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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마음으로

귀농 후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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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
작품등록일 :
2024.09.03 16:1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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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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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다시 찾아온 여배우

DUMMY

9화 – 다시 찾아온 여배우


한 잔 두 잔, 술이 술술 넘어갔다.

마지막 남은 막걸리 한 병이 텅텅 비었을 때, 이장님이 트럭에 한 궤짝 막걸리를 싣고 오셨다.


“아따, 이장님요! 읍내에 있는 막걸리 다 쓸어 오셨는교?”

“고생했수다! 어여 일로 와서 한잔해요!”

“뭔 막걸리를 그새 다 마셨소? 이제 운전할 일 없지요들? 그럼 나도 한 잔 마십니다?! 으음··· 푸하! 쥬우타!!!”


어느새 마을 회관은 마을 잔치로 스케일이 커졌다.

밭일을 하거나 일을 보던 영감님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서울에서 뭐 하다 왔는감?”

“매니저 일 하다 왔습니다.”

“매니저? 그거 뭔 뻔드 매니전가 그런 건가? 돈 불려준다는 거?”

“아닙니다. 저는 자산 관리 매니저가 아니라 연예인의 일정을 관리하고 보살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아아! 연예인 매니저! 그렇구만! 호오. 역시 서울에서 할 법한 일이구만!”

“방송국 다녔는가? 그럼 이영웅도 봤어?!”

“하하. 본 적 있습니다. 얘기는 못 나눴지만요.”

“우와! 이영웅이랑 악수 한번 해보는 게 죽기 전 소원인데 말이야.”


내가 서울에서 하던 이야기가 깊어지자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트로트 스타들에 관심이 많으셨고 나는 부족하나마 알고 있는 트로트 방송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실제로 가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연습하는지, 단 5분의 무대를 위해서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노력하는 현장의 생생함도 전했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의 연예계 체험담은 인기가 좋았다.

어르신들은 감탄하기도 하며 웃기도 하셨다.


그러던 중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그러면 태진 총각은 누구 매니저 했나?”

“이런저런 사람을 매니지먼트 했었는데 아마 아실 만한 분이라면 배우 송나은이 있습니다.”


송나은과 일했던 시절은 서로가 신인이었을 때뿐이었지만 한때나마 송나은의 매니저였다는 사실은 내게 있어 큰 자랑이었다.

그래서 송나은의 매니저를 했다는 사실을 밝힐 때 내 기분은 들떴다.

게다가 그런 만큼 그 이야기를 듣는 어르신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아하! 송나은! 그 저녁에 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예쁘장한 처자 맞지?”

“이름은 잘 몰러. 사진 봐봐, 사진. 어··· 아아! 이 아가씨여?! TV에서 겁나 많이 나오는 아가씨 아녀?”

“맞아, 맞아! 연기도 기깔나게 잘하더만! 요즘 젊은 애들 중에 제일 연기 잘하는 것 같아.”

“어이구야! 대단한 사람 아니여? 그런 사람하고 같이 일 한거여?”

“실제로 보면 얼굴이 진짜 감자 한 알 만하다던데 정말인감?”

“어디에서는 참하게 나오더만 또 다른 데에선 아주 죽일 년으로 돌변하더라고. 진짜 성격은 어뗘?”


어르신들의 관심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모두 송나은이 나오는 드라마를 한 번쯤은 보신 모양이다.

덕분에 이야깃거리도 더 풍성해졌다.

나도 막걸리를 마신 탓에 흥이 올라 입담에 물이 올랐다.


하지만 그때 나는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이건 술에 취했을 때 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매니저란 여배우와 가까운 존재고 그렇기에 입단속을 잘하는 것이 미덕이다.

분위기와 기분에 휩쓸려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선 안 된다.


물론 풋내기 매니저들은 술자리에서 여자 연예인들의 비밀을 떠벌리길 즐긴다.

타인의 은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에게 쏠리는 관심을 즐기는 것이다.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그건 천박하고 한심한 취미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예인이 믿고 의지하는 매니저로서 최악의 실수다.


그렇기에 나는 못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나를 다스렸다.

스스로 추해 보이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나를 믿어주는 송나은의 신의를 저버리기 싫었으니까.

다행히 지금까지도 송나은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는 조금도 발설한 적이 없었다.

굳이 꺼낸 이야기가 있다면 그녀의 미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예요. 정말 노력 많이 하는 프로 중의 프로죠.”


나는 송나은에 관한 칭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다행히 어르신들도 재밌게 귀 기울여 주셨다.

도시에서는 비밀스러운 뒷담을 캐내려는 사람들이 많았건만, 어르신들은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아, 그러니께,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니께!”

“멀쩡한 사람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맹구가 된다 안 그러던가.”

“연기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나 한번 찍어봐봐.”


막걸리를 마시고 흥에 취한 어르신들은 껄껄 웃으며 폰을 꺼내어 촬영 흉내를 내셨다.

그리곤 오래전 TV 프로그램에서 주로 리포터들이 취재하던 스타일의 옛 방송을 따라 하셨다.


