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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피리스? 마왕 이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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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작품등록일 :
2015.07.02 19:20
최근연재일 :
2015.07.13 23:02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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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수 :
30,680

작성
15.07.06 10:31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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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장 용사 이피리스?

DUMMY

“싫어요! 나 집에 갈 거예요!”

단 몇 초 만에 세계를 구한 영웅에서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는 마왕으로, 그것도 대!(중요하다!) 마왕이 된 이피리스는 지금 막 23번째 도주를 하다가 붙잡혔다.

뒷목을 잡혀 질질 끌려옴에도 여전히 반항하자 멜은 아예 기둥에다가 이피리스를 묶어버렸다. 얼마나 칭칭 감아놨는지 그야말로 고치가 되어버린 이피리스는 아직도 반항의 기미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니 조금 조용해지는 것 같군요. 이제 수긍하시죠?”

“못해요! 난 용사가 돼야 한다고요!”

“이미 대마왕이십니다.”

“제가 대마왕이라면 이렇게 묶어놓아도 되는 건가요?”

멜은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귓구멍을 파며 딴청을 부리다가 깜짝 놀란 척을 하며 되물었다.

“혹시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이, 이익! 난 대마왕이 아니라니까요!”

“아, 내리실 명이라도 있으십니까?”

이피리스는 붉어진 얼굴로 마구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영웅이야기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지만 어떤 이야기에도 마왕을 때려잡은 용사가 마왕이 돼서 세상을 침략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만약 있다고 해도 그건 악역이 도맡는 역할이 아닌가! 자신 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정의감에 넘치는 여자용사가 그런 악역을 맡는다는 것은 절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만약 있다면 남아선호사상에 심취한 작가나 신이, 조연으로 만족해야할 여자가 주연이 된 것을 질투하여 만든 일이다. 이피리스는 이 일을 꾸민 자가 신이라면 찾아가 박살내놓겠다는 매우 대마왕적인 생각을 하며 항의했다.

하지만 어떤 항의를 해도 들은 체도 안 하는 멜의 태도에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풀에 지쳐 떨어진 이피리스는 묶여진 기둥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몸이 떨었다.

“추워요.”

그 말에 일체 무시로 일관하면 멜이 반응했다.

“그렇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멜이 몸을 일으키더니 집무실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무엇인가를 한가득 가지고 나타났다. 숯과 불쏘시개는 이해가 갔지만 정작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림과 책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멜은 능숙하게 화염마법을 다뤄 숯에 불을 붙인 다음 전대 대마왕이 수많은 마물들 사이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첫 번째 장작으로 삼았다.

“저기 그래도 되는 건가요?”

“멜이라 부르십시오.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자서전이라 써져있는 책을 불속에 집어넣고는 불쏘시개로 한 장, 한 장 펼쳐가며 태워버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한걸요.”

“잠시 후 대마왕님도 동참하겠다고 하실 겁니다.”

이번에는 미녀들에게 둘러싸인 대마왕의 그림을 집어넣어 태운다.

“그럴 리가 없어요!”

“후회하지마시길.”

멜은 그렇게 하나하나 태우더니 이번에는 짚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꺼내 들었다. 작게 대마왕이라 적어놓고 못과 망치를 들어 망치질하려다가 문득 이피리스를 바라본다.

못과 망치를 다시 내려놓고 대마왕이라 쓴 곳 앞쪽에 아주 작게 ‘전대’라고 적어놓곤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원한이 극도로 서려,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망치소리에 바로 앞에 불타고 있는 그림과 책들이 있음에도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열심히 망치질하던 멜은 더 이상 인형에 못을 꽂을 곳이 없자 그것까지 불속에 던져놓고는 이피리스에게 다가갔다. 이피리스는 멜에게 풍기는 음산함에 움츠러들었다.

“이제 대마왕이신 것을 인정하십시오. 이미 정해진 것. 대신관이 와서 정화한다고 해도 깨끗해지기는커녕 천국 불에 지져지는 고통만 느끼실 것입니다.”

