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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마음으로

귀농 후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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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주
작품등록일 :
2024.09.03 16:1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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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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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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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식혜 받으러 가자고

DUMMY

7화 – 식혜 받으러 가자고


강미나는 백미러로 살짝 눈치를 보았다.

지금 송나은은 어떤 기분일까.

당분간 푹 쉬라고 시골에 내려보냈는데 고작 하루 만에 차에 태워 다시 서울로 데려가고 있으니 미안했다.


‘흐음! 주눅 들면 안 되지.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럴 때일수록 텐션을 높여야 한다.

배우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도 매니저의 일.

송나은이 긴장하지 않도록 즐거운 얘기를 나눠보자.


“나은아! 울 할머니 밥 어땠어? 맛있지? 특히 나물무침이 장난 아니었을 거야. 직접 기른 채소는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거기에 시골에서 직접 짠 들기름까지 뿌려 버무렸으니 얼마나 맛있겠요?! 밥은 많이 먹었어? 고봉밥으로 퍼 주시지?”


강미나의 목소리 톤이 한 음은 더 올라갔다.

그걸로 송나은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매니저로서 강미나는 그렇게 심각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무색했다.

예상 밖에도 송나은은 너무도 편안한 얼굴을 한 채 미소 짓고 있었다.

더불어 목소리도 행복한 기억을 자랑하듯 들떠 있었다.


“네, 언니. 정말 맛있었어요! 가마솥에 지은 밥은 처음 먹어봤는데 냄새도 구수하고 맛도 달달한 게 진짜 밥만 먹어도 맛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니까요! 아, 참! 그리고 남은 밥풀들은 싹싹 긁어모아 누룽지를 끓여 먹었는데 그게 진짜 우와··· 그건 도저히 못 잊을 후식이었어요.”


백미러에 비친 송나은의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강미나는 당황했다.

물론 컨디션이 좋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하루 만에 사람이 이렇게 180도 달라진다는 건 오히려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혹시 완전히 다 포기해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나은아. 이런 말 물어보면 좀 그렇지만··· 너 괜찮아?”

“네? 뭐가요?”

“그게, 하루 만에 텐션이 너무 달라진 것 같아서. 여기 내려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너 완전히 세상 끝난 것 같은 표정이었거든.”

“아아. 그땐 정말 죄송했어요. 걱정 많이 하셨죠?”

“배우 걱정하는 게 매니저 일인데, 뭘. 지금은 정말 괜찮은 거야?”


차를 몰아가면서도 강미나는 백미러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꼼꼼하게 송나은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살폈다.

그러나 그 속에 거짓은 없었다.

정말, 진심으로 송나은의 얼굴에는 기분 좋을 때나 보이는 화색이 번졌으니까.


“완전 100% 괜찮아요! 저도 놀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요. 언니도 못 믿으시겠지만 지금이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정말? 으응. 그래··· 그래! 잘됐다! 하하. 역시 잠깐이지만 시골에 내려 갔다 오니 기분 전환이 된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진짜 잘 됐어!”


솔직히 강미나는 어떻게 송나은이 이렇게나 완벽하게 회복 되었는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만 떠올리면 오들오들 떨던 송나은이 촬영을 앞두고 저토록 밝게 웃을 수 있다면 이유가 어찌 되었든 축하해 줄 일이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좋은 일은 순수하게 기뻐하자.

그런 마음으로 액셀을 밟았다.


“좋아! 이 기세로 서울까지 직진이다!”


서울로 진입하는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이제 촬영장까지 금방이다.



*****



촬영장에 도착한 송나은은 대기실에 앉아 마지막 남은 체리 한 알을 들여다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예쁜 보석 같았다.


“예쁘다···”


송나은은 이 체리를 볼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생김새나 맛이 인상적인 것도 있지만 이 체리 안에는 자기를 향한 김태진의 응원과 관심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후훗.”


괜히 혼자 웃음이 나왔을 때 아뿔싸,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고 맘 놓고 웃어본 적이 언제였을까.

김태진은 송나은에게 그런 존재였다.

골치 아픈 세상사와 잠시 이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준 체리라서 그런 걸까.

송나은은 이 체리에서 특별한 힘을 받았다.


바로 먹으면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힘.

반쯤은 과장 섞인 장난처럼 말했던 김태진의 그 말이 정말 사실처럼 느껴졌다.


“할머니 집에서 하나, 그리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하나 먹었으니 마지막 하나만 남았네.”


체리가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물론 신묘한 힘을 주는 기적의 환약이 사라진다는 아까움도 있었지만 만질 수 있는 김태진의 특별한 관심이 사라진다는 게 더 아까웠다.


“이건, 나중에 먹자.”


송나은은 다시 손수건을 곱게 싸서 가방에 챙겼다.

때마침 강미나가 대기실 문을 노크했다.

시간이 됐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설 때다.


또각- 또각-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를 내며 송나은이 걸어 오자 촬영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내뿜는 외모가 충격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송나은에게서 흐르는 아우라가 공간을 지배한 것이다.


