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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이방인은 이세계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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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2.10.26 13:12
최근연재일 :
2023.01.17 08:3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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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5
추천수 :
717
글자수 :
40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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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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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3화

DUMMY

처절한 둘의 싸움이 이어졌다. 한 명은 의식도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헥터는 욕지거리와 함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와 별개로 그런 느긋한 감정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의식을 잃었다지만 밀러의 검은 날카로웠고 무거웠다. 그가 왜 단장이고 자신이 왜 부단장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흐읍!”


그는 숨을 삼키고 맞부딪힌 검을 밀어냈다. 아직 힘이라면 단장에게 밀리지 않았다. 힘껏 밀어낸 헥터는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가죽을 꿰뚫는 느낌이 고스란히 손목으로 전해졌다.


“···형님 이제 그만 쉬어도 괜찮지 않겠소.”


그는 형님이란 소리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괴물이 되어버린 모습으로 허우적거리다 죽어갈 뿐이었다. 어떻게든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를 죽여보려고 손톱을 휘갈기고 물어뜯으려고 했다.

헥터는 두 눈을 감고 그대로 검을 뽑았다. 당기는 힘을 이용해 몸을 회전한 헥터의 검이 반달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밀러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목이 없는 상태로 헥터에게 다가오다 제 다리에 걸려 바닥으로 넘어졌다.


“용서하시오.”


밀러의 심장을 꿰뚫고 나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 * *


로안은 레스테인이 말해주는 대로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남작의 비밀 실험실은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하였고, 로안은 뒤를 생각하지도 않고 그대로 쭉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도착지가 얼마 남지 않은 탓인지 곳곳에 몬스터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들로서 로안을 막아서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로안은 눈앞에 보이는 마지막 몬스터를 베었다. 몸이 둘로 쪼개지며 그 갈라지는 틈 사이로 문이 하나 보였다.

로안은 망설임 없이 걸어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내 아끼는 실험체들을 모조리 쏟아부어 너를 막으려 하였건만 부족하다니. 이곳까지 온 걸 칭찬해 주마 일면식도 없는데 나를 죽이겠다고 찾아오다니 말이야.”

“죽이겠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난 그저 찾을 사람이 있어서 찾아온 것뿐이니까.”

“그 찾을 사람이라는 게 바로 저 소녀를 뜻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안이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투명한 유리막으로 의문스러운 액체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로안이 찾던 넬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린 아이다. 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크크, 말했지 않아? 제물이라고 저 소녀는 마신의 힘을 고스란히 받을 제물이다. 저 몸을 통해서 그분은 강림할 것이다.”

“미친놈이로군···”


로안은 저 광신도를 보고 그저 미친놈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크하하하하! 이미 술식은 진행되었다! 내가 죽어도 술식은 남는다!”


그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미친 듯이 웃었다.


로안은 레스테인을 휘둘렀다. 고스란히 검에 담긴 마력의 참격을 사출 했다.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막이 깨졌다. 액체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넬리의 몸도 그 액체와 함께 흘러내려왔다.

그는 동그래진 두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돼. 오러 블레이드도 막을 수 있는 강도인데···”


그는 고개를 돌려 로안을 바라보았다. 로안의 검날이 푸른빛을 띠며 빛나는 중이었다. 그는 그 검을 보고 탄식했다. 아무래도 레스테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작은 여기서 그칠 순 없었다.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쿠구구- 대지가 준동하면 양 옆의 벽을 장식하고 있던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아라!”


그는 짧게 명령하고 곧바로 등을 돌려 이곳을 벗어났다.

엘레니아는 검을 빼들고 석상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들이 일어났다.


“가요, 로안 저 녀석한테 볼 일이 있잖아요.”


그가 마신 숭배자라는 걸 알고도 보내줄 수는 없었다. 그들이 대륙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미래에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탁할게요.”


짧게 대답한 로안은 그를 추적했다. 마력의 잔해가 남아있던 터라 그의 기운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기운을 따라가자 곧 막다른 길이 나왔다. 마신 숭배자 또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난잡하게 퍼진 마력의 기운이 순간 위쪽에서 집중되었다. 불길한 기운에 곧바로 몸을 날린 그는 바닥을 굴렀다. 급히 고개를 들어 확인하자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어차피 내가 살기는 글렀다··· 그렇다면 네놈을 길동무로 삼아야겠다.”


그의 눈동자는 아직도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로안은 그를 보고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 슬라임을 향해 검을 세웠다.

로안은 인정사정없이 힘을 개방했다. 레스테인의 힘이 전신을 휘감으며 넘치는 힘을 제공해 주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밀폐 공간인데 로안의 머리칼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흔들렸다.


“이건 내가 만든 최고의 역작 산성 슬라임이다.”

“···슬라임?”

“처음 들어보는 생명체겠지. 걱정하지 마라 이 생명체는 곧 전역에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이건 곧 재앙일 테니···”


슬라임이라는 존재는 이곳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에게 로안이 살던 시대에 존재하던 하급 몬스터와 동일한 이름이 주어진다니 우연치고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네놈은 누구지?”


