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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검 님의 서재입니다.

고블린 군단으로 종말 부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창조C
작품등록일 :
2019.09.11 15:07
최근연재일 :
2019.09.18 18:10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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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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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수 :
80,982

작성
19.09.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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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고블린 던전(1)

DUMMY

쿠웅!

“아오, 엉덩이야. 아파 죽겠네.”

젠장, 포탈이라는 곳에 빨려 들어갔다 나오니 냅다 바닥에 엉덩이부터 떨어져 버렸다.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옆에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애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손으로 흙을 탈탈 털며 일어난다.

“크흠, 이런 망할, 여긴 또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니 동굴 같은 곳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대략 좌우 지름이 15M 정도 되는 작은 원형 공간이다.

다른 방향으론 출구가 보이지 않고 내 앞쪽으로만 사람 5명이 나란히 걸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동굴 통로가 뚫려있다.

앞서 있던 광장처럼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닌 마치 자연 동굴인 듯 벽면과 땅이 거친 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코로 습기와 축축한 냄새가 느껴진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5명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광장에서부터 줄곧 내 옆에 있던 여자애가 나를 보더니 킥킥대며 말한다.

“아저씨, 그게 아저씨 무기에요? 엄청 무식해 보이는 무기네. 하하”

뜬금없는 여자애의 말에 내 손을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철거 현장에서 일 할 때 종종 쓰던 작업용 망치가 들려있다.

통칭 오함마라고 부르는 물건으로 길이 80cm 정도에 손잡이는 가죽으로 마감이 돼있고 머리 부분에는 사각형으로 다듬어진 쇳덩어리가 살벌하게 달려있었다.

“이게 대체 언제,,,,?”

“다른 사람들도 똑같아요. 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제 손에 활하고 화살이 들려있던 데요.”

여자애의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저마다 한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몸이 좋아보이는 근육질 남자는 강철 건틀렛을 손에 착용하고 있었고 늘씬한 몸매에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는 긴 채찍을 들고 있다.

그리고 왜소한 체격에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는 생뚱맞게 손에 작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니 새삼스레 내가 알고 있던 일상이 멀어진다는 사실이 체감되기 시작했고 손에 느껴지는 망치의 차가운 감촉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 ◆ ◆


각자가 상황에 적응할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손에 작대기를 들고 있던 남자가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분, 잠깐 모여서 이야기 좀 하시죠. 이렇게 5명이 떨어져서 행동하느니 같이 힘을 합쳐서 다 같이 퀘스트를 완료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퀘스트 완료라...난 아직 이 상황이 실감이 안 나긴 했지만 혹시나 싶어 조그맣게 퀘스트 창을 불러본다.

곧바로 눈앞에 파란 창이 뜨며 퀘스트 창에 남은 시간이 2시간 50분으로 나온다.

게임같은 비현실적인 광경에 나도 모르게 이가 부득 갈린다.

그 사이 말을 꺼낸 남자가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우선 저는 일성그룹 미래전략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이근오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무언가 듣기에도 엄청 높아 보이는 직책이다.

“유도 국가대표 황병철입니다.”

짧게 인사하는 건틀렛을 찬 근육질의 거한은 역시나 운동선수였고

“안녕하세요. 민서린이에요. 영화배우입니다. 촬영 중 잠깐 쉬는 사이에 여기로 소환 당해버렸네요.”

채찍을 들고 있는 여자는 영화배우라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길에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에서 종종 봤던 얼굴이다.

그렇게 쭉 돌아 날 깨워준 여자애 차례가 오자 여자애가 자기 소개를 한다.

“한소예에요. 예전에 양궁 국가대표였어요.”

양궁 국가대표란다.

양궁 국가대표는 인성을 안보고 뽑나보다.

그나저나 아까 관리자 놈이 10만 분의 1 확률 어쩌고 하더니 모인 사람들이 정말 하나같이 TV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 역시 국민여동생으로 유명한 한소예 양이셨네요.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요즘은 TV활동을 안 하셔서 서운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영광입니다. 하하”

“...국민여동생이란 호칭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렇게 안 불러주셨으면 하네요.”

“아, 하하하.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작대기를 든 일성그룹 머신가가 여자애한테 친한 척을 하려다 면박을 당했다.

입으로는 웃으며 말하지만 순간 눈이 웃지 않는 모습을 보니 먼가 느낌이 쎄하다.

