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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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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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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1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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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기사 견습생 류디스(1)

DUMMY

사나운 초록에 젖은 산길은 위태로운 어둠에 잠겨 인간을 거부한다. 태양을 찬양하듯 높이 뻗은 나무들은 한 줄기 햇살도 대지로 흘리지 않겠다는 듯 무성한 잎을 펼치고, 그 그늘아래 숲은 어두운 정적에 잠겨 빛을 노래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괴하게 뻗은 잡초는 모든 길손의 발목을 노리듯 복잡하고, 어둠의 저편에서 번뜩이는 짐승의 눈빛은 굶주림과 욕구에 젖어 귓가에 공포를 속삭인다.


그런 산길을 걷는 두 사람이 있었다. 소년과 소녀였다. 소년 쪽이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나이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소년도 소녀도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이상하도록 침착한 분위기도, 소녀의 찬탄이 흐를만한 아름다움도 그 느낌의 진짜 이유는 아니다. 그 비범성(非凡性)은 좀 더 근원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뭐야. 지도엔 길이 있다고 나와 있더니!”


소녀, 카린이 뒤에서 길길이 날뛰며 외쳤다. 그녀의 앞으로 빛이 떠올라 느긋하게 빙빙 돌고 있었다. 빛이 부족한 이 숲에서 앞을 밝히고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엘은 그녀를 달래고자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만들어 진지 꽤 오래된 모양이니까. 사람이 많이 교통하지 않는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라고 말하게 될 지경에 이르는 법이야.”


“쳇! 하기야, ‘용 여기저기 있음’이 아닌 것만 해도 어디야.”


카린이 불만스럽게 납득하며 말했다. ‘용 여기저기 있음’이란 지도제작술이 지금보다도 현저히 낮았을 때, 제작자가 탐험하지 못한 지역을 채워 넣기가 껄끄러워 용을 그려 넣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고 하는 전설같은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엘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서펜트 여기저기 있음. 도 말이지.”


‘서펜트 여기저기 있음’은 ‘용 여기저기 있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용 여기저기 있음으로 탐사를 피했던 지도제작자는 어느 날 고룡의 방문을 받게 된다. 용은 그 지도 탓에 용을 찾으러 다니는 시시껄렁한 기사 지망생, 혹은 견습생의 도전을 많이 받게 되어 짜증나 미칠 지경이라면서 그를 되게 혼내고 그가 탐사하지 못한 지역을 완성시켜 주고 떠나버린다. 그때만 해도 용과 교류가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소드 마스터라도 감히 용에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데, 그 전설에서는 풋사과들이 감히 용에 도전했다니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육지의 지도를 완성시키고 난 이후 해상항로 개척에 각국이 노력을 기울이게 되면서 그쪽 지도가 필요해졌는데, 그때 지도제작자는 이번에 ‘서펜트 여기저기 있음’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없어서 그에게 서펜트가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다. 웃기긴 해도 그게 최초의 근대적이고 완성도 높은 지도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고, 그래서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용을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이 근처에 있는 거 맞아? 엘 말대로라면 이제 슬슬 몬스터나 그 비슷한 거라도 나타나야 하는 거 아냐?”


“음- 지도가 틀리지 않다면 여기가 세키리아 왕국 중서부 지역에 있는 ‘용의 산’이 맞아. 그리고 이런 종류의 정보에 대해서는 도둑 길드가 가장 정확도가 높지. 그걸로 밥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이게 틀렸다면 뭐 더 이상은 수가 없지. 직접 쳐들어가서 가지고 나온거니 이게 그치들이 가진 가장 최신의 것일테고 말야.”


“그런데 왜 가디언이 없지?”


“이름이 아직 안 알려지고 그냥 용의 산이라 불리는 걸 보면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은 용인 것 같아. 별명도 없는 걸 보면 성격도 조용하고 여기 정착한지도 별로 안 된 것 같다. 그렇다면 가디언이 별로 안 보여도 이상하지 않지. 일국이 군대를 동원해도 승리를 장담못할 만큼의 가디언을 부리는 건 고룡급이 아니고선 힘든 일이니까.”