“이장님! 자기소개 한번 해봐요!”

“나 말이여? 어흠! 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름은 장덕수올시다. 해상왕 장보고의 후손으로 족보를 따지자면···”

“아, 그런 재미없는 얘기 말고! 됐어요, 됐어! 자, 자. 다른 사람. 참. 옥분이 누님 손녀가 서울에서 방송국 다닌다 안 하셨소?”


카메라는 어느새 양옥분이라는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조용히 전을 뒤집으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코웃음을 쳤다.


“손녀가 방송물 먹지 내가 먹남? 딱히 할 말 없으니 다른 사람 찍어.”

“에이, 재미없게 왜들 이래? 어쩔 수 없구만. 태진 총각! 자네가 한 번 보여줘.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건 이런 거다, 하고 말이야.”


결국 돌고 돌아 카메라는 나를 노려보았다.

당황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하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아까 그 송나은 이야기나 좀 더 해봐.”

“으음··· 나은이 얘기라면 밤새도록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먼저, 나은이는 워낙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좋아서 타고난 줄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거울 보며 표정 연습만 하루에 3시간 하는 아이예요. 동시에 발성 연습도 하면서요. 과장 안 보태고 한 20가지 스타일로 연기해 보고 그중에서 제일 괜찮은 걸 골라 촬영 때 선보여요. NG 없는 완전무결한 연기라는 평가 뒤에는 그런 노력이 숨어 있었던 거죠. 정말 존경하는 친구예요. 제가 한때 그 친구의 매니저였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요.”


어느새 내 말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송나은의 팬으로서 해줄 말이 많았으니까.

결국 내 열정을 버티지 못하고 카메라맨 어르신의 폰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이거 또 금방 죽어버리네. 아들한테 생일 선물로 하나 새로 사달라고 해야지, 원.”


카메라가 꺼지고 다시 달궈진 축제 분위기.

마을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는 더 부풀어 올랐고 해도 살짝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그쯤 되니 나는 서서히 불안해졌다.

눈앞에 뜨는 안내창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으니까.


[재배 조건: 외부 손님을 12시간 머무르게 하세요]

[현재 재배 완료까지 달성률: 0%]

[주의: 머무르는 사람이 집을 떠날 경우 달성률은 초기화 됩니다]

[남은 제한 시간: 18시간]

[실패 패널티: 텃밭은 영영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됩니다]


미션 완료 시간까지 고려하면 6시간 안에 조력자를 찾아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저, 이장님. 혹시 언제쯤 들어가시나요?”

“나? 아니, 이장이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마을 주민들이 모두 안전 귀가하는 꼴 보고 오늘 하루는 이 마을 회관을 지켜야지! 암, 그렇고말고!”

“댁에 안 들어가시려고요?”

“어차피 마누라도 지금 친정 갔응께. 모처럼 찾아온 자유···가 아니라 이장으로서의 책임이 있으니 집에 갈 순 없지!!”


이장님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왔다.

오늘은 정말 끝장을 볼 기세다.


안 되겠다.

다른 영감님께 말씀 드려봐야겠다.


“저, 실례합니다. 어르신.”

“오! 서울에서 온 총각! 이리로 와서 앉게! 내가 우리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알려줌세!”

“혹시 오늘 언제쯤 돌아가실 예정이신지···”

“쉬잇! 돌아가다니, 그런 소리 꺼내지도 말어! 저기 고스톱 치고 있는 할망구 보이지? 머리가 비 맞은 수탉맹키로 산발이 된 할망구 말이여. 우리 집사람인데 딱 한 잔만 먹고 일어나자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 저쪽도 재밌는지 별말을 안 해. 이대로 조금만 더 놀고 싶어.”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놀다 들어가 보겠다는 분과 건강상의 문제로 집에서 등허리를 지져야 한다는 분.

아예 이장님처럼 마을 회관에서 주무시겠다는 분도 계셨다.


“이런···”


낭패였다.

집에 모시고 가서 함께 미션을 수행해 줄 조력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텃밭이 사라질 절망적인 미래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숨만 나오던 그때였다.


“이봐, 총각.”

“아, 네! 어르신!”


누군가 어깨를 쿡 찌르며 날 불렀다.

얼른 미소를 만들고 몸을 돌려보니 묵묵히 요리를 도맡아 하시던 양옥분 할머니라는 분이셨다.


“쯧쯧. 젊은 사람이 안 하던 시골 일도 거들고 촌 음식도 억지로 먹으니 속이 부대끼지? 노친네들 상대하는 것도 피곤할 테고.”

“아닙니다! 저 멀쩡합니다.”

“아니긴. 얼굴에 다 써 있구만. 그만 들어가자고. 집까지 데려다 줄 텡께. 지금부터는 늙은이들 인생 한탄 얘기밖에 더 안 나올 테니 젊은 사람한테는 그다지 보기 좋은 꼴이 못 될 거야.”

“하지만 어르신께 운전을 맡기기엔 너무 죄송한걸요.”

