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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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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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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5,798

작성
21.05.1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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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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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7.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DUMMY

로자릭이 로자릭을 구해달라 말한다.


평소에 택배기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의외였다.


이름에 담았을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겉치레가 아니었다는 것에 다소 놀랐을지도 모른다.


로자릭. L(로자릭).


제 성을 그대로 이름으로 삼은 건 웬 미친놈인가 싶었는데, 재차 정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로자릭을 구해달라니?”


“허가받은 상인만 출입시키고, 마을에 점차 활기가 사라지고, 성안이 조용해진 게 모두 설명됐어.”


로자릭의 팔이 다시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다.


“로자릭은 점점 미쳐가고 있었어.”


으득


떨림을 멈추기 위해 이를 꽉 문 그의 눈이 충혈되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벤이 커다란 손으로 그의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오늘따라 로자릭의 금발이 칙칙하게 바랜 색을 띠었다.


“······로자릭의 지하에서 생체실험이 이뤄지고 있어.”


“······!”


벤의 미간이 좀 더 좁혀졌다.


그가 거짓을 말하거나 이상한 환각증세에 시달리는 것 같진 않았다.


로자릭의 행색만으로도 그의 말을 의심해볼 여지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어도 대체 무슨 수로 그에게 구해달라 말하는 건가.”


벤은 하루의 강함을 한 번 목격한 바 있지만,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인지 의심스러웠다.


귀족의 타락이라면 애당초 왕국의 관여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아버지를 제 손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겠죠.”


하루는 가문의 현 주관자야말로 가문 자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곧 가문의 몰락이라는 걸 모를 그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자릭은 오히려 그 말에 분노했다.


“가문의 썩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내가 바로잡을 거야!”


“그렇다면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겁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던 로자릭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연신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지하에서 봤던 그것에 판단보다 공포를 먼저 느껴 도망쳤다.


눈앞의 잘못을 어떻게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머리를 지배한 단 한 가지 생각에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택배기사인 그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걸 입에 담진 않았다.


더한 추태를 보이는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왕국에서 움직인다는 소식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잖나.”


가까스로 떠올린 변명이었다.


“그래, 만약 그렇다면 정확한 단서가 필요할 거야.”


용케 벤이 그 말에 동조해줬지만, 하루는 탐탁지 않았다.


“전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샤드에 사는 누군가에게 물건을 배송하는 게 최우선인 택배업체의 일개 단원일 뿐입니다.”


끝까지 그렇게 내뱉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지만 반드시 데려가야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몸소 그 기행을 체감한 이상 눈앞에 있는 택배기사가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그 배송이라는 걸 하려면 샤드에 들어가야 하는 일 아닌가?”


“어차피 영지 진입 추천서를 책의 대가로 벤에게 요구할 참이었습니다.”


둘의 오가는 대화에 벤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벤이 하루를 보며 싱긋 웃으면 반대로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저······ 어쨌든 로자릭 가문의 영지니까 나보단 그의 영향이 큰 게 당연한데······ 하하.”


민망하게 웃어대는 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오너의 술집에서처럼 약이 올랐다.


하루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못마땅하게 로자릭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일단 가면서 얘기합시다.”


어째선지 로자릭보다 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셋은 말을 타고 빠르게 바란에서 샤드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눈에 띄게 사라진 겁니까?”


한참을 말없이 가던 하루가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배송 시도도 못 해본다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제 주변에 사라진 고용인들에 대한 건조차 의심 한 번 해보지 않았다.


“대체 뭘 본 겁니까.”


“아버진 이미······.”


“아직 안정된 지도 얼마 안 지났으니 계속 연상시키는 것도 좋진 않을 것 같네.”


벤이 타일렀다.


로자릭이 풀 죽어 있으면 하루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벌써 루이스의 호통이 들리는 듯 어지럽다.


“어차피 가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겠죠.”


멀리서 샤드의 경비병 둘이 창을 서로 겹쳤다.