용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싸움에만 전념하는 무장집단을 부린다는 것은 그 규모에 걸맞는 지출을 요구하게 된다. 최소한 먹이고 입히는 것은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장집단이 일정 이상의 규모가 된다면 어지간한 넓이의 숲에서 나오는 자연적인 생산물로서는 도무지 그 보급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것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만한, 넓고 생산력이 높은 숲이 있긴 하지만, 그런 명당은 물론 주인이 이미 있기 마련이다. 주로 고룡이다.


먹히고 입히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가디언이라면, 고렘과 같은 마법적인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나의 소비가 필요하다. 고룡이 아니고서는 그런 가디언을 대량으로 두기 힘들다. 결국 나이가 어린 용은 괜히 폼 잰다고 가디언을 자기 영역에 들이기보단, 그 짓을 할 비용으로 제 한 몸을 강하게 하는 쪽이 효율이 좋다. 예산은 전방위에서 세계를 지배하기 마련이다. 엘이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흐응- 그럼, 그런 시시한 용 찾아봐야 별거 없지 않을까?”


“내가 무슨 전설의 신검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라면 이미 가지고 있잖아. 안 뽑혀서 문제지. 그러니까 가볍게 사용할만한 검을 찾으려고 가는 거야. 아무래도 돈으로 좋은 검을 구하기는 힘드니까. 그래도 용의 레어라면 있지 않을까- 싶으니.”


“없으면?”


“없으면... 뭐 또 따로 찾아봐야지. 그래도 용이 있단 게 알려졌으니 기사의 도전을 받거나 하지 않았을까? 전리품이 남아 있겠지. 어차피 지금 필요한 건 잘 정련된 검이 마법적으로 강화된 정도면 충분하니까.”


그렇게 카린과 대화하며 엘은 천천히 발걸음의 속도를 줄였다. 이내 두 사람은 정지했다. 짐승의 노린내가 강하게 풍겨오기 시작했다. 어둠 가운데서 질량감을 가진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작지 않은 것이 잡초를 밟으며 나는 소리다. 어둠에서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그리고, 포위하듯 수십 마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사납게 벌려진 입에서는 끈적한 침이 흘러내리고, 수십 개의 송곳을 이어붙인 것 같은 사나운 이빨은, 분홍빛 혀의 굶주린 기색과 함께 먹잇감을 향해 근질거렸다.


“제대로 찾아온거 맞잖아.”


엘은 싱긋 웃으며 카린에게 말했다. 카린도 “그렇네.”하고 그 말에 동의했다. 산에 늑대가 있고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그 늑대가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은빛 털을 가진 은늑대라면, 역시 이상할 수밖에 없다.





어두운 동굴 안에서 거대한 짐슴이 웅크리고 있었다. 길이만 따져 20m될 듯한 거대한 짐승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명확한 형태를 알기는 어려웠으나 큰 숨결과 어둠이 한층 더 어둡게 물들어 있는 모습에서 그 거체의 존재감은 확연했다.


아직 오백 살이 되지 못한 젊은 용, 베켈이다. 그는 용이라는 지고의 종족에 걸맞지 않게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 주변에 풀어놓은, 맹수를 최면으로 세뇌시켜 마련한 가디언의 움직임이 기이했던 탓이다. 모두 움직이질 못했다. 적이 침입했고, 전투로 인해 상당한 정도의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그것 까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기색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을 보면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게 아리송했다. 가끔 몬스터를 퇴치한답시고 자기 영토에 들어오는 놈들 때문에 가디언 삼아 최면을 걸어뒀던 이곳 출신의 맹수들은 대게 죽고 먼 곳에서 다시 들여왔다. 몬스터는 비용이 많이 들어 무리였다. 은빛 늑대였는데, 그가 알기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털 값이 상당했다. 그에 욕심을 내지 않는 인간이란 좀 기이하다.


‘혹시 거래라도 하러 오는 놈들일까?’


그렇다면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가디언을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거래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까? 용과 대화를 하고 싶으면 수단은 달리 얼마든지 있는 법인데. 하다못해 영토 안에서 크게 고함만 질러도 대화의 의사 정도는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놈들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모르겠군. 혹시 또 토벌한답시고 쳐들어오는 놈인가? 고리타분한 성직자 놈들이라면 살생을 금한다면서 가디언을 살려놓을 수도 있겠지.’


