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연축성 발성장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은우가 성대 결절이 왔다는 말씀인가요?”
“글쎄요. 저야 의사가 아니니까 잘 모르지만 성대 결절하고는 좀 다른가보더라고요. 이비인후과도 여러 군데 가본 모양인데 신통한 방법이 없나 봐요. 이런 병도 한방으로 치료가 될까요?”
“일단 은우를 진찰해봐야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마 대표는 그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그로서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내일 한 타임 비워둘 테니, 은우한테 한의원으로 오라고 말씀 전해 주세요.”
“제가요?”
“그러면 누가해요?”
“제가 전하는 건 하나도 힘들게 없지만, 사실은 그 녀석이 이비인후과에 가기 전부터 원장님한테 치료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거든요.”
“그러면 오면 되지 뭐가 문제에요?”
“은우 누나. 이름이 뭐더라?”
“은교요.”
“아! 맞다. 은교. 그 누나 때문에 창피해서 원장님 얼굴 보기가 민망한 가 보더라고요.”
“은교문제하고 은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그렇죠. 그럼요. 그런데 은우 입장은 또 그게 아닌가 봐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은우한테 전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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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락을 받자마자, 은우는 당장 달려왔다.
오후 3시 쯤 와서 거의 네 시간 가까이 기다린 다음 그와 마주 앉았다.
“좀 마른 것 같네?”
“예. 그동안 ······ 안녕······하셨습니까? 원장님.”
“그래. 그럭저럭. 그나저나 대표님 말씀 들으니까 목에 무슨 문제가 있다면서?”
“예. 원장······님. 혹시······.”
은우는 여러 번 말을 하다말았다.
“너, 연축성 발성장애가 왔니?”
그가 묻자, 은우는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밝아졌다.
“예. 마, 맞···습······.”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있었고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노래할 때 바이브레이션과는 분명히 달랐다.
은우는 그가 이 병명을 알고 있다는 것에 다소 놀라는 것 같았다.
병명을 알고 있으니 고친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 하는 것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축성 발성장애는 일반인에게도 생소하지만 한의사에게도 익숙한 병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하다가 목이 막혀 멈추는구나?”
“예.”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된다. 꼭 하고 싶은 말만 해도 된다. 아니면 문자를 보내던가.”
“예.”
연축성 발성장애는 성대가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고, 순간적으로 너무 많이 닫히거나 열리게 되는 질환이다.
순간적으로 닫혀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게 되면 말을 하다가 말문이 막혀 말이 끊어지거나, 잠기기도 한다.
소리가 거칠어지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진단의 분명한 기준도 없어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마땅한 완치 방법도 없다.
몇 달에 한 번씩 해당 부위에 보톡스를 맞는 방법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치료법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완치요법은 아니다.
그러나 은우에게는 보톡스요법도 곤란하다.
가수는 포기해야한다.
그는 이 모든 내용이 은우의 입을 통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로서도 이런 말을 은우에게 하는 것이 몹시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기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주 간단한 말도 잘 못하는 상태인데 말이다.
“은우야. 너, 혹시 보톡스 치료 받았니?”
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연축성 발성치료는 치료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니?”
은우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주 보고 앉아있는 상태에서.
-그래도 저는 원장님께 치료 받고 싶습니다.-
“대표님 말씀으로는 한 곡 남았다던데, 녹음날짜가 잡혔어?”
“다음 주······.”
은우는 말을 하다가 목이 잠기자 중단하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다음 주 화요일이요.-
‘하아! 다음 주 화요일이면 며칠 안 남았는데! 그 때까지는 도저히 안 되고.’
그는 고민 끝에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 이 병에 대해 알아 볼만큼 알아봐서 잘 알겠지만, 낫는다고 장담은 못해.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이 병 치료해본 경험도 없고. 그렇지만 네가 나한테 치료 받고 싶다니까 한 번 해 보자. 일단 매일 와서 치료 받자.”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임시방편을 쓸 수밖에 없어. 자석침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활용해보자.”
-그러면 녹음할 수 있을까요?-
“내가 말 했잖아. 나도 경험이 없다고. 도전해보는 거야.”
은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민하는 눈치였다.
“내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하지 마. 너한테 강제로 권할 생각은 없어.”
은우는 망설이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원장님께 치료 받겠습니다. 원장님이 못 고치면 아무도 못 고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노래 못하면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에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번 발버둥 치다가 죽고 싶습니다.-
“그래. 알았다. 우리 둘이 미친 짓 한 번 해보자. 침구실로 가서 침대 위에 누워라.”
은우는 침대에 누웠다.
그는 은우의 목 주변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목 주변에 침을 두 개 놓을 거야. 네가 겁 먹을까봐 미리 말해주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마라. 최대한 안 아프게 놔 볼 테니. 알았니?”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누워 있는 은우의 목 주변에 자침했다.
천정(天鼎:흉쇄유돌근의 바로 뒤쪽의 함몰부위)혈과 천돌(天突: 빗장뼈의 안쪽 끝의 함몰부위)혈에 자침했다.
그런 다음 열결, 태충, 내관, 곡지혈에도 자침했다.
자침을 마친 그는 맞은 편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다음 주 화요일로 잡혀있는 녹음은 취소할 수도 있다.
