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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바의 서재 ]

빛이 있는 자리엔 어둠이 있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김하바
그림/삽화
김하바
작품등록일 :
2020.05.11 16:27
최근연재일 :
2020.10.13 16:05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1,546
추천수 :
109
글자수 :
298,061

작성
20.05.19 17:29
조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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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일곱번째 이야기 : 예언의 아이

DUMMY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헬라는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지금까지 헬라는 다른 흑족의 아이들과 비교하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라일같은 인간계급의 아이들에게 있어 철없는 아이의 투정일 뿐 이었다. 라일이 왜 자신에게 멍청하다고 했는지 이제는 알것만 같았다. 멍청했고 이기적이었다.


헬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앉았다. 라일의 ' 너에게 빛이나 '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헬라는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러운 예언 그리고 그 예언의 주인공인 자신. 그저 자신과는 멀게만 느껴졌다. 자신이 이 중에서 최고인 이유는 그만큼 노력했고 선생님인 루나를 잘 만나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그저 인간계급의 평범한 아이였다면 이 정도의 노력으로, 루나의 힘으로 이렇게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모두가 무시하는 이 곳에서 이렇게 버틸수나 있었을까. 이런 저런 멈출 수 없는 생각에 헬라의 머리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정말로 자신이 예언의 아이라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외면하고 싶었다. 몰랐을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댕 댕'


큰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했다. 어제 수업을 받아 이번 주는 수업이 없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잠시 뒤 루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 루나? "


루나는 한껏 경직된 모습으로 헬라 앞에 아무 말 없이 앉았다. 헬라는 루나에게 지금까지 들은 것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 오늘 전할 게 있어서 왔어. "


루나가 다른 날과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루나의 목소리를 들은 헬라는 지금 루나가 불안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 뭔데요? "

" 선택의 날이 정해졌어. "


헬라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선택의 날이 정해졌다는 건 라일이 죽는 날이 정해졌다는 이야기였다.


" 언제죠? "

" 이틀 뒤야. "


빨랐다. 루나와 흑족의 선생들은 동선연습이 있으면 적어도 3일이라는 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정보까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틀 뒤라는 건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 그럼.. 라일이.. "


헬라 입에서 라일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루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는 헬라의 두 손을 잡고는 물었다.


" 라일을 만났니? "


불안해하는 루나의 모습에 헬라도 같이 불안해져 갔다. 항상 침착했던 루나가 이렇게 다급해 보이고 불안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 만났어요. 어제도, 오늘도. "

" 만나서 무슨이야기했어? "


루나는 불안해하는 헬라를 보며, 아차 싶었는지 꽉 쥐고 있던 헬라의 손을 놔주었다.

헬라는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 무슨 말 했냐고. "


헬라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말해야 하는 걸까, 아님 숨겨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하나였다. 루나에게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 꿈에 대해서. "


꿈이라는 단어에 안간힘을 써가며 잡고있던 루나의 냉정함은 무너졌다.

이제는 외면할 수 없었다. 정말로 헬라가 예언의 아이라는 걸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꿈이란건, 신비한 힘이기에, 그 신비한 힘을 평범한 인간이 가질 수 없었다.


루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라는 그런 루나의 모습에 불안했는지 다급하게 루나의 옷자락을 쥐었다.


" 왜 그러는 건데요? "

" 헬라, 그럼 다 들었겠구나. "

" 대충은요. "

" 꿈에 대해서 왜 나에겐 말하지 않았지? "

" 깨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졌으니까요. 별거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 나한테!! 바로 말해줬어야지! "


루나의 처음 보는 표정과 목소리였다.

큰 소리에 헬라는 당황해서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 왜 화내는 거에요? "

" 뭐? "

" 그럼 루나는 왜, 저한테 예언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어요? "

" 그건! "


말할 수 없었다. 난 아델이 보낸 너를 감시하는 자. 그래서 너에 대해서 모든 것을 보고 해야 하니, 예언이라는 걸 아예 몰라서 예언과는 상관없게 만들어놓고 싶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아델의 첩자라는 것 뿐. 전부 변명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루나는 헬라를 바라보았다. 헬라는 화나 있었다. 한번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던 헬라였다. 루나의 옷 안쪽에서 차가운 유리병이 느껴졌다. 그 촉감이 너무나도 소름이 돋고 싫어 진절머리가 났다.


" 왜 아무 말씀 못 하세요? 왜 저에게 예언에 대해서 말도 안해주셨냐구요. 저만 바보였어요. 저만 이곳에서 허수아비였다고요. "

" 예언을 알았으면 뭐가 달라지지? "


헬라는 루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넌 계속 몰랐어야 했어. "

" 왜요? 왜 제가 몰랐어야 했는데요? "

" 너의 삶은 지옥이 될 테니까! "

" 이상한 말씀하시네요. 지옥은 여기에요. "


헬라에게도 이곳은 지옥이었다.

라일에게도, 루나에게도 이곳은 그저 '악'이 득실거리고 인간성이 사라진 잔인한 흑족들이넘쳐나는 지옥같은 공간이었다.


헬라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루나는 그런 헬라의 모습에 마음이 아픈지 고개를 돌렸다. 변명은 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아무것도 모른 채 상처받을 헬라에게 자신이 얼마나 헬라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말해주고 싶었다.


