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이첼 님의 서재입니다.

서브라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1,231,936
추천수 :
2,226
글자수 :
613,860

작성
06.10.29 22:53
조회
16,197
추천
15
글자
10쪽

사자 기사단(3)

DUMMY

소개가 끝나고 엘과 카린에게는 목검이 하나씩 주어졌다. 브로드 소드로 보이는 것이었고, 철심을 박아 무게를 실제 브로드 소드와 비슷하게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대열을 맞춰 종자들은 숙소 뒤편의 공터로 갔다. 거기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수십 개 늘어서 있었다. 두 사람당 하나가 배정되었다. 교관은 그들에게 팔방베기로 점심때까지 인형을 치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자유 수련인 모양이다.


“팔방베기라.”


엘은 검을 뒤로 넘겨 어깨를 툭툭 치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그리움에 미소지었다. 이런 기초 수련은 오랜만에 해 보는 것이다. 옛날에는 정말 피똥, 피오줌을 쌌을 정도로 철저하게 기초 훈련을 했다.


“엘도 옛날에 많이 했지?”


“응. 많이 했지. 마나를 몸 전체로 돌릴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줄곧 이런 기초수련만 했으니까. 다시 생각하면 토할 꺼 같아. 지독했지.”


그리고 엘은 검을 들고 팔방베기의 기본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움직이지 않았다. 묵묵히 정지해 있었다. 그러나 카린은 눈을 반짝이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 동작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란 걸 그녀의 눈은 잘 안다. 카린은 물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어?”


“음... 이거 하다가 굶어죽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있어. 뭣하면 여기서 팔방베기 한 동작 끝내는데 한 십년쯤 걸리게 할 수도 있지.”


엘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본디 인간은 너무 느린 것은 움직인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각적 인식의 한계는 운동능력의 한계이기도 해서, 사람의 근육은 일정수준 이상의 자극이하에 대해서는 반응하지 않는다. 최저 속도가 설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엘의 이 동작은 그의 운동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본디 저러한 움직임은 인간 육체의 물리적 한계 내서는 구현 불가능하다.


“이걸 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사부는 제대로 검을 가르쳐 줬지.”


엘은 아련하게 말했다. 검을 완전히 육체에 종속시키기. 아니. 육체 그 자체로 만들기. 어떠한 경우에도 의지를 벗어나는 일 없이, 의지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검. 가장 작은 단위의 움직임조차 의식으로 제어하기. 그것을 완성한 다음에야, 엘은 일좌의 검을 접했다. 그것은 아름답다는 것 외에 달리 형용하기 힘든 찬연한 검의 세계였다.


“헤에.”


카린이 유쾌한 얼굴로 엘의 말을 받았다. 그녀는 이런 엘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세계를 그의 세계에 겹쳐,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엘이 갑자기 자신의 검을 거뒀다. 극미(極微)의 움직임을 즐기고 있던 카린은 아쉬운 얼굴로 물었다.


“왜?”


“손님이 오셨군.”


엘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카린이 뒤를 돌아봤다. 건장한 체격의 갈색 머리 장한이 서너명의 남자를 대동하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 뒤로 종자들은 모두 수련을 멈추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엘은 가벼운 짜증을 느꼈다. 그들 가운데 선두에 서 있던 갈색머리가 엘을 향해 조소하는 표정을 보내며 말했다.


“너, 류디스의 종자라지.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여자랑 노닥거리-”


그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엘이 사뿐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뻐억, 소리가 나며 그가 무너졌다. 엘의 무릎이 언젠지도 모르는 사이 그의 낭심을 찍은 것이다. 고통에 일그러진 그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사내들이 긴장했다.


“이!”


욕설과 반응이 이어지려는 순간, 엘의 발이 움직였다. 맨 왼쪽에 있던 남자의 턱이 흔들리더니 풀썩 쓰러졌고, 이어 중간에 서 있던 남자는 뒤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는 발뒤꿈치를 얻어맞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청소 끝.”


