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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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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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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9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5.18 00:12
조회
613
추천
15
글자
12쪽

#8. 길은 개척하라고 있는 법이지

DUMMY

“마지막이야.”


벤이 마차에서 내려오는 수인을 부축하며 전했다.


하루는 수인의 입에 걸린 보랏빛 진을 풀어 술식을 해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의 손에 아직도 떨림이 남아있다.


“철두철미한 녀석들, 손가락까지 전부 봉해두고 있었어.”


나무에 포박진으로 묶인 용병들은 입구에 있던 경비병들에게 감시당하면서도 아니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술식까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게 능숙한 자들이었다.


‘벌이가 좋기 때문인지 혹은 벌이가 없었기 때문인지.’


언젠가 같은 진영 용병으로서 섰던 날도 있을 터였다.


종전 직후에도 서로 같은 비로 핏물을 씻어냈을 그들이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이유는 따로 없었다.


단순히 그날 주어진 평화가 모두에게 동등한 자유를 가져다주진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종전 이후 노예상이 심각한 위법으로 정해졌다는 걸 그들도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벌이 때문에?’


고심하는 하루의 뒤로 한 여성이 다가왔다.


“치안유지대에서 오셨나요? 다행히 잘 찾아오셨나 보네요.”


거대한 마녀 모자에 연보랏빛 긴 머리칼을 지닌 그녀가 중저음으로 물어왔다.


“죄송하지만 전 택배기사입니다. 여기 두 분은 기사고요.”


예상치 못한 답에 다소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전 당연히 단서를 찾아오신 줄로만······ 아.”


말을 하다말고 뭔가 짤막한 감탄사만 내뱉더니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직도 그 아이는 저를 찾고 있겠네요.”


“그 아이?”


“아뇨. 혼잣말이에요. 아직 걱정하고 있을 여동생이 떠올라서······ 어쨌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의 복장이나 외형 등이 어째선지 낯설지가 않다.


그녀를 조금 찬찬히 살피고 있자니 로자릭이 다가왔다.


“이들을 먼저 치안유지대에 이송시키는 게 낫겠어.”


“정말 많이도 모았네. 분명 이들뿐만이 아닐 거야.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겠어.”


벤도 질색하더니 모여있는 수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영주쯤이나 되면 노예상에게 퍼부을 화폐도 많은 건지, 좀처럼 보기 힘든 수인조차 심심찮게 있었다.


그들의 안전확보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어쩌면 이미 늦어버렸을지 모르는 수신인 쪽도 신경 쓰인다.


“로자릭. 지하에 있는 이들은 이미······ 늦은 겁니까?”


로자릭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 제대로 된 생명은 없었어.”


그런 말을 들으면 안심과 불안이 공존했다.


로자릭이 이곳에서 도망쳤을 때를 기준으로 이미 시간도 제법 지났다.


더 지체할 순 없었다.


“생체실험?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죠?”


그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끼어들었다.


“설마 저희가 생체실험의 재료로 끌려가고 있던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로자릭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입을 다무니 나머지 둘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예상에게서 구조시킬 목적으로 접한 게 잘못 황천길로 갈 뻔했군요.”


그녀는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는 식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나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느껴진다.


아까부터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그녀를 줄곧 살펴보던 하루가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소서러이십니까?”


“네. 프로스트 소서러예요.”


커다란 모자 하며 머리 색, 계열까지 같은 소서러가 그렇게 흔할 리가 없다.


“······바네사 폴더?”


“네? ······근데 제가 이름을 알려드렸던가요?”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날카로운 눈매가 사라와 너무 다른 인상인지라 한참을 돌아 생각했다.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노예상이 그 근처까지 들쑤시고 다닐지도 몰랐지만.


바네사가 정말 단서를 흘렸다면 혹 사라가 그것을 찾아 치안유지대와 함께 올지도 몰랐다.


하루는 그것까지 상정하고 벤에게 이곳의 감시를 부탁했다.


“로자릭. 그럼 납치당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난 실험실만 발견했지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라.”


