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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야전장교는 스피드런 해야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3.08.19 06:15
최근연재일 :
2023.09.15 21:28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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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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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604

작성
23.09.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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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19화. 시작하다.

DUMMY

연방 정부가 화성에서 관리하는 공항은 총 열두 곳으로 에어포트6은 규모로는 가장 작은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 에어포트6는 다른 열한 곳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한 시간 전에 발표된 뉴스 때문이었다.

대형 여객선 한 척이 해적단에게 습격을 당했다.

방위군이 즉시 출동해 사망자는커녕 부상자도 없이 전원 구출해냈다.

그것도 상황이 발생한지 10여 분 만에.

인파들의 정체는 대부분 화성 각지의 언론사에서 파견된 취재원들이었다.


-해적들이 무엇을 요구해 왔었습니까!

-보도는 사실입니까. 정말 희생자는 한명도 없었습니까!

-해적들과 방위군 간의 전투는 어땠습니까!


웬일인지 분위기는 조금 묘했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기쁨도 딱히 없는 것일까.

승객들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질문들을 대충 얼버무리며 계속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장교가 도착 직전에 한 부탁 때문이었다.


-실은 저희는 스쿨의 교관과 생도를 가장한 비밀 부대입니다.

-해서 이번 일은 저희가 아닌 지원 병력이 해결한 것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편, 유일하게 기자들이 달라붙지 않는 승객들이 한 무리 있었다.


-저거 스쿨 제복 아냐?

-뭐야, 벌써 외출을 나왔나.

-그럼 저쪽도 해적들이랑 전투를 벌였다는 뜻이잖아.

-그럴 리가. 상처 하나 안 보이는데.


실은 군인이라는 것 말고도 기자들이 감히 말을 걸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선두에서 걸어가고 있는 남자 장교의 표정이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왔다간 걷어차 버리겠다는 듯한 표정.

실제로도 그랬다.


‘이딴 의미없는 구간은 빨리빨리 넘어가자. 그나저나 슬슬 말 걸어올 때가 됐는데.’


그나마 안나 윈스턴만이 이리저리 주변을 훑어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와, 사람 엄청 많다. 벌써 뉴스로 나간 건가.”

“근데 자세히는 안 나갔나 본데. 우리한테는 말 안 거는 걸 보니.”

“먼저 가서 말하는 건 조금 모양 빠지려나. 우리 무조건 훈장 하나쯤은 받겠지?”

“우리가? 따지고보면 교관님이 다 하신 거 아냐?”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그 지지배 내가 쓰러트렸... 아, 교관님이 거의 다 한 거 맞네.”


툭,

안나 윈스턴이 제익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좋으시겠네요. 곧 훈장 하나 받게 되실 텐데.”

“교관이 훈장 받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훈장 받은 교관밖에 안 되지. 그보다 귀관과 소라 마르티네즈 생도는 먼저 호텔로 가있도록.”

“네?”

“왜요왜요? 언니랑 둘이 어디 가시게요?”

“몰라서 묻나?”


소라 마르티네즈와 안나 윈스턴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저희도 따라가면 안 돼요?”

“나도, 나도 갈래요.”

“외출이니 뭐니 하니까 진짜 놀러 온 줄 아나.”


샐쭉 입을 내미는 둘을 보며 제익이 말을 이었다.


“아까 귀관들이 겪은 전투는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숙소 들어가서 복기하고 또 복기해라.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었을까, 누구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등등.”

“네...”

“넵.”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익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마른 체격에 안경을 쓴 남자가 헐레벌떡 따라붙고 있었다.


“혹시 저 기억나십니까.”

“엇, 혹시.”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안나 윈스턴이었다.


“먼저 온 해적한테 죽을 뻔한 아저씨?”

“맞습니다. 그때는 진짜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덕분에 살았네요. 아무튼 제가 여기서 택시를 하고 있거든요. 보답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머무시는 동안 제 차를 이용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셋은 대답 대신 제익을 바라보았다.

제익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테드 안테놀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제이크 한이라고 합니다.”


테드 안테놀이 제익의 손을 맞잡았다.


“캬, 특수전 장교들이 싸우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아까 그게 엔트로피입니까? 보면서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원.”