엘은 손을 탁 털며 말했다. 십초도 걸리지 않은 싸움이다. 그는 시선을 뒤로 던졌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종자가 있었다. 그는 엘과 시선이 마주치자 어개를 좁히며 얼른 원래 하던 수행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늦었다.


“거기 너.”


“뭐, 뭐야.”


대범하고자 하지만 이미 겁먹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목소리였다.


“여기 쓰레기들 좀 치워주지 않겠어?”


“내, 내가 왜...”


“그렇군. 오늘 아침에 나를 보고 즐겁게 웃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네겐 이 일을 할 이유가 없군.”


엘은 싸늘한 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그는 그나마 유지하던 표정을 한 번에 허물어뜨리고,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라며 옆에 있던 다른 종자의 어깨를 치고 얼른 시체처럼 쓰러진 녀석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맨 먼저 들쳐 업은 것은 그들이 엘에게 시비걸때 선두에 섰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혹시 그 녀석 이름이 ‘엘크’야?”


“그래.”


종자가 답했다. 엘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건 너무 노골적이다. 이곳에서 류디스의 입지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과 같았다. 엘은 류디스의 처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다 생각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카린이 그를 맞이 하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무작정 패도 돼?”


“의도야 뻔하잖아. 일일이 상대하는건 귀찮아. 그리고-”


“그리고?”


“엘크란 녀석, 너 한테 음충맞은 시선 보내던 놈이란 말야. 괜히 거길 찍은게 아냐.”


엘이 말했다. 카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기쁘지만 쑥스러움이 묻은 어조로 물었다.


“하, 하지만 조용히 지내야 하지 않아? 그래서 종자로 들어온 거 아냐. 이렇게 요란하게 굴면 소용없는거 아냐?”


“좀 위험하긴 해도 충돌하지 않고 지나갈 순 없잖아. 달리 방법도 없었는걸. 그렇다고 ‘알겠습니다.’ 하고 굴복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싹 쓸어버리고 말지.”


엘이 냉혹하게 말했다. 일대의 종자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엘이 방금 내뿜은 기세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런가...”


“그리고 ‘인간적인’ 범주에서 상대했으니까 그저 싸움을 좀 잘하는 정도로 받아들였을 거야. 큰 소란은 안 일어날걸. 기사단쯤 되는 곳이라면 이런 소동에 익숙할테고.”


“그건 그렇겠네.”


“그런데 차금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류디스의 입지가 이곳에서 좁을 거란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한걸. 대놓고 시비를 걸어올 줄이야.”


엘크가 들었으면 아주 억울해 했을 말이다. 그는 시비다운 시비를 걸지 못하고, 매우 고통스럽게 쓰러졌다. 카린이 엘이 이대로 있을리 없다는 것을 눈치 채고 다소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이쪽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나머지는 두고 볼 생각이야. 일단 중요한 것은 저 엘크라는 개새끼의 주인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이겠지.”


“조날 안바르디?”


“그래. 조날 안바르디. 이왕 여기까지 엮였는데, 가능하면 류디스를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겠지.”


엘은 웃으며 말했다. 카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런 건 싫어하지 않았다.






“이런 병신새끼!”


안바르디의 발이 날았다. 그의 앞에 꿇어앉아 있던 엘크의 머리가 뻐억! 소리와 함께 뒤로 돌았고, 그는 “끄악!”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잘 만들어진 가죽구두 밑창으로 설점과 피가 진하게 묻었다. 엘크는 짖이겨진 얼굴을 들어 두려움에 덜덜 떠는 눈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도련님.”


안바르디는 씩씩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분노에 뜨거워진 그의 얼굴은 화려한 금발의 머릿결과 어울려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잘 다려진 화려한 복장이 그의 신분을 드러냈다. 그는 다리를 꼬아 건들거리며 엘크를 향해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디스 같은 갈보의 자식 밑에 있는 종자 따위에게 져서 온 기사단 내에 소문이 다 났다지? 이 조날 안바르디의 종자가 진게 말야. 제기랄!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군.”


