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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야전장교는 스피드런 해야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3.08.19 06:15
최근연재일 :
2023.09.15 21:2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55,109
추천수 :
1,245
글자수 :
217,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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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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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30화. 바로잡기.

DUMMY

-키에에에에에에엑!!!!


“흐어억!”


눈을 뜬 안나 윈스턴이 벌떡 일어섰다.

곧바로 안나 윈스턴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깜짝이야. 꿈이었네.”


뇌리엔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세 번째 바위까지 뛰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턴 영 가물가물하단 말이지.”


하나둘 기억의 파편들을 맞춰가던 안나 윈스턴이 갑자기 씩 미소를 머금었다.

유일하게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훌륭했다.

-역시 내 생도다.


“흐흐, 그건 꿈 아니었겠지?”

“그거? 야한 꿈이라도 꿨냐?”

“아이씨! 깜짝이야!”


안나 윈스턴이 기겁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멀찍이 의자에 앉아있던 소라 마르티네즈가 읽던 책을 내렸다.


“뭘 그렇게 놀라냐? 진짜 야한 꿈 꿨나 보네?”

“너, 너 뭐야? 왜 들어왔어? 아니, 어떻게 들어왔어?”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우리 셋 다 비밀번호 똑같이 해놨으면서.”

“그렇다고 말도 없이 들어오냐! 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거든?”

“미안해 안나야.”


안나 윈스턴이 돌아보는 가운데 엘리스 실버가 볼을 긁적였다.


“메세지 보내도 안 받길래 멋대로 들어와 버렸어. 기분 나빴으면 사과할게.”

“아, 아냐! 언니는 괜찮아. 얘가 문제지.”

“참나, 걱정돼서 와봤더니 바로 문제아 취급 당하네. 아무튼 무슨 꿈 꿨냐고.”

"있어. 교관님이 나한테."


무어라 말하려던 안나 윈스턴이 입을 다물었다.

소라 마르티네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교관님이 너한테?”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내가 넌 줄 아냐. 맨날 그런 꿈만 꾸게.”

“얘 정색하는 거 봐? 왜 이렇게 과민반응하지?”

“안나야.”

“응?”

“어제 교관님한테 무슨 훈련 받은 거야?”

“그냥 간단한 도하 훈련이었어. 바위 건너뛰기라고 해야 하나?”


‘사실대로 말하면 바로 교관님 찾아가겠지.’


다행히 믿은 건지 엘리스 실버는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뭔가를 가져올 뿐이었다.

샌드위치였다.


“자, 아침 먹을 때 몰래 싸왔어.”

“고마워 언니. 역시 언니밖엔 없다니깐.”

“이보세요 윈스턴 씨. 거기 그 파인애플 주스는 내 꺼거든요?”

“네에, 마르티네즈 씨.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아.”


한편 엘리스 실버는 옆에서 안나 윈스턴의 얼굴이며 팔뚝 등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곧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다행이네. 사실 조금 위험한 훈련일 수도 있다 생각했거든.”

“진짜 바위 건너뛰기였어. 알잖아. 우리 교관님 우리들 다치는 꼴 절대 못 보는 거.”

“얘 이거 이제 우리 교관님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네? 그 인간 그 인간 거릴 때는 언제고.”

“저기요 마르티네즈 씨. 계속 시비 걸 거면 나가시죠. 여기 제 방이거든요.”

“빨리 먹기나 하셔. 10시까지 집합하라고 했으니까.”


안나 윈스턴이 대답 대신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엘리스 실버가 소라 마르티네즈를 돌아보았다.


“소라는 컨디션 괜찮니.”

“나 완전 최고. 언니는?”

“나도 괜찮아. 뼈도 다 아물었고.”

“화성도 의료 기술이 좋은가 보네? 그렇게 빨리 아물게 하는 건 꽤 어렵다고 들었는데.”


엘리스 실버가 대답 대신 안나 윈스턴을 돌아보았다.


