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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링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택배기사로 이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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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야링
작품등록일 :
2021.05.12 10:23
최근연재일 :
2022.01.13 06:05
연재수 :
1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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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22
추천수 :
876
글자수 :
1,035,798

작성
21.05.13 00:42
조회
828
추천
30
글자
11쪽

#5. 하루가 너에게 의미 있으면 싶어서

DUMMY

바 테이블에 거의 녹아들 듯 엎어져 있는 사라가 언니에 대한 푸념을 시작한 지도 벌써 1시간째였다.


벤이 떠난 후부터 맛있다며 들이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보면 이런 상태였다.


셰프는 그저 웃고 있지 않나, 처음에 당황하던 오너도 지금은 이따금 그녀의 머리를 쓸어줄 뿐이었다.


“말없이 사라지는 일이 이번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네요.”


에일을 홀짝 마시면서 묻자 갑자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나 하루를 노려봤다.


“그렇다니까요! 참나. 그래도 언니라고 묵묵한 게 멋인 줄 아나? ······그래도 말없이 일자리를 내팽개치는 사람은 아닌데······.”


그러곤 다시 슬라임처럼 흐느적대며 엎어졌다.


하루가 게슴츠레 오너를 흘겨봤다.


“이거 언제까지 이러는 겁니까?”


“그, 그러게. 아하하······.”


농도도 없는 음료를 마시고 이런 꼴이라니 진정 분위기에 취한다는 게 뭔지 깨닫는 순간이다.


하루는 슬쩍 의자를 빼내 그녀를 일으켰다.


“오.”


가볍게 양팔로 그녀를 들어 올리자 감탄사를 내뱉던 셰프에게 역시 짤막한 한숨으로 답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푸념을 멈추지 않던 그녀가, 침대에 엎어져서야 새근대며 잠들었다.


다시 내려와 마저 담긴 에일을 처리했다.


“다시 한번 죄송했습니다, 오너.”


손사래를 치는 오너에게 무안한 미소를 건네곤 계단을 올랐다.


하루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잔상을 응시하던 셰프가 가볍게 콧숨을 내뿜었다.


오너의 시선이 그를 흘깃 스쳤다.


“분명 낯이 익어.”


“그럼 당신한테 낯이 안 익은 사람이 있나?”


비웃으며 답하는 오너에게 그런 게 아니라며 턱을 매만지더니 골똘히 생각했다.


곧 고심에 빠지다 긴 탄식을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중지와 엄지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짓누르던 셰프를 보며 오너는 피식 웃었다.


“언젠가 떠오를 인연이면 떠오르겠지.”


그녀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괜히 깊은 여운을 남겼다.


멍하니 그 한마디를 음미하다가, 잔에 남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더 줘!”


“그만 마셔!”


적막할 즈음이면 다시 떠들썩해지던 1층이었다.


#


─하루.


─뭐가요?


─이름 말이야! 누가 생각했는지 아주 간지나네!


─한 번 알려준 거로 많이도 우려먹네요. 근데 갑자기 무슨 이름이에요.


─그냥.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 덩그러니 놓인 바위 하나.


그곳에 자리 잡고 누워선 다짜고짜 툭 내놓던 이름으로 그의 웃음은 참 길게도 갔더라.


언젠가 ‘축복받은 인간들’이 있다던 시절.


그게 정녕 축복이었는지 의심이 싹트던 시절, 인계 최정상에 서봤던 그는 낭만을 지겹게도 운운하던 사내였다.


그리고 아직 낯설기만 한 세계로 떨어진 아이에게 그날은 말하고 싶었다더라.


─이 하루가 너에게 의미 있으면 싶어서.


#


째재잭

쏴아아


참새와 나뭇가지가 우는 소리에 지그시 눈이 떠졌다.


어째선지 팔 한쪽을 눈 위에 조금 기대고 싶어졌다.


“어제 그 기사 때문인가. 쓸데없이 꿈에 나와선.”


한참을 그렇게 눈을 가리고 있으면 누군가 방문을 두드려왔다.


