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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야전장교는 스피드런 해야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3.08.19 06:15
최근연재일 :
2023.09.15 21:28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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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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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글자수 :
217,604

작성
23.08.2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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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3화. 발견하다.

DUMMY

“낙제생이던 내가 알고 보니 천재 생도?”


소라 마르티네즈가 뛰어오며 소리쳤다.


“꼭 소설 제목 같죠 교관님!”

“생도.”

“네!”

“내가 불어넣어 준 거다.”

“네...?”


소라 마르티네즈가 마른침을 삼켰다.


“교, 교관님이요? 저의 천재적인 재능이 눈을 뜬 게 아니라?”

“덧붙여 말하자면 일시적인 거다. 증량환과 거의 다를 바가 없고.”


소라 마르티네즈가 나라 잃은 표정을 짓는 가운데 제익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아까 말했듯이.”


-잠깐 스토오오오옵!!!


둘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첨벙! 첨벙! 첨벙!


안나 윈스턴이 버터플라이 영법으로 호수를 가로질러 오는 중이었다.


“뭔데요! 방금 뭔데요!”

“질문 있으면 똑바로 해라 생도.”

“다 봤거든요! 둘이서 속닥속닥 거리는 거!”


소라 마르티네즈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다 들은 건 아닐까.

아니었다.


“얘한테만 비법 알려준 거죠! 왜요! 왜 얘한테만 알려줘요! 나도 가르쳐 달라고요!”

”야! 그런 거 아니거든! 그리고 너야말로 제일 먼저 성공했으면서 엄살은!”

“뻥치시네! 알지! 나 눈치 엄청 빠른거!”

“아니라고!”

“이거 봐라! 끝까지 말 안하네!”


소라 마르티네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디론가 손을 뻗었다.


-탁.


움켜쥔 것은 제익의 팔뚝이었다.

제익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소라 마르티네즈가 말을 이었다.


“첫 외출 때 교관님이랑 데이트하기로 했지롱.”

“뭐, 뭐, 뭐, 뭐, 뭐?”


제익은 소라 마르티네즈의 의도를 눈치챘다.

제익과 함께 화성에 갈 명분이었다.


“왜? 뭐 문제 있나?”

“당연히 있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교관님이랑 또라이가 데이트라니!”

“데이트라는 건 마르티네즈 생도가 장난으로 한 말이고, 교육 차원이다. 셋 중 가장 뒤떨어지니 휴가 중에도 가르칠 계획이다.”

“누가 그걸 물어요!”

“그럼?”

“교관님은!”


이어지는 안나 윈스턴의 말에 제익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관님은 바우어 교관님이랑 사귀시는 중이잖아요!”

“...뭐?”

“혹시나 교관님이 바람 피우는 거 알면! 바우어 교관님이 얼마나 슬퍼하시겠어요! 네!”


5초 정도.

제익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본 안나 윈스턴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이 만나는 걸 훔쳐봤다거나 한 건 절대 아니고요. 그냥 뭐랄까. 여자의 직감?”

“안나 윈스턴 생도.”

“네?”

“대가리 박아라.”

“대가리를요? 여기서요?”

“대가리 박으라고 했다.”

“에이, 왜 그래요. 교관님도 은근 부끄러움 많으시구나. 으핫핫.”


제익은 이 세계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진짜 분노를 느꼈다.

한편 그런 제익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소라 마르티네즈가 갑자기 씩 미소를 머금었다.


******


-우웅, 우웅, 우웅.


눈을 뜬 제익은 스트랩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러길 무섭게 고개를 가웃거렸다.


[교관님! 좋은 아침이요!]

[소라 마르티네즈]


“얘가 웬 아침 문자를 다 보내지?”


벌떡 몸을 일으킨 제익은 곧장 테이블로 다가섰다.

그리곤 위에 놓여져 있던 말라비틀어진 빵을 입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하루에 네 시간만 자니까 죽을 지경이네. 그래도 1년만 버티면 되니까 참자.”


300억.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 돈을 생각하면 없던 힘도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제익은 짝짝 얼굴을 두들겨 남아있던 잠기운을 쫓아내곤 스트랩을 착용했다.


“안나 윈스턴 걔가 제일 문제야. 다시는 헛소문 못 퍼트리게 더 빡세게 조여봐?”


-우웅.


제익은 왼손목을 들어올렸다.

스트랩 표면에 방금 도착한 메세지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올라 와]

[당장]


“...어?”


발신자를 확인한 제익은 다급히 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벌써 찾아온 건가?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달칵.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제익이 갑자기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뭔가를 집어 들었다.

