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를 본다. 여자가 나온다. 금발이다. 가슴이 크다. 당연히 머리는 나쁘다.
또다른 영화를 본다. 흑인이 나온다. 키가 크다. 힘이 세다. 폭력적이다. 당연히 백인 주인공에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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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이라는 것은 미국의 언론가 월터 리프만이 만든 용어로,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판에 박힌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며, 리프만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현실이 아닌 자신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후 사회학 등에서 꽤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되었죠.
같은 맥락으로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픽션에선 [고정관념에 기반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뜻합니다. 이러한 캐릭터들의 예시는 매우 많은데, 먼저 위에서 언급한 [금발에 가슴이 큰 멍청한 여자]라든지 [덩치가 크고 폭력적인 흑인] 같은 인종이나 외모에 의한 고정관념이 있으며, [한없이 무능하고 부하들 갈구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게 없는 상사], [그런 상사 때문에 답답해하는 유능한 부하]처럼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있지요.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은 굉장히 알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영화를 보다가 [비중도 없으면서 말 많고 시끄러운 까불이 흑인]이 나오면 그 친구는 십중팔구 죽는 역할입니다. [골초에 대머리에 살찐 형사 반장]이 나오면 십중팔구 주인공 형사를 갈구는 역할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나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등은 [멀린]에서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얼굴에 [나 마법사에요]라고 써있는 것보다도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이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스테레오 타입]을 정반대로 쓰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죽을 것 같았는데 안 죽는 캐릭터]라든지 [엑스트라 같은데 비중 있는 역할] 같은 경우도 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스테레오 타입을 뒤집은 것]이 더욱 더 전형적으로 굳어지기도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예는 무협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김용이 [소오강호]를 쓴 뒤에는 어쩐지 [화산파에는 정의로운 척하는 위선자]들이 많이 나오고, [의천도룡기] 등이 나온 뒤에는 [마교는 어쩐지 사악하지만 남자다운 사람들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본래 화산파는 정파고 마교는 사파이지만, 오히려 [화산파는 위선자고 마교는 멋지다]라는 식으로 [스테레오 타입을 뒤집은 것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은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테레오 타입]은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다]라는 막강한 장점이 있어서 지금도 수많은 매체들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떄로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문제시되기도 합니다. 위의 예시에서 [흑인은 폭력적이고 무식하다]라는 것이 많다보니 흑인들이 항의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말하는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고~]라는 것 또한 [스테레오 타입]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깨기란 쉽지 않아서, [그것이 설령 과학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이 밝혀져도] 고정관념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이러한 점을 통해 [해당 작품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쓰고 있는가], [인종적 편견이나 국가적 편견, 지역적 편견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점을 두고 작품을 비평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런 [스테레오 타입]을 남발하면 작품을 진부하고 단조롭게 만들수도 있지요.
다시 말해 [고정관념은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지만, 잘못된 편견을 낳거나 진부하고 단조로워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정관념]을 얼마나 잘 조절하여 쓰는가 하는 것이 때로는 작품의 질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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