안 좋은 예감은 꼭 맞던데...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한소예라고 소개한 여자애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말한다.

“아저씨, 뭐해요? 아저씨 혼자 남았잖아요. 빨랑 자기소개 해요. 혹시 조폭은 아니죠?”

조폭이라니... 국민여동생인지 먼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싸가지는 없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이미남이라고 합니다. 화물 기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하”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름과 직업을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사람들을 보니 나를 보는 사람들 표정이 묘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나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10만 분의 1의 인재라니...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화물 기사라니... 혹시 운동선수로 활동하시다가 은퇴하고 소일거리로 하시는 건가요? 몸이 좋아보여서 전 운동하시는 분 인줄 알았습니다만”

“아뇨, 따로 운동선수로 활동한 적은 없습니다. 화물 일 말고는 종종 철거 현장에서 용역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흠...의외네요. 아, 미남씨 직업을 비하하는 건 아닙니다만 솔직히 좀 미심쩍긴 하네요. 머, 그 천사같이 생긴 놈들이 일을 하다 실수했을 수도 있겠죠.”

딱 보니 이 새끼 우리랑 같이 있을 급이 아닌데 여기 왜 있지 라는 말투다.

깔보는 눈빛과 말투다.

이제는 닳고 닳아 이 정도로 기분 상하지도 않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럼도 없지만 어느새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왠지 피곤해 질 것 같아 절로 한숨이 나온다.

툭.

순간 누가 내 어깨를 치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한소예가 내 어깨를 손으로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설마 내가 상처받았을까봐 위로를 해주려고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소예는 생면부지인 나를 깨워주고 지금까지 계속 옆에 있어줬었다.

상냥한 아이다.

아마 그때 그 소름끼치는 혼잣말은 내가 잘못 들은 것일 거다.

암만 생각해도 정상적인 여자애라면 종말이 온다는 소리에 짜릿하다는 등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할 리가 없다.

편협했던 과거의 나에 대해 반성을 하며 한소예를 보니 발개진 얼굴에 웃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다.

...응?

“풉,푸후훗,, 푸하하핫! 아저씨 이름이 미남이라고? 아저씨 지금 그 얼굴로 미남이라고 자기소개 한 거야? 푸하하핫! 아 배 터져 진짜! 아저씨 장난 아니게 웃긴다! 푸하하!”

...이런 씨팔.

내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해도 지금까지 면전에서 이렇게 대놓고 폭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은 넓고 미친년은 많다지만 하필이면 내 옆에 미친년이 하나 있을 줄이야.

아이와 여자에게 상냥하라는 수녀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선빵 날리고 시작할텐데...

수녀님, 그런데 미친년도 여자라고 봐야 되나요?


◆ ◆ ◆


저벅저벅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동굴 안에서 우리는 대열을 갖추고 조심스런 걸음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아까 자기소개가 끝난 뒤 동굴에 들어갈지 아니면 그냥 공동 안에 있을지를 두고 잠깐 토론이 있었다.

결국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다수결로 결정했고 동굴에 들어가자는 의견이 다수라 홀로 소수파였던 나도 결국 동굴에 끌려가고 있다.

망할 민주주의 같으니.

벽면에 구멍이 숭숭 난 동굴 벽을 보면서 슬쩍 퀘스트 창을 띄워보니 남은 시간이 2시간 남짓이다.

경계하면서 천천히 걸었다고 하지만 직선으로 쭉 1시간 남짓 걸었는데도 아직 동굴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동굴이다.

“음...아직까진 퀘스트 창에 나와 있는 고블린이라는 괴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군요.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먼가 특이한 점은 없습니까?”

계속 걷기만 하는 게 지겨웠는지 선두에 있던 황병철이 대열 뒤쪽을 보고 물었다.

지금 우리 대열은 황병철이 선두에 서있고 그 바로 뒤에 내가,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은 5M쯤 뒤에서 떨어져 따라오고 있다.

이근오 말로는 황병철이 탱커고 근접무기를 가진 내가 근접딜러, 마법사인 자기와 한소예, 민서린은 원거리 딜러라서 이렇게 대열을 짜야 된단다.

내가 마법사라는 말에 무슨 소린지 물었더니 이근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분 나쁜 썩소를 짓고 작대기를 잡은 채 머라고 중얼거리더니 허공에 얼음덩이를 만들어내더라.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 있으니 이근오 말로는 작대기를 잡고 있으면 머리에 마법을 쓸 수 있는 주문과 공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고 한다.