지난번 카라부스의 배 속에서 나온 검은 상자였다.


******


-똑똑똑.


“들어와.”


곧바로 제익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지난번과 붙여넣기를 한 듯 딱히 변함이 없었다.

변화가 한 가지 있긴 했다.

크리스틴 벨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인이었다.


‘역시 왔구만.’


제익은 크리스틴 벨에게 목례를 건넸다.


“부르셨습니까 학교장님.”

“빨리빨리 안 다녀? 젊은 놈이 늦장은.”

“죄송합니다. 막 일어나던 참인지라.”

“됐고, 와서 인사 나눠.”


제익은 테이블로 다가섰다.

중년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제이크 한 교관님?”


한껏 멋들어지게 틀어 올린 밤색 머리.

척 보기에도 무척 고가인 옷들과 곳곳에 달린 각양각색의 귀금속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여인의 신분을 대신 말해주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밀리아 블루마이어라고 해요.”

“혹시 리드 블루마이어 생도의 모친 되십니까.”

“네, 맞아요. 역시 눈치가 빠르시군요.”

“스쿨에서 11소대를 교육 중인 제이크 한이라고 합니다.”

“바쁘신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어차피 이렇게 학부모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생도들 눈엔 안 좋아 보일 거고”

“그럼 그렇게 하시죠.”

“저희 리드가 어제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어요. 듣자 하니 교관님의 소대와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생도들 간 가벼운 다툼이 있었습니다. 말싸움으로 시작되어 주먹다짐으로 번졌고 아시다시피 리드 생도가 부상을 입는 걸로 끝났습니다.”

“갈비뼈가 두 대나 골절됐다는데 그런 걸 가볍다고 하진 않죠. 어쨌거나 저희 리드를 다치게 한 생도와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 병아리 이름이 뭐였지?”


크리스틴 벨이 끼어들며 말했다.


“무슨 헤드스핀인가? 그런 이름이었는데.”

“안나 윈스턴 생도입니다 학교장님.”

“아무튼 올라오라 그래.”


제익은 곧바로 스트랩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리더격인 생도에게 전달하라고 보냈습니다. 금방 올 겁니다.”

“감사해요. 곧 볼 수 있겠군요.”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제익은 슬그머니 반대편 벽을 바라보았다.


‘저 쪽이 심상치 않네.’


고우젠 바우어 못지않은 건장한 남자 둘이 우두커니 서 있는 중이었다.


“......”

“......”

“......”

“......”

“......”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되었을 무렵.


-똑똑똑.


“들어와.”


달칵,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 얼굴을 본 제익이 살짝 눈을 치켜떴다.


‘엥?’


“안녕하세요. 학교장님.”


엘리스 실버였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전달을 받았습니다만.”


정작 크리스틴 벨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얘기 나누시죠.”

“이 생도인가요?”


-또각, 또각, 또각.


실내를 가로질러 간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엘리스 실버의 앞에 멈춰섰다.

입가엔 왠지 묘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이상하네요. 제가 듣기론 키 크고 까무잡잡한 여자 생도라고 들었는데.”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게다가 아는 얼굴인 것도 같고... 뭐, 제 착각이겠죠.”

“이 분 때문에 절 부르신 건가요 교관님.”


제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 생도의 어머님이시다.”

“그러시군요.”


엘리스 실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나 윈스턴이라고 합니다.”

“듣자 하니 그쪽이랑 우리 리드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요.”

“네, 조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설명이라면 어제 학교장님과 교관님께 상세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듣고 싶은 거예요. 당사자 입으로.”

“제가 설명하는게 의미가 없어 보여서요. 설명이 아니라 변명으로 들리실 테니.”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다시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학교장님?”

“네.”

“어제 일로 이 생도가 받은 처벌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잘은 몰라도 딱히 그런 걸 받은 것 같진 않아 보이는지라.”

“훈육과 관련된 사항은 교관들이 모든 권한을 일임하고 있습니다. 거기 있는 한 교관에게 물어보시죠.”

“한 교관님?”


제익은 고개를 까닥였다.


“따로 처벌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째서죠?”

“말씀드린 대로 양쪽 다 잘못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양쪽 다 잘못이 있는데 우리 리드만 치료실 신세를 지고 있다 이거군요.”

“결국 안나 윈스턴 생도의 처벌을 바라신다 이 말씀 아닙니까.”


크리스틴 벨이 깍지를 끼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원하는 수위도 따로 있으신 것 같고.”

“네, 그게 교육기관의 규칙이자 도리라고 생각해서요.”

“어느 정도의 처벌을 원하시길래요.”

