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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의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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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주의
작품등록일 :
2013.03.18 23:3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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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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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89
추천수 :
815
글자수 :
243,676

작성
15.07.07 20:40
조회
366
추천
5
글자
7쪽

50. 흐드러지는 섬전은 번뜩하고 스러진다

DUMMY

누가 말했다. 진화란, 아무것도 모르는 원숭이가 마구잡이로 타자기를 이리저리 후려쳤더니, 세상에 둘도 없을 명작이 순전히 우연으로 튀어나온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기에 진화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그것은 진화를 잘못 이해했기에 나온 말이다. 진화는 어느 한 순간에 번쩍하고 나타나는 것이, 갑자기 번개가 쩍하고 내려치니 수정체, 각막과 조리개가 다 갖추어진 완전한 눈동자가 튀어나오는게 아니다. 진화는 발전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빛을 감지하는 약간 이상한 피부로 시작해, 서서히 둥글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하고, 차근차근 빛을 더 세밀하게 감지하고, 그렇기에 생존해 자손을 번식할 확률을 늘려주는 발전들을 더해감으로서, 결국 그 모든 단계들을 거쳐 (현 시점의) 완성체인 눈동자로 변하는 것이 진화다. 다시 원숭이와 타자기 비유로 돌아가자면, 원숭이가 여러 글자들을 마구잡이로 내려칠 때마다, 잘못 된 글자가 쳐지면 자동으로 삭제되고 제대로 된 글자가 쳐지면 다음 글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한반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기준만 짜여져 있다면 유한한 시간 안에 원숭이는 명작을 써낼 수 있다. 살벌한 세상의 급변하는 환경은 생물체에게 진화압력을 가함으로서 충분한 기준이 되어준다.


그렇다. 진화는 발전이다. 아니, 발전이여야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전시키는데 드는 비용과 그러한 비용을 지불함으로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균형을 이루는, 기능성 만큼이나 가성비도 냉혹히 따지며 차근차근 한단계씩 밟아나가는 발전이여야 했다. 갑자기 수십단계의 계단을 건너뛰고 까마득하게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강아지가 자식을 낳았더니 갓 지옥에서 튀어나온듯한 맹수로 자라나는게 아니고, 한 단세포 생명체가 세포분열을 했더니 수정체로 변해 인간이 되는게 아니다.


그런데 어느 원시의 수풀 속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안 될, 정말 말 그대로 원숭이가 내키는대로 타자기를 두들겼더니 로미오와 줄리엣이 튀어나올 확률을 뚫고 일어날리 만무한 일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번뜩이는 천재성을 그 기괴하리만치 큼지막한 두개골 속에 담고 있는, 인류가 수백만년 후에나 문명과 기계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도달할 수준의 지적능력을 달성해낸, 어떤 가설이나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진화의 이레귤러. 그 괴물은 찢어지는듯한 비명과 함께 피투성이로 세상에 내뱉어졌다.


인간보다는 유인원에 더 가까운 원시인류는 아직 그정도 크기의 머리를 가진 아이를 세상에 내뱉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현생인류의 뇌는 기형적으로 크다. 현생인류는 태어난 순간부터 2년동안 엄청난 속도로 뇌를 마저 키우지만, 심지어 덜 완성 된 뇌마저도 생태계에서 비교자를 찾을 수 없는 기괴하리만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러한 뇌를 낳는 것은 그만한 생물학적 준비를 필요로하고, 현생인류의 여성들은 쩍 벌려진 골반을 진화시키고도 아슬아슬하게 겨우 현생인류를 낳을 수 있게 됬다. 그 말을 역으로 뒤집어보면 이 시점의 원시인류는 괴물은 커녕 현생인류조차 낳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괴물을 낳게 됬으니 어찌 그 출산이 정상적일까.


원시암컷은 자궁과 질이 찢어져나가는 고통속에서 미친듯이 괴성을 내질러댔다. 털이 부숭부숭한 그녀의 사타구니는 실제로 골반이건 근육이건 피부건 가릴 것 없이 죄다 비틀리며 찢어져나가고 있었다. 질구멍이 찢어지며 피가 줄줄 흘러나왔고, 근처의 부족원들은 이 기괴한 참사에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 거리고만 있었다. 그들중 가장 나이들고 현명한 자들 조차 이러한 기사는 태어나서 난생 처음 봤다. 당연한 일이다. 인류 역사 4백만년간 겨우 한번, 그것도 미친듯이 희박한 확률을 뚫고 일어난 기적이니까. 미래의 과학자들도 설명할 수 없어 머리를 부여잡을텐데 어찌 원시인류가 그것을 이해할까. 그들은 그저 뭔가 불가해하고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피투성이 출산은 한 기형아의 탄생으로 끝을 맞이했다. 어미의 하체를 찢어발기다시피 밀어재끼며 튀어나온 이 기형아는 기형적인 크기의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무려 3200cc, 몸의 2/3가 모두 머리로 이루어져있는 정말 기괴한 아이.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고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웅성이는 부족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 않는다는듯, 그 아이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그 물흐르는듯한 암흑의 물결에 푹 빠져들었다. 그 아이의 기괴한 뇌에는 고등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본능적인 수준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역시나 순전한 우연. 그 기괴한 우연은 아이가 어둠으로부터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그 아이의 뇌에는 인류가 앞으로 수백만년의 발전을 더 거듭해가야 겨우 쌓을 수 있을 모든 지식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서늘한 밤바람이 피부를 간질여오자 그 아이는 본능적으로 공기역학과 유체역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물학적 전자현미경이나 다름없는 그 눈은 공기중의 먼지, 그리고 그 분자구조까지 파고들어가며 화학을 이해했고, 삼라만상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결국엔 양자역학과 끈 이론, 심지어 빅뱅이론까지 유추해냈다. 그렇게 1분이 흘렀다. 그리고 1분만에 아이는 22세기 인류가 지닌 모든 학문적 성과들을 이해했다. 그 아이는 끈이론과 홀로그램 이론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고, 우주의 직접적인 본질이 무엇인지를 엿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매초매초 그 아이의 괴물적이리만치 날카로운 지성은 수많은 석학과 천재들의 발전을 순전히 본능 하나만으로 파훼해내갔다. 그 아이가 내딛는 발걸음은 순전히 그 아이의 괴물스러운 두뇌속에서만 이루어졌고 세상에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걸음마다 혁명적이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는 인류 그 누구보다 더 멀리, 더 가까이 우주의 본질에 접근했고, 차근차근 한꺼풀씩 그 탐스러운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갔다. 당장이라도 이 껍질만 벗기면 이 우주가 무엇인지, 왜 존재하는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 우주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아이는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는 이해했다. 아이는 우주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아이는 태어난지 겨우 3분만에 전지의 수준에 도달했고, 우주의 모든 지식, 모든 의미, 모든 비밀들을 파헤쳐내 이해했다. 아이는 모든 것의 답,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올바른 질문을 알았다. 아이는 수백만년이 흐르고나서야 인류가 만들어낼 지성의 상아탑을 비웃듯이 단번에 깨부숴버렸고, 그렇게 그 아이는 지성의 신이 되었다.


잠시 후, 1분이 더 흘렀다. 3200cc의 뇌를 사용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킨 아이는 미라처럼 비쩍마른채 죽었다.


작가의말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를 읽다가 필받아 함 끄적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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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흐드러지는 섬전은 번뜩하고 스러진다 15.07.07 367 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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