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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장교는 스피드런 해야한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SF

탄탄비
작품등록일 :
2023.08.19 06:15
최근연재일 :
2023.09.15 21:28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55,112
추천수 :
1,245
글자수 :
217,604

작성
23.08.19 09:59
조회
2,380
추천
49
글자
9쪽

5화. 고생문.

DUMMY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근데 이 인간이 보자보자 하니깐 진짜!’


원래 그녀가 그렸던 그림은 엘리스 실버와 소라 마르티네즈가 최대한 힘을 빼놓은 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마무리를 짓는 것.

엔트로피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덧붙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아직 엔트로피 운용이 서툰 자신들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니까.

그런데 엔트로피를 쓰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동시에 덤벼들라니.


'확 쌍코피를 내버릴까 보다.'


스쿨은 입학시험을 통해 생도들을 받는다.

즉, 이곳에 입학하는 생도들은 모두 어느 정도 훈련과 단련을 거친 상태라는 뜻.

그중에서도 맨몸 격투는 안나 윈스턴이 가장 자신있는 종목이었고.


‘언니랑 또라이가 양옆에서 달려들고, 내가 정면에서 달려드는 게 제일 낫겠지?’


막 안나 윈스턴이 작전을 짜기 위해 다른 둘에게 다가서려던 그때였다.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검술 훈련을 할 예정이었으니, 이것도 훈련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다.”


-까라랑!


뒤를 돌아본 안나 윈스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제야 제익이 어깨에 짊어지고 온 보자기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검들이었다.

제익이 땅에 떨어진 검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훈련용 가검이 아닌 진검이다. 사용 시 부상에 유의하도록.”

“네, 네, 네???”


안나 윈스턴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설마 검술 대련으로 하자고요? 그것도 진검으로?”

“뭐 문제 있나? 어차피 귀관들이 배워야 할 과목인데.”

“아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요.”


안나 윈스턴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어쨌거나 교관을 담당하고 있는 인간이다.

당연히 검술 실력도 꽤 뛰어날 터.

맨몸으로 싸울 때야 숫자의 차이가 엄청난 이점이 되지만 무기를 들게 되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특히 자신들 셋은 검술에 있어선 거의 초보니까.


“위험! 위험하잖아요!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교관님한테도 분명 처벌이 내려올 걸요?”

“걱정할 필요 없다.”

“뭐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혹시 윗선에 든든한 백이라도 있으신가요.”

“검을 쓰는 건 제군들 뿐이니까.”


-철컥!


제익이 발치에 떨어진 검들을 주워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맨손으로 임할 것이다. 크게 다칠 염려는 안 해도 좋다. 자네들은.”


살짝 입을 벌리는 것도 잠시,


“우.와.굉.장.히.감.사.하.네.요.”


안나 윈스턴이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제익의 손에서 검들을 뺏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저희를 얕봐주셔서. 보답으로 최선을 다할게요.”

“물론이다. 실전이라 생각하고 덤비도록.”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철컥!

마지막 검까지 뺏어든 안나 윈스턴이 나머지 둘에게 다가섰다.


“들었지? 절대 봐주지 마.”

“야야, 기다려 봐. 진정 좀 하고.”


소라 마르티네즈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이러다 문제 심각해 지는 거 아냐? 교관님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게?”

“알 빠야?”

“이게 진짜! 너는 그렇다치고 우리는? 죄없는 우리까지 또 끌어들일래?”

“그럼 넌 빠져.”

“야!”

“됐고 언니는? 언니는 어떻게 생각... 헉?”


안나 윈스턴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철컥.


묵묵히 검을 받아드는 엘리스 실버의 표정 때문이었다.


“어, 언니? 또 화난 거 아니지?”

“응? 아냐, 화는 무슨.”


엘리스 실버가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냥 궁금해서. 아무리 교관님이라지만 셋이서 무기를 들고 덤벼드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 하고.”

“흥, 뻔하지 뭐.”


안나 윈스턴이 제익을 힐끗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직전에 멈춰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공격당할 일은 없을 거라고. 끝나면 또 뭐라뭐라 잘난 척 설교해댈 거고.”

“야, 설교 좀 들으면 어떠냐. 따지고 보면 이거 다 네 잘못으로 시작된 일이잖아.”

“넌 하기 싫으면 빠지라니깐?”


소라 마르티네즈가 안나 윈스턴을 찌릿 흘겨보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

“또 뭐.”

“끝나면 나한테 고맙다고 말하기로. 알지. 이 중에서 검은 내가 제일 잘 다루는 거.”

“고작 그걸 못할까 봐. 오케이, 얼마든지 해준다.”