" 알지 못했으면 했어. 예언의 아이에 삶은 너무나도 지옥같으니까. 그 길만 안걷게 하고 싶었어. 그래서 내 품에서 최대한 있기를 바랬어. 어느 어미가 자식이 지옥 길로 갈 걸 알면서도 알릴 수 있겠어. 말 할 수 없었어. 그저 내 품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


헬라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런데 내가 착각했구나, 내 품이여도 너에겐 여기가 지옥이란 걸. "


그랬다. 루나는 잘못 생각했다. 자신의 품이라면, 자신이 지킨다면 그 운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헛된 희망이였다. 헛된 기대였다.


" 그래. 너가 예언의 아이야. "


루나의 입에서 예언의 아이라는 말이 터지자, 헬라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부정하는 듯 했다. 루나마저 자신에게 예언의 아이라고 말하자 이제는 더이상 투정 부릴 수도 없을 것 같아서 헬라는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 아니라고 말해줘요. "


그럴 수 없었다. 확실했으니까.


" 아니. 넌 예언의 아이야. "

" 그런 거 따위 난 몰라. 하고 싶지 않아. "

" 하게 될 거야. 그게 너의 운명이니까. "


헬라의 복잡한 심경이 루나로 인해 터져버렸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에,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현실에 헬라는 무너졌다.


헬라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루나는 헬라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울고 있는 헬라의 볼을 감쌌다.

어느새 루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가여운 나의 헬라. "


루나는 울고 있는 헬라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어. "


헬라는 아무 말 없이 루나를 바라보았다.


" 빛이 있는 곳엔 어둠이, 어둠이 있는 곳엔 빛이. 서로 절대 떨어질 수 없지. 고로 어둠인 루신이 있는 한, 빛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할 거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


순간 루나의 말에, 번뜩 헬라는 꿈이 떠올랐다.

꿈속에 자신 앞에 있던 그 여인, 자신을 위로 하던 빛을 뿜어낸 그 여인.


" 빛을 다시 살리기 위해선, 어둠이 밖으로 나와야 해.이곳은 루신의 힘으로 가득하니까 안돼. 그러기 위해선 너. 예언의 아이인 너가 필요해. "

" 제가 필요하다니요? "

" 넌 어둠인 루신에게 있어서 자극적인 존재가 될 테니까. "

" 내가 어떻게.. "

"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여기까지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최대야. 다른건, 밖에서 알아봐야지. "


밖이라는 말에 헬라의 눈이 커졌다.


" 이틀 뒤, 너는 여길 도망쳐야 해. "


루나는 헬라의 어깨를 잡고는 계속해서 말해나갔다.


" 라일이 죽고, 너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무언가를 느껴봐. "


루나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듣던 헬라는 라일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루나에게 말할 순 없었다. 루나에게 가장 큰 걱정은 헬라 뿐이었기에, 더이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댕 댕'


수업이 끝났다는 종소리가 들리고, 루나는 헬라의 볼을 감싸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빠르게 나갔다.



* * * *



" 먹였나. "


아델은 루나가 헬라를 만났다는 사실을 듣고 루나를 불렀다. 하지만 자신 앞에 앉아있는 루나를 보자 아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직 루나가 헬라에게 피를 먹이지 않았다는 것을. 아델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를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 아직입니다. "


그런 루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 너가 끔찍이 그 계집을 생각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군. "

" 아..아닙니다. "

" 당장 이틀 뒤야. 내일까지 먹여. 안그러면 내가 직접 내려가겠다. "


직접 헬라를 보겠다는 아델의 말은 헬라가 거부를 해도 강제로 먹이겠다는 의미였다. 루나는 그렇게는 둘 수 없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해야했다.


" 네. 내일 꼭 먹이겠습니다. "

" 그리고 또 하나, 그 피를 먹이고 나에게 데려오도록 해. "


이미 아델은 헬라를 예언의 아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믿게 만든것이 루나였다. 루나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실수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델의 명령을 거부 할 권한은 없었다. 아델의 손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헬라의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괴로워하더라도 루나, 자신의 품에서 그러길 바랬다. 욕심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었다.


루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고 조심히 아델의 방을 빠져나왔다. 방을 빠져 나오자 긴장이 다소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루나는 휘청거렸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에 밀려오는 현기증으로 인해 벽에 손을 짚으며 힘겹게 걸어갔다.



* * * *



어느 새 밤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헬라는 종소리를 기다렸는지 소리가 울리자마자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오자 문 앞에는 아이들을 감시하던 관리자가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헬라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어디론가 향했다.


헬라가 향한 곳은 라일의 방이었다.


숨죽이면서 와서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라일 앞에 어느새 서있는 헬라였다.

라일은 그런 헬라의 모습을 보곤 당황했는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 할 말이 있어서. "



헬라는 아침보다 기가 죽은 채 라일에게 말했다.

라일은 그런 헬라를 외면하기 어려워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 한쪽을 내어주었다.


헬라는 라일 옆에 천천히 가 침대에 앉았다.



" 할 말이 뭔데. 빨리하고 가. 들키면 나만 죽어. "

" 그럴리 없어. 내가 막을 거니까. "


라일은 또다시 한숨을 쉬곤 헬라를 쳐다봤다.


"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어서. "

" 뭐가. "

" 꼭 '선' 이라고 해야하는거야? "

" 아침에 대답한거같은데. "


라일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그 단호함이 헬라의 마음에 무겁게 자리잡았다. 자신이 예언의 아이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각성이란거 라일의 희생이 아니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넘쳐났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헬라는 이 말은 꼭 라일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 난 안되겠어. 나 때문에 널 잃고 싶지 않아.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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