“실례가 안 된다면 바로 이동할 수 있겠습니까. 실은 일정이 빠듯해서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바로 차 몰고 오겠습니다. 이따 봽지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테드 안테놀이 후다닥 멀어져갔다.

곧바로 셋 중 누군가가 다가와 제익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교관님, 교관님.”


소라 마르티네즈였다.


“혹시요. 좋아하는 음식 있으세요? 저희가 미리 준비해 놓을게요.”

“딱히 가리는 건 없다. 귀관들이 먹고 싶은 걸로 시켜놔라.”

“그래도요. 아니면 제가 만들어 드릴까요? 이래 봬도 요리는 자신 있는데.”


뒤에서 바라보던 안나 윈스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언니.”

“응.”

“쟤 혹시 그거 아냐?”

“그거라니?”

“짝사랑.”

“갑자기?”


엘리스 실버가 다시 둘을 바라보았다.

꽤 오해할만도 했다.

제익의 옷자락을 붙든 채 헤실헤실 웃고 있는 소라 마르티네즈.

그리고 그런 소라 마르티네즈의 말에 한마디 한마디 빠짐없이 대답해주고 있는 제익.


“글쎄, 내가 보기엔 그냥 교관님이 소라 다루는 방법을 깨달으신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교관님이야 그렇다 쳐다 소라 쟤는 진심인 것 같아. 어떡하지. 안타까워서.”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알잖아. 여자의 짝사랑이 얼마나 힘든 건지. 그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더더욱.”

“일단 내가 알기론 스쿨에서 생도랑 교관이랑 연애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는 걸로 알아.”

“그런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하잖아.”


안나 윈스턴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교관님은 바우어 교관님이랑 사귀는데.”

“...그거 저번에 오해로 끝난 거 아니었어?”

“언니는 진짜 이럴 때보면 너무 순진하다니깐. 그때 호수에서 사귀는 거 아니라고 하시진 않았잖아. 그냥 나한테 들키니까 부끄러워서 화낸 거지. 가끔 생각하는 건데 난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빨라서 괴로워.”


엘리스 실버는 대답 대신 다시 둘을 바라보았다.

소라 마르티네즈가 막 제익의 옷자락을 놓아주는 중이었다.


“그럼 이따 봬요.”

“돌아올 때까지 혹시나 안나 윈스턴 생도가 말썽 안 피우도록 잘 감시해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숙소에 붙들고 있을 테니까.”


제익은 엘리스 실버를 돌아보았다.


“생도, 출발하자.”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이곤 제익에게 다가섰다.

얼마 안 있어 테드 안테놀이 택시를 타고 나타났다.


******


의료 센터는 꽤 한가했다.

테드 안테놀 역시 센터에는 별로 와본 적이 없는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어릴 때 한번 와보고 나이 들어서는 처음입니다. 그땐 어머니 손 잡고 왔었는데.”

“그보다 잠깐이라도 집에 갔다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까 뉴스 때문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닙니다. 마누라한테 사정을 말했더니 꼭 모셔다드리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지 뭡니까. 아, 물론 방위군이 구해준 거라고 했고요.”


테드 안테놀이 몸을 일으켰다.


“기다리는 동안 드실 수 있게 음료수라도 사오겠습니다.”

“그럼 모쪼록 부탁드립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테드 안테놀이 후다닥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익은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침대 위에선 엘리스 실버가 힘겹게 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부상 정도는.”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대요. 근데 심각한 건 아니에요.”

“보통 그 정도면 심각하다고 하지 않나?”

“의외시네요. 군인이면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엘리스 실버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 해적들, 정말 블루마이어 가문이 보낸 거였나요.”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하려고도 안 했고.”

“왜요...?”

“그랬다간 우리가 탔던 여객선은 지금쯤 우주 어딘가를 떠다니고 있겠지. 시체들로 가득 차서.”


5초 정도.

제익의 말뜻을 이해한 듯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해적들이 블루마이어 가문의 사주를 받은 거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실을 이쪽에 들켜선 안됐을 터.


“협상은요.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리셨길래 금방 물러난 건가요.”