역시 옛 말에 틀린 말이 하나 없다.

머리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누구는 머리 좋아서 멀리서 얼음 쪼가리 뿅뿅 쏘고 누구는 머리가 나쁘니 망치 하나 들고 괴물이랑 살 맞대고 싸워야 되는 처지다.

“뒤쪽에도 별 이상은 없습니다. 일단은 계속 전진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동굴에 습기가 너무 많네요. 몸에 달라붙어서 끈적끈적한게 너무 기분이 나빠요. 이런 건 질색인데 몸을 좀 씻었으면 좋겠어요.”

민서린 말대로 동굴에 습기가 너무 많아 지금 일행들의 옷은 다 젖어있는 상황이다.

분명 처음 동굴에 들어설 때는 그냥 습하다 정도였지만 지금은 스펀지처럼 생긴 동굴 벽 구멍들 속에서 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릴 정도로 습기가 많아졌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온 몸에서 흘려내리는 물을 손으로 짜가며 계속 걸어가기를 잠시.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케륵.

아직 보이지 않는 동굴 앞쪽의 어스름한 부분에서 들려온 소리는 마치 목이 새어버려 억지로 목소리를 내는 듯한 허스키한 쇳소리였다.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사람들이 경계하기 시작했고 앞쪽에 있던 황병철이 자세를 낮추더니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아무래도 고블린이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 같은데...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우선 저와 미남씨가 앞장 설 테니 뒤에 계신 분들도 서포트 부탁드립니다. 놓치지 말고 따라와 주십시오.”

젠장! 나도 뒤에서 따라가고 싶다고!

다시금 속으로 한탄을 내지르며 어쩔 수 없이 손에 쥔 망치를 단단히 말아 쥐고는 황병철 뒤에 바짝 붙어 조금씩 앞쪽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한 30M쯤 앞으로 가니 서서히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자마자 저 놈들이 퀘스트 창에 적혀있는 고블린이라는 괴물인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뾰족한 귀에 죽은 생선 눈깔같이 누런 황금빛의 찢어진 동공이 보인다.

그 밑으로 축 늘어진 메부리 코에 톱날 같이 뾰족뾰족한 이빨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얼굴의 완성은 피부라는 걸 주장하듯 짙은 초록색의 피부는 번질번질 거리면서 물광피부를 뽐내고 있다.

다행히 생김새는 끔찍했지만 고블린들의 체격은 크지 않았다.

내 배꼽에 닿을 정도의 신장에 근육이 없어 보이는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무기라고는 손에 쥐고 있는 돌멩이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분명히 괴물처럼 보였고 퀘스트 창에도 던전 안에 괴물들과 싸우라고 되어있으니 끔찍한 괴물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귀엽게 보이는 거지??

그렇게 내면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에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고블린들도 우리를 발견한 듯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케륵! 케륵! 케르라라 케르륵!!”

“읏! 병철씨. 저 놈들이 먼저 공격하려고 저러는 것 같은데 저희가 먼저 공격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병철씨하고 미남씨가 돌격하면 저희가 뒤에서 공격하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네가 앞에서 돌격하는 줄 알겠다. 이근오 이 새끼야.

어이가 없어 이근오를 쳐다보는 중에 황병철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고블린들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놈!

“오오! 기다렸다. 이 괴물들! 나 황병철이 상대해주마!!”

‘이런 씨팔! 왜 갑자기 뛰쳐나가고 지랄이야!’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개죽음 당하게 둘 순 없기에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급하게 황병철 뒤에 따라붙으며 소리쳤다.

“황병철씨! 혼자 뛰어들지 말고 뒤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이동합시다. 멈춰 봐요!”

“하하하! 이런 조막만한 괴물들 따위 나 혼자서도 다 처리할 수 있다! 너는 뒤에서 구경이나 해라!”

이런 미친!

10만 분의 1의 확률로 죄다 미친놈들만 뽑았나보다.

마치 자기가 전설 속의 용사나 되는 듯 용맹무쌍하게 돌진하는 황병철을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달리니 어느새 눈앞에 고블린 무리들이 보인다.

...그런데 이놈들 이상하다.

황병철이 돌격하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데 또 멀리 도망가지는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비호처럼 도착한 황병철이 가장 앞에 있던 고블린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때리자 수박통 깨지는 소리가 나며 고블린의 머리통이 박살난다.

퍼걱!