“열어!”


로자릭의 한 마디 이후 경비병들이 당황하더니 급하게 창을 들어 입구를 열었다.


세 말은 빠르게 그들을 제치고 영지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저는 배송지부터 들러야겠습니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던 하루가 방향을 틀면 로자릭과 벤이 그를 뒤따랐다.


배송지를 확인하며 가는 동안에도 바란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침묵이 유지되었다.


과거에 몇 번 방문한 경험이 있던 벤에게도 다소 낯선 광경이었다.


“여긴가.”


언덕 위에 우두커니 있던 아담한 집.


앞마당엔 소소하게 취미로 심은 듯한 꽃과 작은 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하루는 조심스레 문을 두들겼다.


똑똑


“······”


쿵 쿵 쿵


주먹으로 조금 더 세게 두들겨도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없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 법이지.’


어쩐지 자신의 감을 탓하게 된다.


문고리를 잡고 당겨보면 역시 자연스럽게 열렸다.


현관 앞에 선 하루를 뒤따라오는 둘이 입구에서 고개를 빼냈다.


로자릭은 이미 뭔가를 예상하고 말을 아꼈다.


엎어진 의자와 일부 위화감이 느껴지는 물건들이, 난동까지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목적만을 달성하고 간 침입을 드러내고 있었다.


“난 근처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게 있나 물어보겠네.”


서둘러 다른 집으로 뛰쳐 가던 벤을 뒤로 남은 둘은 집안을 살폈다.


테이블에 놓인 작은 액자에 크로우와 여동생으로 보이는 인물이 찍혀있다.


흰 머리칼은 그와 닮아있었고 한쪽 눈을 붕대로 가렸다.


‘부상인가.’


“······딱히 단서 같은 걸 찾을 필요 없이 끌려간 거야.”


로자릭이 힘없이 내뱉자 오기 전 신신당부하던 루이스가 떠올랐다.


웬만하면 큰일 없이 떠나고 싶었다고 되뇌며 다시 밖으로 나가면 벤이 멀리서 달려왔다.


“밑에 집도, 그 옆도 마찬가질세. 아무도 보이질 않아.”


“이미 마을이라기에도 우습군.”


로자릭의 자책과 동시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가 나는 곳을 찾다 언덕 아래 정문에서부터 들어오는 마차를 발견했다.


로자릭 역시 그것을 의문스럽게 쳐다봤다.


언덕을 내려가 미리 앞질러 지켜보면 두 명이 각 두 개의 마차를 운행하고, 그 외 말에 오른 다섯이나 주위를 둘러싼 진형으로 성을 향하고 있다.


“저게 뭡니까?”


물어봐도 로자릭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난 부른 적 없어. 종종 성에 찾아오는 상인이겠지.”


“상인 같은 게 아닙니다.”


한참 그들을 살피던 하루는 확정지어 답했다.


그들이 입은 로브 사이로 얼핏 보인 가죽 갑옷과 허리춤의 검.


아마도 옆구리에 예비용 대거까지.


말을 타는 폼까진 그렇다 쳐도, 상인이 구태여 저런 장비를 차고 있을 필요가 없다.


호위라는 가능성을 고려했지만, 어디에도 상인으로 보이는 인물은 찾지 못했다.


“상인이 아니면?”


“······용병의 차림새입니다.”


“용병? 용병이 왜? 종전 이후에 그들은 전부 이직한 것 아니던가.”


하루는 질문과는 영 상관없는 답으로 받았다.


“로자릭. 저들의 짐칸을 조사해야 합니다.”


로자릭은 하루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끝까지 그들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마지못해 마차 앞에 섰다.


갑작스레 나타난 로자릭을 보자마자 가장 선두에 있던 남자가 고삐를 당겨 세웠다.


“워어──! 위험하잖아!”


호통을 치던 남자가 앞에 선 로자릭을 빤히 보더니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제야 삭발한 머리와 왼쪽 입꼬리에 난 칼자국이 드러났다.


