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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추구만리행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중·단편

완결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14.05.22 20:24
최근연재일 :
2014.10.14 18:34
연재수 :
75 회
조회수 :
620,319
추천수 :
23,141
글자수 :
463,734

작성
14.10.1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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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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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글자
16쪽

고우호(高郵湖)의 결(決) - 6.

DUMMY

커다란 북을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갑판과 벽이 덜덜거리며 옆으로 다시 움직였다. 조만간 용선은 배를 드러내고 뭍에 어깨를 누이며 쓰러질 터였다. 석벽에 부딪혔던 배의 벽이 벌어지며 사내 둘의 얼굴에 햇살을 드리웠다. 갑자기 천둥 치는 소리가 아래에서 울려퍼졌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부분의 나무가 갈라지며 치솟고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용선의 허리가 두 쪽이 나자, 선수가 땅바닥에 그대로 처박히며 옆으로 기울었다. 갈라진 허리 사이로 판자들이 걸쳐져 마치 옆구리가 터진 짐승의 등뼈처럼 보였다. 기유태와 각목교는 바로 그 부러진 허리뼈 위에서 상대방과 맞서는 중이었다. 기유태가 쓰러진 장월록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방금 전 송피약사를 죽였다.”


“알고 있다. 내가 데려온 자니까.”

기유태가 각목교를 노려보았다.


“알면서 죽였단 말이냐?”


“좌도어사 대인의 갈 길을 막는 그대와 동행하는데, 그건 배신이다. 송피약사라는 허명은 죽음으로 족하고.”

각목교의 말은 딱딱하기 그지없었으나, 허탄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쌍두창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그를 보는 기유태의 눈빛은 점점 험악하게 변하고 있었다.


“개로 살고 싶으냐?”


“사람들이 그러더군. 개의 자식으로 나왔으니 개라고.”


“허! 네 아비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 몰라도 제대로 불효자를 낳았구나.”


“말이 많다.”

기유태의 오른손엔 어느새 강침이 잡혀 있었다. 이미 백발은 피에 물들어 적발(赤髮)이 되었건만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넘긴 노인의 안광은 여전히 빛나는 중이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허물어지는 몸을 겨우 옆의 벽을 짚고 지탱하면서도 노인의 호연지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천하의 원망을 주인과 개들에게서 받아가겠노라.”


“노인에게 그럴 힘이 남아 있는 지가 의문이고.”

각목교의 손에 들린 쌍두창이 손아귀에서 한 바퀴를 돌았고, 슬쩍 치켜 뜬 눈에서 살기가 폭사했다. 기유태의 예리한 눈 역시 각목교를 놓지 않고 있었다.


“내게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할 이유가 있으니 합을 겨뤄보자.”


“허.”

기유태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놈에게도 지킬 도리와 의리가 있더냐?”


“설명한들 구차하구나.”


“간신배를 위해 죽을 이유가 있느냐?”


“간신배.”

각목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히죽 웃어 보였다. 처음 지어보는 웃음인지 표정이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뒤따라 오던 말도 처음 해보는 말인지 어눌하기조차 하였다.


“간신배라 치자. 그대가 그를 죽일 이유는 무엇인가?”


“강철경이 천하를 주무르는 악인임을 세상이 뻔히 다 안다. 그저 권세와 금력의 무거움을 못 이기고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

노독당은 가빠지는 호흡을 잠시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입에서 다시 짭짤한 피맛이 느껴졌다.


“내 말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천하의 공도(公道)를 실행할 것이다. 네놈이 막는다면 죽는 수밖에 없느니라.”

각목교가 싸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자격으로 천하 운운 하는가?”


“천하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은 모두 천하를 논할 수 있는 법.”


“설사 나를 넘는다 하여도, 내 앞에는 항금룡이 있고, 또 그 앞에 강동대협 왕운이 있느니라. 네놈은 결코 좌도어사께 도달할 수 없다.”


“너를 넘고, 또 넘고, 또 넘으리라.”


“그 몸으로?”

노독당 기유태의 비틀대던 몸이 우뚝 섰다.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노인의 눈빛은 청석을 뚫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히려 젊음을 가지고도 음울하기 그지없는 각목교의 눈빛과 대조되었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가 젊고 상처 입었는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노독당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협기(俠氣)가 육신과 무슨 상관이랴! 다른 이를 대신해 칼을 잡은 자, 그렇게 살아야 하느니!”


잠시 두 사내 가운데 침묵이 흘렀다.

상처투성이 노인을 보던 각목교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르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구름부터 크기를 잴 수 없는 구름까지 각양각색의 구름이 하늘을 가로질렀지만, 그 어떤 구름도 창천을 모두 가리지 못하고 그저 바람을 타고 흘러갈 뿐이었다. 젊은 이십팔수의 수장은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굴 탓하며 누굴 원망하리. 그저 이것은 내 운명이거늘.”