“정말 방법이 없나요?”

“없습니다.”

“하지만……. 네… 알겠어요. 그러니 이것 좀 풀어주세요.”

이피리스의 말에 멜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줄을 풀어주었다. 장시간 묶여있어서 그대로 쓰러지는데, 다행히 멜이 이피리스를 부축해주어 한참 불타고 있는 마지막 초상화와 키스를 나누는 불상사만은 면하게 되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멜은 이피리스를 다시 대마왕의 의자에 앉히곤 슈트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피리스는 생전 처음 보는 두루마리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두루마리인가요? 처음 봐요!”

두 눈을 반짝이며 것에 약간 당황하다가 한숨을 쉬곤 두루마리를 펼쳤다.

“전대 대마왕님께서 던지실 때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너무 정신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이라…….”

“하여간 이 내용을 읽겠으니 집중해주십시오. 전대 대마왕님의 유서입니다.”

유서라는 말에 이피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동시에 살과 뼈를 관통해서 심장까지 관통했던 감촉이 생각났다. 상당한 불쾌감과 죄책감에 이피리스는 떨리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멜은 그러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유언장

본 대마왕의 사망 혹은 강제로 마계에 송환 시에 아래와 같이 시행할 것을 명한다.

첫째. 본 대마왕의 지위는 본 마왕의 심장에 마검 이실릿을 꽂아 넣은 자가 이어간다.

둘째. 본 대마왕의 자산은 지위를 이어가는 자가 이어 받는다.

셋째. 본 대마왕의 가솔은 지위를 이어가는 자가 이어 받는다.

넷째. 본 대마왕의 직위를 이어받을 때 발생하는 고대지식 전의에 대한 후유증(별첨 참고)은 책임지지 않는다. 유서를 발견한 용기 있는 마족, 마왕만 시도하기를 바란다.


*별첨

후유증 : 성기능장애, 정신분열증, 과다통증, 만성신부전, 각종 암 관련 질환, 두통, 영구적인 대뇌손상, 치매, 당뇨병 등 각종 만성질환 혹은 사망


이피리스는 멜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자기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고, 왠지 실바람에도 살이 베이는 통증이 느껴질 것 같았다. 머리가 은근히 지끈거리며, 무엇인가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자, 결국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멜을 쳐다보았다.

“서, 설마!”

“아무래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더군요.”

“네?”

“아까 전에 모르는 기억이 존재하는지 제가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때서야 이피리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멜은 이피리스를 한 번 훑어보더니 두루마리를 넣고 이번에는 계약서 한 장을 꺼내들었다. 상당히 좋은 종이로 만들어진 계약서였는데 황금잉크로 글씨가 써져있는 것이 번쩍거려 보기도 힘들었다.

“대마왕님의 재산을 이전받는 것에 대한 동의서입니다.”

“재산이요?”

“정확한 목록은 여기 있습니다.”

하드케이스 재본까지 되어있는 책이 공중에서 나타났다. 두께는 누가 보면 백과사전이라 생각할 정도였고, 묵직하기로는 커다란 쇠망치 같았다.

멜이 바닥에 내려놓자 ‘쿵’하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 무게가 더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그건가요?”

이피리스는 남쪽의 대마왕이라는 칭호를 애써 기억해냈다. 그냥 마왕도 아니고 '대'마왕이니 얼마나 많은 재산이 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자, 어서 서명하시지요. 여기 서명 펜이 있습니다.”

멜은 고풍스러운 펜을 꺼내들었다. 이피리스도 서명 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서명하는 즉시 모든 법적 효력이 발생하고, 복제와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한 번 서명하면 즉시 소멸되어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보니 엄마가 서명 펜을 사용할 때는 작은 글씨도 다 살펴보라고 한 것이 떠올랐다.

이피리스는 계약서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는데 글씨가 반짝반짝 빛나는데다가 크기도 작아서 읽기 너무 불편했다.