“진심으로 하라고 지지배야. 진영부터 짜자. 보통 이런 경우엔 정확히 각도를 나눠서 포위하는 게 유리해. 근데 각자 보폭과 팔길이를 감안해서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그 뒤로 1분 정도.

소라 마르티네즈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안나 윈스턴과 엘리스 실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진심으로 하되 선은 넘지 마. 목적은 이기는 거지 교관님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니니까. 특히 안나 너.”

“나도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뭐. 해봤자 팔뚝 같은 곳 살짝 긁으려는 거지.”

“시작하자.”


셋은 척척척 걸어가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제익은 뒷짐을 진 채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

이윽고 셋이 멈춰서기 무섭게 안나 윈스턴이 입을 열었다.


“시작해요?”

“자네들과 나는 이미 적이다. 적에게 공격할 타이밍을 묻는 바보도 있나?”

“아? 그러세요?”


-사악!


안나 윈스턴이 곧바로 몸을 낮췄다.

나머지 둘 역시 마찬가지.


-사악!

-사악!


비스듬히 앞으로 기울인 상체.

검집을 움켜쥔 왼손.

손잡이와 바로 위 허공에 자리잡은 오른손.

붙여넣기를 한 듯 똑같은 자세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군용 검술의 돌진 자세.

안나 윈스턴이 눈을 한번 빠르게 깜빡였다.

바라보던 다른 둘이 눈을 한번 깜빡였고,


-타앙!!!


지면을 박찬 셋의 몸이 동시에 제익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어지는 두 걸음째.


-우득.


셋의 손이 동시에 검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반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일까.

제익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을 뿐.


‘진짜 맨손으로 막으시려는 건가.’

‘대체 무슨 속셈이지.’

‘꼴값 떨고 있네.’


-타앙!!!


그리고 이어지는 세 걸음째.

이제 남은 거리는 두 걸음.


-스릉!


막 세자루의 검이 뽑혀나오려던 그때였다.


“컥?!”

“윽?!”

“악?!”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셋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들.

누군가가 이 상황을 봤다면 분명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제익을 향해 돌진하던 셋이 갑자기 고꾸라지는가 싶더니 바닥에 깔린 낙엽을 따라 죽 미끄러졌던 것이다.


‘뭐지.’

‘몸이.’

‘안 움직인다?’


“말했다시피.”


셋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승부가 시작된 순간 귀관들과 나는 적군이었다. 이곳은 전장이었고.”


어느새 셋의 머리맡으로 다가온 제익이 태연한 얼굴로 검들을 주워들며 말했다.


“전장에서 적을 믿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다. 특히 적이 호의를 베풀 때라면 더더욱.”

“이익...!”


안나 윈스턴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몸은 주인의 의지를 조금도 따라주지 않고 있었다.

마치 뇌와 몸이 분리된 듯한 감각.

그녀는 물론 다른 둘의 머릿속에도 같은 단어가 떠올라 있었다.

어차피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니까.


‘독(毒).’


문제는 ‘언제’였다.

만약 기체 상태로 퍼트린 거라면, 그래서 자신만 해독제를 미리 맞은 거라면 제익 혼자만 중독이 되지 않은 게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타이밍.

방금 전 자신들은 분명 ‘동시에’ 쓰러졌다.

그건 기체니 해독제니로 결코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답을 눈치챈 건 안나 윈스턴이었다.


‘...?!’


눈에 핏대를 세운 채 제익을 노려보던 안나 윈스턴이 으득 이를 갈았다.

순간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바로 조심스럽게 검들을 고쳐 쥐고 있는 제익의 손가락들.

정확히는 그 위치들이었다.

기체도, 해독제도 아니었다.

막상 알고 나니 트릭은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손잡이에...!’


“자네.”


안나 윈스턴의 이가는 소리에 제익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인데?”

“이...비겁...한...”

“그래서 승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가?”

“군...인...이...이래...도...되는...”

“착각하지 마라 생도.”


제익이 안나 윈스터의 위로 몸을 숙이곤 말을 이었다.


“비겁함이야말로 군인에게 있어 최고의 미덕이다. 귀관들은 상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적군을 쓰러트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추잡한 속임수라 할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군인 정신이다.”


안나 윈스턴은 눈에 핏대를 세운 채 제익을 노려보기만 할 뿐.

몸을 다시 일으킨 제익이 한쪽을 가리켰다.


“마비는 5분 정도 뒤면 풀릴 거다. 632-A 포인트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엘리스 실버 생도의 인솔 하에 찾아오도록.”

“......”

“......”

“......”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나올 수가 없었다.

셋은 호흡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태였다.


“이상.”


-저벅, 저벅, 저벅.


제익은 빠른 걸음걸이로 셋 사이를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그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생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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