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최근에 가상 혹은 대체역사소설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제 인생 최초의 대체역사소설은 일종의 동화 혹은 청소년 소설책이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몇 작가들이 우리 역사 속의 중요한 사건들을 비틀면서 "만약 ...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책이었지요... 예를 들면 "환웅과 결혼한 여인이 웅녀가 아니라 호녀였다면?",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죽지 않았다면?" 제 나이 30대 중반... 그런데 그 책을 읽은 때는 제 기억에 초등학생 때였으니 벌써 25여 년 전 일이네요...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최근에 유행하는 대체역사소설의 이야기 흐름은 보통 누군가 현대에서 죽었는데 과거로 간다든지, 아니면 일단의 무리(보통 현대의 군사 및 과학 기술 지식 및 장비들을 보유한...)가 모종의 사건을 통해 타임 워프하여 과거로 간다든지... 하는 식의 도입이 일반적이지요.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가 오늘 추천하는 무대선 님의 열왕기는 그 도입부에서는 흥미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저도 그랬지요. 저 또한 그런 도입에 익숙했지요. 마치 문명 게임을 하는데 치트를 써서 원시시대에 이미 우리나라는 미래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든지... 아무튼 이런 식으로 치트키를 켠 우리 민족이 역사 속에서 종횡무진하는 그런 식의 이야기... 그래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현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경험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에 익숙해 있다가, 열왕기(제목에 혹해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2편 보다가 선작만 해 놓고 잠깐 묻어두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읽을 게 없고 뭔가 호흡이 긴 소설을 읽고 싶어 다시 열게 된 열왕기... 5편 10편 계속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 커서키로 편수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억해 냈습니다. 제가 글의 서두에 했던 이야기, 제 인생 최초의 가상 혹은 대체역사소설의 시작... 그리고 열왕기를 읽으면서 그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다시금 새롭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역사적 지식이 미천하다보니 무대선 님께서 어디서 어떻게 비트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는 역사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순수역사소설로서도 상당한 경지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식의 가벼운 문체가 아니라 정말 과거에 무협에 빠지기 전 역사소설을 즐겨볼 때 느꼈던 역사소설 특유의 문체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물론 몇 가지 단점이랄까 걸리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 소설은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글의 메인스트림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몇 명 있습니다만, 요즘 장르소설의 대체적인 주인공들처럼 능력자로서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해군에 초점을 두고 글을 읽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무대선님의 의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무대선님의 생각 속에 비틀려진 역사 그 자체가 이 글의 주인공이 아닌가... 뭐 그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둘째,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지만 작가인 무대선님의 시각에서 기록되는 글입니다. 즉 현대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달까요? 그래서 중간중간 글(속의 세상) 밖에서 글(속의 세상) 안의 사건, 인물 등을 평가하는 대목들이 나오고, 그런 부분이 의외로 거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몇몇 부분이 걸리기는 하지만...
...열왕기는 그런 아쉬운 점이 전혀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고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읽으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도포기하신다는 점... 처음에는 10000 히트가 훨씬 넘는 조회수였지만 제가 지금 읽고 있는 40회 전후에는 이미 1000 히트 대로 떨어져 있고, 최근 글을 보니 500 히트 전후로 조회수가 형성되더군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 생각에는 과거 역사소설 좀 좋아하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 그리고 어느 정도 연배가 되시는 분들, 그리고 연배와 상관 없이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독을 강력히 권합니다!!
추신) 간단 줄거리 요약...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임박한 선조의 죽음으로부터 조선의 역사는, 그리고 동북아 정세는 다시 격동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조선의 새로운 임금이 될 것인가? 늙은 사자 명과 젊은 호랑이 후금...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력을 잡은 일본... 그 틈바구니 속에서 조선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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