“간단하게 승객들보다 비싼 걸 팔았을 뿐이다.”

"어떤 거요."

"귀관들."

“저희들을요...?”

“혹시나 귀관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순간, 우리 학교장님이 직접 토벌에 나서실 거라고 했다.”


멍하니 제익을 바라보던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시네요. 순간 그런 생각을 다 떠올리시고.”

“그 반대지. 주어진 바를 반드시 해내야 군인인 거다.”

“다 교관님처럼 하진 못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니까.”


잠시 정적.

제익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생들 활약을 보다 보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나?”

“그렇다기보다 미안해서요. 저렇게 재능있는 동생들이 앞으로 저 때문에 발목을 잡힐 걸 생각하니.”

“천만에. 귀관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엘리스 실버가 돌아보는 가운데 제익이 말을 이었다.


“내가 왜 귀관들을 뽑았다고 생각하나. 입학 성적순으로는 뒤에서 1,2,3등이었던 자네들을.”

“글쎄요. 왜였나요.”

“자신이 있어서다. 내 손으로 누구보다 빛나게 만들 자신이.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라. 내 생도로 뽑혔다는 것에.”

"......"


엘리스 실버가 살짝 몸을 들썩거렸다.

표정은 방금 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건 결국 자기 자랑 아닌가요."

“그렇게 들렸으면 할 수 없고.”

“아, 웃으면 안되는데. 혹시나 덧나면 교관님 때문이에요.”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자판기가 좀 멀리 있네요.”


허겁지겁 들어온 테드 안테놀이 음료수 두개를 내밀었다.


“나름 화성 특산품입니다. 한번 드셔보시죠.”

“생도, 치료 들어가기 전에 목 조금 축여놔라.”

“마셔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물 한 모금 못 마실 정도면 방금처럼 웃을 생각도 안 들었을 거다.”

"말을 꼭 그렇게 하셔야 돼나요."


엘리스 실버가 눈을 흘기곤 음료수를 건네받았다.

둘은 곧바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둘이 나란히 한모금을 마신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타이밍 좋게 의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스 실버 양 맞습니까?”

“네, 잘 부탁드릴게요.”

“진료 끝나면 바로 응급수술 들어가겠습니다. 장교분께선 잠깐 나가계셔야 합니다만.”

“그냥 옆에 있겠습니다.”

“안 됩니다. 저희 병원의 규정입니다.”

“이쪽도 규정상의 이유입니다.”

“쩝, 이렇게 고집 부리시면 시간만 지체될 뿐인데요.”


엘리스 실버가 입을 열었다.


“교관님, 저 괜찮으니까 잠깐 나갔다 오세요.”


원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


그럴 수가 없었다.


‘뭐지, 왜 몸이.’


엘리스 실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익을, 그러다 뒤에 서 있는 테드 안테놀과 의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움직여지지 않았다.

순간 엘리스 실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기시감이었다.


‘이 느낌은 분명 그때의.’


바로 지난번 숲속 대련 사건 때 제익의 함정에 걸려 마비가 됐던 기억.

그때 경험했던 느낌과 너무나 비슷했다.

마치 의식과 몸이 분리가 된 듯한 느낌.


“교...과...”


엘리스 실버가 안간힘을 쓰며 제익에게 손을 뻗었지만 정작 아무런 소용도 없는 행동이었다.


-툭.


제익의 몸이 고꾸라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엘리스 실버 위로 엎어졌다.

이어지는 의사의 말에, 그리고 그에 대답하는 테드 안테놀의 말에 엘리스 실버가 입을 꽉 앙다물었다.


“확실한 거야?”

“오면서 계속 확인했어. 대화도 엿들었고. 맞아. 프리실라 실버의 딸.”


돌변해 있었다.

테드 안테놀의 표정이.

아니, 얼굴 자체가.

얼핏 순박해 보이기까지 했던 아까와는 180도 다른,

그야말로 얼음장 같은 차가운 눈빛.

의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다리 맞지.”

“그래, 자르는 장면만 찍어서 보내면 돼.”

“지도는. 그것도 찍어서 가져가면 되는 건가.”

“아냐, 그건 등가죽 째로 벗겨가야 돼. 보스가 사진으로는 안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대.”