사내의 양손이 교차하더니 쌍두창이 하늘을 보고 섰다. 용약재연(龍躍在淵)의 기수식이었다. 각목교의 왼손이 가슴으로 모이며 반장(半掌)을 올렸다.

“이십팔수의 수장 각목교, 천하고절 절세대협! 노독당 기유태를 뵈오이다!”


힘겹게 서 있던 노독당이 멈칫하며 각목교를 쳐다보는데, 각목교의 눈빛이나 몸짓은 결코 비아냥도 아니고 화를 돋우기 위한 책략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헌사(獻詞)였다. 노독당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절세대협.”


노독당의 눈이 깜박거렸다. 스러져가는 햇살이 노인의 눈에 버거운지 노인은 잠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작은 한숨이 노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데, 각목교는 태산처럼 서서 노인이 하는 양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잠시 후, 노독당은 고개를 흔들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하나 남은 강침을 각목교를 향해 겨누며 준엄한 목소리로 각목교의 말에 답하였다.


“노독당 기유태, 비록 늙고 힘없어도 전력을 다해 이십팔수 수장, 각목교에 맞서겠소!”

이십팔수의 수장과 당대의 노살수가 나무판자 하나를 두고 서로 거리를 천천히 좁혔다. 쌍두창과 강침 한 자루. 길이의 차이가 엄청났다. 화려한 금상감의 창날이 새하얀 광망을 뿌리는 강침과 어울려 휘황찬란한 광채를 뿌렸다. 검은 전복의 교룡은 위압감이 있었고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묘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으나 찢어진 도포의 노인 역시 들어오고 나감에 구애 받지 않는 듯 비정비팔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을 상하로 돌리는 중이었다. 각목교의 실같은 눈이 기유태의 움직임을 조심스레 쫓았다. 기유태 역시 발 디딜 곳이 없는 폐허 속에서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쌍두창의 사각을 찾기 위해 애썼다. 노인의 다리가 가늘게 떨렸다. 두 사내의 발아래에서 나무판자가 삐걱거렸다. 사내들의 뒤에는 쪼개진 용선의 거대한 선체가 마치 커다란 아가리처럼 검은 동굴이 되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햇살은 따사로웠다. 좋은 날씨였다.


슬쩍 기유태의 발이 나무판자 위를 미끄러져 들어왔다. 마치 춤사위를 하며 어깨를 털듯 노인이 어깨를 부드럽게 뻗자 손에 든 강침이 앞으로 들어왔다. 강침은 깃털이 되어 바람을 탄 듯, 거품이 되어 파도를 탄 듯 가볍게 앞으로 거침없이 뻗어갔다. 그와 동시에 젊은 각목교의 창날이 기유태의 강침을 막으며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뒤이어 창 끝에 붙은 다른 창날이 빗겨나간 기유태의 강침 사이로 들어오며 노인의 목울대를 쓸고 지나갔다.


기유태의 목이 뒤로 슬쩍 젖혀지자 일 촌도 안 되는 간격으로 창날이 허공을 갈랐다. 노인의 발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싶더니만 다시 발을 모은 상태에서 힘을 다해 판자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통증이 노인의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오른손에 들린 강침이 단검처럼 보이지 않는 속도로 각목교의 몸을 노리고 미간과 가슴, 목과 눈을 찔러 들어갔다. 번쩍이는 창날이 강침을 막고는 뒤로 젖혀졌다. 아래에서 위로 금상감의 창날이 올라왔다. 기유태의 몸이 슬쩍 옆으로 피하며 계속 거리를 좁혔다. 각목교의 몸 역시 뒤로 움직이며 회전하는 창날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부리로 찍어대는 한 마리 수리와 머리 둘 달린 뱀의 대결이었다.