일 년에 한 두 번은 주로 기사를 자청하는 인간들에 의해 습격을 받곤 하니 그럴 법도 했다. 변방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사는 곳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고, 자신의 영역 자체가 교통량은 적지만 사람들이 오다니는 길과 겹쳐 있었다. 그래서 몇 명 안 되지만 자신의 위치도 소문 비슷하게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번 폴리모프하고 시장에 나가서 확인해 보기도 했다.


‘으음... 이사라도 가야하나, 쓸만한 곳은 나이 값 한다고 늙은 것들이 다 가지고 있는 판에 겨우 정착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그는 사람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에게 도전한 꼴값하는 풋사과들도 대게 살려서 포로로 만든다. 기본적으로는 데리고 놀면 재밌고, 포로 교환을 하면 돈을 꽤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군대가 동원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천살이 되지 않은 베켈로서 군대는 상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베켈은 오른쪽 발을 들었다. 위엄차게 뻗은 검은색 손톱이 어둠 가운데 희미하게 빛나며 예리함을 과시한다. 그러나 중간발톱이 똑 잘려 있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면 앞으로도 몇백 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재수 없게 제대로 강한 인간이라도 만나면 곤란하잖아... 역시 더 알려지기 전에 둥지를 옮기는 게 좋을지도?’


베켈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지금 감옥이 갇혀 있는 인간이 저지른 짓이다. 자칫하다간 발가락 하나가 날아갈 뻔했다. 과거에 봤던 소드 마스터라는 종류의 인간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강했다. 매년 한 두 번이라고 해도 천살이 될 때까지면 천 번은 더 싸워야 한다는 소리다. 그 가운데 자기 발톱을 잘라먹은 녀석들만큼 센 녀석이 나타나질 않길 기대한다면 바보소릴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드문드문 나타나는 인간들도 이제는 거북했다.


‘응?’


베켈이 개인적인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레어로 누군가 침입한 것이 느껴졌다. 레어 안에서라면 용의 감각은 비할데 없이 예리해 진다. 두 사람이었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나이는 둘 다 어린 것 같았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안정된 호흡과 걸음, 심박이었다. 싸우러 온 게 아닌 것 같았다.


“계십니까?”


싸우러 온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중한 목소리로 남자가 외쳤다. 꽤 먼 곳에서부터 동굴이 쩌렁쩌렁 울렸다. 베켈은 고민을 감추고 몸을 꼿꼿하게 폈다. 인간을 맞이하려 한다면 용다운 위엄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본디 기선 제압은 종족을 초월해서 맞상대할 때 중요한 것이다. 거체가 움직이며 쿠웅- 하고 동굴 바닥에 울렸다.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낸 소리였다. 너무 세게 하면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잇다는 것도 고려한 세심한(소심한) 시위였다.


두 인간이 그 소리를 듣고 방향을 가늠하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곧 두 사람은 빛나는 공 같은 것을 앞세우고 베켈의 앞에 도착했다. 빛이 그의 레어 가장 안쪽을 비추며 용의 것 치고는 좀 가난해 보이는 세간과 보화를 화려하게 드러냈고, 무엇보다 검은 용의-조금 야위었지만-위용찬 모습을 그윽한 음영과 더불어 나타냈다. 엘은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력한 인간이 위대한 마법 왕의 한 후예를 뵙습니다.”


-내 영토 내의 가디언을 해하고, 잘도 그런 말을 할 담량이 있구나, 인간.


“사죄드립니다. 그러나 직접 인사드릴 방도가 없었기에 그러한 무엄한 짓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디언은 한 마리도 해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모두 깨어나겠지요.”


-예의바른 인간이로군, 그래 무슨 용무지?


베켈은 소년의 정중한 인사에 기분이 좋아져 물었다. 보아하니 싸우러 온 것 같지도 않았고, 별로 적대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늑대를 모두 죽이지 않고 제압한 것을 보자면 그 실력도 상당한 수준인 듯 싶고 말이다. 엘은 처음처럼 예의바르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검이 있다면 빌려주십사 하고, 찾아왔습니다.”




*용 여기저기 있음... 알아보시는 분도 있겠죠. 껄껄.


*즐겁게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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