그리곤 남은 손으로 도망치던 다른 고블린을 잡아 머리통을 바닥에 내리 꽂자 바닥에 피가 터지며 꽃처럼 퍼졌다.

콰직!

땅에 처박힌 고블린은 아직 숨이 안 끊겼는지 사지를 벌벌 떨어대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말 그대로 황병철의 학살 쇼였다.

황병철은 괴성을 내지르며 고블린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크아아! 이 놈들 도망치지 말고 덤벼라! 한 방에 다 죽여주마!!”

퍽! 퍽! 콰직!

황병철의 묵직한 주먹질 한 방을 고블린들은 견디지 못했고 맞은 부위로 피를 쏟아내며 죽어갔다.

그리고 한 발 늦게 도착한 다른 세 사람도 황병철을 피해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피잉! 푹!

양궁 국가대표였다는 말을 증명하듯 한소예가 활을 쏘자 도망치던 고블린의 머리에 깔끔하게 화살이 파고든다.

휘릭~ 촤악!

꽃도 못 꺾을 것 같던 민서린이 채찍을 날카롭게 휘두르니 겁에 질린 채 도망치던 고블린의 등짝에 파고들어 살을 깎아낸다.

그리고 채찍을 맞아 쓰러져 땅바닥을 기고 있는 고블린의 뒤통수에 이근오가 얼음덩이를 꽂아 넣어 마무리를 짓는다.

고블린의 머리에 파고들어 피로 물든 얼음 조각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렇게 나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신명나게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줄어들어 이제 몇 안남은 고블린들은 여전히 맞서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도살장의 소처럼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다.

“미남씨! 옆에 고블린 있는데 우두커니 서가지고 뭐하는 겁니까?”

신나게 얼음덩이를 날리던 이근오가 나한테 소리치는 걸 보고 옆을 보니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고블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는 떨어뜨렸는지 아무것도 없는 양손에 눈물만 주륵주륵 흘러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케르륵...”

...괴물이다. 퀘스트 창에도 쓰여 있었잖은가.

심호흡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들어올려 고블린의 머리를 조준했다.

부디 고통없이 한 방에 가기를...

그렇게 이를 악 물며 내려치려는 찰나에 앞에 있던 고블린이 내 모습을 보고 양손을 꼭 맞잡으며 살며시 눈을 감는 모습이 보인다.

...씨팔! 도저히 못하겠다. 아무런 싸울 의지도 없고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꼭 죽여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이 고블린 한 마리라도 살려보려고 망치를 내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보려 할 때 내 귓가를 스치며 얼음덩이가 날아가 고블린의 살을 찢고 심장에 박혔다.

퍽!

“케륵...!”

눈을 감고 있던 고블린의 눈이 떠지며 혼탁한 황금빛 동공이 보인다.

그 눈 속에 일그러진 내 표정이 있다.

고블린의 뜨거운 피가 걷잡을 수 없이 뿜어져 나오며 내 얼굴에 튀어 오른다.

뜨겁다.

너무나 생생하게 뜨거운 피에 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 작은 몸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피를 뿜어낸 고블린은 잠시간 비틀대다가 그 작은 몸을 내 발치에 눕혔다.

그리곤 마지막 생명을 내쉬는 듯 작은 숨소리를 내뱉은 뒤 눈을 감았다.


◆ ◆ ◆


내 앞에서 쓰러져 죽은 고블린을 보고 있으니 고블린들을 모두 죽인 다른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한다.

“미남씨, 그래도 발목은 안 잡을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이군요. 쯧”

뒤에서 명령질하던 이근오의 말이다.

“한심하군. 사내새끼가 돼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기 몸의 반밖에 안 되는 무저항의 고블린들을 상대로 학살을 한 황병철의 말이다.

“미남씨는 생긴 것하고 다르게 겁이 많은가 봐요? 후후”

쓰러진 고블린에게 일부러 계속해서 채찍질을 하며 고통 속에 죽이던 민서린의 말이다.

툭툭.

한소예는 나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내 어깨를 두들기고 갔다.

괜찮다. 신경쓰지 않는다.

분명 괴물들을 상대로 싸운 저들이 정상이고 싸우지 못한 내가 비정상인 것이 맞으니.

다만 나는 궁금할 뿐이다.

죽은 고블린 앞에 서서 굳었던 입을 떼고 물어본다.


"...많이 아팠을 텐데...너는 왜 웃고 있는거니...?"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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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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