“우와, 진짜 송나은은 송나은이구나.”

“존예다. 포스도 쩔어. 그냥 걸어오기만 해도 영화네, 영화야.”

“저 하이힐 얼마짜리야? 명품인가 봐.”

“저거 협찬 들어온 건데 명품도 아니야. 가격도 59,000원이라던데.”

“고작 그 가격대 물건을 저렇게 빛낸다고? 세상에. 모델이 명품이니까 뭘 신어도 고급져 보인다.”


풋내기 스태프들은 감탄하기 바빴다.

송나은의 걸음걸이, 눈빛, 심지어는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하지만 감독만큼은 달랐다.

그는 바로 깨달은 것이다.

송나은이 벌써 연기에 돌입했다는 걸.


“야, 야, 야! 뭐하냐, 뭐해?! 빨리 위치에 서! 촬영은 이미 시작됐어!!”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스태프들도 후다닥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늦긴 했지만 그들도 프로로서 느낀 것이다.

대배우 송나은의 연기를 지금부터 한 컷도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감독의 쩌렁쩌렁한 안내와 동시에 현장이 조용해지고 송나은이 카메라 앞에 섰다.

송나은은 앞선 촬영을 떠올렸다.

카메라와의 눈싸움에서 졌던 그 부끄러웠던 기억을.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저 카메라를 눈빛만으로도 꾸깃꾸깃 구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김태진이 준 그 용기를 가슴에 담고 송나은은 첫 대사를 내뱉었다.


그날 촬영은 성공 그 이상의 대박을 쳤다.

스태프들의 소름 돋았다는 환호와 박수 속에 감독은 가장 크게 환호하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송나은은 다른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지금 당장 얼른 시골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



나는 점심상을 치우고 늘어지게 낮잠을 한숨 때렸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오후 태양.

급할 것 없이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거기에 바짝 말라 햇살 섞인 섬유 유연제 향이 폴폴 풍기는 빨래.


마치 자연이 작정하고 나를 힐링해 주는 기분이었다.

시골에서의 평화로운 지금의 1분 1초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거지, 이거야.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어. 후우··· 이 좋은 삶을 왜 그간 모르고 살았을까.”


마루에 드러누워 아무 걱정 없이 오로지 내 행복만을 느끼는 이 시간이 너무도 좋았다.

도시에서는 꿈도 못 꾸는 평화다.

실적과 인맥 관리에 바빴던 지난날들.

총소리만 없었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소속 연예인을 잘 봐달라고 허리가 휘도록 굽신대기도 했고 간이 망가질 때까지 술을 억지로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호형호제하다가도 자기한테 10원 한 푼 이익이 안 된다면 곧바로 경멸 어린 눈빛으로 돌변하는 세계였다.


서러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슬픔은 담당하는 연예인이 모욕을 줄 때였다.

나는 원래 갑질이라는 단어가 호들갑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매니저라면 스타의 손발이 되어서 잔심부름을 하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인권을 유린당하는 순간 아, 이게 갑질이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견딜 수는 있었지만, 마음이 부서졌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될 가망이 없었을 땐 부서진 마음은 가루가 되었었다.


그런 도시 생활이었다.

굴욕, 배신, 슬픔, 비참, 원망.

인간으로 태어나 느낄 수 있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느껴봤던 시절.

내게 지옥 같았던 시절.


그러니 지금 이 귀농 라이프가 내게는 너무도 행복하고 또 소중했다.

마치 도시의 삶이 현실이고 이 시골에서의 삶은 깨지 않은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깨지 않는 달콤한 꿈에 파묻힌 채로.


그치만 언제까지고 조용할 것만 같았던 이 생활도 조금씩은 톡톡 튀는 즐거움이 생겼다.

바로 이 나누리 마을의 이장님 덕분이었다.


“아이고, 우리 김 장군!! 마루에 대자로 누워 풍류를 즐기시는가? 하하하! 역시 호걸은 열심히 일한 만큼 자는 것도 시원스레 잘 자는구만!”

“이장님 오셨습니까?!”


열어 놓은 대문으로 이장님이 들어오시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나는 드러누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이장님을 맞이했다.


“마루에 좀 앉으시죠. 마실 거라도 내오겠습니다!”

“아녀, 아녀.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내놓을 거 없는 거 다 알어. 신경 쓰지 마.”

“아··· 실은 마땅히 드릴 게 물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시원한 식혜 한 잔 마시러 안 갈 텐가?”

“식혜요? 그거 좋죠!”

“마침 마을 회관에서 식혜를 새로 담갔거든. 넉넉하게 담았으니 좀 챙겨가게.”

“아유, 염치없지만 듬뿍 챙겨가겠습니다.”

“다 챙겨가. 어차피 노인네들뿐이라서 많이 못 마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그나저나 식혜 담을 병을 좀 챙겨야할 텐데··· 아, 이거면 되겠다.”