“안나는? 어제 늦게 들어와서 피곤하지 않아?”

“아냐아냐, 완전 좋아. 오히려 푹 잔 느낌이거든.”


엘리스 실버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열심히 하자.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에이, 무리해 봤자 화성에서 있었던 일만 하겠어?”

“저쪽 애들이 무슨 훈련을 받았는진 몰라도 우리처럼 목숨 걸고 구르진 않았을걸?”


-삑.


셋은 동시에 스트랩을 들어올렸다.

그러자마자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응?”

“엥?”

“아?”


높이 하늘 위, 소형 왕복선들이 차례대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하단엔 익숙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


렌.

매카시.

마르티네즈.

세 가문 모두 7대 가문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그 위상은 가히 이 시대의 귀족이라 불릴 만 했다.

정부가 그간 공식적으로 수도 없이 신분제도를 부정해 왔음에도 암묵적으로는 모두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할 정도였으니까.


“야, 7대 가문인 니가 보기엔 이게 무슨 상황 같냐.”

“내가 어떻게 알아 지지배야. 나도 얘기 못 들었어.”


안나 윈스턴과 소라 마르티네즈가 멀리 다가오는 중년 남녀들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하나같이 고풍스러운 옷차림과 표정들. 그것이 그들이 귀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바라보던 엘리스 실버가 입을 열었다.


“학교장님이 초청하신 것 같아.”

“왜? 수료할 때도 아니고 무슨 첫 훈련 평가에 학부모들을 초청하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안나 윈스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엘리스 실버가 말을 이었다.


“1소대 애들 전부 7대 가문 소속이잖아. 저 사람들이 오늘 여기 왔다는 것만으로도 꽤 이목을 끌겠지.”

“쩝, 그럼 오늘 지기라도 했다간 완전 개망신 당한다는 거 아냐.”

“질 생각을 왜 하냐? 교관님 말씀대로 이길 생각부터 해야지.”

“넌 무슨 교관님 팬클럽이라도 가입했냐? 말끝마다 교관님 교관님.”

“뭐래. 지는 교관님 꿈도 꾸는 주제에.”

"아니거든? 그냥 어제 훈련 받은 게 나왔을 뿐이거든?"

“얘들아, 조용.”


셋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무처장 알란 터너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오던 중년 남녀들은 곧 셋의 앞에 멈춰섰다.

알란 터너가 셋을 가리켰다.


“11소대 인원들입니다. 왼쪽부터 엘리스 실버 생도, 소라 마르티네즈 생도, 안나 윈스턴 생도입니다.”


선두에 서 있던 마른 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녹색의 모발에 같은 색깔의 눈동자.

프로이드 렌.

1소대 소피아 렌의 부친이었다.


“혹시 담당 교관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쪽과 먼저 인사를 나누는 게 예의인 것 같습니다만.”

“한 교관은 현재 학교장님과 면담 중입니다. 오는 대로 바로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혹시나 저희끼리 생도들을 만나는 게 그쪽에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린 겁니다.”

“어머나, 아는 얼굴이 하나 섞여 있네요?”


프로이드 렌 옆에 서 있던 귀부인이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피아 렌의 모친 베네데타 렌이었다.


“어머님 성함이 프리실라 실버 맞지?”


엘리스 실버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 아시나요.”

“나 기억 안 나니? 너무 갓난아이 때라 기억이 안 나려나?”

“죄송해요. 너무 어릴 때였나 봐요.”

“아쉬워라. 난 기억이 꽤 많이 나는데. 그보다 갈수록 엄마랑 똑같아지네? 군복 입은 모습 보니 네 엄마 젊은 시절이랑 판박이야.”

“사무처장님.”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중년 남자가 끼어들며 말했다.

짧게 깎은 머리와 다부진 체격이 걸치고 있는 고풍스러운 옷들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곤도 매카시.

드뷔어 매카시의 부친이었다.