사내들의 발아래 삐걱대던 판자가 우직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두 사내의 몸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부서진 판자가 아래로 떨어지며 출렁대는 파도에 쓸려갔다. 기유태가 오른손의 강침을 왼손으로 옮겼다. 각목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쌍두창을 팔랑개비처럼 돌렸다. 울컥, 기유태의 입에서 선혈이 올라왔다. 이미 양어깨의 상처는 터져서 다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점점 이물과 고물의 균열은 심해지고 있었다. 두둑대며 부서져 나가는 나무판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기유태와 각목교의 결전이 벌어지는 곳이 균열의 중심이었다. 지금 몇 개 겨우 걸쳐져 있는 나무판자도 곧 벌어지는 균열 사이로 떨어진 것이고, 그 이후가 되면 기유태가 서 있는 고물 부분은 천천히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될 터였다. 선체가 조금씩 떨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기유태의 손이 가슴 앞으로 모였다. 각목교의 쌍두창이 기유태의 목을 겨누었다. 짧은 강침이 앞으로 한 뼘을 뻗기 위해서 기유태의 몸은 두 배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짧은 간격을 늘이기 위해서 각목교는 한 발 더 물러서야 했다. 기유태의 몸은 불완전했고, 각목교의 창은 직선의 대결에서 장점을 잃어버렸다. 사내들의 옆에 놓였던 나무 널빤지 하나가 또 아래로 떨어졌다. 만경창파에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든든한 성(城)이었던 나무들이 이제 덫이 되어 사내들의 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기유태가 슬쩍 머리를 흔들어 눌어붙은 머리를 떼었다. 이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결국 두 사내 발아래의 널빤지도 무너져 내릴 것이었다. 기유태는 때를 기다렸지만, 각목교는 이미 그 모든 일에 무심한 듯, 철벽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창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드드득 소리가 다시 크게 울려 퍼졌다. 점점 고물이 뒤로 넘어가며 배의 하반신이 물 아래로 젖어 들어갔다. 사방에서 나무가 깨지고 못들이 퉁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의 발아래 놓은 널빤지가 덜덜 떨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유태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발이 기나긴 널빤지를 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각목교의 두 손에서 창날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기유태의 왼손에 들린 강침이 같이 뻗어 나갔다. 노인의 손목이 기묘하게 휘어지자 창대는 강침을 빗겨 타고 기유태의 오른머리 위쪽을 스치며 지나갔다. 강침의 끝에 각목교의 손이 있었고, 그 손의 연장선에 심장이 있었다. 하지만 각목교는 한 마리 신룡이 구름을 타고 움직이듯 뒤로 후퇴하며 슬쩍 왼손을 뒤로 뺐다. 거추장스러울 것이 없는 또 다른 뱀의 머리, 창날이 기유태의 몸을 파고들었다. 서걱, 기유태의 왼쪽 어깨로 창날이 파고들자 선혈이 솟구쳤다. 기유태는 몸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대로 창날에 맞은 채 몸이 계속 돌진했다. 각목교의 눈살이 찌푸려지며 몸을 크게 뒤로 움직였다. 회수한 다른 창날이 회전하며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기유태의 오른 옆구리가 다시 깊게 베였다.

두 사내는 시꺼먼 배의 아가리 속으로 몸을 숨겼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배의 고물이 완전히 갈라지며 싯누런 황토물 속으로 처박혔다. 사내들이 밟고 있던 널빤지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기유태의 강침이 한번 더 회전하며 각목교의 몸 앞에서 놀았다.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이 각목교의 다리에서 느껴졌다. 한 발. 기유태가 미소와 피를 같이 입에 머금었다. 각목교의 찌푸린 눈썹이 한껏 모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듯한 두 개의 창날이 노인의 몸을 사정없이 베고 찔러댔다. 강침과 창날이 맞부딪히는 금속성보다 예리하게 잘리는 소리와 함께 튀는 핏물이 더 많았다. 동시에 각목교의 왼팔과 오른 어깨에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각목교의 이가 악물렸다. 기유태의 이는 이제 시뻘겋게 물든 뒤였다. 각목교의 몸뚱어리가 부서진 선실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미 여기저기 산산조각이 난 나무들로 짜 맞춰진 사방은 말 그대로 나무송곳의 벽이었다. 기유태의 미소는 이제 찡그려지고 있었고, 각목교의 입에서 피맛과 단내가 같이 넘어왔다. 눈에 들어가 흐르는 붉은 것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고통을 판별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은 나와 상대의 호흡이요, 상처에서 흐르는 피요, 눈동자의 움직임이며 근육의 떨림뿐이었다. 아래로 깊게 내려친 각목교의 창날이 공간을 점하였을 때, 기유태의 왼팔에 들린 강침이 다시 오른팔로 넘어가는 것이 각목교의 눈에 들어왔다. 노인의 오른손목이 슬쩍 젖혀졌다. 각목교의 머리가 재빨리 왼쪽으로 넘어가며 창날을 다시 뻗어 손잡이로 노인의 상처 난 옆구리를 뼈가 부러지라 후려쳤다. 순간 번쩍이는 빛살 하나가 각목교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에 지져지는 듯한 통증이 얼굴을 강타하자, 그제야 각목교는 자신이 검결에서 이겼음을 자각하였다.

“끝났다!”


옆구리를 강타당한 노인이 다 부서진 목벽에 처박히는 순간, 각목교는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왼팔의 통증과 오른 어깨의 통증이 그제야 강렬하게 느껴졌다. 기유태는 마치 대못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목벽들에 꿰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각목교가 겨우 다시 자세를 추스르고 쌍두창을 겨누었을 때, 부서지는 나뭇조각들을 붙잡던 기유태가 서서히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각목교의 무심한 눈이 그제야 돌아왔다. 그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던 기유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피가 물처럼 흘러내렸다.