“좋아, 시작하지. 타이머는.”

“3분.”


-탁.


테드 안테놀이 탁자에 원뿔 형태의 검은 무언가를 올려두며 말했다.

전면에 달린 패널엔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180sec]


의사가 다시 엘리스 실버를 돌아보았다.


“마비는 확실한 거겠지.”

“벨로폰의 독이야. 다리가 잘리든 등짝이 벗겨지든 비명 한번 못 지를 테니까 걱정 마.”

“자신만만한 것치곤 꽤 멀쩡한 것 같은데.”


휙 고개를 돌려 엘리스 실버를 돌아본 테드 안테놀이 살짝 눈을 치켜떴다.

엘리스 실버가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중이었다.


“뭐야, 어떻게 의식이 있어.”

“더 먹여 봐. 중간에 발버둥이라도 치면 괜히 시간 끌리니까.”

“멍청하긴. 벨로폰 독은 양이랑 상관없는 거 몰라?”


테드 안테놀이 자신을 노려보는 엘리스 실버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아마 내성이 조금 있나 본데.”

“내성?”

“그래, 최근에 비슷한 독을 당해본 적이 있는 거야. 하기사 스쿨이니 온갖 훈련을 다 받겠지.”

"그냥 놔둬, 저래봐야 지만 손해지."


-스릉...


의사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며 말했다.

톱이었다.


“교관놈 좀 치워봐.”


테드 안테놀이 곧장 제익의 몸을 붙들곤 엘리스 실버의 위에서 치워내기 시작했다.

엘리스 실버는 입을 앙다문 채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볼 뿐.


-턱.


곧바로 의사가 엘리스 실버의 오른 다리에 톱을 갖다 댔다.


“촬영은.”

“준비됐어. 시작해.”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엘리스 실버의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톱질을 시작했다.

그러려고 했다.


-탕!!!


“커억!”


테드 안테놀이 재빨리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러길 무섭게 엔트로피를 몸에 둘렀다.


“뭐야 이 자식!”


제익이었다.

손에는 매끈한 직사각형의 작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탕!!! 탕!!!


의사와 테드 안테놀이 다급히 걸음을 물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빌어먹을.”

“완전히 방심해서 반응이 좀 늦었네.”


으적, 으적,

의사가 자신의 팔뚝에 손가락을 쑤셔 넣는가 싶더니 탄두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테드 안테놀은 다시 제익을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뜨는 중이었다.


“스쿨 교관쯤 되면 벨로폰 독도 안 통하나 보군.”


제익은 듣는 척도 안하고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생도, 움직여지나.”


엘리스 실버가 대답 대신 질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곤 이어 힘겹게 오른손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바라보던 제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해적이 아니라 이쪽이 진짜인가 보군. 아니면 양쪽 다일 수도 있고.”

“설마 병원에까지 총을 챙겨왔을 줄이야.”


테드 안테놀이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기왕 챙겨올 거면 검을 챙겨왔어야지. 그깟 권총으로 아무리 쏴봤자.”


-탕!!! 탕!!!


이어지는 정적.

테드 안테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총알 따위에 엔트로피가 뚫릴 리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


바지 쪽에 느껴지는 뜨끈뜨끈한 무언가.

슬그머니 아래를 내려다보던 테드 안테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옷자락들이 벌겋게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배에 새로 생겨난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그리고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크억...”

“말도 안 돼... 대체 어떻게...”

“의뢰자는 밀리아 블루마이어인가?”


테드 안테놀이 이를 갈았다.


“멍청한 놈, 대답해 줄 것 같으냐.”

“그래, 순순히 대답해줘서 고맙다.”

“뭐...?”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밀리아 블루마이어일 수밖에 없지. 나 같으면 그게 누구냐고 되물었을 거다.”


테드 안테놀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맘대로 지껄여봐라. 어차피 살아서 못 나가니까. 지금 이 병원은.”

“가짜 병원이라고.”

“???”

“그리고 건물 전체에 너희 하사신들이 대기하고 있고.”


테드 안테놀이 쩍 입을 벌렸다.


“어,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

“엘리스 실버 생도.”


