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분노
이글거리는 분노에 혀가 쌉쌀하게 타들어가는 맛이 어떠한지 자넨 아는가? 원초적인 겁화가 핏줄을 타고 맹렬하게 흐르며 모세혈관 하나 남기지 않고 지져버리는 것은 느껴본 적 있나? 그것은 벼락처럼 내려치고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 까마득한 절벽을 연달아 후려쳐 깨부숴버리는 바닷파도의 분노, 아, 수백만년전 야만의 평야를 내달리던자의 증오라네. 부족의 원수를 바라보며 내달리던 원시인이 돌맹이를 손바닥이 새하얘질정도로 힘을 꽉 줘 움켜쥘 때, 그 끈끈한, 지독하리만치 독한 겁화는 타오르는 타르처럼 심장을 가득 메웠지. 그놈이 그 투박하리만치 살벌한 칼날로 적의 두꺼운 가죽을 찢어발길 때 적의 생명을 담은 달콤한 핏줄기는 갈라진 가죽을 뚫고 솟구쳐올랐고, 구름 한 점 없이 창창한 푸른 하늘과 그 아래 메말라 피를 갈구하는 시뻘건 대지는 제물로 바쳐진 핏물을 게걸스럽게 들이켰네. 수많은 세월을 뚫고 그 원시인의 피가 기필코 흘러들어와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속을 질주하듯 내달리는게 느껴지네. 적의 모가지를 맹수마냥 물어뜯고 세상 무엇보다 달콤할 그 핏물을 빨아들이고 싶네. 들이키고 또 들이켜 배가 풍선마냥 폭발해버려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는 기필코 계속 그것을 들이마실거네. 한모금이라도 더 마신다면 적은 그만큼 생명을 잃을 것이요 강탈한 생명으로 나는 다시금 타오를 것이네. 아, 얼마나 달콤한가, 적의 피를 빨아들인다는 것은, 그리고 그리하여 한 영혼을 영원토록 구제할 수 없는 나락으로 밀어넣는다는 것은. 타르와 죄악로부터 태어난 지옥불은 그자의 영혼을 마지막 한 점까지 잡아먹을 것이야. 잿더미 한줌조차 남기지 못하게 되겠지. 그 존재의 근본마저도 시꺼먼 화염속에 온전히 소멸하게 되는 것이야. 그리하여 세상 만인은 그러한 자가 존재했었단 사실마저도 잊겠고, 그자의 어미, 누이, 아비와 형제들마저도 그런 자가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한솥밥을 먹었단 것을 영겁속에 잊어버리고 말 것이네. 그리하면 나, 분노한 자, 한 때 짓발겨져야만 했던 자는, 비록 모두에게 악마라 지탄받으며 투석형을 받고, 세상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채 그저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자라 기록당할지언정, 비록 시커먼 밤비속에 홀로 젖어 죽어간다하더라도! 이 땅의 대지 위에 혼자서라도 우뚝 서서! 까마득한 나락속에 내 적이 절규하며 타올라죽어가는 모습을! 이 두 눈에 칼날로 새겨넣으며! 웃으며! 죽어갈 수 있을 것이네! 한낱 한줌 진흙만도 못하던 자의 생명으로 창공의 태양을 쏘아내렸으니! 아! 그것이 어찌 달콤치 않은가! 그것이 어찌 분노가 아니던가! 그것이 어찌 절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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