“바, 반드시 설욕하겠습니다.”


“설욕?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수단은 상관없으니까 그 새끼들 전부 죽여. 뒷배경도 없는 천민 따위 천명이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갈보의 자식 따위는 배경이 될 수 없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씨발! 하라면 할 것이지!”


조날 안바르디는 엘크가 무언가 말대답을 하려는 것 같자 불같이 화내며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또 걷어차이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조날은 마나를 운용할 줄 안다. 엘크가 서둘러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더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그 종자 가운데 여자가 한 명 있는데 무척 미인입니다.”


“호, 그래? 지난번 그 계집보다?”


그 말을 듣고 노했던 조날의 얼굴로 흥미의 기색이 스쳤다. 그는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의자에 다시 앉았다. 지난번 엘크가 물색해 범했던 계집은 각별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다시 사타구니 쪽으로 피가 몰린다. 엘크는 조날의 물음에 단언했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입니다.”


“그건- 매력적이군. 그 계집에 대해서는 내일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하지.”


“예.”


엘크는 기쁘게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떡고물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그 전까지 사타구니의 아픔이 나아져야 할 테지만, 아마 일이 끝날때까지는 전처럼 건강해질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끼치는 아픔이었다.


‘그 자식...!’


엘크는 엘에 대해 이를 갈았다. 그는 엘을 반드시 거시기부터 칼로 베어내고 죽이리라 결심했다. 조날 안바르디가 분노한 이상 그 건방진 천민에게는 길이 없다.



*복잡하게 플롯 안 잡고 쓰는 게 더 어려운 거 같습니다. 안 쓰던 스타일의 글이고 보니. 흑흑흑.


*즐겁게 읽으시길. 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브라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데시크리아 남작가문(4) +47 06.12.13 13,990 41 11쪽
27 데시크리아 남작가문(3) +50 06.12.10 14,023 23 12쪽
26 데시크리아 남작가문(2) +42 06.12.07 14,572 29 11쪽
25 데시크리아 남작가문(1) +33 06.12.04 15,979 23 11쪽
24 어비스(6) +44 06.12.01 15,335 60 13쪽
23 어비스(5) +59 06.11.28 14,353 25 13쪽
22 어비스(4) +34 06.11.25 14,443 25 13쪽
21 어비스(3) +31 06.11.23 14,439 23 13쪽
20 어비스(2) +37 06.11.21 14,684 21 11쪽
19 어비스(1) +35 06.11.19 16,888 21 12쪽
18 마스터 로시테아(6) +40 06.11.15 16,969 18 11쪽
17 마스터 로시테아(5) +37 06.11.13 15,930 18 11쪽
16 마스터 로시테아(4) +39 06.11.12 15,828 19 11쪽
15 마스터 로시테아(3) +34 06.11.09 15,723 18 13쪽
14 마스터 로시테아(2) +35 06.11.08 16,012 15 13쪽
13 마스터 로시테아(1) +41 06.11.05 16,455 17 11쪽
12 사자 기사단(5) +28 06.11.03 15,909 14 12쪽
11 사자 기사단(4) +48 06.10.31 15,871 35 12쪽
» 사자 기사단(3) +31 06.10.29 16,198 15 10쪽
9 사자 기사단(2) +32 06.10.28 16,653 23 10쪽
8 사자 기사단(1) +50 06.10.26 18,989 28 12쪽
7 기사 견습생 류디스(4) +36 06.10.24 19,634 18 11쪽
6 기사 견습생 류디스(3) +37 06.10.20 21,096 41 10쪽
5 기사 견습생 류디스(2) +41 06.10.17 21,184 29 11쪽
4 기사 견습생 류디스(1) +47 06.10.15 26,655 26 13쪽
3 여행의 시작(3) +52 06.10.12 27,517 27 9쪽
2 여행의 시작(2) +41 06.10.08 32,187 34 10쪽
1 여행의 시작(1) +56 06.10.06 63,052 47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