“하루님. 혹시 일어나셨나요?”


사라의 목소리였다.


“예. 지금 막 일어났습니다.”


“오너가 아침을 권해서요. 지금 드시겠어요?”


“곧 나가겠습니다. 먼저 내려가 계세요.”


천천히 발소리가 사라져갔다.


어느새 열어둔 창문으로 한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그렇게 또 한참 침대에 앉아 만끽했다.


깊게 묵혀둔 무언가를 끌어올리듯 숨을 길게 내뱉곤 방을 나섰다.


“어서 와!”


계단에서 내려오는 하루를 오너가 먼저 발견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너.”


“더 자게 뒀어야 했는데 미안해. 셰프가 가게 준비 때문에 빠르게 차려놓고 갔는데, 식은 음식 먹게 두는 것도 뭐했거든.”


“괜찮습니다. 막 일어났던 참이에요.”


아침부터 한 테이블을 가득 채우는 음식에 눈이 절로 방황했다.


옆에 앉아 포크를 집어 든 사라는 이미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한 입 넣으면 일부러 가벼운 음식 위주로 차려준 그 나름의 세세함이 느껴졌다.


한창 잘 먹던 사라가 돌연 포크를 입에 문 채로 시무룩했다.


“오늘 떠나면 한동안 못 먹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그녀답다 생각했다.


오너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앞에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멀진 않으니까 얼마든지 놀러와.”


오너의 말에 사라의 화색도 다시 돌았다.


끼니를 야무지게 때우고 여관을 나오면 멀리서 셰프의 마중이 들렸다.


사라는 마차에 올라 오너와 셰프에게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맡긴 하루도 줄을 힘차게 흔들었다.


첫 일이라고 했던가.


수도에서 만난 이들이 남긴 여운 때문인지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 전 여기서 내릴게요.”


그렇게 긴 정적 이후에야 들은 한 마디에 줄을 당겨 마차를 멈췄다.


사라가 상단외투를 벗어놓고 내리더니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했어요! 언니라면 조금 더 능숙하게 배달했을 텐데.”


“충분했습니다. 단장님이 과장해서 말했을 뿐이지 사실 급한 물건도 아니었고.”


덤덤하게 받는 하루를 보며 그녀는 싱긋 웃었다.


사라는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속에서 싹트는 꿈을 간직한 채 집으로 향했다.


하루가 태랑상단에 도착할 즈음 아니나 다를까 큰 목소리가 건물을 비집고 나왔다.


“그러니까 왜 안 되냔 말이야!”


으레 단장일 것이라 여겼던 그건 남자의 목소리였다.


말들을 목장에 집어넣고 건물로 들어가니 소란은 더했다.


막 중앙복도로 들어오면 클로에가 옆구리를 툭 찔렀다.


“이제 왔어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한 백발의 남자가 카운터 앞에서 단원들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두고, 클로에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웬일로 루이스도 그의 앞에서 지끈거리는 듯 이마만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남자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내 여동생의 안위를 확인하지 못하냐는 말이다! 이 심연의 로드의 여동생 또한 모든 심연에 군림하는 자이거늘!”


“······!”


하루는 소름 끼치는 말투는 제쳐두고 그가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퍼뜩 클로에 쪽으로 고개를 돌려 동공 지진을 일으키면 클로에는 좌우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그냥······ 평범한 인간이에요.”


그녀가 실소하며 내뱉은 답에 다시 조심스레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당신 말대로 그······ ‘존귀한 여동생님’께서 위험에 처할 일은 없을 거 아뇨.”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힘을 회복 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애써 입을 흐물거리며 반박하는 단원조차 대응에 힘겨워하는 듯했다.


남자의 단어선택, 억양, 몸짓 손짓.


깊숙이 잠재된 어떤 감정이 온몸을 쭈그러트리는 듯한 느낌이다.


“크윽! 깊은 나락에만 빠지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이 크로우님이 손쓰지 못할 지경이라니. 혼자 쓰러진 건 아니겠지.”


