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비교적’이요. 어디까지나 비교적입니다...;;
제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감정 묘사와 과학 소설이다 보니까 과학 고증, 그리고 각종 배경지식이었습니다.
과학 고증과 각종 배경지식은 아직도 제 소설의 이야기 범위를 상당히 제약하고 있죠.
예를 들어 최근에 쓰려고 생각 중인 스핀오프 시리즈는 현대의 평행우주를 그리고 있는데, 제가 지금껏 살아본 지역은 서울과 경남 뿐인데다가, 현대의 사법기관이라던가 하는 것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고민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분야의 지식들은 이 지구에서 0.2%에 불과할텐데 말이죠.
그런데 작가는 이 0.2%의 지식으로만 마치 자신이 소설 속 모든 것을 겪어본 것처럼 위장해야 합니다. 이 위장을 잘하는 게 좋은 작가가 되는 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자가 느끼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대상자 주변의 것, 특히 그중에서도 대상자의 시야에 있는 것만 설명하면 됩니다. 전반적인 전쟁에 대한 설명은 전체 에피소드 중 한 두줄이면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대상자 앞에 떨어진 포탄의 종류와 위력, 범위를 설명하면 되지, 개전 첫날 연합군이 추축국에 가한 포격의 양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지만요.
고전 전쟁소설에서 얻을 만한 문단이 있을텐데...
아,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있네요. 정말 참고할만한 문단을 올리겠습니다.
"우리는 유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 존재의 일부가 일순간 수 천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우리 내부에 깨어 있다가 우리를 인도해 주고 보호해 주는 동물적 본능이다. 그런 본능이 있는지 우리가 의식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우리의 의식보다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확실하며, 훨씬 더 믿을 만하다. 이를 말로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땅의 움푹 파인 곳에 납작 엎드린다. 그리고 우리 머리 위로 파편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유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는지, 또는 엎드릴 생각을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의지했더라면 진작 산산조각 난 살점 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우리를 냅다 엎드리게 하여 우리를 구한 우리의 내부의 예민한 직감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만약 그런 직감이 없다면 플랑도르에서 프게젠이 이르기까지 진작부터 한 사람도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 에리히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중
사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파울 보이머 개인의 시선에서만 전쟁이 조망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 알기는 힘듭니다. 그냥 독일이 겁나 밀리고 있고, 초마다 한 명씩 죽어나가는데 후방에서는 그걸 잘 모른다는 것 정도...
더 좋은 예는... 찾아보면 볼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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