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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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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3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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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자 기사단(4)

DUMMY

으슬한 아침 안개를 햇살이 채 쓸어가지 못한 이른 아침, 엘과 카린은 류디스를 만났다. 그는 곤혹스런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어제 엘크를 쓰러뜨리셨다면서요?”


“아아. 시다바리 몇 하고 같이 간단히.”


엘이 담담하게 긍정했다. 류디스는 한층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 때문에 저희 쪽도 시끄럽습니다. 특히 조날 안바르디가 펄펄 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여전히 엘의 표정은 담담하다. 류디스는 답답했다. 그는 상황의 위험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조날 안바르디는 안바르디 백작의 아들입니다. 안바르디 백작은 굉장한 유력가입니다. 상비군이 마련되기 시작하며 영주들의 군사적 재량권이 많이 제한되고 있는데, 그는 도리어 더 큰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건 상비군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왕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러나 류디스의 이어진 말에도 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입꼬리 끝이 미묘하게 끌어올려졌을 뿐이다. 그 표정에서 류디스는 얼마전 보았던 그의 검무를 떠올렸다.


그 아름다움, 그 경이로움-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하게 무거워지며 열기가 퍼졌다. 그는 이런 담담함을 유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라고 류디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류디스는 열정어린 감상을 물리치고 처음의 의견을 고수했다.


“으음... 너무 강하게 나오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물론 엘 님이 강하신건 알지만, 불필요한 싸움은 역시 피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엘은 잠시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그건 미학적이지 않다. 그러나 류디스는 자신을 걱정해 이런 미학적이지 않은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 역시 미학적이지 않았다. 엘은 혀를 차며 답했다.


“물론 그 말은 옳지. 그러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어쨌든 그들은 나와 싸우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으니까. 그래서 묻는 건데, 여기서 왜 그렇게 너를 깔보고 있는거지? 대 놓고 조롱하고 네 종자로 등록된 우리를 위협하려 할 만큼 그들은 너를 무시하고 있었어. 이해할 수 없군. 네 검 솜씨라면 어딜 가서도 무시당할 수 없을텐데.”


“그건...”


류디스가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엘은 류디스의 등을 떠밀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아도 된다고 하고 싶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군. 앞으로도 한동안 여기서 살아야 하니 우리도 이유를 알아야 하겠어.”


엘의 말은 단호했다. 류디스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곧 알게 될 일이었다. 그들이 이 사실을 알고도 너무 실망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류디스는 다소 고통이 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으음... 제 어머니가 매춘부였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뛰어난 기사였고, 두 분이 저를 낳으실 무렵에 어머니는 더 이상 매춘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어머니는 매춘부셨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에? 그게 왜?”


카린이 물었다. 눈망울을 크게 뜨고 류디를 향해 직선으로 물어오는 그녀의 얼굴에는 놀람과 의혹이 뒤섞여 있었다.


“그게 왜... 라니요?”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류디스는 무어라 설명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매춘부의 자식이다. 그래서 천하다. 천하므로 고귀한 신분의 대부분 다른 이들은 그를 무시하려 한다. 완벽한 논리구조였다. 거기서 더 ‘왜?’를 요구하는 카린의 질문은 고통스럽고 지난(至難)했다.


“류디스의 어머니가 좋아서 매춘을 한 것도 아닐꺼 아냐. 그리고 그게 류디스랑 무슨 관계가 있어? 류디스가 비적질을 할 것도 아니고.”


카린이 강한 어조로 주장했다. 류디스는 가슴에 한방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매춘부의 자식이란게 무슨 상관이냐니! 류디스는 그런 논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엘은 그 옆에서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 카린 네 말이 옳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질 않으니... 어제만 해도 소장이 부당하게도 우리에게 청소를 명령했잖아. 시비를 건건 그놈들인데 말야.”


“그건 부당하다고 보기엔 좀 그렇지 않아? 엘이 그 사람들 하던 말도 안 끝났는데 가서 냅다 패버렸잖아.”


카린이 웃으며 반박했다. 엘은 카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회피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다. 류디스가 그 장면이 어쩐지 웃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엘이 그를 향해 처음처럼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여간 대충 알만하군. 천한 매춘부의 자식 따위가 이런 엘리트 집단에 종자도 아니고 기사후보생으로 들어왔으니 대놓고 무시될 수밖에 없겠군. 돈 때문에 전전긍긍 하는 네게 강한 페트론(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닐테고.”


“예. 그, 그렇습니다.”


엘은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어조로 답했다. 그들이 좀 특별한 성격의 소유자란건 알았지만 자신이 매춘부의 자식이란 것을 알고도 이렇게 가볍게 넘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상당한 문화충격이다. 물론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북쪽 공화국에는 이들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던데, 그들도 공화국 출신일까?


“쯧쯧, 하여간 여전히 구차한 동네군. 미학적이지 않아. 그럼 가봐. 이쪽도 가능하면 그치와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할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엘크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엘은 그가 아직도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갈등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 존중해줘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엘은 다시 카린을 바라보며 매우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제 아침식산데... 카린, 뿌리면 맛있어지는 마법의 조미료 같은 거 없어?”


