


그들은 곧장 엘카사디아의 성주 요렌츠를 만나기 위해 그를 찾았다. 요렌츠는 집무실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들을 밝은 미소로 화답해 주며 그들을 맞아주었다.


“오, 엘레니아 무사하였느냐. 이렇게 무사히 얼굴을 보게 되어 다행이로구나.”

“성주님을 뵙습니다. 창성 기사단장 엘레니아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기사다운 모습에 엘레니아의 모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고생했구나. 자네도 더욱 늠름해진 모습을 보아하니 이곳이 곧 익숙해졌나 보군. 로안 자네의 소식은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었네, 신참내기 모험가가 대륙의 위명을 떨치는 날이 오다니···”

“덕분에 즐겁기도 하고 씁쓸한 모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의 생활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로군. 그보다 옆에 있는 어여쁜 소녀는 누구인가?”


요네스의 시선이 그들의 옆에 있는 넬리에게 향했다. 로안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었다.


“아, 저는 넬리라고 합니다.”

“넬리? 사연이 있어 보이는 아이로구나. 이야기는 자네들에게 들어야겠지?”

“그렇습니다.”

“앉도록 하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차를 좀 내와야겠구나.”


요렌츠의 부드러운 음성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제, 제가 하겠습니다.”

“여독을 아직 다 풀지도 않았는데, 엘레니아 자네도 같이 앉아있게나.”

“하, 하지만···”

“명령이네.”


단호한 그의 음성에 엘레니아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로안의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웃음 지었다.

요렌츠는 곧 인원수에 맞게끔 차를 내왔고 잘 마시겠다는 인사와 함께 로안이 먼저 입을 떼었다.


“이 아이는 마신의 재물이 될 뻔했던 아이입니다. 처음 여행길에 만난 게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신의 재물?”

“그렇습니다.”


요렌츠가 호기심 짙은 눈동자로 로안에게 더 말해보라는 듯 촉구했다.


“그들은 마신이 이곳에 강림하는 걸 원하고 있습니다. 각지에서 여럿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공표가 나지는 않았지만 드워프들도 굳게 닫아놨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곧 이 땅에 강림할 마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말이죠.”

“결국 그렇게 되는가···”


요렌츠는 침음을 삼켰다. 그 반응에 로안이 되물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고 우리 성 내에서도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있었지. 하지만 그게 마신을 부활시키기 위함이라··· 이거 큰일이겠구나.”

“넬리는 마신을 강림시키기 위한 제물로서 그 역량이 뛰어나다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의 신변을 여기서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그러하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그들의 손아귀에서 지켜줄 테니. 아무래도 왕국에 알리는 것이··· 이미 알고 있겠구나.”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럴 게다. 에스티제오르의 왕은 현명하고 어진 임금이니 말이야.”


그렇게 가장 중요한 대목을 짚고 이야기한 로안은 마음이 조금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는 없는가?”

“재밌는 이야기라 하심은?”


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녀 둘이 여행을 떠나는데 설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겠지?”

“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로안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그런 것이지 왜 화까지 내고 그러나? 어디 엘레니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아무리 봐도 자네보다는 엘레니아가 아까운데 말이야.”


로안은 뭐라 발끈하려 했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요렌츠의 말이 맞는 것 같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엘레니아 너도 말이야. 이제 연애도 좀 하고 남자도 많이 만나봐야 하지 않겠니. 언제나 검만 잡고 살 수는 없지 않니?”

“기사에게 모욕적인 발언입니다. 남작님. 부디 제 지위를 낮추지 말아 주시옵소서.”


엘레니아의 말은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차가운 음성이었다.


“에휴··· 알겠네, 그래도 나쁜 마음으로 그리 말한 것은 아니니 그만 복귀하도록 하게나 엘레니아. 창성 기사단 식구들에게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넬리도 자네에게 부탁하지 남자보다는 같은 여자가 더 관리하기 좋을 것 같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레이나는 수줍게 서있는 넬리를 품에 감싸 안고 살짝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방을 빠져나갔다.


“에휴··· 참으로 안타까워.”

“그녀에게는 모욕적인 말이었을 겁니다.”

“나도 안다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검을 들기를 원하지 않아.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는 것을···”


향긋한 차 향기가 코 안을 맴돌았다.

로안은 그녀가 나간 방문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응시하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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