그의 자책과 무엇보다 제멋대로 펼치는 논리를 듣고 있자니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여기서 저런······ 끔찍한 말들을 내뱉고 있는 겁니까.”


클로에를 향해 구겨진 얼굴을 애써 피며 물었다.


“여동생이 위험하다나 뭐라나······.”


“그런 거라면 치안유지대가 해결할 일 아닙니까?”


말을 내뱉다가도 다시 크로우라는 자의 농성을 듣곤 뒤늦게 이해했다.


“치안대에서도 받질 않고, 저희 업체에서 물품 배달 겸 여동생의 안위를 확인하라는 건데 확증도 없대요. 그냥 떨어져 사는 여동생에게 한동안 편지가 안 왔다는 것밖에는······.”


단장이 손쓰지 못할 만도 했다.


처음 보는 유형일뿐더러 특히 저런 대사를 치는 사람에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럼 그 시간에 본인이 가면 되는 게?”


“지금 다니는 직장이 허가를 안 해준다나 봐요.”


“용케 직장은 가졌네요.”


“애초에 부탁받은 배송지는······ 택배기사를 들이지 않아요.”


“대체 어디길래.”


“로자릭가의 영지 샤드요. 정통 기사 가문인데 택배기사를 기사라 인정하질 않아서 오로지 물품도 개인 상인에게만 받는 중이에요.”


익숙한 성이다.


“기사의 위엄을 중요시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일인지 저로서는 모르겠지만, 그 옆 토너 영주의 반만 닮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푸념의 푸념을 늘어놓는 클로에의 대목을 듣고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토너.


연신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으면 금세 아, 하고 짤막하게 던져냈다.


벤 토너.


그 기사의 이름이다.


자연스레 로자릭이라는 성도 기억해냈다.


이내 하루는 천천히 크로우에게 걸어갔다.


“여동생에게 보내고 싶은 물품이 어떤 겁니까?”


단장에게 윽박지르는 배짱을 보여주던 크로우가 뒤를 돌았다.


연갈색의 눈동자.


확실히 그 군주는 아니다.


“하루!”


긴 침묵 이후에 입을 연 루이스가 하루를 나무라는 듯 불렀다.


“네놈은?”


“태랑상단의 택배기사입니다.”


“네가 짐의 여동생에게 물건을 보내주겠단 말이냐?”


다시 닭살이 돋던 팔을 부여잡고 있으면 크로우가 제 허리춤에 손을 척 얹었다.


“마음에 드는구나!”


그 사이에 루이스가 재빨리 하루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쩌려고? 우린 출입도 안 되는 곳이야.”


“토너 영지에 볼일이 있습니다. 그냥 책만 보낼 생각이었는데 직접 가는 겸 부탁 좀 하죠, 뭐.”


“······네 재능이라곤 해도 거긴 달라.”


단장의 겁주는 말투는 익숙했지만, 그녀의 눈이 어딘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둘 수도 없으니까요. 어쨌든 고객인데.”


고객이라는 말에 그래도 단장이라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무덤덤한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띠었다.


“그럼 최대한 택배기사라는 점은 숨겨. 아니다. 그냥 저놈 물건은 버려둔 뒤에, 전했다고 거짓말을 해!”


“다 듣고 있다 무례한 놈.”


아무래도 너무하다 싶은 말을 듣고 있으면 뒤에서 크로우가 갑자기 고개를 뺐다.


퍼뜩 소름이 끼쳤는지 루이스가 뒷걸음질 쳤다.


크로우가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툭 빼내 하루에게 건넸다.


“이걸 전해줘.”


은으로 된 틀에 고정된 작은 보라색 수정은 속에 별을 품은 듯 반짝였다.


당당한 미소로 앞에 서선 고맙다며 읊조리는 크로우를 응시했다.


하루는 조심스레 들던 오른손으로 그의 뒤쪽을 가리켰다.


“작은 상자는 1실버입니다. 밀봉한 뒤 카운터에서 절차를 밟아주시겠습니까?”


“······아.”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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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400대 하루 21.05.12 2,663 5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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