“이 생도입니까. 오늘 저희 아들과 대결할 생도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흠,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이군요. 보아하니 칼이나 제대로 들 수 있을까 싶게 생겼는데.”


곤도 매카시가 엘리스 실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작 엘리스 실버는 미동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곤도 매카시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대비책은 마련되어 있는 겁니까.”

“어떤 것 말씀이신지요.”

“혹시 사고라도 나면 저희 아들에게 불이익이라도 갈까 걱정입니다만. 예를 들어 이 생도가 크게 다치게 된다거나.”

“그에 대해서는 양 생도들에게 최대한 주의를 줄 예정입니다. 오늘 평가의 목적은 그간 받아온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는 것뿐이니까요.”

“바꿔 말하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사고도 발생할 수 있는 거고.”

“걱정 안하셔도 돼요.”


모두가 바라보는 가운데 엘리스 실버가 말을 이었다.


“혹시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의제기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곤도 매카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거 생도들 기강이 엉망이군요. 아무래도 렌 가문 아버님 말씀대로 담당 교관을 먼저 만나봐야겠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지금 학교장님을 만나고 있는지라...”

“끝나는 대로 저한테 오라고 전달해 주십쇼. 그쪽 생도들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제가 굉장히 불쾌하다고.”

“네, 전달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모두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교관 하나가 뒷짐을 진 채 걸어오는 중이었다.

곤도 매카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 껄렁껄렁한 놈은.’


표정, 자세, 걸음걸이.

모든 것이 교관이라는 단어와는 영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곧 곤도 매카시의 앞에 멈춰선 제익이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11소대 담당 교관 제이크 한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드뷔어 매카시 생도의 부친되는 사람입니다.”

“그러시군요. 아무튼 제 생도들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지?”

“?”


잠시 제익을 바라보던 곤도 매카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고우젠 바우어 정도 되는 베테랑 교관이야 이런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전혀 주눅이 들지 않다니.

답은 간단했다.

개념이 없다는 것.


“혹시 초임이십니까. 저도 군인 출신인데 얼굴과 성함을 영 못 접해본 것 같은데.”

“맞습니다. 올해 처음 부임했습니다.”

“그래서 서투신가 봅니다. 생도들 기강이 엉망진창입니다.”

“저희 생도들이 뭔가 실수라도 했나 보군요.”

“네, 여기 이 엘리스 실버라는 생도가요.”

“엘리스 실버 생도?”

“네.”

“사실인가?”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제익이 다시 곤도 매카시를 돌아보았다.


“담당 교관으로서 생도들의 기강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점, 모쪼록 사과드리겠습니다. 이거면 만족하시는지요.”

“되겠습니까. 뭣보다 당사자가 아닌 교관을 통해서라니.”

“그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사과가 되겠습니까.”

“바로잡아 주십시오. 이 자리에서.”


제익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생도들을 돌아보았다.


“11소대.”

“네, 교관님.”

“네, 교관님.”

“네, 교관님.”

“귀관들의 신분은 무엇인가.”

“군인입니다.”

“그렇다. 귀관들은 자랑스러운 방위군의 군인들이다.”


탁,

제익이 셋 옆으로 다가서선 말을 이었다.


“방위군 군인은 연방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다. 맞나.”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저기 서 계신 드뷔어 매카시의 부친 역시 귀관들이 지켜야 할 시민 중의 한명이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니 똑똑히 봐둬라.”


이어지는 제익의 말에 귀족들이 동시에 눈을 치켜떴다.


“귀관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야 하는 시민들 중엔 저런 부류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지금 이게 뭐하는."


곤도 매카시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제익은 태연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귀관들이 할 일은 숭고한 희생이나 거룩한 전투 같은 게 아니다. 자신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켜주는 귀관들을 저렇게 무시하고, 깔보고, 하대하는 이들까지도 지켜줘야 하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익이 셋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 점을 철저히 가슴에 새기며 군인이 되도록. 알았나.”