“펜의 잉크가 다 마르겠습니다.”

“네?”

“모르셨습니까? 서명 펜은 잉크가 다 마르면 그 효력을 상실합니다. 참고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거 하나 뿐이니 빨리 서명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제대로 읽어야…….”

멜은 바닥에 내려놓은 사전, 아니 재산목록을 가리켰다.

“저것도 다 읽으실 것입니까?”

“그건…….”

멜은 됐다는 듯 계약서 한쪽 끝을 살짝 잡았다. 문득 불안한 느낌에 이피리스는 계약서를 꼭 잡았고 멜은 이피리스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안 받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대마왕님께서 받지 않으면 제가 받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서명 펜의 잉크도 말라가는데 이렇게 시간을 끄시면 곤란합니다.”

그때서야 이피리스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장 눈앞에서 몇 대에 걸쳐서 벌어도 못 벌 돈을 날려버릴 지경이었다.

“할거에요!”

결국 서명 펜을 빼앗아 사인해버렸다. 그걸 본 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지더니 계약서를 들고 마법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계약서가 몇 개로 복사되더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공증인들에게 발송되었으니 모든 것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볼게요. 제가 물려받은 재산이 얼마인가요?”

방금 전 대마왕이 되기 싫다고 깽판 친 것도 잊고, 용사가 되고 싶다는 유망한 꿈도 잊고 이피리스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고 싶어 했던 것들이 가득 차버렸다.

멜은 재산목록을 뒤척이더니 제일 끝부분을 찾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대마왕님께서 물려받으신 금액은 천2백억……”

이피리스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실버단위는 아닐 것이고 당연히 골드단위. 그것도 천2백억으로 시작하다니 대륙제일의 갑부로 등제되는 순간이었다. 용사가 중요한가? 대마왕이 되더라도 역시 돈이 제일인 법이다.

“만3천2백6십1골드의…….”

이피리스의 머릿속에는 이 돈은 어떻게, 저 돈은 어떻게, 투자는 어떤 식으로 가족에게는 얼마쯤 주고 나머지는 어떻게 쓸지에 대한 행복한 망상에 빠졌다. 멜에게도 이런 행운을 준 사람이니 적어도 2만 골드는…….

“부채를 남기셨습니다.”

부채로 줘야지.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이피리스가 되물었다.

“뭐라고요?”

“못 들으셨습니까? 음 천2백억…….”

“그게 아니고요. 마지막 부분이요!”

“아, 부채를 남기셨습니다.”

“저기 부채라면?”

“빚입니다. 그래도 운이 좋으신 것이 상당 부분 무이자 대출을 애용하셨으니 이자는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 빚이라니요!”

멜은 두루마리를 내밀어 이피리스에게 보여줬다.

이피리스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멜이 준 두루마리를 보았다. 멜이 읽어준 것처럼 초반부분에는 유서가 있었고 후반 부분에 급히 적어서 날아갈 것 같은 글씨가 남아있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사 멜에게.

-전략-

이쯤해서 잡설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아무래도 본 대마왕은 이제 연로하여 이만 물러나야 할 것 같다.

때마침 용사도 왔으니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고향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디 후임 대마왕에게 빚더미 잘 넘겨주고 도망가길 바란다.

사실 신용불량자 생활도 그리 나쁘지는 않더구나. 아, 추가로 다크골드에다가 네 이름으로 돈을 좀 빌렸는데, 내가 이번에 만마전에서 어수룩한 녀석들하고 한판 벌여 천배로 불려서 올 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

이피리스는 머리가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자 냅다 의자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부서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자 드디어 현실이 자각된다.

정신을 차린 이피리스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다.

“대마왕 놈 초상화 다 불태웠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있습니다.”

멜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주머니에서 짚으로 만든 인형과 얇은 못을 꺼내들자 이피리스는 인형과 못을 뺏어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새도록 마왕성에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슬슬 본래 궤도로 올라왔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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