“끝났다.”


그때였다, 기유태의 손에 나뭇조각들이 들려있는 것이 각목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노인은 그 새 자신의 몸에 박힌 십여 개의 파편을 뽑아 두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었다.

거짓처럼 풀어지던 노인의 눈에 다시 투기(鬪氣)가 돌아왔다 생각한 순간, 기유태의 열 손가락이 그를 향해 뻗는 것이 각목교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보다 빨리 뜨겁고 단단한 나뭇가지들의 촉감이 그의 목과 가슴과 어깨와 배에 느껴졌다. 나무들은 하나하나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첨단이 되어 각목교의 요혈에 박혔고, 그 고통의 총합은 사내의 목숨을 끊어놓을 만한 것이 되었다.

각목교의 손에서 쌍두창이 떨어졌다. 그르륵 거리는 소리가 입과 목에서 울려 퍼지며 핏물이 입으로 쏟아졌다. 천천히 가슴을 움켜쥔 노독당 기유태가 그의 앞으로 기어왔다. 각목교의 눈꺼풀이 떨리며 그의 명(命)을 앗아간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의 붉은 입이 열리자 선혈이 쏟아졌다. 노인은 가슴과 목, 배 모든 곳에 송곳으로 뚫린 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노인은 저승길에 갈 차비를 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대의 멋진 솜씨, 이 노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에 손색없는 창이었소.”

각목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무릎이 꿇렸다. 사내의 흐릿한 눈에서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입이 열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나뭇조각에 막힌 목구멍에서는 핏물 외에 넘어오는 것이 없었다. 마지막 경련이 멈출 때까지 각목교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동귀어진(同歸於塵)이나 다름없는 검결이었겄만, 아직 기유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선실 바닥에 누워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었다. 노인은 눈을 깜박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의 깜박거림은 점점 빨라지고, 눈동자는 점점 흐릿하니 감겨가는 중이었다. 붉은 피와 부서진 나무조각과 쓰러진 각목교의 시신이 눈에 겹쳐졌다. 사방이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순간, 노인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다시 한 곳에 집중되었다.

노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각목교의 머리 위 나무판자에 꽂힌 강침이었다. 아직도 번쩍이는 빛이 줄어들지 않은 최후의 애병(愛兵)은 주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인의 눈이 크게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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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 1. +19 14.10.13 6,802 304 15쪽
» 고우호(高郵湖)의 결(決) - 6. +23 14.10.11 7,400 31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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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고우호(高郵湖)의 결(決) - 3. +18 14.10.09 6,116 270 12쪽
68 고우호(高郵湖)의 결(決) - 2. +12 14.10.09 5,996 25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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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고주일척(孤注一擲) - 2. +7 14.10.06 5,513 253 12쪽
63 고주일척(孤注一擲) - 1. +13 14.10.05 6,302 281 12쪽
62 홍택호(洪澤湖) +22 14.10.03 6,771 284 16쪽
61 남직례(南直隷), 회음(淮陰) -3. +29 14.10.02 6,367 264 17쪽
60 남직례(南直隷), 회음(淮陰) -2. +19 14.10.01 5,915 264 16쪽
59 남직례(南直隷), 회음(淮陰) -1. +13 14.10.01 6,243 248 13쪽
58 남직례(南直隷), 숙천(宿遷) - 3. +20 14.09.30 5,528 262 13쪽
57 남직례(南直隷), 숙천(宿遷) - 2. +9 14.09.30 5,726 245 11쪽
56 남직례(南直隷), 숙천(宿遷) - 1. +9 14.09.30 5,659 247 13쪽
55 낙마호(駱馬湖) 의 결(決) - 4. +15 14.09.29 6,130 264 12쪽
54 낙마호(駱馬湖) 의 결(決) - 3. +12 14.09.29 5,891 234 14쪽
53 낙마호(駱馬湖) 의 결(決) - 2. +4 14.09.29 5,960 235 12쪽
52 낙마호(駱馬湖) 의 결(決) - 1. +7 14.09.29 5,867 247 11쪽
51 낙마호(駱馬湖) - 2. +22 14.09.28 6,241 256 14쪽
50 낙마호(駱馬湖) - 1. +18 14.09.26 6,392 272 13쪽
49 남직례(南直隷), 야범(夜帆)- 2. +22 14.09.25 6,546 274 13쪽
48 남직례(南直隷), 야범(夜帆)- 1. +9 14.09.25 6,315 246 13쪽
47 비주(邳州), 하량관(河梁館) +17 14.09.24 6,454 280 13쪽
46 비주(邳州), 선상(船上) +9 14.09.24 6,448 27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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