“네! 교관님!”

“네! 교관님!”

“네! 교관님!”


날카로움마저 느껴지는 절도 있는 대답들. 그리고 표정들이었다.

제익은 몸을 돌려 다시 곤도 매카시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이...!”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한 교관.”


알란 터너가 끼어들며 말했다.


“자네 지금 뭐하는 건가.”

“보신대로 생도들 기강을 바로잡았습니다.”

“이분들은 학교장님의 초청으로 오신 귀빈들일세. 방금 전 언사는 분명 그런 분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말씀이신지요.”

“진짜 몰라서 묻나.”

“그럼 사무처장님께서 직접 보여주시지요.”

“뭐?”

“지금 이 상황에서 교관인 제가 어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것이 제 생도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자네 도대체.”


무어라 이어 말하려던 알란 터너가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올 수 있는 정곡이었다.

알란 터너에게도 아직 남아있었다.

교관 시절 품고 있었던 열정이.

훌륭한 장교들을 키워내겠다던 그때의 다짐이.

그리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분명 말했을 것이다.

방금 전 제익의 행동은 결코 틀리지 않았노라고.


-저벅! 저벅!


모두가 숨죽여 바라보는 가운데 곤도 매카시가 걸어나왔다.


“초임이라 저에 대해 못 들어보셨나 봅니다. 저는 모욕을 절대 참지 않는 성격인데.”

“사과를 바라신다면 사양하겠습니다.”

“그거 잘 됐군요.”


탁,

걸음을 멈춘 곤도 매카시가 말을 이었다.


“교관님께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할까 하는데 받아들여 주시겠습니까?”

“매카시 님, 일단 진정하시고.”

“사무처장께선 끼어들지 마십시오. 다음은 사무처장 차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알란 터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된 하루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편을 들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학교장님께선 스쿨 내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길 원치 않으실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 이 수모를 참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뇨, 그 분께서 직접 나서게 되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하신 결투든 뭐든.“


곧바로 곤도 매카시가 우뚝 멈춰섰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역시 이곳 출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도 크리스틴 벨이 학교장이었고.

알란 터너가 말을 이었다.


“유야무야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엔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해서 이건 어떻습니까.”


알란 터너가 제익과 곤도 매카시를 정중하게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아드님과 엘리스 실버 생도의 평가 결과에 따라 진 쪽이 사과를 건네는 걸로.”


울긋불긋해지던 곤도 매카시의 얼굴이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곧 아들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 되니까.


“괜찮은 것 같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제게 선택권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습니다.”


-탁!


몸을 돌린 곤도 매카시가 성큼성큼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그의 부인이 그를 따라나섰다.


“......”

“......”

“......”

“......”

“......”


이어지는 조금 불편한 침묵.

그러다 뒤에서 지켜보던 금발의 중년 남자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잠깐 얘기 좀 나누자꾸나.”


소라 마르티네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백부님.”


******


“너도 알다시피 요즘 가문 사정이 조금 어렵단다.”


루이 마르티네즈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근 사들인 위성들에서 생각보다 자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더구나. 덕분에 재정은 거의 파탄 상태고.”

“아버님께서 분명 곧 나아질 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네가 훈련 받으면서 걱정하는 게 싫었겠지. 다른 자원 위성들 몇 개를 팔면 되겠지만 그랬다간 잘려나가는 식솔들이 꽤 많아질 거고, 네 아버지는 그게 싫은 거란다. 게다가 최근들어 큰 돈을 뭉텅뭉텅 써야 했으니 무리가 있을 수밖에.”

“...증량환 때문이군요.”

“그래, 그건 앞으로도 계속 비용이 들어가야 하고.”

“백부님, 실은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는 이제.”

“무슨 말 하려는지 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스쿨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거고 결국 네 정체가 드러날 테니까. 다행히 목돈을 마련할 방법이 생겼단다. 아니, 기회라고 해야겠지.”