이건 또 무슨 난감한 경우인가.


여태 겪으면서도 그놈의 첩첩산중이라는 말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하루와 로자릭이 난감하게 서로 시선을 나누고 있으면, 수인이 모여있던 곳에서 누군가 또 끼어들었다.


“안내자가 필요한 거지? 내가 갈게.”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백묘(白猫)가 당당한 포즈로 섰다.


살면서도 딱 한 번 마주했을까.


그녀의 귀에 달린 치장품이며 복장, 티 하나 묻지 않은 반곱슬의 새하얀 긴 머리까지.


방금까지 노예상에게 붙잡혀있던 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와 바로 앞에 서면, 어깨높이에서부터 쫑긋 세워진 귀만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까지도 신장을 착각할 정도로 타고난 비율이었다.


“유리씨, 아까 사람들이 이야기한 거 못 들었어? 백묘 정도면 우선순위 0순위야, 0순위!”


“바네사! 그놈의 섬뜩한 얘기 좀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라니까!”


“그거 유리씨 입으로 들으니까 전혀 설득력 없는데.”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인 건지 이 상황에 와서까지 농담이나 주고받는 둘이지만, 바네사의 말마따나 무턱대고 데리고 갈 이유가 없었다.


“이곳 지리를 이미 알고 있는 겁니까?”


“이미, 는 아니지만 보면 알아!”


“······”


설계사라도 되는 걸까, 생각했을 때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달빛에 한껏 물든 금안이 몽롱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 부근을 오른손으로 가렸다.


유리가 입꼬리를 올려 묘한 웃음을 보였다.


“그럼 부탁 좀 하지.”


이미 성문으로 향하는 로자릭을 총총 뒤따르는 유리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근래 자꾸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상황만 마주해선지 한껏 피곤한 듯 어깨를 떨구며 뒤따랐다.


#


아직 산 정상이 노을에 여물어갈 때쯤,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 못 보셨나요?”


사라는 연달아 바네사의 사진을 내밀고 있었다.


붉은 산맥에서부터 제법 떨어진 마을까지 내려왔음에도 좀체 수확이 없었다.


마을 주민은 한동안 찬찬히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라씨. 목격자를 찾았습니다.”


치안유지대 중 한 명이 또 다른 주민을 데리고 왔다.


기대하는 눈빛으로 주민을 마주하자 주민은 제 마을로부터 남동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봤어. 아가씨처럼 큰 모자를 쓰고 있어서 똑똑히 기억해.”


“감사합니다!”


사라가 여러 차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으면 뒤에서 루이스가 조심스레 어깨에 손을 올렸다.


“루이스! 드디어 언니를 찾은 것 같아요.”


한껏 들뜬 사라의 얼굴과는 반대로 루이스의 미간은 다소 심각했다.


“그건 좋은 소식이지만 서둘러야 할 것 같아.”


“예?”


“아무래도 바네사만 있던 건 아닌 모양이야. 같이 목격된 이들이 묘하게 신경 쓰여.”


사라가 또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면 루이스가 그제야 당황하며 어수선한 몸짓을 보였다.


“그, 그래도 서두르면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 정도 소서러가 쉽게 해코지를 당할 일 없잖아? 안 그래?”


어색한 미소로 답하는 사라를 보며 루이스는 머쓱하게 뒤통수만 매만졌다.


#


“정말 휑하네.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눈치를 못 챌까.”


꼬리를 살랑이며 걷는 유리가 성을 이리저리 살폈다.


로자릭은 팩트만 꽂는 유리의 말을 웬일인지 반격도 안 하고 줄곧 듣고만 있었다.


로자릭이 복도 끝에서 뭔가를 찾아 한참을 헤맸다.


유리와 하루가 뒤에서 팔짱을 끼곤 그 모습을 의문스럽게 지켜봤다.


“뭐 하십니까?”


“내가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을 본 게 분명 여기였는데.”


계단이 보이지 않자 당황하던 로자릭이 구덩이가 있던 부근을 발로 툭툭 밟았다.