나는 마침 비어 있던 2L짜리 생수통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에 식혜를 받아 오면 되겠다며 실실 웃던 그때였다.


“그 병은 뭔가?”

“네? 식혜를 나눠주신다기에 담을 병을 챙겼습니다만.”

“이이잉! 쯧쯧쯧! 아니! 천하의 신라 대장군 김 장군 기개가 왜 이런가?! 고작 그거 받아서 누구 코에 붙이려고?! 우리 마을 사람들 인심이 그리도 야박하다고 했나?! 아니면 우리 나누리 마을이 그냥 이름만 나누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이장님!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다 퍼가면 오히려 눈치 없이 결례를 끼칠까봐 조금만 담아가려 했습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필사적인 호소가 먹힌 걸까.

다행히 이장님의 표정이 다시 하회탈 미소로 돌아왔다.


“아, 그런가?! 허허허! 역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태평양 바다가 따로 없구만! 김 장군은 참 요즘 젊은이들 답지 않게 염치라는 걸 알고 배려라는 걸 아는구만! 그런 마음가짐 나쁘지 않아! 하지만 말이야, 이제 우리는 한마을 사람 아닌가? 게다가 나도 김 장군을 좋게 보고 있으니 식혜 가지고 째째하게 굴 생각은 없네.”

“그렇게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병을 좀 더 챙기는 편이 나을까요?”

“음··· 오호. 마침 저기 좋은 게 있구만.”

“···네?”


나는 헛웃음이 픽, 나왔다.

이장님이 가리킨 건 다름 아닌 텃밭 옆에 처박혀 있던 큼직한 장독이었으니까.


“장 담가 논 거 없지? 그럼 내 트럭 뒤에 저거 실어다 가자고.”

“아니, 이장님. 그렇게 퍼 주시면 뭐가 남나요?”

“뭐가 남긴!!”


내 물음에 이장님은 갈! 을 외치시듯 불호령을 터트리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내 코끝은 찡해졌다.


“정(情)이 남지!”


더 이상 무슨 사양이 필요하랴.

그저 감사의 인사를 꾸벅 올리고 장독을 트럭 뒤에 실을 수밖에.


“자, 그럼 이제 출발하자고!”


이장님이 트럭에 올랐고 나는 혹여나 모를 상황을 생각해 남은 피로야 물럿거랏! 방울토마토 4알과 용기 만땅 체리 2알을 챙겼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마을 회관으로 출발하려는 그때,


“허엇?!”


텃밭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위에 뜬 안내창은 새로운 미션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텃밭에 새로운 작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이번 작물: 뼈가 튼튼! 포도]

[효능: 한 알 섭취 시 관절 염증이 치유됩니다]

[재배 조건: 외부 손님을 12시간 머무르게 하세요]

[현재 재배 완료까지 달성률: 0%]

[주의: 머무르는 사람이 집을 떠날 경우 달성률은 초기화 됩니다]

[제한 시간: 24시간]

[실패 패널티: 텃밭은 영영 사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됩니다]


이건 어쩌면···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핵인싸가 될 법한 보상이 나올 것만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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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여배우와 하룻밤을 보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피부 등급: A] → [피부 등급: S] NEW +1 16시간 전 369 18 12쪽
19 마을 잔치에 나타난 톱 여배우 24.09.17 657 19 14쪽
18 진짜배기 시골 솥뚜껑 삼겹살 +1 24.09.17 761 17 14쪽
17 톱 여배우와 톱 여가수의 만남 24.09.16 835 18 14쪽
16 손님 10명을 6시간 동안 머물게 하세요 +3 24.09.15 904 21 13쪽
15 왜 나한테 자고 가라고 했어요? 24.09.14 1,012 22 14쪽
14 오빠, 나랑 여기서 카페나 차릴래요? 24.09.13 1,070 22 13쪽
13 너도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 +1 24.09.12 1,113 21 15쪽
12 관절 염증이 치유되는 뼈가 튼튼! 포도 24.09.11 1,182 22 13쪽
11 톱가수가 집에 찾아왔다 24.09.11 1,330 23 14쪽
10 여배우와 또다시 하룻밤을 24.09.10 1,488 21 14쪽
9 다시 찾아온 여배우 24.09.09 1,425 23 13쪽
8 나는야 마을의 인기쟁이 24.09.08 1,452 21 15쪽
» 식혜 받으러 가자고 +3 24.09.07 1,720 22 13쪽
6 용기 만땅! 체리 +1 24.09.06 1,856 26 14쪽
5 역시 태진 오빠는 좋은 사람이야 24.09.05 2,088 30 14쪽
4 톱 여배우와 하룻밤 24.09.04 2,358 33 13쪽
3 피로야 물럿거랏! 방울토마토 +3 24.09.03 1,960 26 12쪽
2 나누리 마을 회관 +2 24.09.03 2,060 28 15쪽
1 쉬고 싶어서 +1 24.09.03 2,342 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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