로안은 본래 살던 언어로 말했다. 혹시나 싶어 뱉어본 말이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당혹스러움으로 변했다.


“너, 넌···”


그 역시 어눌하지만 로안의 귀에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한국인?”


남작이 어려움 끝에 말을 뱉었다.


“그렇다.”

“나 말고 이세계에 온 다른 자들이 있다니 말도 안 돼···”


그의 눈동자는 더는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물들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로안은 최대한 침착하게 이성적인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냐고? 당연히 집으로 가기 위해서지 너는 모르나? 이 세상을 멸망시켜야 우리의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걸?”

“그게 무슨 소리지?”

“멍청한 자식··· 이 세계를 멸망시켜야 우리가 본래 살던 차원으로 보내진다. 이게 나의 계약 조건이었다.”


남작은 로안의 멍청한 표정을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와 함께 가자! 너를 집으로 본래 있던 세상으로 데려다 주마 너의 검과 나의 머리라면 필히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


그의 말에 로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울리고 바깥의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면에선 갈등이 빚어졌다.

로안은 저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알던 세상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과 그리고 저 확신에 찬 눈빛이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로안은 고개를 돌려 엘레니아를 바라보았다. 엘레니아 또한 혼란스러움에 로안과 눈이 마주쳤다. 로안은 그녀와 그를 번갈아 가면서 보았다.


“뭘 고민하고 있지? 너는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


로안의 손에 쥔 검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검을 흩뿌리는 것으로 대신 답했다.

남작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이내 오른팔에서 화끈거리는 고통에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오른팔이 보였다.


“나는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군. 너와 같은 자가 얼마나 더 있지?”


그는 로안의 물음에도 제대로 답도하지 못했다. 그저 고통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개새끼가...! 주, 죽여 버리겠다!”


로안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에 반갑고도 뭔가 입안에 씁쓸하였다. 그는 힘을 발끝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폭발시켰다. 붕 떠오른 로안이 그대로 검을 내리질렀다. 순간적으로 로안의 마력이 일자 형태를 그리며 남작의 목을 떨어트렸다.


“로안, 이건 어떡하죠?”


거대한 대형 슬라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돌려 생각해 보니 슬라임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로안이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았다.


“슬라임이라···”


레스테인이 백광을 발발하여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검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로안은 그대로 최대한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내지를 뿐이었다. 나머지는 레스테인이 알아서 해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얀빛이 세상을 덮었다. 그 빛은 따듯했으며 또 포근했다. 눈을 가린 하얀 빛이 사라지자 슬라임 또한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녹아 없어졌다는 표현이 맞았다.


“무슨 일···”


그때 헥터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엔 바닥을 구르던 머리였다.


“드디어 죽었군···”


헥터는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고개를 뒤집어 하늘을 보는 시늉을 했다. 실상 보이는 것은 돌로 된 천장뿐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억압받았던 구속구를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로안은 헥터를 가만히 보다 쓰러져 있던 넬리의 몸에 자신이 두르던 망토를 펼쳐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조심스레 안고 들어 올렸다.

귀족의 죽음이었다. 말이 많을 테지만 이곳이 드러난다면 왕국에서도 뭐라 못할 것이 분명했다.


“헥터.”


로안이 그를 불렀다. 그는 멍한 표정이었다가 로안의 부름에 곧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왜 부르오?”

“이곳을 고발해라.”

“난 또 뭐라고··· 안 그래도 이곳을 고발할 생각이오. 이제 이런 짓은 지긋지긋하오. 헌데 나를 살려두는 것이오?”

“그렇다면 이곳을 고발할 사람들이 없잖은가. 우리는 관여하지 않은 걸로 알고 너를 믿고 떠나도록 하지.”

“믿는 다라···”


헥터는 멀어지는 로안의 등을 바라보았다. 혜성처럼 등장해 폭풍으로 썩은 살점을 도려낸 로안을 보고 헥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영웅이군···”


* * *


“악몽을 꾸고 있나 봐요···”


며칠 째 넬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듯했다. 로안과 엘레니아는 수시로 그녀가 흘리는 식은땀을 닦아주며 그녀가 악몽에서 깨어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를 본 로안이 엘레니아를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곧, 눈을 뜨려나 봐요···”


평소 식은땀만 흘렸던 넬리가 처음으로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녀는 심하게 꿈틀거리는 건 아니었지만, 몸을 떨기도 하는 모습이 어떻게든 악몽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넬리···”


엘레니아가 작은 소녀의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곧 점차 몸의 떨림이 진정되어 가고 눈을 감고 있던 소녀의 눈이 떠졌다.


“···엄마?”


나지막이 들리는 넬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떨궜던 로안이 그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다.”


곧장 엄마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로안의 목소리는 울음을 머금었다.


“제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도 있어, 그래도 들어보겠니?”


그녀의 비장한 표정을 본 로안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야기를 로안은 그녀를 위해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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