“음... 유감이지만 없어.”


카린도 진지하게 답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로서는 이곳 생활 최대의 장애는 조날 안바르딘지 존나 나쁜새퀴인지 하는 놈이라기 보다는 악몽 같은 식사의 질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날 안바르디는 종자들의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떤 ‘년놈’이 천한 류디스 따위의 종자가 되었는지 얼굴도 봐두고, 그 ‘년’이 정말 엘크가 말한 것처럼 쓸만한 인물인지를 검토해 봐야 하겠다 싶었던 때문이다. 그의 당당한 걸음에 사람들은 자리를 비켰다. 이 기사단 내에서 그의 이름은 이미 높았다. 뛰어난 실력, 든든한 배경, 더러운 성질. 안 유명할 수가 없는 삼박자다.


하여간 그가 종자 숙소 입구 쪽으로 들어가자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듯, 얼굴 한쪽이 짖이겨져 흉한 딱지가 내려앉은 엘크가 그를 맞이했다.


“그것들은?”


“안쪽에. 어제 사건을 일으킨 탓에 지금 수련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흠.”


조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길을 걷다가 그 모습을 본 종자들은 흠칫 길을 비켰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 채고는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수근 거렸다 곧 조날과 엘크는 건물 뒤에 있는 수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널따란 공간에 수십의 인형이 세워져 있고, 중간쯤에 두 사람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다. 그들이 그 짜증나는 류디스의 종자임에 틀림없었다.


“거기!”


조날은 위압적으로 외치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그를 잠깐 바라봤다가 다시 무언가 대화를 시작했다. 조날은 심한 짜증을 느꼈다. 천한 것들이 무식해서 예의를 모르는 것 까지야 그렇다 쳐도, 높으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면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것 까지 모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엘크는 여전히 그의 꽁무니를 종종걸음으로 쫒아오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짜증을 담아 외쳤다.


“너희들이 류디스의-”


두 사람이 시선을 돌렸다. 조날과 카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여름날 맑은 하늘의 적란운을 담은 호수결 같은 카린의 눈망울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카린의 미모는 조날이 기대했던 것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험한 옷과 꾸미지 않은 용모가 그 빛을 퇴색케 하기 위해 악을 썼지만 조날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가시 돋은 짜증을 담아, 카린이 물었다. 뒤에 쫒아오는 놈을 보니 용무야 뻔했지만. 그러자 조날은 얼굴을 환히 펴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카린에게 다가가 다시 말했다.


“어제 제 종자와 아가씨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들어서, 이렇게 사과를 위해 찾아 왔습니다.”


“예?”


너무나 예상외였던 대답에, 카린은 되물었다. 그러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조날은 뒤에 있던 엘크의 머리를 잡아끌었다. “아, 아아!”하며 그가 고통스럽게 딸려왔다. 곧장 조날은 엘크를 카린 앞에 내던지듯이 대령하고는 명령했다.


“그녀의 신발에 키스하고 사과해라!”


엘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군소리 없이 카린의 가죽 신발에 키스하고 “죄, 죄송했습니다.”라 사과했다. 카린은 황당해서 어떻게 이걸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뒤에서 엘이 냉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날은 산뜻하고 정중한 미소를 카린에게 보냈다.


“그 마음에 남아있었을 긴 흠이,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길 바랍니다.”


“......”


“엘크. 두 분을 도와 이곳을 정리해라.”


“예, 옛!”


엘크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조날은 고개를 끄덕인 뒤, 깔끔하게 등을 돌려 세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그때까지도 카린은 지나친 경악으로 이에 대해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헤매고 있었다. 한동안의 혼란 끝에 그녀가 겨우 골라낸 말은 이러했다.


“뭐, 뭐야뭐야!”


숙사로 돌아가는 조날의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는 어깨를 떨며 작게 웃으며 속으로 자신의 종자 엘크를 욕했다. 그 녀석 눈은 가히 옹이구멍이었다. 태생이 천하니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그 여자애가 ‘종자’ 따위를 할 수 있는 신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고귀한 귀족인 그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미모! 그 기품! 천한 것들 사이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을 수야 있지만, 그렇게 잘 관리된 피부에 깔끔한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는 이곳에 위장해 들어온 것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이상했던 것이 딱딱 맞춰진다. 그 거렁뱅이 류디스가 말과 마구, 갑옷을 사들인다고 하질 않나, 한갓 종자 따위가 엘크를 비롯해 다른 종자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지 않나, 그건 모두 그녀가 호위기사 내지는 그에 준하는 인물과 이 곳에 잠복해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류디스를 후원하면서 말이다.


‘큭큭... 앞으로가 기대되는걸.’


조날은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로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것은 뱀의 표정이다.



*성원을 합시다~ 선호작 수도 늘고 조회수도 늘게~


*음, 쓸건 많고 시간은 없고...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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