“당연히 저희 리드가 입은 부상과 동등한 수위죠. 골절. 다만 여기 한 교관님의 체면도 있고 하니 한군데로만 하죠.”


‘크리스틴 벨이 저쪽 편을 드는 분위기인데.’


크리스틴 벨이 왜 이러는지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갔다.

사실 그녀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기회나 다름 없었다.

크나큰 영향력을 가진 블루마이어 가문과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

그리하여 내년 의장 선거에서 든든한 배경이 생길 수도 있는 기회.


‘할 수 없다. 일단 최대한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유도할 수밖에.’


“두 분 대화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만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죠.”

“학교장님의 말씀대로 생도들 훈육에 관한 모든 권한은 저에게 있습니다. 어머님이 아니라.”

“물론이죠. 다만 그 권한이란 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됐다면 피해 생도의 부모로서, 그리고 스쿨에 입학한 모든 생도들의 부모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 충분히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권한에 관한 이야기라면 상대 소대의 교관 역시 지금 이 결과에 동의했습니다.”

“글쎄요. 저한테는 어떻게든 자기 생도를 보호하시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어머님의 의견에 따라 이 생도에게 처벌을 내리면 그 또한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서 잡음을 발생시킬 겁니다.”


블루마이어 가문의 입김이 들어간 상태에서 처벌을 내린다면 다른 학부모들은 오히려 이번 일을 꽤나 고깝게 받아들일 거라는 뜻.

동시에 크리스틴 벨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규정을 어기는 일이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네요.”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잡음만 안 나오면 상관 없는 건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블루마이어 가문이 그 정도 힘은 갖추고 있어서요. 잡음 같은 건 나오지 않을 거예요. 교관님도 걱정 안하셔도 돼요. 이렇게 하면 되니까.”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스쿨에 초임으로 임관하신 교관님께서 저희 가문의 위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라고.”


말뜻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제익에 대한 압박.

계속 감싸려고 했다간 블루마이어 가문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뜻.

두 번째는 크리스틴 벨에 대한 제안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하게 해준다면 이번 선거에서 블루마이어 가문이 뒤를 대주겠다고.


‘여기서 크리스틴 벨이 못을 박으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제익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자발적으로 받을게요.”


제익이 돌아보는 가운데 엘리스 실버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게도 방어권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주세요. 학교장님과 교관님이 허락한 사안이 아닌 만큼 저한테는 적극적으로 저항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들으셨나요. 학교장님? 자기 입으로 이렇게 얘기하는데?”


크리스틴 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사자가 받아들인다면야. 뜻대로 하시죠. 다만 저희는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잡아.”


크리스틴 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날카롭게 말했다.

곧바로 덩치들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떡할까.

제익이 내린 판단은 일단 이 상황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탁.


엘리스 실버의 손이 뒤에서 제익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제익이 돌아보자 눈이 마주친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저었다.

순간 제익은 왜 엘리스 실버가 안나 윈스턴 대신 올라왔는지를 눈치챘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엘리스 실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답이긴 했다.

어쨌거나 사건은 벌어졌고 제대로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한 블루마이어 가문은 끈질기게 책임을 물어올 테니까.

그리고 그건 분명 어떤 형태로든 제익에게, 11소대에게 영향을 미칠 테니까.

엘리스 실버는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는 것이었다.


“한 교관님? 잠깐 비켜주시겠어요?”

“......”


빙글 몸을 돌린 제익이 엘리스 실버로부터 물러섰다.

곧바로 덩치 중 하나가 엘리스 실버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그리곤 팔을 거칠게 붙들었다.


-우득!


어느새 몸에 은은하게 머금어진 푸른 광채는 덩치들이 각성자라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엘리스 실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광채의 선명도는 둘보다 훨씬 약했고, 뭣보다 얼굴엔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다른 덩치가 밀리아 블루마이어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할까요.”

“다리. 오른쪽.”


엘리스 실버가 입을 앙다물었다.

혹시 다리가 으스러진다 하더라도 절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리라.

엘리스 실버의 유일한 오산은,


‘역시 이렇게 흘러가는구만?’


-달칵.


제익이 올라오기 전부터 지금 이 그림을 대충 예상했다는 점이었다.

제익은 뒷짐을 진 채 아까 걸음을 물리면서 빼든 검은 상자를 움켜쥐었다.

상자의 정식 명칭은 패러독스.

효과는 꽤 단순했다.

바로 반전(反轉).

사용자의 역문, 그 힘의 특성을 반대로 변화시키는 것.

예를 들어 크리스틴 벨이 이 패러독스를 사용하면 최강의 방어력을 지니게 되는 식이었다.


“움직이면 더 다친다.”


