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필력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적어 봅니다.
좋은 소설을 필사하는 것이죠. 글 쓰는 분이 이상이라 생각하는 소설을 하나 선정해 매일매일 부지런히 필사하시면 필력이 쑥쑥.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꽤 힘든 일이기도 하죠. 오죽하면 조정래 작가는 아들과 마누라에게 너희가 내 인세로 평생 먹고 살 것이니 한 자도 틀리지 말고 태백산맥 필사를 하라는 숙제를 냈을까요. (두 사람은 열심히 해서 숙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쉽고 확실한 방법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건 단어를 많이 아는 겁니다.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게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사소한 사물들의 이름을 상세히 알고 있으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변 사물의 이름을 의외로 우리는 모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죠. 뻔하게 '아 이거'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게 뭔가 소설로 적으려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그런걸 자세히 알면 묘사력 자체도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압도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다루고자 하는 사물의 명칭을 상세히 알면 그런 명침이 모여 만들게 되는 글의 풍경 또한 세밀하고 적확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래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공간과 사물에 대한 분절적이고 상세한 명칭을 알고 다루고 있는건 가장 독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필력의 증거가 됩니다. 한 사람의 언어의 한계가 그 사람의 세계의 한계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거죠.
다만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작가는 알아도 독자는 모르는 단어를 너무 많이 구사하면 가독성이 떨어져서 장르에 속하는 소설이 가져야할 미덕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고, 또한 작가가 자신이 아는 단어를 통해 글로 구사한 풍경이 꼭 독자에게 가 닿지도 않기 마련입니다. 단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독자와 작가가 그 단어에 대해 공유된 상을 가질 때 인데, 그게 없으면 역시 작가의 단어 구사는 무의미해지거나 심지어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보르헤스는 그래서 자신이 믿는 것은 표현이 아니라 암시라고 했었죠. 다만 이런건 대가들의 경우고, 일단은 확실하게 단어를 많이 알면 좋습니다. 글쓰는 사람의 재산이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확실히 장악하는 것입니다만 이건 뭐 편법이 없는 듯...
은빛어비스 북큐브로 옮겨가고 문피아에 글 남길 일이 없어져서 오랜만에 작게 끄적여 봤습니다. 글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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