그건 별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이걸 트집 잡아, 마 대표가 은우의 가수 데뷔를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투자된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계속 돈을 밀어 넣다가 엎어지면 손해가 더 커지니까.
그러니 이 정도에서 은우에 대해 손을 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 대표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경영자이고, 경영적 판단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럴 경우, 은우가 망가질지 모른다.
조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저는 노래 못하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물론 노래하고 싶다는 절실함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심코 넘길 수도 없다.
가수 데뷔 하나만 보고 달려온 아이가 노래를 포기하면 어떤 위험한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다.
‘막아야한다.’
그가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몰라도, 최선을 다해 막아야한다.
15분이 지났다.
“자! 발침한다.”
그런 다음 그는 자석침을 은우에게 보여주었다.
“너, 자석은 알지? N극, S극 있는 그 자석.”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석침을 네 손 발에 놓을 거야. 자석침이니까 아프지는 않아. 자석위에 밴드를 붙이면 끝나거든. 그리고 두 시간 후, 네 손으로 떼면 돼. 쉽지?”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석침을 은우의 상하지에 붙여주었다.
담정격(膽正格)을 선택했다.
통곡(通谷)과 협계(俠谿)를 보(補)했다.
상양(商陽)과 규음(竅陰)을 사(瀉)했다.
보법은 자석의 N극을 혈자리에 붙이면 되고, 사법은 S극을 혈자리에 붙이면 된다.
세 시간 후.
집에서 쉬는 데 은우로부터 문자가 왔다.
-원장님. 목소리가 나와요. 치료 받기 전보다는 훨씬 더 좋아요. 물론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요.-
전통 침의 효과인지, 자석침의 효과인지, 아니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건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아직은 좋아하기엔 이른 것 같다. 물론 좋아졌다니 다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석침은 뗐니?-
-예. 뗐습니다.-
-잘했다. 같이 노력해보자. 잘 자라.-
-원장님도 안녕히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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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이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던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은우는 벌떡 일어나더니 꾸뻑 인사했다.
“은우야. 일찍 왔네. 목소리는 좀 어떠니?”
“치료 받기 전보다는 훠······씨이 말이 잘 나옵니다.”
그가 듣기에도 많이 좋아진 건 분명했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고, 소리가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어어! 좋네. 어제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네. 너, 혹시 노래도 할 수 있겠니?”
“노오······는 안 해봤는데요.”
“한 번 해볼래? 조금만이라도.”
“지금요? 여기 서요?”
“그래. 왜? 여기서는 하기 싫니?”
은우가 망설이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부추겼다.
“학생. 노래 한 곡 해봐요. 아침부터 노래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 좋지.”
은우 옆에 앉아 계시던 60대 여성 어르신이 부추겼다.
그러자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분도 노래를 청했다.
두 선생도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은우를 바라보았다.
은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효신의 <야생화>
하얗게 피어난 얼음 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아무 말 못했던 이름도 몰랐던
지나간 날들에 눈물이 흘러
은우는 여기까지는 비교적 잘 불렀다.
목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소리가 약간 거칠었고 평소와는 달리 음정이 약간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를 앞두고 목소리가 끊어졌다.
은우는 노래를 중단하고 말았다.
“어머! 은우씨, 노래를 되게 잘 부르네요.”
차 선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딱 내 스타일이야, 언니. 완전 가수 같아요.”
조 선생은 감탄하는 표정을 과장되게 지으며 말했다.
“아! 몰랐구나! 이 친구 가수예오. 곧 데뷔할 거예요.”
“그래요? 어쩐지! 싸인 받아야겠네요.”
차 선생이 눈으로 은우의 의사를 물었다.
“아예.”
은우가 두 선생에게 싸인을 해주고 기념사진을 찍는 동안, 그가 60대 여성 어르신에게 물었다.
“저 친구 노래 잘하죠?”
“뭐 그냥저냥 들어줄 만은 한데, 노래는 역시 나훈아 오빠야.”
그러자 일행도 맞장구쳤다.
“그럼. 우리 훈아 오빠가 최고지. 원장님은 가수 누구 좋아하세요?”
“예. 저는 다 좋아합니다.”
그는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연축성 발성장애는 미지의 세계이다.
치료에 나서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호전을 확인한 지금은 이런 도전이 꼭 미친 짓은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본 것이다.
물론 여전히 완치될 가능싱은 거의 없고, 아무 문제없이 녹음을 끝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치료 가능성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치료 이틀째.
그는 은우에게 자침했다.
어제와는 다른 혈에 자침했고, 자석침도 놔줬다.
이번에도 담정격이다.
그리고 한약도 처방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치료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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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퇴근 시간이 다 될 갈 때쯤, 선 회장이 한의원으로 오셨다.
“아니 회장님은 늘 갑자기 오십니까? 연락도 없이요?”
“놀러오는 건 예약 안 해도 된다며?”
“그러시다가 제가 없으면요?”
“없으면 그냥 가면 되지 뭐가 문젠가? 안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만 귀하신 어른께서 헛걸음하시는 건 좀 그렇잖아요.”
“허 원장이 날 귀하게 생각하기는 하나? 날 매번 구박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귀하게 대접한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오해한 건가?”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자네 퇴근하고 약속 있나?”
“아뇨. 없습니다.”
“그럴 줄 알고, 저녁 사주려고. 자네, 회 좋아하시는가?”
“저, 회 사주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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