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골드에 넘기게.
모두의 시선이 안토니에게 향했다.
한데··· 카이를 찾을 것이라 예상했던 안토니가 루이스를 찾는다?
살짝 놀란 루이스가 용건을 물었다.
“······제게 볼일이 있으세요?”
경계 어린 루이스의 모습에 안토니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까 얘기했던 설계도면 말일세.”
‘꿀꺽.’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안 그래도 자신 때문에 일이 엉망이 될뻔했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럴까.
루이스는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흘깃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때, 안토니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천 골드에 넘기게.”
“······.”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아무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의 모든 일행의 얼굴에 불쾌감이 확 피어올랐다.
천 골드라면 물론, 엄청난 금액이다.
보통 4인 가족이 평균 들어가는 생활비가 대략 80골드를 넘기지 않는다.
천 골드, 보통사람이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액수다.
종이쪼가리 한 장에 천 골드!
보통 때라면 그 말에 홀딱 넘어가 바로 바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보물을 쫓는 사냥꾼, 다름 아닌 트래져 헌터들이다.
당장만 바라보면 천 골드는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더 큰 꿈을 품고 이 일에 모여든 자들이다.
고작, 천 골드에 꿈을 팔 자들이 아니다.
제아무리 상대가 황자··· 아니, 황제라 해도 꿈을 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카이가 다가와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안토니도 만만찮았다.
“난 자네가 아니라 이쪽 숙녀분께 제의했네. 자네는 설계도면의 주인이 아니지 않은가.”
그때까지 쩔쩔매고 있던 루이스가 안토니의 이와 같은 한마디에 돌변했다.
“미안하지만 저도 설계도면의 주인이 아닌데요.”
“······?”
안토니가 고개를 갸웃하자 카쿤이 말했다.
“지금은 우리 파티원의 소유요. 그러니 파티의 리더인 카이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
안토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돌아가는 정황을 보니 그사이, 화해한 것은 물론, 똘똘 뭉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카이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 있는 일행 모두! 각자에게 천 골드씩 주겠네.”
술렁―――
“모두 아홉 명이니 합이 9천 골드가 되겠군.”
‘9천 골드!’
흔들리는 카이 일행의 눈빛에 안토니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과분한 액수이긴 합니다. 하지만······.”
황급히 거절하려는 카이의 입을 안토니가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오늘 하루 생각할 시간을 주겠네. 자네 혼자 독단으로 결정하면 안 되지. 모두가 주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
“난,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찾아오겠네. 그러니 잘 생각해보고 그때 확실히 결정에 대한 대답을 해주게.”
“······.”
안토니는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자신이 할 말만 내뱉고 얼른 사라졌다.
.
.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카이는 씁쓸한 얼굴로 일행을 쓱 돌아보았다.
모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눈에 확 들어왔다.
자신도 아주 잠깐 마음이 흔들렸는데 일행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아홉이면··· 어린 모건까지 그 수에 포함시켰다는 뜻이다.
‘어렵군.’
일행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야영준비를 서둘렀다.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어둠이 깔리자 일행은 모두 모닥불 근처에 모여 앉았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않다가 가장 먼저 카쿤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조상님의 업적이 고이 담겨있는 그곳을 보고 싶을 뿐이오. 애초에 보물 따윈 탐내지 않았는데 9천 골드라고 뭐가 다르겠소.”
카쿤에 이어 이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또한 보수나 보물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처음부터 말했을 거예요.”
“······?”
이설의 말에 모두가 ‘왜?’ 하는 눈초리로 놀라 쳐다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다 이설이 준비했던 대답을 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해두죠. 크레이뇽의 마법 물품이나 업적이 있다면··· 조금··· 아니, 대단히··· 보고 싶어요.”
직업병!
원체 마법사들이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많이 보였기에 일행은 이설의 말을 이해했다.
이때, 반대로 재물에 욕심을 내보이는 의견도 나왔다.
“나도 반대! 아 물론, 나는 9천 골드보다 크레이뇽의 보물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반대에요. 게다가··· 저주의 램프를 생각해보라고요. 아마 그걸 경매에 올리면 최소 수십만 골드는 호가할 텐데··· 미쳤다고 고작 9천 골드에 넘겨요?”
“······.”
과연, 잠시 9천 골드에 흔들리긴 했으나 이들은 뼛속까지 단단히 직업정신이 틀어박힌 트래져 헌터들이다.
.
.
.
“그나저나··· 걱정이군.”
랄프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밝은 표정이던 일행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야반도주나 해버릴까?”
바이탈이 반 농담을 툭, 뱉어냈으나 솔직히 일행 모두의 심정은 똑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에서 번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래서 귀족 새끼들이 싫은 거야. 보나 마나 돈으로 안 되면 힘으로 뺏으려고 할걸?”
“······어쩌면 입막음을 하기 위해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행의 예상은 빗나갔다.
.
.
.
설계도면에 대해 전해 들은 일 황자, 아담은 설계도면을 당장 보길 원했다.
그러나 강제로 뺏어오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대가를 지불하면 아마 전하께 넘길 겁니다.”
