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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이피리스? 마왕 이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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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
작품등록일 :
2015.07.02 19:20
최근연재일 :
2015.07.13 23:02
연재수 :
8 회
조회수 :
2,437
추천수 :
16
글자수 :
30,680

작성
15.07.05 20:41
조회
219
추천
3
글자
9쪽

1장 용사 이피리스?

DUMMY

오늘도 멜의 하루는 새하얀 와이셔츠를 다리는데서 시작했다. 작은 화로에서 달궈놓은 다리미로 구김 한 점 없게 만드는 폼이 하루 이틀 한 것이 아니었다.

멜은 무표정한 얼굴로 와이셔츠를 면밀히 살펴보다가, 한 구석에 살짝 올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옆에 있는 칼로 조심스럽게 잘라내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와이셔츠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지만 멜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어제 밤새도록 만들어 놓은 검은 여성예복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었다. 일류 제봉사가 가봉까지 마친 제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보였지만, 멜의 눈에는 한 없이 부족했다.

“조만간 필요할 텐데.”

멜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서랍에서 예전에 하인들이 입었던 헐렁한 옷과 바지를 꺼내 들었다. 몇 번이나 대조해보면서 색상까지 고르고 나서야 그것을 구석에 놔두고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한 번 주름과 잡티가 없는지 거울 앞에서 꼼꼼히 따지고 마지막으로 새하얀 장갑을 꼈다. 그 와중에도 여성예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길 반복했다.

결국 자신의 첫 작품을 옷장 구석에 걸어 보이지 않게 옷장 문을 닫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 멜은 아까 챙겨놓은 옷과, 커다란 목욕타월을 들고 나갔다.

방과 바로 연결된 곳은 멜의 직장이자 가장 큰 골칫덩이인 대마왕성의 집무실이었다. 한구석에 걸려 있는 대마왕의 초상화가 보이자 다시 답답함과 분노가 고개를 들려고 했다.

“나중에 봅시다.”

괜히 먼지 한 톨 떨어지지 않은 바닥에 발을 구르며 성질을 내던 멜의 눈에 쓰레기 하나가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어 쓰레기 통으로 던지려는데 문득 이것의 정체가 떠올랐다.

“하아.”

멜은 팔을 쭈욱 뻗어 이 쓰레기가 자신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한 뒤에야 대마왕이 한참 잘나갈 때 집무실에 분수를 만들어 놓은 것이 생각났다. 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수로 걸어갔다.

미녀가 요염한 자세로 키스를 날리는 동상이 떡하니 있는 분수는 비록 물은 뿜어져 나오지 않았지만, 깨끗한 물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제작 당시 돈 낭비라고 뜯어 말렸던 자동정화마법진이 아직도 작동되는 모양이었다.

멜은 쓰레기를 분수에 집어던졌다.

풍덩하고 쓰레기는 분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내 검고 기분 나빠 보이는 것들이 쓰레기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정화마법이 맹렬한 빛을 내며 쓰레기에서 나오는 것들과 전쟁을 벌이는 사이, 쓰레기를 잡았던 장갑을 신속하게 벗어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이 쓰레기통과 들어가는 동시에 쓰레기가 꿈틀하고 움직였다. 멜은 정확하게 1/3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기 무섭게 물방울들이 튀기 시작했다.

“쿨럭쿨럭! 사, 우푸푸! 쿨럭쿨럭…려줘!”

겨우 무릎보다 조금 높은 물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재미있게 바라보다가 드디어 쓰레기에서 인간의 형체에 가까워진 것 같아지자, 손을 내밀어 그것을 일으켜 세웠다.

“정신 차리시죠.”

멜은 싸늘한 눈으로 그것을 노려보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적어도 3미터 이상의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고 생각했던 이피리스는 멜의 말을 들을 생각도 못하고 무릎을 조금 넘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살려 달라고 소리친 것이 떠오르자,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가 정신을 잃기 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리고는 총알같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던 남자(멜)도 보였고, 이 검고 반질반질한 바닥과 여기는 마왕성이라고 광고하는 인테리어에 드디어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마음이 진정되고 전후 사정이 파악되자 도대체 자신이 왜 이 물속에 빠져 있는 것인지 상황파악에 나섰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멜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목욕시키는 것 대신에 이곳에 던져 넣으면 될 것 같군요.”

정화마법 덕에 몸까지 깨끗해지자, 목욕까지 시켜줘야 하는 건지 고민하던 멜은 그나마 위안을 삼게 되었다. 그러나 이피리스에게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었다.

