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자살
자살이 가장 무서울 때는 현실이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 때가 아니다. 생존본능과 자기파괴충동이 매섭게 맞부닥치며 소용돌이치듯 고뇌를 일으킬 때, 그때는 가장 섬뜩한 순간이 아니다. 자살에 대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무섭다. 그냥, 갑자기 어느 날, 공허한 마음 속에 아무 감정도 들지 않을 때, 문득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오르는거다.
'죽을까?'
그 생각이 아무 감정도 일으키지 못할 때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행위에 대해 딱히 별 생각이 안 든다. 그냥, 마치 뒷산에 산책을 나가듯이, 무덤덤한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옥상난간 위로 오른다. 섬뜩할만한 광경이 아래에 펼쳐지지만 딱히 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싶은거다. 그냥, 그런거구나. 마치 수영장에 몸을 던지듯이 까마득한 공허로 가볍게 몸을 내던지고, 언제나 기회만 엿보던 중력의 손아귀에 마침내 잡혀 무섭게 잡아당겨진다. 볼을 스치는 칼바람이 날카워 피부가 베어질 것만 같다. 채 몇초도 되지 않을 짧은 순간은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거나, 삶을 되돌아본다거나, 무언가 제대로 된 감정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그냥 몇가지 원초적인 감정들이 단편적으로 뇌리를 스치는 가운데 뭐라 특정짓긴 힘든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생각은 제대로 정리 될 기회도 가지지 못한채 그냥 바닥에 추락한다. 콰직.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생각은 깨부숴진 두개골과 비산하는 뇌조직에 담겨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흩뿌려진다. 모든 것이 분해되듯 쪼개지고 희미해져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다.
모든 것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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