“······그들이 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었기에 안토니는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들을··· 일행에 합류시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
아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아담은 진지한 눈빛으로 안토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이 내 행보에 도움이 될 만한 자들이라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안토니는 일행의 리더인 카이가 마음에 들었다.
또,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닌 이설도 더 보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설계도면이 생긴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전하께 큰 도움이 되는 자들입니다.”
“······.”
결국, 아담의 입에서 기다렸던 대답이 흘러나왔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그들에게 나를 안내해주세요.”
“······전하?”
“내가 직접 그들에게 제안해보겠어요.”
안토니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다음 날, 황자가 머물던 야영지 주변이 날이 밝자마자 시끌벅적해졌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아담은 용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때마침 기사단장 안토니가 수하 기사들에게 뭐라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바보 같은 녀석들! 너희가 그러고도 황자를 모시는 이그니스 기사단원들이라 할 수 있겠느냐!”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른 시간부터 저리 소란일까?
“베르티아 경.”
가뜩이나 화딱질 나는 판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안토니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또 뭐냐?”
고개를 갸웃거리며 뚫어지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담과 딱 마주친 안토니.
“저, 전하!”
황급히 몸을 숙여 고개를 조아린 안토니의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런 안토니의 곁으로 아담이 터벅터벅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전하. 그, 그것이······.”
아담의 시선이 안토니의 뒤쪽에 마치 죽을죄를 지은 양, 구십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선 기사들에게 향했다.
“저들이 혼나고 있는 이유를 제가 들어선 안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어차피 전하께서도 아셔야 할 일입니다.”
“······.”
말과 달리, 매우 말하기 꺼려하는 안토니의 모습에 아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안토니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자신의 호위를 맡고 있지만, 한때 대륙을 누비며 천하를 호령하던 그다.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유언을 들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수호 기사가 되었지만 늘 당당함을 잃지 않는 그였다.
또한, 지금까지 황궁의 일 황자로 버티며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가 곁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단한 인물인 그가, 이토록 난처한 모습을 보이다니··· 아담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때, 안토니가 따로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다섯 명의 기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들은 어젯밤 번을 서던 녀석들입니다.”
“흠······.”
“실은··· 어제 말씀드렸던 그자들이··· 밤사이··· 사라졌습니다.”
“······음?”
아담의 평평했던 미간에 깊은 골짜기가 세 개나 들어섰다.
그때, 번을 섰다던 기사들 가운데 한 명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분명 오늘 새벽까지도 그들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여기 동료들도 모두 확인한 일입니다!”
이에 동료 기사가 동조하고 나섰다.
“이그니스 기사단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나머지들도 합심하여 말했다.
“맹세합니다!”
“저, 저도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아담이 한숨을 내쉬며 안토니에게 물었다.
“그들의 짐은··· 확인했나요?”
“송구합니다. 그릇 하나 남겨놓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
“그들이 머물다간 흔적이라곤 오직··· 이미 오래전에 꺼진 불씨뿐이었습니다.”
“놀랍군요. 마차까지 움직였다면 바퀴 소리나 말 울음소리라도 들렸어야 했는데······.”
안토니가 침음성을 토해내며 말했다.
“마법을 사용한 듯합니다.”
“호오, 대단한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군요. 소드 마스터인 베르티아 경의 감각까지 속일 정도라면 말이죠.”
“······.”
안토니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안 그래도 간밤에 혹, 카이 일행이 야반도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몸의 감각을 평소보다 훨씬 몇 배로 개방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들이 빠져나가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기사들의 말에 의하면··· 새벽까진 있었다잖아요. 그렇다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 아닌가요?”
“이미 추적대를 보냈습니다. 아마 곧 연락이 올 테니··· 그동안 전하께선 이동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그러죠.”
그러나 그들은 그 뒤로 쭉 카이 일행을 만날 수 없었다.
***
“푸핫하하······.”
“크크크큭······.”
“핫하하하······.”
“······!”
아담스 황자와 한참 떨어진 곳에 일단의 무리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뭐가 그리 급한지 전속력을 다해 움직이면서도 입은 계속 웃고 있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이설이 속해있는 카이 일행이었다.
일행의 웃음이 멈춘 시간은 정오가 훨씬 지난 후였다.
아침 내내 거르고 강행군을 한 터라 일행은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를 위해 잠시, 작은 공터에 말을 멈췄다.
말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모건이 참지 못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서리 누나 정말 탄복했어요! 그 대단하다는 이그니스 기사단의 이목을 완전히 피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정말이야, 언니! 다시 봤어요. 그 안토니라는 아저씨, 능력자 같던데··· 그 아저씨 깰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모건에 이어 루이스까지 칭찬하자 이설은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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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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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바이탈이 농담조로 내뱉은 야반도주 이야기가 이설로 인해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이설은 일행이 무사히 야영지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기사를 비롯해 황자 일행 전부에게 마법을 걸었다.
그들의 눈과 귀를 착각 속에 빠져있게 한 것이다.
카이 일행이 야영지에 여전히 잠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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