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영을 기다리며 신독은 신중히 지형을 탐색했다. 다행히 죽었다면 아무 일도 없을 지도 모르지만……. 사공운의 반응을 보아선 소혼술이란걸 익혔을 지도 모른다. 더구나 초우지보의 존재를 수하들에게 밝혔을 지도……. 초영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기보(奇寶)에 약한 것은 강호인의 속성. 자기들끼리 추적할 지도 모른다.
자신이 있는 곳은 너덜지대를 지난 참나무숲의 언저리였다. 오는 길에 핏자국을 완전히 지
우진 못했으니 추격자가 있다면 이 곳으로 밀어닥칠 것이다.
신독은 연혼사를 꺼내어 참나무숲의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옥수공(玉手功)을 익
혀 만져도 괜찮지만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경공을 시전하다 연혼사에 걸리면 그대로 절단될
것이다. 잠시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몸의 여기저기가 삐걱대고 있었다. 무공으로 단련되었다지만 급격한 출혈과 자상(刺傷)으로
신독의 몸은 간신히 움직일 지경이었다. 이 몸으로 추격을 저지해야 한다.
준비를 마친 신독은 참나무 가지에 몸을 실어 가부좌를 틀고 수령신공을 끌어올렸다. 숲 속
에서 최대한으로 기를 보충해야 한다. 이목을 활짝 틔어 추격의 동태를 미리 파악해야 한다.
우려했던 바가 현실화되었음을 신독은 깨달았다. 운기를 하며 이목을 세우다 추격자의 동태
가 미미하게 감지되었다. 눈살을 찌푸렸다. 저기 초영도 있을 것인가.
초영은 온 몸이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금강연혼대법으로 봉성에서 초인이 된 이후 처음 겪
은 좌절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연문을 운좋게 뚫었다지만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초영은 사
공운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초우지보가 더욱 탐이 났다. 초우지보에는 유령초결(幽靈
超訣)의 비밀이 담겨 있었다. 그것만 익힌다면 자신의 사행마공이 완전한 오행마공(五行魔
功)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아직 미숙한 대법으로 인해 생긴 연문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소혼술로 멈춘 심장의 혈맥을 되살려 살아났지만 역시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하들을 총동원한다면 아직 기회는 있었다. 사공운은 아직 그의 손을 완전히 빠져나간 것
이 아니었다. 100여 명의 수하들을 총동원했다.
지저분한 옷차림에 땟국이 줄줄 흐르는 손을 한 늙은 사내가 초영에게 다가왔다.
"대제, 놈의 핏자국이 이 바위에서 끊긴 것으로 보아 여기서 치료를 하고 저기 보이는 숲으
로 향한 듯 합니다."
"소백진(素百疹)! 좀 떨어져서 보고하랬지? 냄새 나잖아?"
최고의 추새꾼이었지만 왜그리 씻지를 않는지, 제 놈 말로는 자연과 동화되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리 봐도 지저분한 놈이다. 초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녹의의 가슴에 붉은 꽃을 수놓은 것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초영은 유난히 깔끔을 떠는 병이 있었다. 소백진의 능력이 아니었으면
절대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이 놈도 백살이나 된 노마(老魔)축에 드는 놈이니까.
소백진은 입을 삐쭉이며 머릿 속에서 이를 한 마리 잡아 입에 넣었다. 그의 오랜 버릇이었
다.
"저 숲이라고? 그럼 빨리 가자!"
"신독이라는 놈이 아직 살아있는 듯 합니다. 산에 익숙한 놈이었으니 무슨 장난을 해 놓았
을 지도 모르겠군요."
용모와는 다르게 논리적으로 추론하자 초영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생긴대로 멍청하기나
할 것이지……. 이 놈과는 정말 궁합이 맞지 않는다.
"잔소리 말고 빨리 애들을 투입해! 내게 일장을 맞아 갈비뼈가 폐를 상하게 했을 거다. 어깨
와 다리에도 칼을 맞았어. 정신만 차리고 있어도 대단한 거야. 헛소리 말고 빨리 가자!"
급습으로 인해 아직 몸이 정상이 아닌데다 분노와 짜증이 겹쳐 이변마왕 초영은 이성을 잃
고 수하들을 몰아 숲으로 내달렸다. 소백진은 고개를 흔들며 따라 나섰다. 어쩔 수 없지 않
은가. 한 번 주군으로 모신 이상.
달려오는 초영패거리를 보던 신독은 은신을 하고 물결처럼 나무 사이를 건너 숲의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은 숲. 몸이 정상이 아니더라도 할 만 했다. 초영도 이성을 잃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가.
본디 이성을 잃으면 평소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법. 한가닥 희망이 생겼다.
슈칵!!
"악!"
"컥!"
여기 저기서 비명이 터지며 팔과 발목, 목이 절단된 수하들이 나뒹굴었다. 숲의 그림자가 연
혼사를 감춘 것이다. 돌진의 명령에 나무와 지면을 가로 지르던 이변마왕의 암살대는 순식
간에 연혼사의 매복에 걸려 반수 가까이 죽거나 다치고 말았다. 살아남은 녀석들도 하나같
이 팔다리를 잃었으니, 더 이상 추격대로서 힘을 실을 수 없었다.
"주위를 경계하며 나아가!"
"대제! 다친 것들을 치료할 인원도 남겨야 됩니다."
애써 기른 수하들의 죽음에 눈이 시뻘겋게 달궈진 소백진이 초영에게 말했다. 순간의 분노
로 많은 피해를 입은 초영의 분노는 더욱 거세어졌다. 소백진의 말은 옳지만 결국 자신의
탓이라는 말 아닌가!