“날 던진 거예요?”

멜은 이피리스가 화를 내건 말건 바닥에 챙겨온 옷과 목욕타월을 내려놓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귀찮으니 갈아입으시지요.”

그리곤 돌아서서 버리자 자신의 항의가 씨알도 안 먹힌 걸 깨달은 이피리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거, 거기 준보스! 돌아서요!”

“준보스가 아니라 멜입니다.”

“아, 저는 이피리스에요. 아니! 이게 아니잖아! 당장 돌아서요!”

“제가 시중이라도 들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 아니에요! 돌아서지 마요! 절대로 돌아서면 안 돼요!”

이피리스는 허겁지겁 물 밖으로 나오더니 다 젖어 질척거리는 신발부터 벗기 시작했다. 벗는 소리가 들려오자 멜의 입가가 살짝 비틀어지더니 입을 열었다.

“속옷은 한쪽 구석에 쌓아놓으면 소각처분이라도 하겠습니다. 당장은 구할 여건이 안 되니 그냥 버티십시오.”

“됐어요!”

이피리스는 속옷이라는 말에 얼굴이 더 붉어지더니 버럭 하고 소리 지르고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속도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속옷을 수집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아직 발육도 안 된 여성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난 다 컸어요!”

이피리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이 정도면 당장이라도 시집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멜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신다면, 제 여동생이 밥벌이도 못할 리가 없지요. 그러니 인정하시고 빨리 옷이나 갈아입으십시오.”

갈아입다 말아 반쯤 나신이 된 상태에서 광분하여 성큼성큼 걸어오던 이피리스는 자신의 상태를 다시 자각하고는 급히 물러났다.

“웃차, 여동생이 무슨 일을 하기에 그러는 거죠?”

이피리스는 속옷을 차마 내놓지 못하고 있는 힘껏 짜서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 것도 모르십니까?”

“알 리가 없잖아요!”

“하아. 머릿속에 모르는 기억 같은 것 없으십니까?”

“없는데요?”

“이 빌어먹을 대마왕이!”

난데없이 소리를 치른 멜이 웃는 얼굴을 하곤 돌아섰다. 이피리스는 그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제 동생은 서큐버스니 당연히 어린 몸으로 유혹하기에는 역부족이지요. 뭐 소아성애자라는 존재 덕에 연명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영양부족으로 늘 피골이 상접하더군요. 사실상 영양부족으로 인한 악순환일지도 모르겠지만.”

“네? 그럼 혹시 인큐버스신가요?”

“설마 하이엘프이길 바라셨습니까?”

당연히 준보스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 어딘가 에서는 대마왕에게 납치당한 하이엘프여서 자신이 마왕을 퇴치하면 앞으로 그려질 행복한 러브라인을 망상했던 이피리스는 움찔하고 놀랐다.

그 행동에 멜의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훑어보더니 화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제가 그렇게 못 생겼습니까?”

“네?”

“됐습니다. 저는 명예로운 인큐버스입니다.”

“네…….”

이피리스는 왠지 멜에게 무척 잘못한 것 같은 느낌에 소심해졌다. 멜은 이피리스를 데리고 마왕이 앉아있던 자리로 갔다.

“저…….”

“무슨 일이십니까?”

“대마왕은 어떻게 됐나요?”

“아, 그 빌어… 죄송합니다. 대마왕님께서는 은퇴한 마왕들의 안식처인 만마전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실 겁니다.”

“그 말은 설마…….”

“네. 물리치셨습니다.”

이피리스는 감격의 눈물을 흘러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드디어 남자가 아니어도 여자도 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위대한 순간을 자축하려는데, 멜이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마왕이 앉아있었던 커다란 의자 앞이었다. 멜은 공손히 이피리스의 손을 잡아끌어 의자 앞에 세우더니 입을 열었다.

“부디 자리에 앉으십시오.”

“네?”

멜은 이피리스를 살짝 밀어 의자에 앉히고, 기사가 황제께 올리는 예를 차리는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정성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요?”

“신 멜 에토피아 인큐버스. 마계를 평정하시고, 신에게 반기를 드시며 만마의 종주이시자, 어느 어둠보다 어두우신 대마왕님께 인사드립니다.”

“네?!”

이피리스가 놀라 반문하자 멜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한 얼굴로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이피리스를 가리키며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대마왕님이 되신 겁니다. 이피리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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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장 알바와 인어와 머맨과 이피리스? +1 15.07.13 16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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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사 지망생을 위한 지침서 15.07.02 781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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