“주변 한번 둘러봐. 다들 취해서 제정신인 사람 하나도 없어. 이 마을에서 입에 술 한 방울 안 대는 사람은 나뿐이여. 그러니 잔말 말고 차에 타. 이장님요! 차 잠깐 빌립니더!”

“도랑에 빠지지 마이소!!”


양옥분 할머니의 몰아치는 기세에 나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뒤에 식혜가 잔뜩 담긴 장독이 부드럽게 출렁이며 차는 출발했다.



*****



분명 올때랑 같은 길이었는데 승차감은 확연히 편안했다.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던 이장님보다 양옥분 할머니의 운전이 훨씬 부드러웠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맛있는 음식도 대접해 주신 데다 수고스럽게 태워주시기까지 하시고.”

“말 말어. 그리고 그 어르신 소리 별로니까 할머니라고 불러. 알았지?”

“아, 네! 그리하겠습니다.”

“장독 내릴 수 있겠어?”

“그럼요, 할머니! 저 힘 쎕니다!”


술에 취했지만 피로야 물럿거랏! 방울토마토 덕분에 힘은 짱짱했다.

덕분에 무사히 장독을 대문 앞에 내린 나는 양옥분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꾸벅 올렸다.

그렇게 허리를 숙이고 바닥을 보는 내게 안내창이 눈치 없게 떴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남은 제한 시간: 16시간]

[실패 패널티: 텃밭은 영영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됩니다]


현재 시간은 밤 10시.

희망은 거의 꺼질듯한 촛불 수준이었다.


급한대로 양옥분 할머니에게 무리한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사람이 자기 목적을 위해 남에게 무례하게 굴어선 안 된다.

그것도 날 걱정해서 친절을 베풀어주신 할머니 같은 분께 말이다.


내 욕심 탓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짐승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텃밭을 지킨들 기쁠 리가 없다.

오히려 어머니와의 추억이 더럽혀질 뿐일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십쇼!”


결심을 내린 나는 작별을 고했다.

그 길로 양옥분 할머니는 트럭을 타고 떠나가셨다.


“후우. 뭐, 어쩔 수 없나.”


이걸로 끝인 것 같다.

앞으로 펼쳐질 텃밭의 기적이 더 궁금하긴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덕분에 마을 어르신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저 신비한 방울토마토의 기적을 느낀 것이 즐거웠고,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송나은에게 용기를 채워주는 체리를 선물할 수 있어서 기쁠 따름이다.


“집이구나.”


나는 대문을 열고 장독을 들어다 옮겼다.

끙끙대며 장독을 텃밭 구석에 놓아두고 허리를 폈다.


그렇게 텃밭에서 바로 보이는 마루를 내다보았을 때였다.


“어?”


왜?

여기 있는 걸까?


“태진 오빠.”


송나은이 말이다.


[텃밭에 새로운 작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이번 작물: 뼈가 튼튼! 포도]

[효능: 한 알 섭취 시 관절 염증이 씻은 듯 치유됩니다]

[재배 조건: 외부 손님을 12시간 머무르게 하세요]

[현재 재배 완료까지 달성률: 0.3%]

[주의: 머무르는 사람이 집을 떠날 경우 달성률은 초기화 됩니다]

[남은 제한 시간: 16시간]

[실패 패널티: 텃밭은 영영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됩니다]


멈춰 있던 달성률이 어느새 진행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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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피부 등급: A] → [피부 등급: S] NEW +1 16시간 전 369 18 12쪽
19 마을 잔치에 나타난 톱 여배우 24.09.17 657 19 14쪽
18 진짜배기 시골 솥뚜껑 삼겹살 +1 24.09.17 761 17 14쪽
17 톱 여배우와 톱 여가수의 만남 24.09.16 835 18 14쪽
16 손님 10명을 6시간 동안 머물게 하세요 +3 24.09.15 904 21 13쪽
15 왜 나한테 자고 가라고 했어요? 24.09.14 1,011 22 14쪽
14 오빠, 나랑 여기서 카페나 차릴래요? 24.09.13 1,070 22 13쪽
13 너도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 +1 24.09.12 1,112 21 15쪽
12 관절 염증이 치유되는 뼈가 튼튼! 포도 24.09.11 1,181 22 13쪽
11 톱가수가 집에 찾아왔다 24.09.11 1,330 23 14쪽
10 여배우와 또다시 하룻밤을 24.09.10 1,488 21 14쪽
» 다시 찾아온 여배우 24.09.09 1,425 23 13쪽
8 나는야 마을의 인기쟁이 24.09.08 1,452 21 15쪽
7 식혜 받으러 가자고 +3 24.09.07 1,719 22 13쪽
6 용기 만땅! 체리 +1 24.09.06 1,855 26 14쪽
5 역시 태진 오빠는 좋은 사람이야 24.09.05 2,088 30 14쪽
4 톱 여배우와 하룻밤 24.09.04 2,358 33 13쪽
3 피로야 물럿거랏! 방울토마토 +3 24.09.03 1,960 26 12쪽
2 나누리 마을 회관 +2 24.09.03 2,060 28 15쪽
1 쉬고 싶어서 +1 24.09.03 2,342 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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