막 덩치가 발을 들어 올린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앙!!!


패러독스로부터 뿜어져 나온 무언가가 방 안의 공기를 따라 번져나갔다.

하지만 소리를 들은 것도, 그 파동을 느낀 것도 제익 뿐이었다.

덩치의 발은 엘리스 실버의 정강이로 날아드는 중이었다.


-콰직!!!


엘리스 실버가 질끈 눈을 감았다.

인간의 뼈가 쪼개지는 끔찍한 소리.

곧 그보다도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 오리라.

1초.

1초.

1초.

1초.


‘...?’


이상함을 느낀 엘리스 실버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곤 그러길 무섭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끄아아악!”


정작 비명을 내지른 것은 덩치였다.

얼굴에 떠올라 있는 것은 잔뜩 당황한 표정.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몸에 두르고 있던 엔트로피가.

바라보던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잔뜩 미간을 구겼다.


“뭐하는 거야! 똑바로 안 해!”

“아으으윽!”

“이런 등신 같은! 그냥 팔이라도 부러뜨려!”

“네, 사모님.”


-우드드드득!


엘리스 실버의 팔을 꺾고 있던 덩치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음?”


그야말로 미동도 없는 엘리스 실버의 팔.

하지만 이상한 건 엘리스 실버의 팔이 아니었다.


“뭐야, 엔트로피가 다 어디로...?”


엘리스 실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제익이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제익이 고개를 까닥였다.

신호였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악!!!


“커억!”


몸을 회전시킨 엘리스 실버가 팔꿈치를 덩치의 얼굴에 꽂아넣었다.

왈칵 뿜어져 나온 코피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쩌엉!!!


일직선으로 날아든 손바닥이 그 턱을 올려붙였다.

곧바로 하얗게 말려 올라가는 동공들.

하지만 엘리스 실버는 멈추지 않았다.


“자, 잠깐! 기다려!”


깨갱발을 뛰고 있던 덩치가 황급히 다시 발을 내렸지만 명백한 악수였다.


-콰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덩치가 자신의 정강이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음 순간 덩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훙.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내리꽂히는 중인 엘리스 실버의 주먹이었다.


-쩌억!!!


연타였다.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덩치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어갔지만 엘리스 실버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주먹을 내리칠 뿐.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쩍!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덩치의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탁.


몸을 바로 세운 엘리스 실버가 이번엔 뒤를 돌아보았다.


"마, 말도 안 돼."


눈이 마주친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학교장님!”

“아까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황급히 제익을 돌아보았다.


“한 교관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도와주시면 저희 가문이! 아니! 제가 개인적으로 뒤를 봐 드리죠!”

“...마침 후원자가 필요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걸어나오는 제익을 보며 엘리스 실버가 발을 멈췄다.

그런데 제익이 갑자기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함께 발을 멈췄다.


“생각해보니 안 될 것 같습니다.”

“대체 왜요!”

“저는 지금 블루마이어 가문의 위세에 눌려 아무것도 못 하는 초임 교관이니까요.”

“???”


-저벅! 저벅! 저벅!


제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스 실버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어 그 손이 밀리아 블루마이어의 멱살로 날아들었다.


-우득!


"!!!"


밀리아 블루마이어가 기겁하며 크리스틴 벨을 돌아보았다.


"진짜 두고만 보실 생각이세요!"

"야, 병아리."


피범벅이 된 주먹을 들어 올리던 엘리스 실버가 돌아보는 가운데 크리스틴 벨이 말을 이었다.


“선 넘지 마.”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주먹을 풀었다.


-짜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날카로운 파열음과 밀리아 블루마이어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오래 가진 않았다.


-짜아아아아아악!!!


정확히 같은 궤도로 날아든 엘리스 실버의 손바닥이 그것을 멎게 했다.

제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래도 안나서는 건 좀 이상한데?’


제익은 크리스틴 벨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뭔가를 깨달았다.

눈빛 때문이었다.

마치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한 눈빛이었다.

자신의 앞길을 밝혀줄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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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화. 찾아오다. 23.08.23 1,906 39 15쪽
10 9화. 각성하다. +1 23.08.22 1,994 38 16쪽
9 8화. 돌발상황. +3 23.08.22 2,049 40 12쪽
8 7화. 폭발하다. +2 23.08.21 2,220 39 15쪽
7 6화. 나타나다. +1 23.08.20 2,318 46 11쪽
6 5화. 고생문. +1 23.08.19 2,384 49 9쪽
5 4화. 한꺼번에. +3 23.08.19 2,535 49 10쪽
4 3화. 대가리 박아. +1 23.08.19 2,781 6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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