슥,

제익이 엘리스 실버의 위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건물을 탈출한다. 움직일 수 있는만큼이라도 움직여라.”


말뜻을 이해한 것일까.

엘리스 실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돌을 매달아 놓은 듯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하지만 엘리스 실버는 기어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해냈다.


“됐...어요...”


제익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있는 엘리스 실버와 함께 몸을 바로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반대쪽 손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드는 중이었다.

로프였다.


-탁!


순간 빈틈이라고 생각한 테드 안테놀과 의사가 제익에게 돌진해왔다.

착각이었다.


-타타타타타탕!!!!!


“크악!”

“커어억!”


두 암살자의 몸이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갔다.

제익은 총구를 돌려 뒤의 창문을 조준했다.


-탕!!! 탕!!!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한 유리벽.

바라보던 두 암살자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총알이 지나간 곳에 어렴풋하게 묻어있는 푸른 광채.


‘이럴 수가.’

‘탄환에 엔트로피를 실어?’


제익은 유리창을 향해 팔꿈치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퍼어어어어엉!!!


유리창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는 순간.


-삑, 삑, 삑, 삑, 삑.


모두의 시선이 탁자 위 놓여있는 폭탄으로 향했다.


[5sec]

[4sec]


“젠장!”


테드 안테놀이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제익이 콤마 몇초 더 빨랐다.


-타앙!!!


“컥!”


거의 동시에 제익이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암살자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탁자 위에 놓인 폭탄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것으로부터 새어 나온 열기가, 소리가,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화염이 둘을 집어삼켰다.

위에서 터져나온 거대한 불꽃이 빠르게 멀어져 가는 가운데 제익은 로프에다 엔트로피를 주입하곤 힘껏 내던졌다.

다행히 로프는 벽에 닿기 무섭게 쩍 달라붙었고 둘의 몸은 우뚝 멈춰섰다.


‘이번 건 좀 위험했네. 로프 쓰는 연습을 미리 해놔서 다행이었다.’


제익은 엘리스 실버를 돌아보았다.


“상태는?”

“하아... 하아... 하아...”


마비가 풀리고 있는 것일까.

숨을 몰아쉬던 엘리스 실버가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훨씬 더 또렷한 목소리였다.


“1분, 정도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보다 동생들한테, 연락해야.”

“그쪽은 걱정할 것 없다.”


제익이 앞의 유리벽에 총구를 갖다 대며 말을 이었다.


“나보다 백배는 더 무서운 사람이 가 있을 테니까.”


-타앙!!! 타앙!!! 타앙!!!


유리벽에 대고 총을 난사한 제익은 이내 금이 간 부분을 힘껏 걷어찼다.


-콰차차창!!!!!!


“!”

“!”

“!”

“!”

“!”

“!”


안으로 몸을 던지기 무섭게 이쪽을 바라보는 의사와 간호사들.

제익은 엘리스 실버를 감싸안으며 총을 들어올렸다.

곧바로 사격음과 암살자들의 비명소리가 플로어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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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떠오르다. +3 23.08.30 1,451 35 13쪽
17 16화. 녹여버리다. 23.08.29 1,447 38 15쪽
16 15화. 해적왕. 23.08.28 1,490 39 15쪽
15 14화. 신속하게. +3 23.08.28 1,565 40 17쪽
14 13화. 발견하다. +1 23.08.26 1,590 35 18쪽
13 12화. 필요하다. +3 23.08.25 1,664 39 15쪽
12 11화. 거듭나다. +3 23.08.24 1,812 31 17쪽
11 10화. 찾아오다. 23.08.23 1,905 39 15쪽
10 9화. 각성하다. +1 23.08.22 1,993 38 16쪽
9 8화. 돌발상황. +3 23.08.22 2,048 40 12쪽
8 7화. 폭발하다. +2 23.08.21 2,217 39 15쪽
7 6화. 나타나다. +1 23.08.20 2,316 46 11쪽
6 5화. 고생문. +1 23.08.19 2,380 49 9쪽
5 4화. 한꺼번에. +3 23.08.19 2,533 49 10쪽
4 3화. 대가리 박아. +1 23.08.19 2,779 6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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