루이 마르티네즈가 슬쩍 주변 인기척을 살피곤 말을 이었다.


“오는 도중에 렌 가문에서 제안을 해오더구나. 그쪽의 제안만 수락하면 쓸만한 자원 위성들 두 개를 내어주겠다고.”

“렌 가문에서요? 자원 위성을 두 개씩이나요?”


소라 마르티네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이랑 저희 가문은 서로 눈엣가시 아닌가요?”

“그렇지.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로선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는 거다.”

“그 정도로 어렵다는 거군요. 아무튼 그 제안이라는 게 뭔데요?”

“네가 한발 물러서는 거다.”


소라 마르티네즈가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루이 마르티네즈가 말을 이었다.


“오늘 훈련 평가에서 저쪽 영애에게 승리를 양보해달라 하더구나.”

“호, 혹시 아버님도 알고 계신 일인가요.”

“그럴 리가. 알잖니.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럼...”

“내 독단이라고 해두마. 우리 가문을 살리기 위한.”


잠시 침묵.

조금 시간이 지나 소라 마르티네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 가문을 위한 선택인가요.”


루이 마르티네즈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오해하지 말거라. 지금 가문 사정이 어렵다는 것도, 그걸 해결하려면 렌 가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동시에 백부님이 저희 아버지를 속박하기 좋은 구실이 되겠죠.”

“안 될 이유라도 있느냐. 원래 능력이 없는 리더는 물러나야 하는 법이다.”

“아버님은 가문이 이어져 내려온 이래 가장 수완이 좋은 분이세요. 지금 사정이 어려워진 건 아버님 잘못이 아니고요.”

“그래, 바로 너다. 네가 문제란다 조카야.”


루이 마르티네즈가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잘못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네가 쓰고 있는 그 증량환 때문에 막대한 돈을 들이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우리 가문은 블루마이어만큼이나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을 거다. 그 모든 걸 네가 망쳐 버린 거다. 널 그렇게 낳은 건 네 아버지고.”

“그래서 전 어떻게든 스쿨을 졸업해야 돼요.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구나.”


루이 마르티네즈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렌 가문이 저런 제안을 해왔다는 건 이미 눈치챘다는 뜻이란다. 네 몸 상태, 그리고 네가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전부 다.”


잠시 루이 마르티네즈를 올려다보던 소라 마르티네즈가 입을 열었다.


“백부님께서 말씀하셨군요.”


루이 마르티네즈가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좋을 대로 생각하렴. 어쨌거나 그럴 리야 없겠지만 행여 네가 렌 가문의 영애를 이기기라도 했다간 렌 가문이 폭로에 나설 거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고.”


루이 마르티네즈가 소라 마르티네즈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그러잖아도 특혜니 뭐니 떠들어대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네 아버지는 당주 자리에서 내려오는 순간 심판대에 오르게 될 거다. 전례를 따져봤을 때 이런 일에 가담했을 경우 사형까지도 구형될 수 있고 너 역시.”

“저기, 신나게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한데요.”

“?”


루이 마르티네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라 마르티네즈의 얼굴에 떠오르고 있는 특유의 눈웃음 때문이었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백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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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거듭나다. +3 23.08.24 1,812 31 17쪽
11 10화. 찾아오다. 23.08.23 1,905 39 15쪽
10 9화. 각성하다. +1 23.08.22 1,993 38 16쪽
9 8화. 돌발상황. +3 23.08.22 2,048 40 12쪽
8 7화. 폭발하다. +2 23.08.21 2,217 39 15쪽
7 6화. 나타나다. +1 23.08.20 2,316 46 11쪽
6 5화. 고생문. +1 23.08.19 2,380 49 9쪽
5 4화. 한꺼번에. +3 23.08.19 2,533 49 10쪽
4 3화. 대가리 박아. +1 23.08.19 2,779 6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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