"놈! 지금 내게 훈계하는 것이냐?"
소백진은 초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십 년을 함께 한 사람이다. 자신의 더러움을 탓해
도 결국은 언제나 자신을 알아주던 마왕, 마제였다.
초영은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열 명을 남겨라. 나머진 함정에 주의하며 전진한다."
"존명!"
소백진의 일사분란한 지휘로 사상자를 추려내고 초영의 암살대는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숲 속의 나무를 헤치고 연혼사가 은밀히 날아들었다.
츄익!
"큭!"
열 명 째. 연혼사를 나무사이로 휘저어 날려 은밀히 적을 살상하는 신독은 호흡이 점차 가
빠져 옴을 느꼈다. 한계였다. 이제 만겁사로 승부를 내야 한다.
조금 있으면 숲 속의 공지(空地). 그 곳에서 단 번에 이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할 수 있을까? 형으로 삼은 사공운과 용설아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초영은 분기가 끓어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이 놈은 숲의 귀신이었다. 나무 사이를 요리저리
헤집어 날아드는 저 놈의 사도(絲刀)에 벌써 열 명의 수하를 잃었다. 남은 인원은 이제 사십
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
"모두 다섯명씩 조를 이룬다. 이목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멀쑥한 공터가 나왔다. 숲이 다한 것은 아닌데, 예전에 화전민이 밭을 일구었나? 잡풀만이
무성한 공지였다.
'내가 끝장낸다. 만겁사라면 가능해!'
결의를 다지며 신독은 연혼사를 추스렸다. 지금 상태로 만겁사를 시전하면 진기가 역류해
죽거나 폐인이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마지막 기회였다.
조심스런 전진을 하며 초영의 무리가 공터로 스멀스멀 모여들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초영이 보인다. 바로 곁엔 지저분한 늙은이 하나.
신독은 몸을 숨긴채 기다리다 거리가 확보되자 몸을 일으키며 만겁사를 발출했다.
천지사방이 빽빽이 검은 연혼사로 뒤덮이며 전방 오십여 장을 휩쓸었다.
검은 비사(飛蛇)가 자욱히 이빨을 드러내고 날아가는 듯.
쉬우우파!
초영은 순간 앞으로 몸을 날렸다. 수하들을 돌볼 틈도 없는 갑작스런 공격. 자칫하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연혼사의 최대 절초라는 만겁사인가! 저 놈을 해치워야 최대한
수하들을 살릴 수 있다.
사행마공의 절정 공력. 사행시대마력을 발출했다. 녹색의 강환( )이 신독에게 폭사되었다.
장력의 최절정이 현세하는 순간.
콰광!
강환에 격중된 신독은 가슴이 움푹 꺼져 피보라를 날리며 훌훌 날려갔다.
뒤로 튕겨져 나가는 신독의 눈 앞에 온 몸이 만겁사에 꿰뚫린 초영의 수하들이 보였다.
지저분한 늙은이도 남은 수하들도 모두 한 숨에 날려버렸다.
초영은?
"으……흐흐, 백 오십수를 살면서 이렇게 당하긴……처음이다. 쿨럭."
신독의 눈앞에는 만겁사의 위력에 휩쓸린 피투성이 초영이 우뚝 서있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났단 말인가.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얼굴에도 핏자국이 듬성였으나 초영
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금강불괴였단 말인가…….
신독은 툴툴 웃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 노마를 막지 못했구나. 결국 형님이 맡으셔야 할
듯 하다…….
꺼져가는 신독의 눈빛을 보며 초영은 멱살을 잡아 눈앞에 들어올렸다.
"이……놈, 편하게 죽게 해줄 듯 싶으냐?"
백여 명에 달하는 정예수하들을 잃은 초영은 눈이 뒤집혀져 갔다. 가장 처절한 죽음을 내리
리라. 오십 년을 함께한 소백진도 잃었다. 봉성의 명을 어겨가며 동원한 오랜 수하들도 모
두.
신독은 눈을 떠 초영의 가슴을 보았다. 사공운에게 찔렸던 그 곳이 만겁사의 위력으로 너덜
해진 옷 사이로 보였다. 아직 붉은 상처……, 연문이구나.
"크크……, 네……놈은 절대 사……형님을 해치지 못……해."
신독은 마지막 힘을 모아 옥수공으로 단련된 손을 들어 초영의 가슴에 쑤셔박았다.
외공으로 단련한 그의 손은 마지막 순간에도 그의 뜻에 따라주었다.
푸욱!
심장이 손에 닿았다. 이번엔 다시 못 살아나게 해……주지. 마지막 힘을 모아 힘껏 터뜨렸
다.
"커헉!"
신독을 들고 있던 초영의 팔에 힘이 빠져 간다. 마지막 방심으로 천추의 한……을…….
눈빛이 흐려지며 초영은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초우지보를 향한 집념은 결국 그의 몸을 삼켜 버린 것이다.
애초에 배교지존령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닌……것을…….
땅바닥에 뒹군 신독은 초영을 보았다. 이제 완전히 숨을 멈춘 듯.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 것
이다. 심장을 터뜨려 버렸으니까…….
몸을 힘겹게 돌려 신독은 하늘을 보았다.
점차 흐려지는 신독의 눈앞에 풍백이 보인다. 사공운이 보인다. 용설아가 보인다. 무림맹의
동지들이 보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그니가 보인다.
이제 쉬어야 할 때. 신독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여산의 한켠 참나무숲의 공지에 휘황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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