천천히 말에서 내리던 그가 애써 미소지었다.


“설마 영주님의 자제분입니까. 무슨 용건이라도······.”


나름 미형의 얼굴이었지만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는 게 괜스레 기분 나쁘게 다가왔다.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왜···?”


로자릭이 노려보면 잠시 상처 난 쪽의 입꼬리가 움찔한 것 같지만, 끝내 어색한 미소만큼은 유지했다.


“······알드리고입니다.”


“잠시 짐칸을 내가 확인해야겠다.”


“죄송하지만 이미 영주님에게 확인받은 목록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지?”


“확인증도 있습니다.”


“날조다.”


“아니······! ······후우 날조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계속되는 로자릭의 억지에 알드리고가 이를 악물었다.


“직접 영주님을 뵈면 될 일 아닙니까.”


“오히려 확인 한 번 시켜주면 끝나는 문제일 텐데 그쪽이야말로 뭘 버티고 있는 거지?”


기어코 로자릭은 알드리고의 입을 다물게 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알드리고의 태도를 본 로자릭 역시 짐칸에 대한 의구심이 늘었다.


로자릭은 짐칸을 향했지만, 알드리고가 자신을 제쳐가려는 그를 막아섰다.


“비켜.”


로자릭이 날카롭게 노려봐도 비키긴커녕 그 뒤에 있던 일행들도 말에서 내렸다.


스릉─


점차 다가오는 그들을 보곤 로자릭의 뒤에 있던 벤이 먼저 검을 뽑아 겨눴다.


일행들도 하나둘 검을 뽑았다.


“이 영지에서 날 어떻게라도 할 셈인가?”


“영지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영주님이시지 자제분이 아니십니다.”


한 발짝만 더 움직여도 로자릭을 해코지할 기세였다.


숲 풀에 숨어 묵묵히 보고만 있던 하루가 벤의 뒤쪽에서 나왔다.


성큼성큼 걸어가 알드리고의 옆을 제치던 하루를 어이없다는 듯 스쳐보던 용병 하나가 목에 검을 겨누는 찰나.


검 끝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한 하루가 오히려 그에게 파고들었다.


그리곤 옆구리에 있던 대거를 빼내 반대로 용병의 목을 겨누기까지가 순식간이었다.


방관밖에 못 하던 알드리고는 제자리에서 얼 타고 있었다.


탱그랑!


용병이 무기를 버리고 제 목에 다가온 날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하루가 인질을 잡아 천천히 짐칸 뒤로 향하면, 주변에 있던 일행들도 비켜섰다.


짐칸을 덮고 있던 천막을 부여잡으니 안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하루는 힘껏 천막을 쳤다.


“칫!”


그에 맞춰 알드리고가 알 수 없는 효과음을 내뱉었다.


오히려 짐칸을 본 하루는 그대로 말을 잃었다.


어렴풋이 스쳐 가던 ‘불안한 예감’들이 연달아 맞아떨어지는 터에, 이대로면 이어지는 예감들 끝엔 과연 누구를 동정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게 된다.


로자릭이 알드리고를 지나쳐 하루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런 미친놈들.”


“······”


로자릭보다도 먼저 짐칸을 확인한 벤이 외견에 어울리지 않는 욕을 뱉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종족의 구분 또한 불문하고, 손발을 묶인 채로 입을 봉하는 술식까지 걸려있던 그들이 일제히 쳐다보고 있다.


아마 그중 누군가는 용병의 목에 대거를 들이댄 광경을 목격하곤 속으로 연신 되뇌었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신의 이름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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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괜히 일류가 아니네요 21.05.12 1,107 26 11쪽
3 #2. 모든 이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요 21.05.12 1,535 38 12쪽
2 #1. 400대 하루 21.05.12 2,667 50 17쪽
1 #Prologue +6 21.05.12 3,057 7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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