유리가 눈동자를 굴리며 좀 더 찬찬히 훑더니 벽에 놓인 액자를 들어 연성진을 찾아냈다.


“이건······ 술식이 아니라 장치네.”


한 손을 펼쳐 다섯 손가락을 연성진 테두리에 갖다 붙였다.


그 상태로 톱니바퀴를 굴리듯 180도가량 돌렸다.


키잉─

철컥


뭔가 이물감이 느껴지며 걸린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덜컥

덜컥


그녀는 몇 번 시도하다 다시 액자를 놓고 양 손바닥을 털더니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며 질색했다.


“지독하네. 누가 생체실험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지 생체리듬으로만 가동할 수 있게 해놨어.”


“그럼 들어갈 수 없다고?!”


유리는 팔짱을 끼고 장치로부터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로자릭도 영문을 모르고 따라서 물러섰지만, 하루는 오히려 반대로 걸었다.


“딱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이미 의도를 파악한 듯 그녀의 말에 맞춰 하루가 제자리에서 오른쪽 무릎을 들었다.


발바닥부터 천천히 떠오르던 몇 문장의 술식들이 발등, 발목을 지나 종아리까지 타고 올라왔다.


무릎까지 꽉 감싼 붕대의 형태처럼 완성되자 그가 가볍게 발로 지면을 찍었다.


쿠웅!

드드드─

퍼석


하루를 중심으로 파동이 일자 지면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잔해하나 남김없이 작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정말 입구가 있네요.”


구멍 안쪽에서 말하면 그대로 유리가 펄쩍 뛰어 들어왔다.


“길은 개척하라고 있는 법이지!”


위에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인 로자릭에게 부가적으로 툭 던져놓던 유리가 먼저 앞장서서 내려갔다.


이럴 때 쓰는 말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발언에 끌렸다.


망설임 없이 나아가던 유리가 도중에 급하게 멈춰서는 바람에 뒤를 바짝 쫓던 하루가 그녀와 부딪혔다.


“안 그래도 보이는 게 없는데 급정지는 안 하면 안 되겠습니까?”


쫑긋


유리의 귀가 어둠 속에서 코끝을 간질였다.


그리고 뭔가 도깨비불 같은 게 공중을 떠다니는가 싶어 자세히 보면 고양이 눈이었다.


‘반사광 없이도 이렇게 빛을 낼 수 있는 건가.’


안광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뭔가 캐치라도 한 건지 벽을 응시한 채로 가만히 고정되었다.


그리고 보름달 마냥 떠 있던 눈동자가 구부정하게 휘었다.


“찾았다.”


달칵

그그그극


나지막이 울리는 그녀와 함께 장치가 맞물리는 소리에 이어 벽이 긁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어둠 속에 빛줄기가 비집고 나오는 바람에 눈살을 찌푸렸다.


“·········?”


“······그 사람이 아니야.”


“누구?”


“현자님 말씀이 맞았어······!”


스멀스멀 낯선 목소리를 따라 나오던 수많은 목소리에 금세 방안이 어수선해졌다.


정작 그곳에 들어선 셋은 목구멍 밖으로 말을 내지 못했다.


그곳에 모여있던 눈동자들이 무엇하나 일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에 어떤 반응을 내놓는 게 좋을지 뇌가 혼란스러운 듯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선이 몰리는 바람에 숨이 턱 막힌다.


와중에 정숙을 이끌고 셋의 반응을 지켜보던 또 다른 목소리가 그들을 맞이했다.


“드디어 왔네요.”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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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길은 개척하라고 있는 법이지 21.05.18 614 15 12쪽
8 #7.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21.05.17 669 20 12쪽
7 #6. 구해줘 +4 21.05.14 750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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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조용히 보고 계세요 21.05.13 895 27 12쪽
4 #3. 괜히 일류가 아니네요 21.05.12 1,106 26 11쪽
3 #2. 모든 이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요 21.05.12 1,532 38 12쪽
2 #1. 400대 하루 21.05.12 2,663 50 17쪽
1 #Prologue +6 21.05.12 3,055 7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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