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집에 놀러 가면 사촌형이 시켜주는 ‘바람의 나라’가 정말 재밌게 느껴졌던 시절이었습니다. 친척집엔 놀 게 가득했죠. 유료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오래하지 못하는 저에게 사촌형은 가이드북을 건넸습니다. 초심자가 고수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가이드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서점에 갔을 때 ‘바람의 나라’라는 책을 보자 단번에 집었죠. 네. 저는 그게 가이드북인 줄 알았습니다. 집에 와서 책장을 펴보기 전까지.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임 ‘바람의 나라’의 원작이 있습니다. 김진 만화작가님께서 그리신 ‘바람의 나라’가 그것이죠. 그런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무려 세 권이나 샀습니다. 만화책이라는 걸 알고 나자 크게 실망했죠. 그 안에는 몬스터와 게임 아이템이 널려있을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돈이 아깝기도 했고 이왕 산 김에 버리지 못하고 만화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일주일 넘게 반복해서 봤습니다. 이런 만화책은 처음이었거든요.
무휼과 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그 아래 조그맣게 피어나는 호동 왕자와 신수 봉황의 발그레한 감정들. 순정 만화 같으면서도 한국적인 느낌이 나는 그림체. 하지만 어린 제가 그림체가 맘에 들었다곤 하지만 그런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었을 리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런 것보다 화려하고 멋진 액션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러나 책은 제 마음을 이해하듯 흥미로운 장면들을 꼭꼭 채워 넣어주었습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범상치가 않아서 사신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적으로 등장하는 현무에게마저도 반했습니다. 독사 같은 느낌을 지닌 거북이는 신선했거든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글은 비록 ‘바람의 나라’와 같진 않습니다. 그러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겠죠.(하하;) 다만 그때처럼, 쉽게 다가서지 못할 것 같지만 한번 열자 빠져드는 그런 글입니다. 처음 저는 이 글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법사라든지 ~마스터가 난무하는 글 속에서 이 글의 제목은 평화로웠거든요. 굳이 꾸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런 걸 자연 미인이라고 하나요? 어쨌건 저는 제목에서부터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고 클릭했습니다. 하지만 왠걸, 제가 싫어하는 장르인 로맨스입니다. 그래도 제목의 느낌을 믿고 한 편, 한 편씩 읽어나갔습니다. 이 글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를 살짝 놀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로맨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개 작품들이 눈앞에 대놓고 사랑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몇몇 우수한 작품들은 은근히 얘기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보거나 읽곤 합니다. 마치 사랑한다고 말하기 보단 지그시 연인의 눈을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글은 처음부터 사랑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첫 부분을 읽으면서 이게 로맨스인지 아니면 동양 판타지인지 의심이 갔답니다. 주인공은 신선의 나라라고 불리는 ‘선라’에서 온 계집인데 ‘월홍’이라는 신수를 부릴 줄 압니다만, 뒤따르는 위험 때문에 잘 쓰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계집을 데려온 남자는 남궁 가의 서얼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종이고 남자는 그 주인인 셈이죠. 어쩌면 식상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글을 끝까지 읽은 것은 작가님의 탁월한 필력 때문입니다. 작가님은 연인의 눈에 담긴 사랑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심리 묘사가 뛰어납니다.
그렇다면 어떠신지요.
어떻습니까.
어떠하신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를 담아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잔잔하지만 애틋한, 여운이 남는 분위기가 묻어나는 글을 읽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여울지다
http://www.munpia.com/bbs/zboard.php?id=bn_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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