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분량이 230회가 넘은 거 같으니까, 이걸 다 읽으려면... 대충 한 달쯤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함부로 글을 추천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 역시 글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어떤 글을 평가하는 게 굉장히 껄끄럽고, 또 조심스럽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비평 역시 함부로 하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바람과 별무리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추천할 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1. 묘사
글을 쭉 살펴보면, 하얀콩(...이 맞나요)님께서 소설을 준비하기 위해 조사를 많이하신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 세계에 관심이 많으셔서 배경지식이 풍부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굉장히 풍부한 묘사를 볼 수 있습니다.
묘사는 사실 소설에 있어 양날의 칼입니다.
묘사가 풍부할 수록 자칫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지루하다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이야기가 주가 되어야 하는 장르 문학에서 너무 세밀한 묘사는 득보다 해일때가 더더욱 많습니다.(물론 특정 상황에서 훌륭한 묘사는 조미료로서 글의 격과 가치를 높이는데에 일조하는 게 맞습니다.)
하얀콩님의 이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라는 느낌보다 항해일지를 보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박진감 넘치는 전개나, 반전, 혹은 자극적인 소재가 쓰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같이 항해를 하듯, 혹은 과거 한 인물의 항해를 엿보듯 함께 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 이유는 양으로 볼 때 무척 풍부하면서도, 문장으로 볼 땐 절제되고 다소 드라이하다 느껴지는 묘사 덕분입니다.
예를 들죠. 작중 비상이라는 곳에서 묘사된 것입니다.
(제논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달디단 사탕수수즙 한잔과 함께 하바나산 고급 엽궐련을 말아 피웠다.
마스트에 기대어 연기를 뿜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과,
선원에겐 저 간부라는 것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레드코트에겐 매우 맛이 좋아보이는 담배때문에(사실 나는 그저 매캐할 뿐이다.))
사실 일반적인 장르소설의 작법으로 보자면, 고급 엽궐련이 하바나산이든 아니든 알 바가 아닙니다. 심지어 사탕수수즙이라고 까지 묘사할 것도 없이, 달디단 음료와 담배를 피웠다고 해결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묘사는 더더욱 이 소설의 특징을 부각시킵니다.
여유로움, 자유로움을 연속적인 속성으로 등가 시켜 쉼표를 사용하는 것에 더해 문장 자체를 나누는 작법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묘사량은 풍부하지만, 문장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다만 유일한 흠, 혹은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은 ()의 과도한 사용과 과도할 정도로 많은 중간 설명(혹은 각주) 입니다만, 풍부한 묘사 반면에 드라이한 문장은 이 소설의 매우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2. 배경지식
사실 소설가는 만능이 아닙니다. 정말 일류 소설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도서관 조사 뿐만 아니라, 직접 취재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장르작가는 wiki조차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개연성의 확보와 더불어 거짓인 소설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과학적 원리를 뒤틀고, 소설 작법을 위해 역사를 뒤틀기도 합니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히 사실적으로 적힌 이 소설이 어디까지 정확하고, 어느 점이 소설적 장치로 초월되었는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든 게 그저 그럴 듯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저도 모르게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사실일거라’ 믿게 됩니다. 하얀콩님의 묘사와, 딱딱 들어맞는 전후 설명 덕분이지요. 덕분에 소설은 살아 숨쉬게 되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치 실제 존재했던 한 시대의 인물을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소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 중 하나 입니다.
이 작품....
재미면에서는 글쎄요.
알록달록한, 혹은 시큼새큼한 재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 누군가는 이 소설에서 그런 자극과 설렘을 얻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일반적 취향에서 보자면 무척 잔잔하고 사실적이며, 노스텔지어라고 해야할지 판타지라고 해야할지, 그런 흥취를 건드는 묘한 재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저는 누구나, 특히 소년이라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다시 없을 시대, 대항해시대에 대한 동경을 잔잔하게 수채화처럼 그린 이 소설은 불후의 명작이라든가, 역대급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아직 부족할지 몰라도 현 문피아에서, 아니 장르문학의 경향에서 조금은 희귀하고도 특별한, 훌륭한 소설이라는 점엔 틀림없습니다.
강요할 수 없는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는 저로서는, 이 추천을 올리는 것이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만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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